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 열두 명의 현자
윌리엄 글래드스톤 지음, 이영래 옮김 / 황소북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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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생에 처음으로 내뱉어 본다 

낚였다! 

나는 인류종말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지금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불길한 사회정서와 한번도 예측하지 못했던 대규모 자연재해, 나날이 급변하는 기후 문제들을 볼 때, 어쩌면 정말로 1~2년 안에 지구에 큰 시련이 닥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큰 자연재해가 뉴스에서 소개될 때마다 처참한 모습에 마음이 아프면서도 진심반 농담반으로  인류 멸망으로 온 인류가 한번에 저승에 가면 붐빌테니까 신께서 지금부터 차곡차곡 정리하는 거 아니냐고.. 우리도 언제 저렇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결코 2012년 인류멸망은 현 인류의식의 멸망일 뿐 새로운 의식의 세계가 도래하는 시작과 맞물린 끝일지도 모른다는 희망 또한 가지고 있다. 고대 마야인들의 예연처럼말이다.. 이런 내게 영화 2012는 우리의 미래와 나의 바람을 미리 엿볼 수 있는 대단한 매력 그 자체로 여겨졌다. 그런데.. 이 영화의 원작이 있다니.. 영화보다 책읽기를 더 좋아하는 나에게 완전 구미가 당기는 일이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사기였다. 아니 말장난이라고나 할까? 영화와 책의 내용은 연관성이 없다. 책에서는 분명 2012가 영화화된다고 했는데도 말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 2012는 이 책아니라 2012년 자체라는 답이 나왔다.)  

2012. 부제목 열두명의 현자. 그러나 이 책은 2012년이라는 특수성에 살짝 발만 담근, 그리고 전혀 12명의 현자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왠만해서는 모든 장르에 흥미를 느끼는 나에게 별 하나가 아깝다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게 만든.. 더불어 이 책을 쥐고 있던 시간이 아까울만큼 형편없는 이야기였을 뿐이다. 이책의 원제는 12.. 즉 12명을 뜻한다.. 차라리 원제 그대로였다면 이렇게 화가치밀지는 않았을 것 같다.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감정은 출판사를 찾아가 '현자'의 뜻이 뭔지는 알고 있느냐고 묻고 싶을 정도였다. 그들은 현자가 아니였다. 그저 운좋게 '선택'받은 자였을 뿐.. 그리고 주인공이 맥스역시도 '그것'과는 거리가 멀고 먼 정말 주인공답지 않은 주인공이였다. 주인공에게 이런 환멸을 느끼게 하는 소설도 드물 것이다. 주인공 자체가 '그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처음에는 온갖 미사여구를 붙여 완전 천재에 준신성시화를 해서 이질감을 드높여 놓더니만 나이를 먹을 수록 그저 돈을 좋아하고, 처음보는 여자마다 내생에 가장 이쁜여자에 단 1초만에 사랑에 빠져버리는 바람기 많고, 이래저래 운도 좋고 사업수완도 그럭저럭 있는 막장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으로 살다가 책의 2/3를 잡아먹은 후에야 2012년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너무나 작위적이고 허무하게도 그가'그것'이란다. 나.. 참..  

