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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날은 밝았도다. 이놈의 학교에서 나를 제!외!하!고! 벌어지는 짓거리에 대해 단벌을 내려주갔어! 비장한 각오로 한시간, 한시간을 보내는 내 눈빛에는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헤매이는 하이애나의 눈빛과 비슷한 그 무언가가 서려있었다. 과연 오늘 야자쉬는시간에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 (너희가 나를 제외시켰으나)내 스스로 판에 뛰어들것인가! 말것인가!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초반부 야자시간 내내 샤프심만 두 줄을 분질러 먹었다. 이 사건을 벌인 놈은 나의 넒은 아량으로 용서하겠어.. 하지만 나를 제외시킨 그놈만은 용서할 수 없다! 너란 놈.. 찢어죽이고 말려죽이갔어! 

드디어 귀를 찢는 종소리.. 쉬는 시간종이 울리자마자 화장실가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인 병아리녀석에게 뒤따라갈텐 걱정말고 가시려던길 가라고 채근했다.  

"가려면 같이 가지 왜 먼저가라고 해~잉."  아 저 죽일놈의 애교섞인 말투.. 초연이는 잔뜩 겁먹은 표정을 하며 쭈볏대고 있었지만 나의 눈빛에 압도되어 "알았어..대신 빨리와."하며 복도로 나섰다.  '미안! 나의 미끼야.. 하지만 다 너를 위한 거란다.."나는 음흉한 미소를 머금고 뒷문에서 복도를 예의주시했다.. 초연이가 남학생 무리의 초입에 들어서자.. 아니나다를까 어떤 녀석이 또 초연이를 붙잡았고! (이놈들도 이 녀석이 순진하고 마음 약하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앞으로 세번쯤은 더 약올려도 꼼짝하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이 다 되어있었던 것이다!) 그놈이 무어라고 했는지 모르지만 순식간에 병아리의 얼굴이 노랫다가 벌게지더니 "너 미워!"라는 말을 연발하고 있다. 

아... 진실로 묻고 싶다.. "너 미워!"이게 고작이냐? 전부란 말이야? 너 미워.. 너미워..너.. 미.. 허이구야.. 당최 유치원생도 아니도, '엄마 아빠 미워'도 아니고 참.. 17살이라는 게 부끄럽다. 지를 놀리는 남학생한테 기껏한다는 소리가 너미워라니.. 그러니 녀석들이 너를 놀리는데 재미를 붙인게 아니겠니?! 

아무튼.. 이제 내가 나설차례다! 나는 재빠르게 달려갔다. 나는 곧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은 초연이를 내 뒤로 감추고 그 녀석의 두 눈을 노려봤다. 그리고 내 두번째 손가락을 그 녀석의 가슴팍에 정확히 꽂아주었다. 

"허이구~갑빠는 있으셔? 난 또 하는 짓이 기집애 같아서 가슴나온 줄 알았지. 사내자식들이 달렸으면 달린값을 해야지 뭐하는 거임? 쪼다짓 하는게 재미있으셔?" (사실 달린게 뭔지는 각자의 생각에 맡기겠다.. 나도 왜 그 순간에 그런말까지 나왔는지는 몰랐지만 그 말을 내뱉는 순간 '아~이제 나의 봄날은 없구나.'하는 암흑의 그림자가 덮치는 걸 느꼈다. ) 아무튼 남학생들은 걸걸한 아줌마가 아니면 쉽사리 나올 수 없는 이 한마디로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한마디 더하려는 찰라 다른반친구인 애련이가 어느새 내 곁으로 다가와 달린녀석들의 이열종대를 향해 외쳤다 

"야 이 꼴사나운짓 좀 그만둘래!" 

자 이제 어쩔래? 여리고 여린..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눈물짓는 연약한 두 여학생(나와 애련이를 말하는 거다)를 상대로 싸울래? 아니면 그동안 여학생들 놀린것까지만 만족하고 순순히 물러 날래?  

