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드무비 > 한겨레 김소희 기자의 '다니엘 헤니' 인터뷰

전쟁은 ‘젠틀’하지 않아요

-- 2005년 대한민국 남자와 여자들을 사로잡은 매력남 다니엘 헤니를 만나다


“올 한 해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 탱크에 쓸 돈 지진피해 복구에 썼으면”
<한겨레21>은 2005년을 보내며 ‘올해의 남자’로 배우 겸 모델 대니얼 헤니를 선정했다.
대중의 욕구에 부응하는 남성성은 미디어 속에서 끊임없이 만들어졌지만, 대중의 욕구를 일깨운
남성성의 등장은 주목할 만한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인기리에 방영됐던 문화방송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사려 깊고 다정한 헨리 킴 역을 맡으며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앞에 나타난 그는 대한민국 사회의 남성성, 혹은 남성적인 기존 질서를
순식간에 무장해제시켰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사람들이 그에게 끌리는 이유는 잘생기고 영어 잘하는 백인 혼혈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능력 있되 전능하지 않고, 배려하되 지배하지 않고, 존중하되 의존하지 않는 남성성을 지녔다.
트렌드란 이름으로 건너뛰던 대한민국의 남성성은 그의 등장과 함께 ‘진화’했다.
그 결과 ‘내실 있는 경쟁 체제’를 갖추게 됐다. 남성성의 조건으로 꼽혀온 돈, 능력, 외모, 성격, 학벌,
집안 같은 ‘자원’에 안주했다가는 이제 어떤 남자도 온전하게 사랑받을 수 없게 됐다.

많은 여성들이 그 덕분에 행복했고, 적잖은 남성들이 편협한 성역할의 틀을 넘어서는 계기를 얻었다.
올 한 해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 이상을 행복하게 해준 남자, 대니얼 헤니를 만났다.

편집자 ▣ 글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대니얼 헤니(26)를 만나기로 한 날인 12월12일 오전, 그의 매니저인 정원석씨가
시간과 장소를 정하느라 전화를 걸어왔다.
저녁에 서울 강남 청담동 쪽에서 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무심코 “그 동네를 잘 모르니 편한 곳으로 정해보시라”고 했다.
그럼 언제 어디가 편하냐고 묻기에 “사실 오늘 부서 송년회가 있어서 너무 늦지는 않았으면 좋겠고,
평소에는 회사 근처 마포나 홍대 쪽이 편하긴 하다”고 했다.
매니저는 의논해보고 다시 연락하겠다고 하더니 2시간 뒤 “(대니얼이) 원래 메이크업은 안 하지만
하루 종일 모자를 쓰고 다녀 머리를 만질 시간이 없는데 (그런 몰골을) 양해해 준다면 홍대 쪽으로
가겠다”고 전해왔다.

‘젠틀’하리라 짐작은 했지만 정녕 그가 <한겨레21> 송년회 장소인 홍대 근처 꼬불꼬불한 골목 안,
테이블 예닐곱 개의 작은 카페에 나타날 줄은 몰랐다.
베이지색 비니를 눌러쓴 대니얼은 청바지에 흰 면티를 받쳐입고, 평범한 검은 재킷 위에
목도리를 두른 채 들어섰다. 그는 카페라테를 주문했다.
한국말은 기본적인 것을 알아듣는 정도로만 늘었다고 했다.

기자의 짧은 영어에 그는 쉽고 반복적이고 큰 목소리의 영어로 답했다.
커피잔이 녹음기를 가리지 않게 위치를 바꿨고, 인터뷰 직후엔 직접 녹음기를 끄며
칭찬받고 싶은 아이 표정을 짓기도 했다.
그는 생각보다 ‘여성스럽지’는 않았고, 생각 밖으로 정치·사회·국제적 이슈에 민감했다.
덕분에 인터뷰는 꽤 ‘헤비’한 얘기로 시작했다.





미국은 정치적으로 매우 심란 올 한 해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였나?

=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이었다. 올 초 한국에 왔을 때에는 대단히 조심스러웠다.
말도 잘 안 통하고, 내가 혼혈인 것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염려되기도 했다.
심리적인 면을 말하자면, 사실 여전히 지금 내가 있는 자리가 실감이 안 난다.
언론이 인터뷰하는 사람이 됐다는 것도 낯설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세상에, 대체 내게 무슨 일이 생긴 거야?’ 한다.
정치적으로 볼 때 올 한 해는, 솔직히, 미국에서 일어난 일들이 걱정됐다.
루이지애나 대홍수는 충격이었고 미국 정부의 대처도 적절치 않았다.

이라크 전쟁의 경우… 나는 더 이상 전쟁을 믿지 않는다.
군인들의 노고는 존경하지만, 전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 보지 않는다.
게다가 그 엄청난 달러라니.
탱크와 비행기와 미사일에 쓴 돈을 대홍수나 대지진 피해 복구 같은 데 썼다면 훨씬 유용했을 것이다.
나는 이라크 전쟁이 제2의 베트남전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자꾸 그렇게 되는 듯해 두렵다.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당신은 광고에서 0순위로 알고 있는데, 경제적으로는 어땠나?

= 당신이 생각하는 만큼은 아닐 거다.
솔직히 말해 뉴욕에서 지낼 때까지만 해도 나는 돈을 그리 잘 벌지는 못했다.
그래서 돈 없이 지내는 데 익숙하다. 내가 엄청난 부자라면 모르지만 막 얘기할 정도는 아니다.
어떤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지만, 큰돈을 버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돈을 갖고 올바른 일을 하는 것이다.

