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언제나 "아는 만큼 보인다" 와 "보는 만큼 안다" 사이에서 갈등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서도 나는 "보는 만큼 안다"를 실천해볼 요량으로 어떤 사전지식도 갖지 않은 채 전시실로 들어갔다. 작품들이 모두 거꾸로 또는 기울어져 전시가 되어 있었다. 제목을 보지 않으려고 무단 애썼다. 제목을 보면 그림을 제목에 자꾸 끼워맞추려 하기 때문이다. 당췌 이해되지 않는 그림, 대체 러시안 페인팅을 또 무엇인가... 작가는 독일 사람인데 러시안 페인팅이라니... 답답함으로 전시장을 한 바퀴 돌았다. 쇠라의 그림처럼 점으로 표현한 그림도 있지만 수묵화처럼 스윽 슥~ 몇번의 붓터치로 끝나는 그림도 있고, 그림마다 알 수 없게 그려져 있는 동그라미는 대체 무엇인지...

난 이미 머리가 굳어져 버린 것인지, 아님 보는 만큼 아는 것은 어린 아이들만을 대상으로 해야하는 감상법인건지 힘겨운 감상을 마치고 (전혀 자유롭지 않고 답답하기만 했다) 팜플랫을 들고 전시 기획자의 말을 들으며 다시 감상길에 올랐다. 휴.... 이제서야 좀 뚫리는 것 같다.  거꾸로 또는 기울어진 작품들은 1969년부터 해온 바젤리츠의 독특한 표현양식인 것이다. (그릴 때부터  거꾸로 그리는 건 아니라고 한다.  2미터가 넘는 화폭을 작가는 바닥에 펼쳐놓고 그리는데 그래서 그림에 물감 통(페인트 통)을 놓았던 동그란 자국이 생긴거라고 한다) 어쨋든 작가는 "거꾸로 된 이미지는 더 잘 보일 뿐이며 곧바로 보는 이의 눈을 향하게 된다." 라고  말한다. (당췌 뭔 말인지...) 어쨋든 굳이 고개를 돌려 똑바로 보려고 애쓰지는 마라! 라는 것이 작가의 의도라 하니 애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저절로 돌아가더라...^^;;)

<러시안 페인팅>이란 동독 출신인 바젤리츠가 자신이 보고 자란 과거 러시아의 미술과 사진을 원작으로 하되, 이를 작가 자신의 기억 속의 이미지로 재해석하면서 작가의 개성을 불어넣고 특유의 거꾸로 된 회화로 다시 그려낸 작품을 말한다고 한다. 레닌과 스탈린의 이미지가 그려진 작품들도 많았고(특히 스탈린의 이미자가 반복해서 참 많았다), 러시아의 일상적인 모습(그런데 왜 나체로 그렸을까...), 원작에서 부분 부분 떼어내서 그린 작품 등 많은 작품들이 있었다. 나처럼 알아야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이번 전시 기획큐레이터와 게오르그 바젤리츠와의 인터뷰를 담은 영상이 도움이 클 것이다. 꼭 거기에만 의지 할 필요는 없지만 말이다.

아이들을 교육할 때에는 보여주는데 힘을 더 싣는다. 이 작가가 어디 사람이고 어느 시대 사람이고 어떻게 살았고에 대한 이야기는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그것들을 알아야만 재미있게 의미있게 감상을 한다. 휴... 이 갈등의 끝은 어디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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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에 가기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동물원 가기]를 살까 말까 수없이 고민하다가 포기 해버렸다. [동물원 가기]를 사려고 서점에 갔다가 도로 내려놓고는 다른 책들을 집어 들어서 오히려 다른 책들만 쌓여갔다. 그러다가 마침 알랭드 보통의 신작 [행복의 건축]이 나왔고 이벤트로 [불안], [여행의 기술],[동물원가기]를 준다기에 얼른 샀다. [여행의 기술]은 이미 있는 책이지만 책이 워낙 재미있고 좋아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지 뭐~ 하면서 주문을 했다. 드뎌 책이 도착했고 재빨리 [동물원가기]를 집어들었고 책을 다 읽은 지금 드는 생각은 안사길 잘했어.... 라는 결론이다. ^^;;