소설은 허구다. 허구임에도 진실처럼 믿게하는 힘이 있는 소설은 사랑받는다. 내가 베르나르의 말도 안되는 이야기에 흥분하는 것은 (그것이 정말 말도 안됨에도) 책을 읽는 순간 나를 그가 만들어놓은 세상속에 살아있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정말 어딘가에 이런것들이 우리 모르게.. 지하벙커에 숨은체 진행되고 있을 지도 몰라.. 하는 마음 말이다.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가 허구를 바탕으로 하는 '소설'이였음에도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것은 독자로 하여금 그 내용들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믿음을 전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2012- 열두명의 현자'는 어떤가? 읽는 내내 이 꾸며낸 이야기에 대한 흥미도가 점점 반감되더니 결국엔 2012년. 이 소설이 모두 현실로 재현된다하더라도 믿기 싫은 이야기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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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날은 밝았도다. 이놈의 학교에서 나를 제!외!하!고! 벌어지는 짓거리에 대해 단벌을 내려주갔어! 비장한 각오로 한시간, 한시간을 보내는 내 눈빛에는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헤매이는 하이애나의 눈빛과 비슷한 그 무언가가 서려있었다. 과연 오늘 야자쉬는시간에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 (너희가 나를 제외시켰으나)내 스스로 판에 뛰어들것인가! 말것인가!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초반부 야자시간 내내 샤프심만 두 줄을 분질러 먹었다. 이 사건을 벌인 놈은 나의 넒은 아량으로 용서하겠어.. 하지만 나를 제외시킨 그놈만은 용서할 수 없다! 너란 놈.. 찢어죽이고 말려죽이갔어! 

드디어 귀를 찢는 종소리.. 쉬는 시간종이 울리자마자 화장실가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인 병아리녀석에게 뒤따라갈텐 걱정말고 가시려던길 가라고 채근했다.  

"가려면 같이 가지 왜 먼저가라고 해~잉."  아 저 죽일놈의 애교섞인 말투.. 초연이는 잔뜩 겁먹은 표정을 하며 쭈볏대고 있었지만 나의 눈빛에 압도되어 "알았어..대신 빨리와."하며 복도로 나섰다.  '미안! 나의 미끼야.. 하지만 다 너를 위한 거란다.."나는 음흉한 미소를 머금고 뒷문에서 복도를 예의주시했다.. 초연이가 남학생 무리의 초입에 들어서자.. 아니나다를까 어떤 녀석이 또 초연이를 붙잡았고! (이놈들도 이 녀석이 순진하고 마음 약하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앞으로 세번쯤은 더 약올려도 꼼짝하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이 다 되어있었던 것이다!) 그놈이 무어라고 했는지 모르지만 순식간에 병아리의 얼굴이 노랫다가 벌게지더니 "너 미워!"라는 말을 연발하고 있다. 

아... 진실로 묻고 싶다.. "너 미워!"이게 고작이냐? 전부란 말이야? 너 미워.. 너미워..너.. 미.. 허이구야.. 당최 유치원생도 아니도, '엄마 아빠 미워'도 아니고 참.. 17살이라는 게 부끄럽다. 지를 놀리는 남학생한테 기껏한다는 소리가 너미워라니.. 그러니 녀석들이 너를 놀리는데 재미를 붙인게 아니겠니?! 

아무튼.. 이제 내가 나설차례다! 나는 재빠르게 달려갔다. 나는 곧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은 초연이를 내 뒤로 감추고 그 녀석의 두 눈을 노려봤다. 그리고 내 두번째 손가락을 그 녀석의 가슴팍에 정확히 꽂아주었다. 

"허이구~갑빠는 있으셔? 난 또 하는 짓이 기집애 같아서 가슴나온 줄 알았지. 사내자식들이 달렸으면 달린값을 해야지 뭐하는 거임? 쪼다짓 하는게 재미있으셔?" (사실 달린게 뭔지는 각자의 생각에 맡기겠다.. 나도 왜 그 순간에 그런말까지 나왔는지는 몰랐지만 그 말을 내뱉는 순간 '아~이제 나의 봄날은 없구나.'하는 암흑의 그림자가 덮치는 걸 느꼈다. ) 아무튼 남학생들은 걸걸한 아줌마가 아니면 쉽사리 나올 수 없는 이 한마디로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한마디 더하려는 찰라 다른반친구인 애련이가 어느새 내 곁으로 다가와 달린녀석들의 이열종대를 향해 외쳤다 

"야 이 꼴사나운짓 좀 그만둘래!" 