올 한 해 당신에게 개인적으로 가장 기뻤던 일과 끔찍했던 일은?

= 홍콩에 사는 친구가 암으로 오랫동안 투병했는데 지난 8월 세상을 떠났다.
모델로 활동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에게 아주 친절하던 멋진 친구였다.
부음을 듣고 장례식을 도우러 갔는데 그 많던 친구들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그의 죽음과 그 뒤의 일들이 안타까웠다.
기뻤던 것은… 한국에서 지낸 모든 경험이 좋았다.
<내 이름은 김삼순> 이후 굉장히 많은 팬이 생겼다.

당신이 주목했던 올해의 이슈는?

= 문화방송 에서 파키스탄 대지진을 보고 많이 괴로웠다.
그 많은 사람들이, 여성들과 아이들이 죽어가는데 우리는 무력했다.
종교·인종 분쟁, 극단적인 폭력, 자연의 역습 같은 것들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한국 내의 이슈에 대해서는… 음, 난 솔직히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는 않다. (웃음)
최근에는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 논란이 아주 흥미로웠다.
여러 추측은 있지만, 진실을 좀더 많이 알고 싶다.
내가 아직 말이 짧아 한국 뉴스를 꼼꼼히 들여다보지 못한다.
미국 상황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올해 정치적으로 미국은 매우 심란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젊은이들이 투표를 많이 해서 상황을 바꿨으면 좋겠다.

어릴 땐 뚱보, 농구 잘해서 킹카

여성들이 당신을 좋아하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왜 남성들도 당신을 좋아할까?

= 안 그랬다면 여자친구들이 죽이려 들까봐? (웃음)
나는 남자다. 그것도 평범한 남자다.
얼굴은 알려졌지만, 차림새를 봐도 알 수 있듯이, 티셔츠와 청바지 입고 다니는 게 좋다.
머리를 만지고 옷을 잘 차려입고 사람들 접근이 막히는 스타처럼 지내지는 않는다.
나에게 익숙지 않은 일이다.
남자들은 내게 다가와 농구 얘기를 한다.
혹시 그들이 날 미워하지 않는다면 농구 때문이 아닐까?
(옆에서 잠깐 그의 매니저가 “싫어하는 사람이 왜 없겠나. 하지만 대니얼은 누가 자기를 싫어한대도
안 믿는다. 대단히 낙천적인 성격이다”고 말했다.)

△ 그는 생각보다 여성스럽지 않았고 생각 밖으로 정치·사회·국제적 이슈에 민감했다.
그는 미국 미시간주 작은 시골마을에서 영국계 아버지와 한국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1958년 두 살 때 ‘황해즐’이라는 이름과 사진 한 장만 지닌 채
부산의 이사벨라 고아원에서 미국으로 입양됐다.
대니얼의 표현에 따르면 아버지는 “전형적인 블루칼라” 기계공으로 일했고, 어머니는 간호사다.

그의 어머니는 지난 여름 45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지만 간호사 일 때문에 보름 남짓만 머물렀다.
혹시나 한국의 가족을 수소문했지만 찾지 못했다. 그는 열두 살 전까지는 먹는 걸 밝히는 ‘뚱보’였고,
청소년기에 농구를 하며 친구들이 많이 생겼다고 한다.
백인들이 주로 거주했던 동네라 ‘다른 얼굴’ 때문에 놀림을 받고 상처가 될 만한 차별을 겪기도 했지만,
농구를 잘해 고교 시절에는 학교 ‘킹카’가 될 수 있었다.

시카고 일리노이대(경영학 전공, 연극 부전공) 시절 “가난했고, 공부를 마치기 위해 돈이 필요하던 차에”
우연히 모델 지망생인 친구를 에이전시에 데려다주고 주차장에서 기다리다가 더 큰 에이전시
관계자에게 발탁됐다.
2001년이다.
덕분에 학교를 마치고 뉴욕, 밀라노, 파리, 홍콩 등지에서 모델활동을 했다.
지금 그의 매니저가 속한 회사도 연예인 매니지먼트사가 아니라 모델 에이전시다.
대니얼의 성향도 “시시콜콜 관리되고 통제되고 만들어지는 매니지먼트 시스템에 맞지 않는다”고 한다.


뉴욕과 유럽, 홍콩 등지에서의 활동과 한국에서의 활동에서 큰 차이를 느끼는지.

= 아주 큰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는 엄청난 환대를 받았다.
한국은 다른 나라에 견줘 대중문화의 수준이 높다. 영화, 드라마, 광고 수준도 아주 높다.
또 아주 빠르다. 잡지 촬영을 하면 불과 이주일 뒤에 나오고 방송 인터뷰는 바로 그날 나오고.
광고 일도 그렇고. 그게 좀 스트레스를 주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에서는 일하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진짜로 친절했다.
드라마 할 때도, 광고 일 할 때도 모두들 어떻게든 나를 도와주려고 했다.
언어 문제 탓이기도 하지만, 그 이상인 것 같다.
내가 코리안이라서 그런 거 같다.

 





당신이 경험한 한국 사람들의 특징을 꼽자면?

= 음… 워커홀릭들이다. 일을 너무들 많이 한다. 전날 자정까지 일하고 다음날 또 일찍 일어나고.
잠도 거의 안 잔다.
또 다른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서로 존중한다는 걸 느꼈다.
논쟁하고 싸울 때에도 존중하는 것 같다.  존댓말 문화 덕분인가.

