처음부터 강렬하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미러볼, 음악, 그리고 색채가 나를 압도한다. 줄거리 역시 그것을 이어받는다. 제인이 약을 먹고 손님들에게 노래하는 모습에서 조정환에서 제인으로의 또 다른 페르소나는 힘들고 지쳐도 약을 먹고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일터로 나가는 현실 속 우리의 모습과 같다. 처음부터 거짓으로 태어났다는 트랜스젠더인 제인은 불행하게 오래오래 살자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짧고 강하게 살았다.
제인이 죽은 뒤 모두가 집을 떠날 때 주인공이 제인이 앉았던 자리에 큰 쿠션을 올려놓은 것은 제인이 아직도 거기에 있다는 것, 제인을 영원히 그 자리에서 기억하고자하는 남겨진 사람들의 애도방식인 것 같다. 영업장에 아이들을 불러 제인과 그들이 달을 보며 “오라이”하며 달을 불러 달에게 오라고 하는 것은 잡을 수 없는 달처럼 이룰 수 없는 꿈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제인은 왜 소현과 다른 아이에게도 달을 부르라고 했을까.
시간이 흘러 소현의 상실감과 외로움은 지수로 향한다. 정호 오빠, 제인에 이어 지수까지 소현의 외로움을 채워주는 상대는 사라지거나 자살한다. 지수도 죽고 팸의 아빠라고 불리는 남자도 죽임을 당하고 선하건 악하건 모두가 죽는다. 소현은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그녀는 외롭다. 지수의 친구에게 자신이 지수라고 하며 거짓을 이야기한 것도 사람이 그리워서 혼자 남겨지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렇게라도 사람과 섞이고 정을 붙잡고 싶었나 보다.
이 영화는 어디가 현실이고 어디가 꿈인지 애매하다. 제인과 지수가 자살하고 땅에 묻는 담요가 동일한 것으로 나온다. 소현의 행복한 꿈에 등장하는 두 인물은 동일인물일수도 있다. 꿈은 꿈이니까. <꿈의 제인>은 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걷지 못하는 주인공이 가상현실, 즉 꿈의 세상에서 전사로 영웅 놀이를 하는 것처럼, 소현에게 제인과 지수와 함께한 행복한 시간은 찰나처럼 꿈에서만 가능하고 현실은 그녀가 받은 도장처럼 UNHAPPY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