자 이제 어쩔래? 여리고 여린..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눈물짓는 연약한 두 여학생(나와 애련이를 말하는 거다)를 상대로 싸울래? 아니면 그동안 여학생들 놀린것까지만 만족하고 순순히 물러 날래?  

나는 미친듯이 뛰는 심장을 완충포장한체 007박스에 넣어두고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녀석들에 썩소를 날려주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느긋하고 여유있는 자가 이기는 것이다! 이윽고 초연이를 놀렸던 녀석에서 미안해라는 소리가 나왔다. 애련이는  

"니네 내일 쉬는 시간에도 꼭 이렇게 나와있어라! 응! 꼭이다!."라는 말을 남기며 종지부를 찍고 내게 말했다. "남자예들이 싸가지도 없는 주제에 유치하기까지 하다."   "응^^" 우리는 아직도 울먹이는 초연이의 손을 잡고 어안이 벙벙해진 남학생들 사이를 뚫고 화장실을 갔다. 우리가 화장실 밖에 나왔을때 이미 복도는 깨끗이 치워진 상태였음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음날부터 여학생들에게 화장실가늘 길은 평화~ 그 자체였으나 나는 온갖 소문과 혹까지 덧붙여져 아주 죽을 맛이였다. 초연이가 아예 내 옆자리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내가 내 무덤을 팠구나.. 오 신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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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동서 미스터리 북스 3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용성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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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의 고전 아가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는 우리가 추리소설하면 꼬리표처럼 떠올리게 되는 이유를 충분히 납득시킬만한 소설이다.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10명이 '누군가'에 의해 초대되어 고립된 섬에서 펼쳐지는 살인과 죽음의 반복속에 죽이는 자와 죽임을 당하는 자들간의 긴장감과 심리적 변화가 잘 표현되어 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능력이 소재나 트릭뿐만아니라 문장력 또한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추리소설에 없어서는 안될 명탐정이라던가 사건을 파헤치는 주인공을 내세우지 않고, 그 섬에 '아무도 없을때'까지 일련의 살인사건들에 대해 어떠한 트릭도 해결해 주지 않는다. 10회의 살인사건(엄밀히 따지면 9회의 살인과 1회의 자살)의 모든 비밀은 후에 고해와도 같은 한장의 편지로 밝혀질뿐이다. 이러한 독특한 구성을 지어냈다니 역시 그녀의 추리소설 중 단연 으뜸이라 칭할만 하다. 또한 그녀가 내세우지 않은 명탐정의 역할을 독자가 스스로 해봄으로써 추리소설을 읽는 재미를 더 할 수 있다는 점 또한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고 하겠다.

이 책속에 등장하는 10명의 사람들은 성별, 나이, 직업등이 모두 다른 사람들이다. 유일한 이들의 공통점은 죄로 인정되지 않는 살인용의가 있었다는 점이다. 이들이 고립된 인디언 섬에 초대받은 그 날부터 인디언노래와 유사한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나는 제 11의 주인공이 되어 범인을 추리해 나갔다. 물론 소설밖에 있는 나에게 주어진 것은 증거들은 소설속에서 묘사된 것들이 전부이기때문에 트릭을 파헤치기 보다 범인을 잡는데 주력했다. 그 결과 중반부부터 의심이 가기 시작했던 임물이 범인임이 밝혀졌을 때, 묘한 성취감을 맛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개의 별의 모두 채우지 못한 점은 번역과 합본(?)때문이다. 이책의 초판인쇄가 1977년이다. 그 후로 여러번의 중판인쇄를 거쳤지만 편집은 거의 되지 않았나보다. 영문을 그대로 옮겨 번역한 듯한 매끄럽지 못한 어투와 오타때문에 극의 흐름에 방해가 크다는 점이 아쉽게 남는다. 더욱 아쉬운 것은 이 책이 고전인 이유로 거의 모든 번역본이 오래전 것이라 다른 출판사의 책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또한 이 책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외에 하나의 이야기 '하나, 둘 내 구두 버클을 채우고'가 더 실려 있다. 나는 이런 류의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단편집도 아닌데 하나의 이야기를 덧붙여 놓은 책.. 그 이야기가 보너스라기보다 혹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나의 좋은 소설이 제목조차 달리지 못한 체 주된이야기의 그늘에 갇혀 있는 것이 싫다. 