때론 존댓말 문화가 엉뚱한 위계를 만들기도 한다.

= 나이 든 사람이 무조건 옳다는 태도 같은 거. 나도 안다.

다르다는 것은 때로는 힘! 혼혈이라는 특징은 어떤 이익과 불편을 주나?

= 한국에서? (잠깐 자세를 고쳐 앉으며) 다르다는 것은 때론 힘이 된다.
다르다는 경험은 그것이 상처라 할지라도 큰 깨달음을 준다.
한국에도 혼혈인들이 많은데, 그건 잘못된 것도 아니고, 그냥 그렇게 된 결과일 뿐이다.
내가 혼혈이라서 혼혈 어린이들에게 용기를 주는 역할을 할 수 있어 좋다.
꿈을 갖는다면 그걸 언젠가는 성취할 수 있다고 말할 기회를 얻는 것도,
차별적인 시각과 태도도 깨뜨리는 데 일조할 수 있다는 것도 좋다.
내 성장기를 떠올리면 가장 큰 보람이다.
불편한 것은 아직 없다. 아직까지는.

당신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은?

= 엄마와 통화할 때. 일주일에 1∼2번 통화하는데 제일 행복하다.
그리고 음악 들을 때(그는 학창시절 록밴드 활동을 하기도 했다.
노래 실력은 “테러블하다”고 했다).
일을 잘 끝냈을 때도, 결과가 좋을 때에도 행복하다.

살면서 마음이 바닥을 쳤던 적이 있나? 깊은 절망이나 좌절 같은.

= 있다. 열아홉, 스무 살 무렵까지 내겐 농구가 세상의 전부였다.
매일 서너 시간 이상 미친 듯이 농구만 했다.
농구를 잘해 시골을 벗어나 도시의 대학에 가는 게 간절한 꿈이었다.
그런데 내 시골 마을 주변 사람들은 거의 모두 “넌 안 돼. 할 수 없어”라고 말했다.
용기를 준 분은 부모님밖에 없었다.
기회가 닿아 농구 장학생으로 대학에 가게 됐다. 그런데 잘 안 풀렸다.
첫 번째 코치는 나쁜 사람이었다. 그는 나를 혐오했고 나도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학교를 옮겨 만난 두 번째 코치는 좋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썩 유능한 코치는 아니었다.
세 번째로 학교를 옮겨야 했다. 그곳에서, 딱 한 경기가 나를 바꿨다.
시즌의 마지막 경기였는데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 한 경기로 모든 게 끝났다. 농구도 끝났다.
나는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그리 잘하지 못했다.
마지막 경기에서도 불과 5분을 뛰었던 것 같다. 그나마도 잘하지 못했다. 당혹스러웠다.
어머니가 그 경기를 보셨는데, 내게 다가와 “얘야,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는구나” 하셨다.
나는 순간적으로 무너져내리듯 엉엉 울었다.
세상이 다 끝난 것 같았다. 농구를 더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모든 꿈과 희망이 부스러져 사라졌다. 막막했다.
학교를 마치기 위해 시카고(일리노이대)로 가야 했다.
농구를 계속할 실력이 안 됐던 것, 내가 겪은 가장 큰 좌절이었다.

어떻게 극복했나?

= 시간. (잠깐 호흡을 가다듬은 뒤) 난 더 이상 경기를 하지 않지만, 여전히 농구를 사랑한다.
시간은 이제 털고 일어날 때가 왔다는 것도,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도 알려준다.

△ 그는 "혼혈이라서 혼혈 어린이에게 용기를 줄 수 있어 좋다"고 말한다.
지난 7월26일 '혼혈아동 희망 나누기! 펄벅 여름 캠프'에 참여한 대니얼 헤니. (사진/ 한겨레 김진수 기자)

그는 미국 뉴욕의 디나극단에서 연기수업을 받았고, 오프 브로드웨이 무대에도 종종 섰다.
모델로 활동할 때 주 거처는 뉴욕이었다. 지난 가을 그는 뉴욕의 거처를 친구한테 넘기며 정리했다.
한국에서 오래 살 집을 구하고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서울 삼성동 집은 “모든 게 구비된” 월셋집이라 전세를 얻더라도 자기만의 취향을 살린
공간을 안정적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는 혼자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500㎖의 물을 마신다.
그러고는 적당히 진한 커피에 우유와 설탕을 약간씩 타서 마신다.
그런 다음 텔레비전을 켜서 뉴스를 듣고, 책이나 잡지를 읽다가 스케줄이 없으면 운동을 하러 나간다.
동호대교 하단 한강둔치를 달리거나 헬스클럽에 간다.

식사는 직접 해먹는데, 산낙지처럼 “살아 꿈틀대는 것” 빼고 회를 포함해 아무거나 잘 먹는다.
요즘에는 설렁탕이 제일 맛있다고 했다.
밥과 빵 중 밥을 더 즐기고, 음식은 미국식과 한국식을 짬뽕으로 만들어 먹는다고 했다.
치킨 요리랑 감자 요리, 특히 스파게티에 자신 있다고 자랑했다.

터프하고 우아하고 지적인 캐릭터?

조깅을 하면 사람들이 알아볼 텐데, 변장하고 뛰어야겠다.