나는 미친듯이 뛰는 심장을 완충포장한체 007박스에 넣어두고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녀석들에 썩소를 날려주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느긋하고 여유있는 자가 이기는 것이다! 이윽고 초연이를 놀렸던 녀석에서 미안해라는 소리가 나왔다. 애련이는  

"니네 내일 쉬는 시간에도 꼭 이렇게 나와있어라! 응! 꼭이다!."라는 말을 남기며 종지부를 찍고 내게 말했다. "남자예들이 싸가지도 없는 주제에 유치하기까지 하다."   "응^^" 우리는 아직도 울먹이는 초연이의 손을 잡고 어안이 벙벙해진 남학생들 사이를 뚫고 화장실을 갔다. 우리가 화장실 밖에 나왔을때 이미 복도는 깨끗이 치워진 상태였음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음날부터 여학생들에게 화장실가늘 길은 평화~ 그 자체였으나 나는 온갖 소문과 혹까지 덧붙여져 아주 죽을 맛이였다. 초연이가 아예 내 옆자리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내가 내 무덤을 팠구나.. 오 신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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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문이 다 사그라들기도 전에 야자시간에 이상한 기운이 맴돌았다. 뭔가 알 수 없는 긴장감이 야자시간,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야자 중간에 쉬는 시간만 되면 미친듯이 교실을 휘젓고 다녔다. 하지만 그 긴장감의 이유가 뭔지 난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주워 듣는 이야기는 뭐 이 정도가 다였으니까. 

1. 벌써 누구와 누구는 당했고, 옆반 얘들 중엔 울고 온 얘도 있다.  

2. 다른 반 몇몇은 귀찮치만 밖에 있는 것을 이용한다. 

3. 뭐. 또,, 이렇고,, 저렇고...그렇다. 

난 무슨 이야긴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야자시간에는 입도 열지 않는 편이거니와 쉬는 시간에도 그닥 교실밖에 나가지 않고 엎드려 주무시던가 옆반친구들( 단짝친구들은 다  다른반이 되버려서ㅜ.ㅜ )과 교정을 어슬렁 거린다던가 그도저도 아니면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으니까... 

 하긴 이상한게 하나 있긴 있었다. 괴롭힘(?)을 당하다 도저히 못견디겠어서 교실을 나서서 (마땅히 갈데도 없고 해서)화장실을 갈라치면 묘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으니까..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야자시간 중간 쉬는 시간종이 치자 마자 남학생들이 우르르 복도로 나와  복도 양끝에 기준을 잡고 이열 종대로 서서 멍을 때리고 있는 것이였다. 가뜩이나 사물함을 복도에 내 놔서 쫍아터진 마당에 화장실을 가려면 이 이열종대의 정 가운데를 헤집고 가야만 하는게 여간 불편한게 아니였다. 소심한 여학생들은 이 남학생들의 바다를 가르고 가기를 이미 포기하고 야외 화장실로 삼삼오오 모여가고 있었고, 나머지 얘들은 발만 동동 구르다 붉어진 얼굴로 어쩔수없이 고개를 숙인 체 단거리 달리기를 하며 이 사이를 지나갔다. 나야 뭐 워낙 주변시세에 어두운 편이라 그저 불편하다는 생각뿐이였다. 근데.. 아무래도 여자얘들의 수근거림이 이 녀석들 행동하고 뭔가 심오한 관계가 있는 것 같단 말이지... 마침 지나가던 차에 (화장실이 급한 것도 아니고 피신차 행하던 길이였으니까)제일 만만한 녀석에게 넌지시 물었다. "너네 뭐해?" 녀석은 몇번 키득거리더니."넌 몰라도 돼..빨리 화장실이나 다녀와~"하는게 아닌가.. 뭐.. 이건... 뭐..."좁으니깐 불편하다.. 왜 죽~나와서 자리들을 차지하고 멍때리고 있는지...참.. 성격들도 별나요~"한마디 더 붙이고 가는데, 다른 학교에서 온 놈이 내가 말을 건 녀석에게 살짝 거슬리는 말을 한다. " 쟤있을땐 그냥 보내라고 했지?!" "쉿!" 아니 이게 뭔 황당한 시추에이션인가! 두줄로 서있어서 가뜩이나 생리학적으로도 소변을 못참는 여학생들에게 진로 방해라는 죄를 짓고 있는 주제에 뭐? 쟤는 그냥보내.. 쟤는 그냥보내.. 재는... 그냥... 보내.. 라니..이것들이 단체로 나 따시키냐? 아씨... 그러게 그때 뒤진다가 아니라 죽인다라고만 했었어도... 

 

 화장실을 다녀오자 나를 만날 괴롭히던 병아리같은 녀석이  

"어! 채여민!! 넌 왜 아무일도 없어?"하고 묻는다.  

