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소문이 다 사그라들기도 전에 야자시간에 이상한 기운이 맴돌았다. 뭔가 알 수 없는 긴장감이 야자시간,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야자 중간에 쉬는 시간만 되면 미친듯이 교실을 휘젓고 다녔다. 하지만 그 긴장감의 이유가 뭔지 난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주워 듣는 이야기는 뭐 이 정도가 다였으니까. 

1. 벌써 누구와 누구는 당했고, 옆반 얘들 중엔 울고 온 얘도 있다.  

2. 다른 반 몇몇은 귀찮치만 밖에 있는 것을 이용한다. 

3. 뭐. 또,, 이렇고,, 저렇고...그렇다. 

난 무슨 이야긴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야자시간에는 입도 열지 않는 편이거니와 쉬는 시간에도 그닥 교실밖에 나가지 않고 엎드려 주무시던가 옆반친구들( 단짝친구들은 다  다른반이 되버려서ㅜ.ㅜ )과 교정을 어슬렁 거린다던가 그도저도 아니면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으니까... 

 하긴 이상한게 하나 있긴 있었다. 괴롭힘(?)을 당하다 도저히 못견디겠어서 교실을 나서서 (마땅히 갈데도 없고 해서)화장실을 갈라치면 묘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으니까..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야자시간 중간 쉬는 시간종이 치자 마자 남학생들이 우르르 복도로 나와  복도 양끝에 기준을 잡고 이열 종대로 서서 멍을 때리고 있는 것이였다. 가뜩이나 사물함을 복도에 내 놔서 쫍아터진 마당에 화장실을 가려면 이 이열종대의 정 가운데를 헤집고 가야만 하는게 여간 불편한게 아니였다. 소심한 여학생들은 이 남학생들의 바다를 가르고 가기를 이미 포기하고 야외 화장실로 삼삼오오 모여가고 있었고, 나머지 얘들은 발만 동동 구르다 붉어진 얼굴로 어쩔수없이 고개를 숙인 체 단거리 달리기를 하며 이 사이를 지나갔다. 나야 뭐 워낙 주변시세에 어두운 편이라 그저 불편하다는 생각뿐이였다. 근데.. 아무래도 여자얘들의 수근거림이 이 녀석들 행동하고 뭔가 심오한 관계가 있는 것 같단 말이지... 마침 지나가던 차에 (화장실이 급한 것도 아니고 피신차 행하던 길이였으니까)제일 만만한 녀석에게 넌지시 물었다. "너네 뭐해?" 녀석은 몇번 키득거리더니."넌 몰라도 돼..빨리 화장실이나 다녀와~"하는게 아닌가.. 뭐.. 이건... 뭐..."좁으니깐 불편하다.. 왜 죽~나와서 자리들을 차지하고 멍때리고 있는지...참.. 성격들도 별나요~"한마디 더 붙이고 가는데, 다른 학교에서 온 놈이 내가 말을 건 녀석에게 살짝 거슬리는 말을 한다. " 쟤있을땐 그냥 보내라고 했지?!" "쉿!" 아니 이게 뭔 황당한 시추에이션인가! 두줄로 서있어서 가뜩이나 생리학적으로도 소변을 못참는 여학생들에게 진로 방해라는 죄를 짓고 있는 주제에 뭐? 쟤는 그냥보내.. 쟤는 그냥보내.. 재는... 그냥... 보내.. 라니..이것들이 단체로 나 따시키냐? 아씨... 그러게 그때 뒤진다가 아니라 죽인다라고만 했었어도... 

 

 화장실을 다녀오자 나를 만날 괴롭히던 병아리같은 녀석이  

"어! 채여민!! 넌 왜 아무일도 없어?"하고 묻는다.  

"뭐가 아무일도 없어! 화장실다녀오는데 뭔일있어야 하냐?"  

귀찮아서 한마디 내밷고 자리에 앉는데 병아리소녀가 또 귀찮게 쫑알거리며 고문을 한다. 

" 채여민는 아무일도 없네.. 신기하다.. 내일도 아무일도 없나 봐봐야지..헤헤헤."  

당최 뭔 소린지.. 이놈의 인생 가뜩이나 평범하고는 동떨어졌는데 내일 또 뭔일 일어나라고 아주 니가 고사를 지내는 구나!! 쫑알쫑알 괴롭히는 것도 모잘라서 이젠 대놓고 사주를 해요..내일 쉬는 시간에는 일찌감치 운동장 계단에 처박혀있어야지.

드디어 아침해는 뜨고야 말았다. 간밤에 꿈자리가 매우매우 버라이어티 한 것이 눈을뜨자마자 병아리소녀의 삐약거림이 귓속을 요동쳤다. 제이~씨! 일어나자마자 욕이라니... 부디 오늘하루도 무사귀환하게 해주소서..

왠일인지 수업시간에도 쉬는시간에도 별다른 일이 없었다. 오호~~ 꿈이 길조였나?? 그렇게 해가 저물고 잠시 착각에 빠져드는 사이 야자시간 중반에 껴있는 20분의 쉬는시간 종소리가 스피커를 찢는듯이 들려온다. 심호흡심호흡.. 아니나 다를까 병아리소녀의 외침!  

"여민아 우리 화장..." 거기까지만 듣고 잽싸 교실문을 박차고 나왔다. 그바람에 지나가던 옆반 여학생이 문짝에 얼굴을 박았다. 오 주여.. 도망도 맘대로 못가게 하시나이까~!!