= 그냥 뛴다. 달리니까 쫓아오지 못한다. (웃음)
나는 사람들이 나를 아는 척해주는 게 즐겁다.
조깅을 할 때는 손 흔들고 그냥 막 달리면 된다.
공공장소에는 혼자 가기 어렵지만 운전은 즐긴다(매니저가 다시 거든다.
“대니얼은 가끔 자기가 유명한 사람이라는 걸 잊는데, 네티즌이 뽑은 올해의 스타니,
청소년 스타 같은 데 선정됐다고 알려주면 ‘진짜? 진짜?’ 하고 캐묻는다.
어떤 행사 때 시간이 없는데 사람들이 자꾸 몰려오면 우리는 ‘죄송합니다’ 하고 막아서는데
이미 혼자 저쪽에 가서 일일이 사진 찍고 사인해주고 있다.”)

당신은 오만해지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나?

=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다. 그냥 나 그대로 지낸다.
나는 두 얼굴을 한 사람이 가장 싫다. 굳이 애써 겸손하려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힘든 사람도 만났고 좋은 사람들도 만났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주는 사람들 덕분에 잘 지낼 수 있었다.
부모님은 경제적으로 풍족한 환경은 아니었으나 넘치는 사랑을 주셨다.
그게 내 밑천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연기 의지가 강하다고 들었다.

= 나는 연기자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뭐가 되겠다는 말은 쉽게 못하겠다.
지나치게 멀리 내다보려 들면 정작 오늘을 못 볼수 있다.
원하는 것은 있지만 구체적인 계획이나 목표를 일년, 이년 단위로 세우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면 오늘에 충실해질 수 없으니까.
계획이나 목표만 위해서만 오늘이 존재한다는 건, 아까운 일 아닌가.
곧 발표하겠지만 새해에는 드라마를 할 거고 영화도 논의 중이다.

어떤 캐릭터를 맡는가?

= 글쎄, 깊이 있는 캐릭터? 약간 터프하기도 하고 우아하고 지적이고….
하하, 내 바람이다.

남자들도 질투 안하는 남자
자신이 가진 권력을 무화시키는 독특한 매력에 ‘안티’조차 없다





꽃미남, 몸짱, 귀염남, 신 터프가이, 위버섹슈얼…, 수많은 남성성이 명멸을 거듭하지만,
대니얼 헤니가 연기한 헨리 킴은 모든 것을 통합하고도 모든 것과 전혀 다른 낯선 캐릭터였다.

문화평론가 김종휘는 <내 이름은 김삼순> 종영날 <한겨레> 칼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국의 코즈모폴리턴, 혼혈의 메트로섹슈얼, 게이의 감수성….
신께선 어쩌자고 이딴 걸 한 놈에게 합쳐놓았는지, 지금 난리났다.
이자가 말한다. ‘내가 봉이냐?’ 두루 잘났는데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며 사는데다
그런 애교까지 부리다니, 돌아버리겠다.”

많은 남성들이 당황해하는 사이 더 많은 여성들은 “그저 화면에 나와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며
일찍이 어느 ‘남성 캐릭터’에도 바치지 않았던 찬사를 쏟아냈다.
그와 2년 전부터 일해온 매니저 정원석씨는
“미디어 속의 그와 실제의 그는 별 차이가 없다, 솔직함이 셀링 포인트다”라고 귀띔한다.

그는 그렇게 ‘솔직하게’ CF의 배경남에서 뚜벅뚜벅 무대 위로 걸어나와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사내가 돼버렸다.
그의 인기에는 여러 사회적 맥락이 교차한다.
이전까지 남성의 대표적인 성역할은 부양자나 보호자였다.
여타의 남성성들도 두 가지의 심리적·정치적 변종이었다.
돈과 능력, 집안 같은 몇몇 ‘자원’이 뒷받침되면 그야말로 ‘이지 고잉’됐다.
그러나 외모·친절·배려·감성·분담·봉사·인내 등 ‘여성적인 특성’으로 분류됐던 것이
기존 남성성과 경쟁할 정도로 비중 있게 커지면서, 남성성 또한 급속히 상대화됐다.

남편(혹은 애인)이 누구냐는 것 말고도 여성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요소가 많아지면서
여성이 남성다움을 정의할 권력을 어느 정도 갖게 된 덕분이다.
여성주의자 정희진(서강대 강사)은 이런 상황을
“오랫동안 남성이 그래왔듯이, 거꾸로 여성이 남성성의 구성에 요구·개입·참여하며
심지어 제작자로도 나설 수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왜 굳이 대니얼 헤니일까.

지난 5월 말에 문을 연 그의 미니홈피는 특별한 관리가 없는데도 반년도 안 돼
방문객 230만 명을 육박한다. ‘안티’조차 없다.
그를 향한 관심은 성별이나 연령을 넘어선다.
김종휘는 “남자들이 질투하고 경쟁심을 갖는 것은 어떤 권력 구조 때문인데, 대니얼은
자기가 가진 권력이 분명 있음에도 그걸 무화시키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고 설명한다.
이어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내 여자를 빼앗길 것 같지 않은 느낌’을 주는 존재”라고 덧붙였다.
한마디로 ‘페어플레이’가 가능할 듯한 남자로 수용되는 것이다.
그 결과 온 동네 남성성의 ‘선의의 경쟁’을 불붙였다.

그는 이산자(디아스포라)의 특성을 지녔으면서도, 이산자에 대한 우리의 ‘트라우마’를 환기시키지 않는다.
한국 경제와 문화는 그와 같은 이산자를 소집하고, 귀네스 팰트로를 데려다 광고를 찍을 정도로 성장했다.
국민국가의 아집에서 벗어나 ‘우리도 이 정도는 수용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내세우게 된 것도
비슷한 시기다.
게다가 그는 “혼혈이면서도 한국 현대사의 죄의식이나 부채감을 자극하지 않는다”(정희진).