보통의 글솜씨가 나빠서도 아니고 책이 질적으로 떨어져서도 아니고 그저 다른 책들에서 이 글들을 보았을 때는 보석같은 글들로 여겨져 소중히 되풀이 읽게 되었는데 정수(quintessential) 의 글들이 모여 있다보니 그 가치가 조금 떨어지게 느껴진다고나 할까...  그래도 이 책은(이벤트로 받은 책) 커버가 양장커버가 아니어서 들고다니는데도 가볍고 불편함이 없었지만 실제 단행본으로 나온 책은 책이 지닌 가벼움(내용이 일상적인 이야기고 편한함)에 비해 너무 화려하게 포장되었다고 할까... (양장커버에 아래 위로 좌우로 이~ 만큼씩 남겨진 여백이란...)

알랭드 보통의 글을 좋아하고 좋아하는 글은 여러번 반복해서 읽고 있다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동물원 가기는 상업성이 너무 짙어서 거부감이 생긴다. (그럼에도 사 읽고 싶어 5번도 넘게 집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며 갈등했던 나라는 소비자란...) 그런 거부감과 거품때문에 별을 세개만 준다. 그러나 알랭드 보통을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즐거운 책읽기가 되어줄 것이다. 한 꼭지당 10페이지가 채 안되는 깔끔한 글들은 보통만의 맛있는 글을 맛보게 해주니까 말이다.  그림이 들어가면 확실히 가격이 올라가겠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호퍼에 관련된 첫 글을 읽을 때는 그림이 없음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여행의 기술을 펴 호퍼의 그림들을 보면서 다시한번 글을 읽었다.  사실 여행의 기술을 읽을 때는 그림이 컬러면 더 좋을텐데... (만일 컬러여서 가격이 오르면 또 고민했겠지 사...말어...^^) 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인터넷을 뒤지면서 원화를 찾아가며 책을 읽었다.

보통의 책들은 생각할 꺼리를 많이 마련해줘서 좋다.  쉽게 읽으려 들면  얼마든지 쉽게 읽을 수 있지만 어렵게 읽자면 또 막 헤매게 만드는 것이 보통 책의 매력이다.  스물 넷, 다섯, 여섯에 연애소설 3부작을 완성했고 서른 네살에 유럽전역의 뛰어난 문장가에게 주는 [샤를르 베이옹 유럽 에세이상]을 수상했다는 그의 경력은 난 이 나이 먹도록 대체 뭘한거지 라는 한숨을 더해주기도 한다. 그래서 더 힘있게 살 용기도 더 해주는 것 같다.  

매주 금요일 동물원 옆 미술관으로 일을 하러 가는데 이번주에는 조금 일찍 출근해서 동물원에 먼저 들러야겠다. 동물들을 보면서 나도 내 인생을 좀 더 건설적으로 곱씹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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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elio 2007-10-15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 말씀대로 이책으로 처음 알랭드보통과 접하게 됬는데
정말 많은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팬이 될것 같아요 알랭 드 보통.

동물원 옆 미술관에서 일하세요? 과천 쯔음에 있는?
거기 자주 가는데 우연히 만낫을지도 모르겠네요 ㅎ

이쁜하루 2007-10-17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요일마다 동물원 옆 미술관으로 일하러 가곤했는데
지금은 대학로에 있는 미술관으로 가고 있어요~ ^^
보통의 글솜씨는 중독성이 있죠! 히히
좋은 작가와의 좋은 만남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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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영교수(문화교양), 우리에게 '우리'는 무엇인가(오마이뉴스)     2007/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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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변주곡 ②] 우리에게 '우리'는 무엇인가 (오마이뉴스 2007. 5. 5)
▲ 왼쪽부터 손석춘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장, 진중권 중앙대 겸임 교수, 정준영 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부 교수.
ⓒ 이정환
"오늘 좋은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젊은 세대의 변명 같지만, 당장 취직 걱정해야 합니다.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회사에서 요구하는 대로 우리를 재단해야 합니다. 미래에 대한 상상을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현실에서 대안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3일 밤 9시 3분경,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1층 교육장에 한 대학생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6월민주항쟁 20년 기념 대토론회, 상상변주곡 2회의 주제의식이 농축된 '독백'이었다. 진중권 중앙대 겸임 교수, 손석춘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 정준영 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부 교수(아래 호칭 생략)가 '우리에게 우리는 무엇인가'를 따진 이유와 맞닿아 있었다.