"뭐가 아무일도 없어! 화장실다녀오는데 뭔일있어야 하냐?"  

귀찮아서 한마디 내밷고 자리에 앉는데 병아리소녀가 또 귀찮게 쫑알거리며 고문을 한다. 

" 채여민는 아무일도 없네.. 신기하다.. 내일도 아무일도 없나 봐봐야지..헤헤헤."  

당최 뭔 소린지.. 이놈의 인생 가뜩이나 평범하고는 동떨어졌는데 내일 또 뭔일 일어나라고 아주 니가 고사를 지내는 구나!! 쫑알쫑알 괴롭히는 것도 모잘라서 이젠 대놓고 사주를 해요..내일 쉬는 시간에는 일찌감치 운동장 계단에 처박혀있어야지.

드디어 아침해는 뜨고야 말았다. 간밤에 꿈자리가 매우매우 버라이어티 한 것이 눈을뜨자마자 병아리소녀의 삐약거림이 귓속을 요동쳤다. 제이~씨! 일어나자마자 욕이라니... 부디 오늘하루도 무사귀환하게 해주소서..

왠일인지 수업시간에도 쉬는시간에도 별다른 일이 없었다. 오호~~ 꿈이 길조였나?? 그렇게 해가 저물고 잠시 착각에 빠져드는 사이 야자시간 중반에 껴있는 20분의 쉬는시간 종소리가 스피커를 찢는듯이 들려온다. 심호흡심호흡.. 아니나 다를까 병아리소녀의 외침!  

"여민아 우리 화장..." 거기까지만 듣고 잽싸 교실문을 박차고 나왔다. 그바람에 지나가던 옆반 여학생이 문짝에 얼굴을 박았다. 오 주여.. 도망도 맘대로 못가게 하시나이까~!!

나는 미안하다는 말을 로켓처럼 발사하며 잠시 쓰러진 여학생이 코피따위를 흘리지 않나 0.1초만에 확인을 마치고 다시 0.05초텀을 두고 재차 미안하다고 말을 하고 계단을 거의 구르다시피 내려왔다.. 머릿속엔 온통 '짱박혀 있을만한 곳!!'을 외치며.. 이 병아리 소녀는 거의 스토커 수준이라 한달만의 나의 일거수 일투족에 온갖 더듬이를 내세우며,  쉬는시간마다 옆에와서 여기가자 저기가자 , 이거해줘 저거해줘, 쉴새없이 쫑알거렸다. 내가 자고 있어도, 엎드려 있어도, 눈을 감고 있어도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병아리 소녀가 싫거나 밉지는 않았지만 사색은 삶의 묘미요, 고독은 삶의 낭만이라~~(좋고!)여겼던 나의 생활리듬을 여간 뒤흔드는 것이 아니였다. 따라서 내가 문으로 뭍여성의 안면을 사정없이 후려치고도 제대로 용서도 못구한 체 계단을 굴러 나온것은 다~~ 그만한 사정이 있는것이니 너무 욕하지는 말자!! 

10분쯤 지났을까? 나는 매점에가서 음료수 2개를 사가지고나와 하나를 홀짝이며 학교 건물을 보았다. 각층마다 켜진 불빛사이사이로 교실안을 분주히 움직이는 학생들과 창문을 바라보며 별을 세는 아이들이 마치 야자시간 내내 풀죽어있었던 자아를 깨우치기라도 하는지 활발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교정에는 연애질하는 커플들이 둘씩둘씩 계단에 앉아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에 갖은 애교티 섞인 웃음소리로 지나가는 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있었고(절대로 질투심에 그렇게 들린게 아니였다) 몇몇 남선배들은 쓰잘때기 없는 힘자랑에 철봉을 휙휙 넘고 있었다.. 아~~ 있지못할 교정의 추억은 개뿔~

건물에 들어서서 나는 아까 그여학생의 반을 먼저 찾았다. 아까 제대로 용서를 못구한 것에 몹시 얼굴이 화끈거렸다. 다행이 여학생은 아까의 일을 똥밟았다 생각했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놀고 있었다.

"저기..아까는 내가 급한 사정이 있어서.. 미안해.. 이거 마시고 화풀어.."   

나는 쭈볐대며 말을 건넸다. 의외다. 흔쾌히 "얘~~ 아까는 진짜 아팠어!!"하며 웃는다.  