기지촌 여성과 흑인 미군 사이에 태어나지 않았고, 라이따이한도 아니다. 이주민도, 입양인도 아니다.
그의 어머니가 미국으로 입양된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대니얼 드라마’의 배경일 뿐이다.
그는 우리가 소집하고 포용해야 할 이산자이면서도, 외모·피부색·영어 등 강력한 자원을 지닌
파워풀한 이산자이다.
다른 이산자들과 달리 유독 그를 ‘선택적으로’ 환영하는 우리 안의 ‘또 다른 차별’이 분명 존재하지만,
그가 풀어야 할 숙제는 아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그의 경쟁력이 온전히 설명되지는 않는다.
미디어의 틈새에서 엿보이는 실제의 그는 지극히 ‘현대적’이면서도 ‘고전적’이다.
책임감 있고 매너 좋고 사려 깊지만, 이를 무기로 여성을 쥐락펴락하려 들지 않는다.
가족 배경이나 성장 과정도 지극히 ‘평범’했다. 굳이 자기를 포장하지도 않는다.
덕분에 흠잡을 데 없는 ‘완벽답안’은 아니지만, 최선의 ‘모범답안’ 같은 남자가 된 게 아닐까.
물론 어떤 남성들에게는 ‘세계화의 피곤함’을 안겨주는 존재일 수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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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1>에서 퍼와서 읽기 좋게 재배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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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드무비 > 무주 산골 나무네 집 젊은 부부의 행복론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박범준.장길연 지음, 서원 사진 / 정신세계원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몇 해 전 늦은 가을, 속초로 가는 차 안에서 차창 밖으로 휙휙 스쳐 지나가는
산등성이의 드문드문한 집들을 보며 남편이 내게 물었다.
“언젠가 깊은 산골에 오두막을 짓고 살아보고 싶은 생각 없어?”
“그런 생각 해본 적 없는데......그런데 괜찮을 것 같지 않아? 최소한의 일감만 확보되면
산골 오지에 사는 것도. 거기도 인터넷은 될 거 아냐!”
그러니까 나의 산골 생활 전제조건은 ‘최소한의 일감’과 ‘인터넷이 가능할 것
(컴맹이나 마찬가지인 주제에!)’, 심심하지 않도록 ‘많은 책과 영화 테이프를
미리 확보할 것’ 등이었다.
그때 남편은 왜 그런지 고개를 절레절레 옆으로 내저었다.

올해 초, ‘인간극장’이라는 한 텔레비전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자신들의 시골생활을
공개한 30대 초반의 젊은 부부가 있다.

박범준, 장길연 부부. 서울대와 카이스트를 나오고 너무나 도회적으로 생긴 이 부부는
얼마나 닮았는지 처음 봤을 때 오누이 같았다.
얼굴만 한 번 쳐다봐도 운명의 끈으로 묶여 있다는 느낌을 받는 커플이 더러 있는데
이들이 바로 그런 드문 경우였다.
이름만 그럴듯하지 벗겨놓고 보면 더욱 탐욕스럽고 사람들을 차별화시키는 웰빙,
상품화된 웰빙이 세상에는 지천인데 이들 부부가 사는 모습은 진정한 웰빙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했다.

방송으로 봤을 때 도시에 사는 시아버지의 생신선물을 준비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직접 따서 꾸덕꾸덕하게 말린 곶감을, 버리지 않고 모아둔 튼실한 상자를 예쁘게 꾸며 담고,
자신이 바느질한 조각보 같은 것으로 예쁘게 싸는데, 세상에나!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솜씨요,
예쁜 마음씀씀이였다.
그 모습에서 나는 냉장고 속에 너무 오래 굴러다닌 재료를 버릴까 어쩔까 망설이다
솜씨를 부려 맛난 음식으로 완성했을 때, 그걸 너무 맛있게 아귀아귀 먹는 가족의 모습을
지켜볼 때나 느낄 법한  희열을 맛보았다.
그것은 어느 비싼 식당의 외식과도 비교할 수 없다.

직접 고안하여 만든 마당 귀퉁이의 재래식 화장실과, 목욕 한 번 하려면 불 때랴,
물 데우랴 난리도 아닌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그들이 시골 생활을 택한 이유는?
한마디로 행복해지기 위해서였다.


--과연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두어야 그것이 건강에 대한 현실적인 대책이 될 수 있을까?
한 20억 정도 모아두면 어느 날 갑자기 암에 걸려도 걱정 없는 훌륭한 대책을 세워둔 것일까?
건강이 인생의 목표는 아니겠지만 우리에게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생계대책이었다.
“뭐 먹고 살려고 그래?” 이렇게 묻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글을 쓰고, 아내는 천연염색을
할 거라고 간단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건강을 잘 지키고 소비를 줄여 나갈 것이라는 말을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57쪽)

이렇게 담담한 술회처럼 그들의 결정은 뭔가 원대한 야망을 숨긴 수단으로서의 특별한 
선택이 아니었다.
가끔 도시에 나가 밀린 볼일을 보고 무주 그 산골짝 임시 거처로 돌아가면 부부는
그렇게 기쁘고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고 한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방그레 웃으며 눈감고 싶다'라는 길연 씨의 소망에 나의 고개도 끄덕여진다.