"청년 실업? 국회 앞에 10만명이 모인다면?"

하지만 두 사람의 연주, '젊은 세대'는 분명한 차이를 드러냈다. 진중권에게 젊은 세대는 "사회를 알려고 하지 않고, 알려고 하는 욕구도 없는" 사람들, "PC방에서 게임에 몰두하며 정보사회에 필요한 디지털 반사신경을 발달시키고 있는 미래의 블루칼라"들이 대부분인, 이전 세대와 전혀 다른 신체를 지니고 있는 '무엇'이었다.

"오늘날 젊은 세대는 더 이상 역사에 최종목표가 있다고 믿지 않는다. 해방된 미래를 위하여 현재를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들에게 미래는 그저 SF의 시간일 뿐이고, 역사는 그저 퓨전 사극의 배경일 뿐이다. 예전에는 드라마 시간을 한 번 놓치면 보기 어려웠지만, 이제는 언제라도 가능하다. 시간이 클릭할 수 있는 공간이 돼버렸다. (한쪽 방향으로만 흐르는) 시간의 선형성에 대한 믿음도 약화된다. 젊은 세대에게 세계는 역사의 진행이 아니라, 동일한 이미지의 영겁회귀일 뿐이다. 젊은 세대가 역사의식을 갖추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이 같은 주장에 손석춘은 문제를 제기했다. "젊은 세대들이 마땅히 알아야 할 진실을 모르게 만드는 교육 현실에 대한 지적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손석춘은 "그들이 드라마로만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백수와 백조가 쌓여가고 학점경쟁에 내몰리는 현실 속에 살고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등록금은 계속 오르고 취업은 어렵다. 수천만원씩 들여 대학을 다녔지만, 취업이 되지 않아 자살하는 대학생들이 많다. 학생운동이 침체해 있을 상황이 아니다. 국회의사당 앞에 10만 명이 모여 시위해 보라. 달라질 것이다. 정치인들이 청년 실업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안 모이잖아요. 공차기 응원에는 수십만명씩 모이면서도. 신자유주의 사회와 다른 사회를 왜 상상하지 못하는가. 지금보다 훨씬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끈을 놓지 말자. 힘을 합치면 충분히 구현할 수 있다."


"NL이 인간을 믿는다면, PD는 텍스트를 믿는다"

허나 진중권에게 이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농경적 신체'의 주장인 듯 했다. 진중권은 모든 나라의 변화 양상을 농경사회-산업사회-정보사회로 구분하고 NL을 농경적 신체, PD를 기계적 신체, 미래의 노동자 계급(?)을 정보적 신체에 각각 대입했다. 그리고 각 신체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농경적 신체. 조직화를 하기보다 '관계 맺기'를 활용하고, 논리적 설득보다 정서적 '감동'을 강조하고, 품성이나 의리 같은 전근대적 수사법을 사용한다. NL의 이상 속에는 미국에 반대한다는 네거티브한 요소와 산업화로 잃어버린 공동체적 삶에 대한 낭만적 동경이라는 포지티브한 요소가 공존한다.

기계적 신체(PD). PD는 문자문화의 전형이다. NL이 인간을 믿는다면, PD는 텍스트를 믿는다. PD는 인간관계보다 사상서적을 더 신봉한다. 품성보다 논리가 중요하고, 의리보다 원칙이 더 중요하다. 세계와 문자의 동일성을 굳게 믿는다.

정보적 신체. 빌 게이츠의 상품엔 '무게'가 없다. 상품이 비(非)물질화하고 정보가 재화가 된 정보사회가 원하는, 과거와 다른 수준의 신체다. 정보적 신체는 조직이 아닌 네트워크로 관계를 맺는다. 이들에게는 정치는 물론 역사도 비물질화한 채로 가상, 유희, 오락의 영역에 편입된다. 방송 3사의 고구려 드라마가 일깨워준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역사의식'이 아니라, 판타지로 이루어진 황홀한 환각의 체험이다."