이런~~성격좋은 녀석...한결가벼워진 마음으로 우리반을 들어서자마자 어두운 그림자가 엄습해온다. 병아리녀석 책상주위로 열댓명이 모여 병아리 녀석의 등을 토닥이고 있고, 그 가운데 병아리 녀석은 엄마닭이 치킨집에 팔리기라도 했는지 꺼이꺼이 울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나를 보자마자 벌게진 얼굴에 눈물을 훔치며 "채여민!! 화장실 같이가달라고 했잖아."하며 또 울음보를 터뜨리는 것이 아닌가? 순간 나를 향하는 아이들의 눈빛도 마치 내가 대역죄인이라도 되는냥 독기를 뿜어대고 있었다.

"아니 왜 눈을 부라리고 그래~ , 화장실 같이 안가준게 무슨 능지처참감도 아니구만~" 내가 버럭 화를 내자 한 아이가 와서 여전히 눈을 부라리며 하는 말이 " 넌 맨날 쉬는시간에 이어폰 꽂고 자고있으니까 몰랐지(이어폰은 맞지만 잔건 아니다..는 말은 못했다)?! 남자얘들이 여자얘들 화장실가려구 지나갈때마다 박수치고, 환호하고, 시원하겠다라는 둥 놀린거."

그런줄은 몰랐지만 그래서 뭐? 그래서 왜? 왜왜왜???  

"근데 오늘 초연이가 너 없어서 혼자 화장실가는데 어떤얘가 초연이 어깨 잡더니 넌 얼굴이 100점만점에 15점이다! 라고 했데, 그래서 쟤 저렇게 우는거야.. 가뜩이나 마음도 여리고 애기같은데."   

"나참.. 뭐.. 그까짓거 가지고 울보 불고 저 난리람.."이라고는 했지만 순간 살짝은 화가났다. 그 화살이 나에게 돌아온 것이 웃겼지만 (내가 무슨 지 보디가드도 아니고 백마탄 기사도 아니고) 나이처먹서 그런 행패를 한두놈도 아니고 대다수의 놈들이 작당모의를 해가지고설라믄에 선량한 여학생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것이 화가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한테는 아무짓도 아니하고 순순히 보내주었다는 사실에 더 열이 뻗쳤다. 쟤는 그냥 보내~? 이것들이! 제길. 소외받는 이 느낌. 우주로 돌아갈까?
드디어 야자를 끝을 알리는 종이 쳤다. 난 나머지 시간 동안 내내 왜 나만 빼고 그런 몹쓸짓을 한번씩 경험했는지에 대한 원인을 제공한 놈(한놈인지 동시다발적인 다수였는지는 모르나)에게 어떤 복수를 해줘야 나의 이 여린마음에 난 대문짝 만한 상처를 치료할 수 있을지 이를 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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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이젠 어느정도 야간자율학습에 익숙해져 그 지루하고 긴 시간을 이겨내는 법 정도는 습득했다. 졸음이 쏟아져 주체를 못하겠다던가 마땅히 할 공부가 없어(?) 지겨움에 몸부림을 친다던가 하는 일도 차츰 줄어갔다. 선생님들은 초장에 아이들의 기를 꺾으려고 무던히도 매서운 감독관을 자처하셨지만(몇반 몇반 남학생들이 야자시간에 떠들고 만화책보다 과도하게 얻어터지는 소리가 복도를 쩌렁쩌렁하게 울려댔으나) 나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나의 선생님들의 매의 눈에 걸릴만한 건더기가 단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내가 머릿속에서 나혼자 100분 토론을 즐기는 중인지 트로트 메들리를 부르고 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였으니까 

반 아이들과도 어느정도 친해져 마치 백만년 전부터 친구였던양 다정하게 어울리고 재잘재잘 떠들어 댔지만 쉬는 시간이외에는 비록 선생님이 코배끼도 안보인다 할지라고 완전 모르는 사람들인 모양 처다보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나를 특별히 괴롭히는 아이가 있지도 않았고...(물론 얼마지나지 않아 나를 문던히도 괴롭히던? 아이가 생겨났지만...) 아무튼 이만하면 수월하다고 생각하던 고등학생의 생활은 그리 길게 가지못했다. 내 인생이 그렇지 뭐.. 미나리 개나리..  