덧붙이는 나의 추리 

처음 이들이 아무런 상관관계도 없다는 사실에서 이 살인 사건들이 원한에 의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즉 죽음의 이유는 살인자와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이 섬에 초대된 10명을 제외하고는 이섬에 아무도 없다는 묘사가 여러차례 나왔으므로, 범인은 이미 죽은자이거나 살아남은 자들 가운데 하나이다. 살아남은 자들이 살해위험의 공포속에 점차적으로 긴밀히 협의하고 함께 있는 경우가 많아지므로 아마 범인은 비교적 움직임이 자유로운 자. 즉 초중반에 살해된 자일 가능성이 높다. 이들이 모두 살인용의가 있었으나 죄로 인정되지 않거나 혹은 가벼운 형벌만을 받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수집할 수 있었을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을 때 범인은 한명의 좁혀진다. 내가 범인에 대한 의심에서 확신으로 바뀐 까닭은 10건의 살인용의 중 한 건만이 협의가 완전히 없다는 사실을 통해서였다. 그 전부터 그가 범인임을 눈치챘지만. 확신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를 도와준(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협력자가 된)의사의 존재때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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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문이 다 사그라들기도 전에 야자시간에 이상한 기운이 맴돌았다. 뭔가 알 수 없는 긴장감이 야자시간,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야자 중간에 쉬는 시간만 되면 미친듯이 교실을 휘젓고 다녔다. 하지만 그 긴장감의 이유가 뭔지 난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주워 듣는 이야기는 뭐 이 정도가 다였으니까. 

1. 벌써 누구와 누구는 당했고, 옆반 얘들 중엔 울고 온 얘도 있다.  

2. 다른 반 몇몇은 귀찮치만 밖에 있는 것을 이용한다. 

3. 뭐. 또,, 이렇고,, 저렇고...그렇다. 

난 무슨 이야긴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야자시간에는 입도 열지 않는 편이거니와 쉬는 시간에도 그닥 교실밖에 나가지 않고 엎드려 주무시던가 옆반친구들( 단짝친구들은 다  다른반이 되버려서ㅜ.ㅜ )과 교정을 어슬렁 거린다던가 그도저도 아니면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으니까... 

 하긴 이상한게 하나 있긴 있었다. 괴롭힘(?)을 당하다 도저히 못견디겠어서 교실을 나서서 (마땅히 갈데도 없고 해서)화장실을 갈라치면 묘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으니까..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야자시간 중간 쉬는 시간종이 치자 마자 남학생들이 우르르 복도로 나와  복도 양끝에 기준을 잡고 이열 종대로 서서 멍을 때리고 있는 것이였다. 가뜩이나 사물함을 복도에 내 놔서 쫍아터진 마당에 화장실을 가려면 이 이열종대의 정 가운데를 헤집고 가야만 하는게 여간 불편한게 아니였다. 소심한 여학생들은 이 남학생들의 바다를 가르고 가기를 이미 포기하고 야외 화장실로 삼삼오오 모여가고 있었고, 나머지 얘들은 발만 동동 구르다 붉어진 얼굴로 어쩔수없이 고개를 숙인 체 단거리 달리기를 하며 이 사이를 지나갔다. 나야 뭐 워낙 주변시세에 어두운 편이라 그저 불편하다는 생각뿐이였다. 근데.. 아무래도 여자얘들의 수근거림이 이 녀석들 행동하고 뭔가 심오한 관계가 있는 것 같단 말이지... 마침 지나가던 차에 (화장실이 급한 것도 아니고 피신차 행하던 길이였으니까)제일 만만한 녀석에게 넌지시 물었다. "너네 뭐해?" 녀석은 몇번 키득거리더니."넌 몰라도 돼..빨리 화장실이나 다녀와~"하는게 아닌가.. 뭐.. 이건... 뭐..."좁으니깐 불편하다.. 왜 죽~나와서 자리들을 차지하고 멍때리고 있는지...참.. 성격들도 별나요~"한마디 더 붙이고 가는데, 다른 학교에서 온 놈이 내가 말을 건 녀석에게 살짝 거슬리는 말을 한다. " 쟤있을땐 그냥 보내라고 했지?!" "쉿!" 아니 이게 뭔 황당한 시추에이션인가! 두줄로 서있어서 가뜩이나 생리학적으로도 소변을 못참는 여학생들에게 진로 방해라는 죄를 짓고 있는 주제에 뭐? 쟤는 그냥보내.. 쟤는 그냥보내.. 재는... 그냥... 보내.. 라니..이것들이 단체로 나 따시키냐? 아씨... 그러게 그때 뒤진다가 아니라 죽인다라고만 했었어도... 