결국 진중권에게 NL과 PD의 대립은 "다른 이념의 대립이 아니라, 실은 다른 신체의 대립"이며 오늘날 젊은 세대는 "역사의식을 갖추길 기대할 수 없는, 과거와 전혀 다른 신체"라는 것이다. 이 같은 진중권의 '신체의 지질학' 논리에 손석춘은 "NL과 PD의 구분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신체'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한 것 같다"면서 의문을 제기했다.

이어 손석춘은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 NL이 설득력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농경적 신체'보다 더 중요한 요인이 있다고 봐야 한다"며 "미국의 제국주의 정책이 현존하고 앞으로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미국 정책이 한국 사회를 규정하는 측면이 강하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젊은 세대 박정희 찬양, 현실 아닌 드라마"

▲ 정준영 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부 교수.
ⓒ 이정환

결국 젊은 세대에 대한 진중권의 '차가운' 평가는 "우리나라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다시 거기서 정보사회로 가는 변화가 유례없이 급속하게 이뤄진"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인의 몸이 어느덧 세계에서 가장 사이보그화한 신체로 변했고, 인터넷을 목숨 걸고 하는 민족이 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중권은 "텍스트 세대의 눈에 '보수화'로 보이는 젊은 세대의 역사의식 결여"가 결코 보수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진보나 보수의 이항대립을 넘어선 완전히 차원이 다른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어 "문자로 쓰인 역사가 사라진 곳에 영상으로 그려지는 신화"처럼 "진짜 박정희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의 박정희를 좋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정준영은 다음과 같은 반론을 펼쳤다.

"우리 몸에는 구석기 시대 특징이 여전히 남아 있다. 신체는 유연하지만, 잘 변하지 않는 측면도 있다. 따라서 젊은 세대의 보수성을 정보적 신체의 틀로 설명하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 10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기간 동안, 과연 정보적 신체가 얼마나 성숙할 수 있겠는가. 지금 박정희 우상화에 대해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씀하시는데, 아니다, 걱정할 필요 있다. 지금 대학생들이 소시민화하고 있다. 물질적으로는 '보수', 관념적으로는 '진보'. 이것이 소시민의 전형적인 특성이다. 나치즘이 바로 소시민층에 기반을 두지 않았는가. 언제든 파시즘은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진중권은 "삼족오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디지털 파시즘 또는 판타지 파시즘이 나타날 수 있지만, 어느 사회에든 일정 분량의 사이코가 있게 마련이다, 거슬리는 상황일 뿐"이라며 "박정희 찬양은 실제적인 의식이 아니라 드라마로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다만 한심하다고 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손석춘은 검은 건반, 진중권은 하얀 건반

그리고 진중권은 "무엇보다 급격한 변화를 제대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방점을 찍었다. 결국 진중권의 주장을 '젊은 세대가 상상할 수 없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로, 손석춘의 주장을 '젊은 세대도 상상할 수 있다'로 요약할 수 있다. 비유하자면 검은 검반(반음)의 가능성을 손석춘이 높이 샀다면, 진중권은 하얀 건반(온음)을 먼저 정확히 눌러야 한다는 것.

하지만 상상변주곡 2회에서 세 사람의 '불협화음'은 '젊은 세대'를 코드 삼아 어우러질 수 있었다. "미래에 대한 상상을 할 수 없는 게 아니라"는, "틈날 때마다 관련 서적을 읽기는 하지만, 정작 실천에 노력하지 않는 자신을 볼 때 답답하다"는, 토론을 참관하던 젊은 세대들의 솔직한 토로에 두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손석춘은 "대안이 없다고 생각하지 말자, 다른 나라를 모델로 삼을 필요도 없다, 우리 나름대로 모델을 만들면 된다"고 당당한 '주관'을, 진중권은 "사회에 대해 관심을 통해 자기 처지를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며 냉철한 '객관'을 강조했다.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 토론과 '우리'를 고백하는 시간으로 2번째 상상변주곡은 막을 내렸다.

(이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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