입학식 이 후 첫 전체조회가 시작된 월요일...교장선생님의 훈화말씀을 열심히 경청하는 척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이상한 눈길이 느껴진다. 뭐지? 초등학교 동창녀석과 그 앞에 있는 녀석이 나를 가르키며 뭐라고 수근대다가 내가 쳐다보자 아주 반갑다는 듯이 손을 흔든다. 뭐... 뭐임? 중학교때 길거리에서 여러번 마주쳤으나 한번도 아는 척도 안하던 네가.. 무슨 이산가족을 본 듯 갑작스레 친한 척? 난 얼굴에 오만상을 지으며 '뭐 어쩌라구? 왠 친한척?'라는 신호파를 보내며 싸늘한 눈길 한 번 날려주었다. 뭔가 찝찝한 기분을 간직한 체... 조회가 끝나고 한반한반 교실로 돌아가고 드디어 끝에서 두번째 반인 우리반도 교실로 돌아가라는 호령이 떨어졌다. 예~예~ 가라고 했으면 가야지요.. 오늘도 이렇게 지겨운 월요일이 시작되는 구나 하며 3층을 향해 힘겨운 한발 한발을 계단 하나하나와 만남&이별을 하고 있는데 우리반보다 먼저 들어간 2반 녀석이 체육복을 입고 반대로 내려오고 있었다. 어떤 엉쁜 여학생과 함께.. 둘 다 출신 학교가 달라 이름도 몰르는 타인이였는데.. 그랬는데.. 그 녀석 나를 슬쩍 보더니 이런 괴변을 늘어 놓는다.  

"쟤가 여자탈을 쓴 남자라며?"   "몰라~ 머리가 매우 짧은 거빼곤 그런거 모르겠는데?"  "그래?여자얘들은 모르는 구나, 우리반엔 소문 다 났어. 쟤랑 같은 초등학교 나온 얘들이 그러던데? 쟤 건들이지 말라구"  

이게 뭔 호박잎쌈 목구멍에 막히는 까슬까슬한 소리람? 아.. 입학한지 일주일..아.. 참자.. 참고 올라가자. 못들은 척 하자. 아니 난 아무 소리도 못들었다.. 못... 못... 못듣긴 뭘 못들어! 생전 처음 보는 녀석이 함부로 내 이야기 (내 이야기? 아니 이러면 인정하는 꼴이잖아!)아니! 나와 관련된 것만 같은 근거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야! 너!" 이놈의 성격.. 이 말과 동시에 이미 나의 눈은 뒤집혔고 이성은 안드로메다를 향해있다. "너 내가 여잔지 남잔지 봤어? 누가 그런 헛소리 나불대고 다녔는지 말해! 그렇게 남 이야기 시시콜콜하게 돌리고 다니는 너는 기집애 같다고 소문 좀 내줄까?" 물론 성별로 보나 체격으로 보나 저 녀석과 내가 육탄전으로 간다면 난 죽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겁을 상실한 이 깡다구.. 아 제발 누가 내 입좀 막아줘요.. "넌 기집애냐고! 함부로 막말하지 말고 다녀라. 그리고 어떤 새끼가 그런 말했는지 몰라도 걸리면 뒤진다고 쫌 전해줄래?!" 녀석은 다소 놀안 표정이였지만 그 옆에 있던 여학생은 경악을 금치 못하는 표정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남학생의 몸은 거의 터미네이터 수준이였으니까. 2년 후  이학생은 전교 체육부장이 되었다...ㅎㄷㄷ) 하지만 놀람도 잠시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뭔가 수긍이 된다는 듯한 눈빛을 주고 받으며, 붉어진 얼굴로 서둘러 계단을 내려갔다.  그런데.. 뭐지? 할말을 했을 뿐인데.. 왠지 더 큰 호박잎 쌈으로 아까 막힌 호박잎 쌈을 뚫어보려는 무식한 행동을 한 것처럼 답답한 가슴은...  

그 답답함의 결과는 아니나 다를까... 이번 사건을 지켜봤던 무수한 인파속에서 '쟤가 남자라며?'의 단어는 '남자같다며?'수정된 체 혹이 하나 붙어 '남자같은데, 성격이 무지 더럽더라. 완전 핵폭발 수준이던데.'로 부풀려져 '이번 신입생중에 몇반의 누가누가 이쁘다더라.'를 능가하고 일파마파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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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스름풋한 별빛이 아직 하늘에 총총히 박혀있다. 다른 별들은 슬슬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데 샛별만은 아직도 그 자리에 붙박힌체 영화에서처럼 십자형태를 그리며 반짝거린다. 집 대문을 닫고 골목길을 5분쯤 걸었다. 새벽빛이 슬그머니 올라오기 시작하고 자욱한 아침안개 사이로 주홍빛 미등이 보인다. 그 빛을 확인하고도 내 발걸음은 조금도 빨라지지 않는다.  