나는 미안하다는 말을 로켓처럼 발사하며 잠시 쓰러진 여학생이 코피따위를 흘리지 않나 0.1초만에 확인을 마치고 다시 0.05초텀을 두고 재차 미안하다고 말을 하고 계단을 거의 구르다시피 내려왔다.. 머릿속엔 온통 '짱박혀 있을만한 곳!!'을 외치며.. 이 병아리 소녀는 거의 스토커 수준이라 한달만의 나의 일거수 일투족에 온갖 더듬이를 내세우며,  쉬는시간마다 옆에와서 여기가자 저기가자 , 이거해줘 저거해줘, 쉴새없이 쫑알거렸다. 내가 자고 있어도, 엎드려 있어도, 눈을 감고 있어도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병아리 소녀가 싫거나 밉지는 않았지만 사색은 삶의 묘미요, 고독은 삶의 낭만이라~~(좋고!)여겼던 나의 생활리듬을 여간 뒤흔드는 것이 아니였다. 따라서 내가 문으로 뭍여성의 안면을 사정없이 후려치고도 제대로 용서도 못구한 체 계단을 굴러 나온것은 다~~ 그만한 사정이 있는것이니 너무 욕하지는 말자!! 

10분쯤 지났을까? 나는 매점에가서 음료수 2개를 사가지고나와 하나를 홀짝이며 학교 건물을 보았다. 각층마다 켜진 불빛사이사이로 교실안을 분주히 움직이는 학생들과 창문을 바라보며 별을 세는 아이들이 마치 야자시간 내내 풀죽어있었던 자아를 깨우치기라도 하는지 활발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교정에는 연애질하는 커플들이 둘씩둘씩 계단에 앉아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에 갖은 애교티 섞인 웃음소리로 지나가는 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있었고(절대로 질투심에 그렇게 들린게 아니였다) 몇몇 남선배들은 쓰잘때기 없는 힘자랑에 철봉을 휙휙 넘고 있었다.. 아~~ 있지못할 교정의 추억은 개뿔~

건물에 들어서서 나는 아까 그여학생의 반을 먼저 찾았다. 아까 제대로 용서를 못구한 것에 몹시 얼굴이 화끈거렸다. 다행이 여학생은 아까의 일을 똥밟았다 생각했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놀고 있었다.

"저기..아까는 내가 급한 사정이 있어서.. 미안해.. 이거 마시고 화풀어.."   

나는 쭈볐대며 말을 건넸다. 의외다. 흔쾌히 "얘~~ 아까는 진짜 아팠어!!"하며 웃는다.  

이런~~성격좋은 녀석...한결가벼워진 마음으로 우리반을 들어서자마자 어두운 그림자가 엄습해온다. 병아리녀석 책상주위로 열댓명이 모여 병아리 녀석의 등을 토닥이고 있고, 그 가운데 병아리 녀석은 엄마닭이 치킨집에 팔리기라도 했는지 꺼이꺼이 울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나를 보자마자 벌게진 얼굴에 눈물을 훔치며 "채여민!! 화장실 같이가달라고 했잖아."하며 또 울음보를 터뜨리는 것이 아닌가? 순간 나를 향하는 아이들의 눈빛도 마치 내가 대역죄인이라도 되는냥 독기를 뿜어대고 있었다.

"아니 왜 눈을 부라리고 그래~ , 화장실 같이 안가준게 무슨 능지처참감도 아니구만~" 내가 버럭 화를 내자 한 아이가 와서 여전히 눈을 부라리며 하는 말이 " 넌 맨날 쉬는시간에 이어폰 꽂고 자고있으니까 몰랐지(이어폰은 맞지만 잔건 아니다..는 말은 못했다)?! 남자얘들이 여자얘들 화장실가려구 지나갈때마다 박수치고, 환호하고, 시원하겠다라는 둥 놀린거."

그런줄은 몰랐지만 그래서 뭐? 그래서 왜? 왜왜왜???  

"근데 오늘 초연이가 너 없어서 혼자 화장실가는데 어떤얘가 초연이 어깨 잡더니 넌 얼굴이 100점만점에 15점이다! 라고 했데, 그래서 쟤 저렇게 우는거야.. 가뜩이나 마음도 여리고 애기같은데."   

"나참.. 뭐.. 그까짓거 가지고 울보 불고 저 난리람.."이라고는 했지만 순간 살짝은 화가났다. 그 화살이 나에게 돌아온 것이 웃겼지만 (내가 무슨 지 보디가드도 아니고 백마탄 기사도 아니고) 나이처먹서 그런 행패를 한두놈도 아니고 대다수의 놈들이 작당모의를 해가지고설라믄에 선량한 여학생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것이 화가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한테는 아무짓도 아니하고 순순히 보내주었다는 사실에 더 열이 뻗쳤다. 쟤는 그냥 보내~? 이것들이! 제길. 소외받는 이 느낌. 우주로 돌아갈까?
드디어 야자를 끝을 알리는 종이 쳤다. 난 나머지 시간 동안 내내 왜 나만 빼고 그런 몹쓸짓을 한번씩 경험했는지에 대한 원인을 제공한 놈(한놈인지 동시다발적인 다수였는지는 모르나)에게 어떤 복수를 해줘야 나의 이 여린마음에 난 대문짝 만한 상처를 치료할 수 있을지 이를 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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