그뿐 아니다, 너무나 다른 성향의 두 사람이 만나서 결혼을 하고 서로 맞추어 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꽤나 흥미로웠다.

'지금 살고 있는 오늘 하루하루가 행복해야 먼 훗날에도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미루지 않고,
과감하게 실천하여 땀을 뻘뻘 흘리며 밭일을 하고 자신들의 노동으로 한 끼의 양식을 버는
이 젊은 부부의 사는 모습을 담은 몇 장의 사진을 보고 있자니 그 깨끗하고 순명한 에너지가
내 속으로도  흘러들어 오는 듯했다.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도 하나의 도(道)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길연’(182쪽)

이처럼 꼭지 하나하나마다 제목 아래  부부가 교대로 가벼운 단상을 적어놓았는데
그걸 읽는 재미도 아주 쏠쏠했음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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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드무비 > 길 모퉁이 놀이터 좌판 위의 예술
놀이터 옆 작업실 - 홍대 앞 예술벼룩시장의 즐거운 작가들
조윤석.김중혁 지음, 박우진 사진 / 월간미술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이른바 '예술벼룩시장'이라 불리는 홍대앞 희망시장은  그곳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작가들이
'좋아하는 작업을 하면서 먹고 살 수 있는 곳'을 꿈꾸며 붙인 이름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사실 나는 마음먹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할 수 없이 취업을 하고 또 원치 않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꿈 같은 일이고 버럭 성질을 돋우는 말이 될 수도 있다.

어린 시절부터 모아온 돌로 무언가를 만드는 '원석 DJ ' 미미루, 뜨개질한 빨강고양이와
원숭이 모자 좌판의  주인장 빨강고양이,  소박한 북아티스트 박소하다,  우유각소녀,
세계를 돌아다니며 찍은 자신들의 사진을 좌판으로 펼친 좌린과 비니 부부,
날개 달린 가방을 만드는 날개공장 공장장 라라, 점토인형작가 똥쨈 아줌마,
어린왕자로 통하는 델로스 등 자신의 손으로  조물락조물락 만든 수공예 작품들을 가지고 나와 
좌판을 펼친 12인 예술가의 면면이  참으로 다채롭다.

말이 예술작품이지 잘못 보면 어린애 장난처럼도 보일 수도 있는 것을 당당하게 좌판에 펼치고,
또 그 작품에 열광하는  마니아 층까지 형성되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도 어느 정도는
예술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편견에서  자유로워진 것 같다.

--우리 사회가 행복했던 적이 있나요? 이젠 아무 생각 없이 좀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64쪽)

태극기 중간에 천연덕스럽게 하트를 그려넣는 등 기발한 아이디어가 눈에 띄는
수줍은 전략가  강영민은 이렇게 반문하면서 "웃자, 행복해지자, 그게 복수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아무 생각 없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그의 말은 가벼운 듯하지만  울림이 있다.
생각해 보라, 지금부터 행복해지겠다고 아무리 각오를 한들 행복이란 놈이 굴러들어오겠는가!
일주일에 한 번 좌판을 펼쳐 벌어들이는 돈이 간신히 재료비나 충당하면 다행일 것 같은데
따로 믿는 데가 있는 것처럼 그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장난스럽고 유유자적하다.

30대부터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사회에 팽배한 가운데 10억 정도를 모아야
노후가 걱정 없다고 자신은 이미 착수했다고 자랑하는 젊은이들만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보다가 ,
어수선한 작업실과  남의 시선은 조금도 의식하지 않는 듯한 뚱한 표정의 젊은 예술가들을
책 속에서 만나니  어쩐지 안심이 되면서 조금 숨통이 트인다.

젊음의 특권은 어찌 보면 자신에 대한 도취인 것인데, 자신이 대단한 예술을 하는 양 폼을 잡지 않는 것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어느 집 거실 벽에, 누군가의 책상 위에 놓여 있을 우리 사진을 생각하면 참 뿌듯하다"(145쪽) 는 
아내 비니의 말도,  
"사진 한 장에 7천 원이면 그저 주는 거라고 생각해. 우리 사진이 얼마나 좋은데!"(146쪽) 라고 말하는
남편 좌린의 말도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지점토로 똥 모양과 독특한 생김새의 인형들을 빚는 똥쨈 아줌마의 작품들을 나는 유심히 살펴보았다.
나도 한때 공예과 나온 친구랑 몇 개월쯤 집에서 지점토를 주무르며 놀아본 경험이 있는 것이다.
겨울 혹한기에는 시장을 열지 않는다니 올 겨울에는 집에 틀어박혀 액자 몇 개를 만들어 가지고
봄에 개장하면 들고 나가 볼까, 하는 궁리를 하며 나는 책장을 덮었다.


 


내가 유심히 본 똥쨈 아줌마의 지점토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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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드무비 > 컴컴한 골방 문이 열리다
페미니즘의 도전 -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잊고 있던 아니, 기억 속에서 애써 지우려 했던 수많은 일들이
하나하나 선명하게 떠올라 아주 괴로웠다.
(내가 가해자였던, 혹은 피해자였던, 혹은 말도 안되는 일의 목격자였던 수많은 사례들이 
굴비처럼 줄줄이 엮여져 나오는 것이다.)

제일 먼저 떠오른 건 김귀정 열사가 시위 도중 목숨을 잃었던 날이다.
그 날 나는 독서 모임 사람들과 멋모르고 시위 대열에 끼어 있다가 혼비백산했다.