 '놓치면 말지 뭐.., 어차피 지금 시간이면 걸어가도 다른얘들보다 빨리 도착할텐데..' 

  괜히 첫날부터 배짱을 튀긴다. 정말로 놓쳐버리면 걷다 지쳐서 등교길의 반은 투덜거리느라 입만 아플테면서... 

  항상 타는 버스는 이제 마을버스가 아니라 스쿨버스와 같은 존재감이 느껴진다. 내가 느긋하게 걷더라도 아저씨는 5분정도는 더 기다려 줄 것이다. 벌써 삼년째다. 새벽 여섯시. 마을버스를 타고 꼭 맞게 10분정도 후면 학교에 도착한다. 수위아저씨보다 먼저 학교를 활보하며 교무실 불을 켜고 열쇠함에서 우리반 교실키를 가지고 간 것이 삼 년... 아마 아저씨는 몰랐을 것이다. 3년 동안 자신이 늦잠을 자는 날이면 어김없이 교무실 불을 켜준 사람이 매번 같은 학생이였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 더 이상 느긋하게 늦잠을 즐길 수도 없다는 것을... 

  물론 오늘도 나는 그 곳에 내렸다. 하지만 버스에서 내려 내가 걷는 방향은 정 반대방향이다. 오늘은 고등학교 입학 후 이틀째 되는 날이다. 우리학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하나의 교문을 사이에 두고 동-서로 나뉘어 있다. 이 교문을 3년동안 넘나들었고, 앞으로도 3년동안 넘나들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교실키를 가지러 가기 위해 교무실 불따위를 켜는 일은 없을 것이다. 고등학교는 교실문을 잠그지 않았으니까... 

  실내화로 갈아 신고나서 아직은 불빛이 다 스며들지 못한 계단을 따라 천천히 올라간다. 확실히 고등학교는 입시위주라니까! 신입생을 맨 꼭대기층에 올려보내다니.. 오히려 운동은 고3들이 더 많이 해야하는 거 아닌가? 죈종일 책상에 앉아 먹먹히 칠판만 처다볼텐데...투덜투덜 대는 나의 목소리가 차가운 벽을 때리고 내귀에 머문다. 신발주머니를 무릎으로 튕겨내며 마지막 계단을 오른다.  

  푸르스름한 빛이 책상 위를 스친다. 역시나 아무도 없다. 창가쪽 끝에서 두번째 자리에 가방을 대충 던져 놓고 앉아 아직은 쌀쌀한 3월 날씨에 아랑곳하지 않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다음번에 교실로 들어서는 녀석들이 춥다고 난리를 치겠지..찬 이슬이 얼굴에 총총히 맺힌다. 아 무 생 각 없 이..진실로 아무 생각없이 가로등과 안개, 텅빈 운동장, 내가 걸어온 진입로의 시린나무들만 멍하니 쳐다보았다. 머릿속에 꽊꽉 들어찬 불만들이 하나씩 없어지자 슬슬 새로운 생각들이 들어찬다...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자리에서 100m쯤 뒤로 이동한 교실에서 함께 웃고 떠들며 중학교 시절을 보낸 반 친구들의 모습이 맺힌다. 진로가 달라지면서 뿔뿔히 다른 학교로 흩어져 버린 3달 전의 반 친구들... 지금쯤 일어나 씻고 있겠지? 학교가 먼 얘들은 벌써 일어나 밥을 먹고 나올 준비를 하고 있을지 몰라.. 그들 중 절반은 이곳을 향하고 절반은 다른 곳을 향해 갈테지.. 

  그때 멀리서 남학생 하나가 진입로를 따라 실내화를 질질 끌며 어슬렁거린다. 나처럼 할일 없는 사람이 또 있네! 한참을 주시해서 보고 있는데 내가 있는 건물 옆에서 발걸음을 획 틀어서 다른 동으로 간다. 아~ 고3 양반이구만! 그럼 그렇지.. 고3이 아니고서야 이 시간에 학교에 오는 미친놈은 없지.. 뭐.. 물론 난 미쳤으니까!! 