 

 화장실을 다녀오자 나를 만날 괴롭히던 병아리같은 녀석이  

"어! 채여민!! 넌 왜 아무일도 없어?"하고 묻는다.  

"뭐가 아무일도 없어! 화장실다녀오는데 뭔일있어야 하냐?"  

귀찮아서 한마디 내밷고 자리에 앉는데 병아리소녀가 또 귀찮게 쫑알거리며 고문을 한다. 

" 채여민는 아무일도 없네.. 신기하다.. 내일도 아무일도 없나 봐봐야지..헤헤헤."  

당최 뭔 소린지.. 이놈의 인생 가뜩이나 평범하고는 동떨어졌는데 내일 또 뭔일 일어나라고 아주 니가 고사를 지내는 구나!! 쫑알쫑알 괴롭히는 것도 모잘라서 이젠 대놓고 사주를 해요..내일 쉬는 시간에는 일찌감치 운동장 계단에 처박혀있어야지.

드디어 아침해는 뜨고야 말았다. 간밤에 꿈자리가 매우매우 버라이어티 한 것이 눈을뜨자마자 병아리소녀의 삐약거림이 귓속을 요동쳤다. 제이~씨! 일어나자마자 욕이라니... 부디 오늘하루도 무사귀환하게 해주소서..

왠일인지 수업시간에도 쉬는시간에도 별다른 일이 없었다. 오호~~ 꿈이 길조였나?? 그렇게 해가 저물고 잠시 착각에 빠져드는 사이 야자시간 중반에 껴있는 20분의 쉬는시간 종소리가 스피커를 찢는듯이 들려온다. 심호흡심호흡.. 아니나 다를까 병아리소녀의 외침!  

"여민아 우리 화장..." 거기까지만 듣고 잽싸 교실문을 박차고 나왔다. 그바람에 지나가던 옆반 여학생이 문짝에 얼굴을 박았다. 오 주여.. 도망도 맘대로 못가게 하시나이까~!!

나는 미안하다는 말을 로켓처럼 발사하며 잠시 쓰러진 여학생이 코피따위를 흘리지 않나 0.1초만에 확인을 마치고 다시 0.05초텀을 두고 재차 미안하다고 말을 하고 계단을 거의 구르다시피 내려왔다.. 머릿속엔 온통 '짱박혀 있을만한 곳!!'을 외치며.. 이 병아리 소녀는 거의 스토커 수준이라 한달만의 나의 일거수 일투족에 온갖 더듬이를 내세우며,  쉬는시간마다 옆에와서 여기가자 저기가자 , 이거해줘 저거해줘, 쉴새없이 쫑알거렸다. 내가 자고 있어도, 엎드려 있어도, 눈을 감고 있어도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병아리 소녀가 싫거나 밉지는 않았지만 사색은 삶의 묘미요, 고독은 삶의 낭만이라~~(좋고!)여겼던 나의 생활리듬을 여간 뒤흔드는 것이 아니였다. 따라서 내가 문으로 뭍여성의 안면을 사정없이 후려치고도 제대로 용서도 못구한 체 계단을 굴러 나온것은 다~~ 그만한 사정이 있는것이니 너무 욕하지는 말자!! 