뛰는 와중에 신발을 잃어버려 남의 비닐 단화를 주워 신고 엉엉 울면서 돌아다닌 건
언젠가 페이퍼에도 쓴 적 있다.
다음날인가, 며칠 후, 시신이 안치된 병원에까지 왔다갔다 하며 제법 중요한 일을 맡은 듯
폼을 잡던 한 소설가가 이렇게 말했다.
“김귀정 열사, 사진만큼 안 예뻐! 실제로 보면......”
그리고 능글능글 웃으며 우리 중 누구 하나를 가리키며 이렇게  덧붙였다.
“김xx 씨. 그날 대피했다가 딱 마주쳤을 때 머리는 산발하고 땀에 눈물에 꼬질꼬질
정말 귀신이 따로 없더라니까!”

그런 인간이 지금도 앞장서서 신문이며 잡지에 기고하고 진보세력의 선봉에 서 있다.
자기가 민중의 대변인인 것처럼 목소리를 높인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믿을 수 없고, 인간을 알 수 없다는 절망적인 생각이 든 게 아마
그 무렵부터가 아닌가 한다.

입에 올리고 나면 눈이 침침해지고 더러워지는 것 같은 나만 아는 일화가 한둘이 아니다.
이건 좀 다른 이야기지만 내가 최고로 좋아하는 한 여성 시인은 워크숍 때문에  미국에 몇 달
다녀온 후 길에서 담배를 피워도 되는 것 때문에, 그리고 연령을 뛰어넘어 모두 친구가 되는
그곳의 분위기 때문에 숨통이 트이더라고 했다.
생과 사를 들었다 놓는 듯한 시를 쓰는 분의 입에서 고작 담배와 나이 이야기라니,
오랜만의 만남에 너무 기쁘면서도 그때 나는 속으로  살짝 실망했던 것 같다.
지금이라면 문제는 달라지리라.
내가 그때의 시인 나이가 되고 보니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인종, 국가, 여성과 남성, 빈부, 직업, 나이, 장애인인가 아닌가, 장애인 중에서도 장애의
등급 정도에 따라... 이 세상에는 정말 사람들이 편의에 따라 제멋대로 갈라놓은 차별이
너무나 많다.
‘젠더와 계급’의 문제로 간단하게 정리해 보아도 그 속에는 또 얼마나 많은 차별이 층층이
다양하게 얽히고 설켜 있는지.

그리고 평소 꽤나 생각이 깊고 자유로운 인간인 척하는 나에게도 얼마나 많은 편견과 모순이
쌓여 있는가.  이 책을 읽으며 가슴이 뜨끔뜨끔했던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가령 내가 제일 놀란 건 이 대목이다.

--한국 현대사의 고통과 비극의 성별적인 두 주체, 정신대 ‘할머니’와 장기수 ‘선생님’의 존재는
이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전자는 역사의 피해자, 전쟁의 ‘부산물’이지만
후자는 역사의 치열한 주체이며, 인간의 신념과 의지를 상징한다.
전자는 불쌍한 혹은 수치스런 존재지만, 후자는 존경스럽고 경이로운 존재다
.(53쪽)


오래 전 장기수후원회 활동을 하면서 많은 장기수 어른들을 가까이서 뵈었지만
빨치산 출신의 정순덕 선생님의 경우  정순덕 선생님이라고 마음속에서라도 불러본 적이 없었다.
아무 의심 없이 정순덕 ‘할머니’였다. 그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남자 장기수 어른들은 깍듯이 선생님이라고 부르면서......
모르고 지나쳐서 그렇지 인생에서 내가 실례를 범한 이런 말도 안 되는 경우가 어디
한둘이었겠는가.

--한국 사회는 성폭력 피해여성의 인권에 관심이 없으며 성폭력과 성관계를 구분하지 않는다.
가장 섹시한 성관계는 성폭력이라고 믿고 있다.(
83쪽)


‘여성의 전화’에서 꽤 오랜 기간 상근자로 활동한 때문인지 저자는 이 책에서 가부장적인
우리 사회에서 잘못 뿌리내린 성 역할뿐 아니라 사랑과 섹스, 가정폭력 문제까지
아주 깊고 넓게 다루고 있다.
성 판매 여성의 인권, 남성 섹슈얼리티와 군사주의까지 내처 읽다보니
내 속의, 자의였든 타의였든 꽁꽁 빗장을 걸어 닫아두고 있던 컴컴한 골방 하나가
스르르 열리는 듯한 그런 기분이 들었다.
알고 난 후의 충격이 귀찮아서, 그리고 깨닫고 난 후 그것을 생활 속에서 실천해 나갈  때
인생이  얼마나 복잡해지고 골치 아플지 미리 두려워서 나는 녹슨 자물쇠를 단 그 골방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여성이면서도 페미니즘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고 꽤나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었음을 고백한다.
다른 많은 사회 문제, 인생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면서 잘난 척은 어지간히도 했다.
그런데 이 사실을 고백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이렇게 가벼워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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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진진 > [퍼온글] 성공의 법칙은 반드시 배반한다

‘경영학계의 구루’라고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올해 95살이 되었습니다.
최근에 그가 그동안 썼던 글과 강연 등을 모아서
매일 한페이지씩 1년 365일 동안 읽을 수 있도록 정리한
‘데일리 드러커(Daily Drucker)’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드러커는 요즘도 강연을 하고 글을 쓰고 컨설팅을 한다는군요.