  고3은 절대적인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이유로 다른 건물동에 배치되어 있다. 지금 내가 있는 건물 왼편에 2층짜리 건물인데, 1층에는 교장실, 양호실과 과학실, 3년 내내 절대로 발 한번 않 디밀꺼 같은 상담실이 있고, 2층은 3학년 교무실과 교실이 있다. 교실과 복도가 일렬로 배열된 것이 아니라 복도를 사이에 두고 두 교실이 마주보고 있는 형태라 여름이면 무척 덥다는 소문이 있다. 동떨어진 동이라 조용하긴 하지만 덥다는 것. 그래서 여름이 되면 코피터지게 선풍기아래 자리싸움을 한다는 것. 각종 학교 행사가 있을 땐 건물 입구를 아예 폐쇄해서 하교 시간에만 내보낸다는 것 등등... 벌써부터 저 건물로 들어가게 될 때가 두렵다. 물론 더위때문이 아니라 고3이라는 특별 수식어 때문에... 

 

 아참!! 왜 이렇게 아침일찍 학교를 오는 미친짓을 하냐고? 그정도로 학교를 사랑하는 거냐고? 풉. 절대 아니지..너는 학교의 공기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아침 일찍 학교의 공기는 신선하다. 아이들이 꽉 차 있을때의 교실에서 피어나는 먼지와 소음, 땀냄새.. 이런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다른 곳이다. 단순히 공기 흡입하려고 학교를 이시간에 온다고 생각하는건 너무 섣부른 판단이다.. 난 생각이 많다. 집에서는 가족눈치로 학교에서는 아이들과 선생님눈치로 내 생각을 정리할 마땅한 시간이 없다. 어느 순간부터 슬슬 내 머릿속에 살림을 차리고 앉은 벌레들이 와글와글 거리며 여기저기 쑤시고 다는 통에 여간 머리가 아픈게 아니다.  조용한 곳에서 혼자 이놈들을 찾아 헤집어 놓지 않으면 그날은 하루종일 하늘이 슬프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아무도 없는 이 시간에 학교에 와 있는 것을 좋아한다. 넓은 공간속으로 나의 작은 머이속에 비집고 들어와 있던 갖은 잡념들이 하나씩 빠져나와 운동장을 가득 채우면 어제의 슬픔도, 매서운 눈빛들도 하나씩 기억에서 지워지고 만다. 애들이 하나씩 차기 시작하는 7시까지 한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체 그냥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다보면 어디서부턴가 마음이 안개처럼 조금씩 젖어들어 동요되었던 흔들림도, 멈추질 않았던 욕심들도 다 날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오늘은 날씨가 맑겠구나. 안개가 햇빛으로 묽어지자 군청색 무리들이 떼지어 걸어온다. 또 다른 버스가 교문 앞에 서자 우르르 학생들이 쏟아져 나온다. 시야에서 가까워지자 다른 중학교에서 온 우리반 아이도 보인다. 이크! 그 아이가 우리반 교실을 올려다보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언제부터 와있었냐고 물으면 방금전에 왔다고 둘러대야지.. 그나저나 창문을 닫아야 할까 말아야 할까? 아이가 처다보고 있는데 냅다 닫아버리면 왠지 쌀쌀맞아 보일 것 같고.. 열어두자니 오자마자 춥다고 난리칠 것 같고 말이다.. 

잠시 고민하던 사이에 아이가 없어졌다. 계단을 올라오고 있나보다. 나는 재빨리 창을 닫고 교실 불을 켰다. 이 추위에 창문을 열어 놓은 건 어찌됐건 간에 불이라도 안 켜두면 나를 완전 싸이코로 생각할지도 몰라..교실문이 열리고 아이가 들어온다. 아이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온다.. 젠장.. 왜 춥게 문을 열어놨었냐고 하며 뭐하고 하겠지? 녀석을 처다보자 그때까지 내게 고정되었던 시선을 들킨 것 처럼 고개를 황급히 돌린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앞쪽 가운데 자리에 앉아버린다.. 여전히 하얀 입김을 내뿜으면서.. 어? 그냥 저냥 넘어가나본데.. 아까 그 초속 백만킬로미터로 고개를 돌려버리는 행동은 뭐지? 아~ 몰라몰라~ 초면이라 어색했나보지 뭐.. 

하지만..이건 나의 착각이였다.. 나중에야 알았다. 그 아이가 이미 나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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