10분쯤 지났을까? 나는 매점에가서 음료수 2개를 사가지고나와 하나를 홀짝이며 학교 건물을 보았다. 각층마다 켜진 불빛사이사이로 교실안을 분주히 움직이는 학생들과 창문을 바라보며 별을 세는 아이들이 마치 야자시간 내내 풀죽어있었던 자아를 깨우치기라도 하는지 활발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교정에는 연애질하는 커플들이 둘씩둘씩 계단에 앉아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에 갖은 애교티 섞인 웃음소리로 지나가는 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있었고(절대로 질투심에 그렇게 들린게 아니였다) 몇몇 남선배들은 쓰잘때기 없는 힘자랑에 철봉을 휙휙 넘고 있었다.. 아~~ 있지못할 교정의 추억은 개뿔~

건물에 들어서서 나는 아까 그여학생의 반을 먼저 찾았다. 아까 제대로 용서를 못구한 것에 몹시 얼굴이 화끈거렸다. 다행이 여학생은 아까의 일을 똥밟았다 생각했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놀고 있었다.

"저기..아까는 내가 급한 사정이 있어서.. 미안해.. 이거 마시고 화풀어.."   

나는 쭈볐대며 말을 건넸다. 의외다. 흔쾌히 "얘~~ 아까는 진짜 아팠어!!"하며 웃는다.  

이런~~성격좋은 녀석...한결가벼워진 마음으로 우리반을 들어서자마자 어두운 그림자가 엄습해온다. 병아리녀석 책상주위로 열댓명이 모여 병아리 녀석의 등을 토닥이고 있고, 그 가운데 병아리 녀석은 엄마닭이 치킨집에 팔리기라도 했는지 꺼이꺼이 울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나를 보자마자 벌게진 얼굴에 눈물을 훔치며 "채여민!! 화장실 같이가달라고 했잖아."하며 또 울음보를 터뜨리는 것이 아닌가? 순간 나를 향하는 아이들의 눈빛도 마치 내가 대역죄인이라도 되는냥 독기를 뿜어대고 있었다.

"아니 왜 눈을 부라리고 그래~ , 화장실 같이 안가준게 무슨 능지처참감도 아니구만~" 내가 버럭 화를 내자 한 아이가 와서 여전히 눈을 부라리며 하는 말이 " 넌 맨날 쉬는시간에 이어폰 꽂고 자고있으니까 몰랐지(이어폰은 맞지만 잔건 아니다..는 말은 못했다)?! 남자얘들이 여자얘들 화장실가려구 지나갈때마다 박수치고, 환호하고, 시원하겠다라는 둥 놀린거."

그런줄은 몰랐지만 그래서 뭐? 그래서 왜? 왜왜왜???  

"근데 오늘 초연이가 너 없어서 혼자 화장실가는데 어떤얘가 초연이 어깨 잡더니 넌 얼굴이 100점만점에 15점이다! 라고 했데, 그래서 쟤 저렇게 우는거야.. 가뜩이나 마음도 여리고 애기같은데."   