 

 

 

드러커의 책들은 워낙 많은데,
그중 아무 책이나 골라서 아무 페이지나 들쳐서 읽어봐도
늘 좋은 생각거리를 주기 때문에
제가 가끔씩 집어들고 읽기 좋아하는 책들입니다.

어젯밤에는 잠이 안와서
‘데일리 드러커’를 들고 여기저기 읽어봤는데,
이런 내용이 눈에 띄었습니다.

 


“성공의 법칙은 늘 배반한다”는 것입니다.
‘성공’이란 새로운 현실과 그에 따른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결국 성공을 달성하기까지 한 기업이나 인간을 끌어올렸던 방식은
성공하는 순간 새로운 현실에는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 ‘구식’이 된다는 겁니다.
드러커는 말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후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말은 동화에나 나오는 것이라고.

 

예전에 하버드대생들의 공부방법에 관한 책에서도 이런 부분을 읽었는데,

하버드에 입학하기까지 고등학교 시절의 공부 방법과

하버드에서 공부 잘하는 방법은 완전히 다르다는 겁니다.

대학에서는 혼자 도서관에 쳐박혀 책을 붙들고 씨름하는 것보다는

다른 학생들과 토론하면서 다양한 관점을 배우고

여러 가지 참고자료를 보는 것이 더 중요한데 학생들이 그것을 깨닫기까지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고등학교 때 공부를 정말 잘했던 '공부의 수퍼스타'들일수록 이 문제를 더 심각하게 겪는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시절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예전의 우등생들은 집요하게 과거의 성공방식에 집착해서 혼자서 미친듯이 공부하기 시작하는데

그럴수록 점점 더 성적은 떨어진다는 겁니다.

바로 여기가 '성공의 법칙이 배반하는 순간'입니다.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고,

그래서 새 방식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지 못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벌이지요.

 

'옛날에는 잘 나갔는데 요즘은 왜 이 모양일까'라는 의문과 싸우고 계시다면,

아마 과거의 성공법칙을 고수하다가 변화의 계기를 놓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제기해보는 것도 해결의 실마리가 될 지 모릅니다.

 

또 한가지 눈길을 끌었던 페이지는 성공한 40대가 맞는 위기에 관한 겁니다.

지식노동자들은 전통적인 은퇴연령을 지난 후인 노년에도 계속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육체노동자가 아니라면 나이가 들어 활동력이 좀 떨어진다 해도
일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지요.


하지만 지식노동자들은 ‘정신적으로 지쳐버리는’ 새로운 위험에 부닥치게 됩니다.
특히 40대 지식노동자들은 공통적으로 ‘탈진(burnout)’ 상태라는 괴로움에 빠지는데,
이 탈진의 원인은 ‘스트레스’가 아니라 ‘지겨움’ 때문이라고 합니다.

 

대단히 성공적인 최고기업의 경영진이 어느날 드러커에게
“우리 회사의 엔지니어들이 다 기운이 빠졌습니다.
왜 그런지 좀 알아봐주시겠습니까”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드러커는
능력있고 보수도 많이 받는 10여명의 성공한 엔지니어들을 면담했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하는 일이 회사의 성공에 중요하다는 것도 알고, 나는 이 일을 좋아합니다.
벌써 10년 이상 이 일을 해왔고, 아주 익숙하고, 자부심도 갖고 있어요.
나는 자면서도 일을 할 수 있을 정도지요.
그런데 이 일은 더 이상 나에게 도전의식을 주지 않아요. 그냥 지겹습니다.
더 이상 매일 아침 회사에 가기를 고대하지 않아요.”

 

경영진은 이런 사람들을 다른 자리로 옮겨주는 방법을 택하는데,
드러커는 그것은 잘못된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한 의미의 흥미를 다시 회복하는 일이라는 것이지요.
이런 사람들은 나중에 다른 일을 할 계획을 갖게 된다면,
-예를 들어 은퇴 후 고등학교에 가서 수학과 과학을 가르치겠다는 식의 계획 말입니다-
갑자기 일이 다시 만족스럽게 느껴진다고 합니다.

 

드러커는 40대가 되기 전에 후반부 인생의 목표를 세워놓으라고 조언합니다.
현재 하는 일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지금부터 추구하면,
잘하면서도 지겹게만 느껴지는 현재의 일이 의미가 생긴다는 겁니다.

 

드러커가 쓴 또 한편의 글도 40대의 인생계획에 관한 것인데,
성공한 지식노동자들은 40대가 되면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이미 평생 동안 이룰 것을 거의 다 이룬다고 합니다.
기업경영자든 교수든 의사든 일에 관한 한 40대에 이미 정점에 달한다는 것이지요.
그 다음에 남는 것은 승진이나 그런 것들인데,
살다 보면 그런 분야에서 좌절 한번 겪지 않고 살아가기는 어렵지요.

 

그런데 만일 자신의 인생에서 일이 전부라면
이런 좌절이 곧 인생의 좌절과 동의어가 되지요.
그러니까 일과는 무관한 다른 분야의 관심을 미리 키워놓으라는 것입니다.
봉사활동을 한다든지 취미생활을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일과는 다른 분야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계발하고 발전시켜야
직장에서 좌절을 겪는다 해도 또 다른 분야의 성공은 지킬 수 있다는 것이지요.

 

지금 당장 눈 앞에 펼쳐진 치열한 경쟁의 세계가 주는 압박감을 견디고
그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하지는 말라는 이야기겠지요?
투자에서도 그렇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데도 ‘리스크 분산’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출처:14번가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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