"나참.. 뭐.. 그까짓거 가지고 울보 불고 저 난리람.."이라고는 했지만 순간 살짝은 화가났다. 그 화살이 나에게 돌아온 것이 웃겼지만 (내가 무슨 지 보디가드도 아니고 백마탄 기사도 아니고) 나이처먹서 그런 행패를 한두놈도 아니고 대다수의 놈들이 작당모의를 해가지고설라믄에 선량한 여학생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것이 화가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한테는 아무짓도 아니하고 순순히 보내주었다는 사실에 더 열이 뻗쳤다. 쟤는 그냥 보내~? 이것들이! 제길. 소외받는 이 느낌. 우주로 돌아갈까?
드디어 야자를 끝을 알리는 종이 쳤다. 난 나머지 시간 동안 내내 왜 나만 빼고 그런 몹쓸짓을 한번씩 경험했는지에 대한 원인을 제공한 놈(한놈인지 동시다발적인 다수였는지는 모르나)에게 어떤 복수를 해줘야 나의 이 여린마음에 난 대문짝 만한 상처를 치료할 수 있을지 이를 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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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의 규칙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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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고 있다. 여름하면 뭐니뭐니해도 시원한 바다, 복날 삼계탕, 으스스한 공포영화, 그리고 추리 소설이 제격이겠지! 이 중에서도 특히나 나에게 꼭맞는 여름나기방법은 바로 추리소설과 함께하는 것이다. 하지만 추리소설과 함께 한다고 해서 꼭 이 무더운 더위를 잊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끔 나를 홀리는 문구에 속아 잘못 선택한 추리소설로 인해 오히려 더욱 푹푹찌고 짜증나는 여름철을 보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넘쳐나는 추리소설들.. 그 중에 옥석을 가려내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니까!   

나는 타 장르의 소설에 비해 추리소설을 많이 읽는 편이다. 반은 자의적 이유로 반은 타의적 이유로 그러한데, 자의적 이유에는 개인적 기호에 따른다고 하겠다. 타의적 이유는 추리소설의 공급이 많고, 순환이 빠르다는 점이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의 소설이 계속해서 신간이 넘쳐난다는 점은 정말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럴 수록 조심해야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옥석 가려내기이다. 이것은 비단 나에게만 해당되는 수고스러움은 아닐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명탐정의 규칙은 이러한  독자들이 수고스러움을 좀 더 명확한 분류를 통해 한결 쉽고도 그 고통을 덜어내게 해 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추리소설 속 반드시 존재하는 등장인물들의 소설 밖 이야기들을 통해 추리소설 작가와 그들이 이끌어내는 주인공들의 성향, 각각 추리소설를 이루는 트릭에 대한 법칙을 풍자하고, 나아가 독자들의 역할을 제시하고 있는 반어법적 소설이다.  

너무나도 익숙한 설정과 너무나도 빈번한 트릭은 추리소설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새롭고, 놀라우며, 기발하고, 기괴한)를 절감시킨다. 추리소설이 잘 팔린다는 이유로 자질이 부족한 작가들의 기존의 소재들을 재탕, 잡탕한 마구잡이식 출간에 대해, 그리고 오랫동안 추리소설을 써오면서 항상 그가 고민하고 고뇌했던 부분에 대해 그는 비판과 반성의 결과물로 이 책을 내어놓은 것이다. 또한 독자인 나도 그의 일침에 뜨끔했다. 추리소설 속 나의 역할은 주로 방관하는 자였기 때문이다. 내가 추리소설 속 탐정이 되어 추리를 해나가고 범인을 찾아내려고 했던 작품도 물론 있지만. 보통은 주인공인 탐정이 추리해나가는 데로 받아들이기 일쑤였다. 누가 범인이고 그가 사용한 트릭은 무엇이다! 라고 밝혀주기만을 급급했을뿐, 왜 그 사람이 범인이고, 그가 왜 그런 트릭을 사용했는지에 대해서는 탐정의 입장에서 해석하려 들지 않았던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 그가 추리소설에 열정을 다하는 것에 감사하다. 그리고 그 열정을 이어가기 위해, 나는 독자로서의 역할을 최대한 해 볼 생각이다. 이 책으로 인해  나의 탐정으로서의 나의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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