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이매지 > 싱싱한 작가, 김애란
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게 된 건 순전히 입소문때문이었다. 잇달아 올라오는 호감이 가득 담긴 리뷰들, 김영하의 추천. 그것만으로 한국여성작가를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내가 이 책을 집어들게 됐다. 하긴. 작가가 80년생이기에 내심 '얼마나 잘 썼나 봐볼까'라는 마음도 없지 않게 작용하긴 했지만.

  표제작인 <달려라, 아비>를 시작으로 이어지는 김애란의 이야기들에는 사회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이 등장한다. 아버지의 정을 느끼지 못하고 자란 주인공이 아버지는 지금도 어디선가 달리고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살아가는 <달려라, 아비>, 동네에 있는 세 군데의 편의점의 방문을 통해서 A편의점은 점장이 말이 너무 많아서, B편의점은 점장이 지나치게 불친절해서, 결국 C편의점에 자주 가게 된 그녀. 계산원과 그녀사이에 오가는 대화는 지극히 사무적이기에 그녀는 그 관계에 만족한다. <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에서는 소심하기 짝이 없는 여자가 (그녀도 A형이란 말인가) 밤마다 누워서는 지난 실수때문에 잠을 못 이루고, 그녀에게 우연히 아버지가 찾아와서는 TV만 하루종일 보고 있다. <종이 물고기>에서는 온 방을 포스트잇으로 채우며 자신의 세계에 갇힌 한 사내의 이야기가 등장하고, <노크하지 않는 집>에서는 1,2,3,4,5번 방에 사는 다섯 여자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그녀들은 직접 얼굴을 대면하지도 않고 포스트 잇으로 의사를 전달할 뿐 최대한 서로 마주치는 일을 피하면서 살고 있다.

  주인공들은 이처럼 하나같이 소외된 환경속에서 스스로를 방치하고, 거기에서 빠져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세상은 삭막하고, 그들은 삭막한 세상에 너무도 익숙해져버린 인물들이다. 그들의 소외된 삶. 어쩌면 내가 살고 있는 삶일지도 모르겠다. 한 동네에서 살면서 얼굴을 모르고 사는 사람은 수없이 많고, 자주 보는 얼굴이라고 할지라도 이웃 간에 인사를 나누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저 익숙한 얼굴이라도 스쳐지나가는 모습들. 오히려 아는 척을 한다면 '저 사람 왜 나한테 아는 척을 하는거지?'라고 마음 속에 벽을 쌓고는 그 사람이 멀리 보이면 괜히 길을 돌아서 가기도 한다. 그녀가 말하고 있는 주인공들이 나의 생활과 어떤 면에서 맞닿아 있어서일까 왠지 씁쓸해지면서도 그들의 입장에 동감할 수밖에 없었다.

  김애란의 소설에 대한 만족감은 내 기대감이 너무 컸던 탓인지 그리 높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조용히 문장을 통해서, 이야기를 통해서, 내가 그동안 가지고 있던 한국 여성 작가에 대한 편견을 깨주었고, 앞으로 그녀가 어떤 작품으로 다시 찾아올 지 기대하게끔은 해주었다. 몇가지 부족한 점 같은 것은 괜찮은 작가 한 명을 만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커버가 될 만큼 괜찮은 작품이었다. 젊은 작가 특유의 개성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아직 변질되지 않은 싱싱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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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urblue > [펌] 안병욱의 '에쎄이': 대책없는 교양주의 - 강유원

이런 글 퍼 와도 되나 모르겠다. -_-
안병욱, 이름만 들어봤지 책은 하나도 읽어보지 않았는데, 오히려 좀 궁금해지는군.

http://armarius.net/ex_libris/archives/000618.html   ← 전문은 여기서 보세요.

 

안병욱의 '에쎄이': 대책없는 교양주의

1.
1997년 4월 26일 현재 교보문고 스테디셀러 진열대의 수필부문에는 약 30여 권의 책이 꽂혀 있다. 그 중에서 다섯 권이 안병욱의 책이다. 그 책은 다음과 같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갑인출판사(1983년 5월 15일 초판, 26쇄)
<처음을 위하여 마지막을 위하여>, 자유문학사(1993년 4월 5일, 2판 3쇄)
<삶의 완성을 향하여>, 철학과 현실사(1995년 6월 15일, 1판 2쇄)
<인생론>, 철학과 현실사(1996년 1월 5일, 1판 13쇄)
<젊은이여 희망의 등불을 켜라>, 자유문학사(1996년 9월 10일, 2판 1쇄)

'에세이'하면 우리 머리 속에 떠오르는 사람들이 몇 명 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10권 정도의 에세이를 가지고 있다. 웬만한 에세이스트 중에서도 안병욱은 단연 앞서 있다. pc통신 천리안에서 'go people' 하거나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저작목록을 찾아보면 한국의 웬만한 인물의 저작 리스트가 나오는데 안병욱은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위에 적혀 있는 그의 에세이들을 보면 한 두 권 팔린게 아니라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하나만 보더라도 15년 가까이에 걸쳐 쇄를 거듭했다. 요즘에 베스트셀러를 써서 누가 얼마를 벌었다는 소문아닌 사실이 무성하지만 안병욱에 비할 바가 아니다. 안병욱의 에세이를 읽는 독자층에 대한 구체적인 통계자료는, 내가 아는 한 없다. 그러나 이만한 판매량을 보면 거대한 독자층이 형성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 독자들은 그냥 한 권 정도 읽은 사람 또는 한때 열심히 읽은 사람부터 열렬한 팬이어서 새 책이 나올때마다 읽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다양할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안병욱의 에세이를 읽어 본 적이 있느냐고 물어 보았다. 예전에 한 두 권은 읽었다는 대답이 있다. 왜 읽었느냐고 물었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 주위에서 권하니까 읽었다는 대답이 있다. 가끔 신문에 글이 실리는 걸 보면 훌륭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고 또 읽어보니 나쁜 말은 쓰여있지 않더라는 대답이 있다. 뭔가 책을 읽긴 해야겠는데 막상 본격적으로 읽을만한 책은 없고 그렇다고 만화책 같은 걸 읽자니 쑥쓰럽다, 그럴 때 읽기 좋은 게 그런 에세이 아니냐는 반문도 있다. 자신은 읽어보진 않았지만 누구에게 책 선물할 때 제일 무난한게 에세이 같아서 선물한 적이 있다고도 한다.

그의 책의 독자들에 대한 나의 짐작과 주변 사람들의 대답을 정리해보면, 뭔가 독서를 하긴 해야겠는데 전문적인 책을 읽기에는 왠지 부담스럽고 일단 읽고나면 교양이 될만한 책이 바로 이런 에세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러니까 그의 에세이는 만만해 보인다는 독특한 성격을 가지고 어중간한 독자층이라는 '틈새시장'을 파고들고 있다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물론 이 틈새시장에는 열렬한 팬이 포함되진 않을 것이다.

흔히 베스트셀러 보다는 스테디셀러가 더 훌륭한 책이라고들 한다. 안병욱의 에세이는 스테디셀러이면서 동시에 베스트셀러이다. 그렇다면 그의 에세이들이 몇 십년에 걸쳐서 끊임없이 읽히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그 책들은 그렇게 훌륭하기 때문에 오랜 세월을 두고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일까? 만약 그런 것이 아니고 다른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그 이유가 우리의 형편없는 독서수준이라면 그것을 극복할만한 방안은 없는걸까? 이 글은 이런 사소한 의문들에서 시작한다.

이 의문을 풀기 위해서 나는 안병욱의 에세이 4권을 검토해 보았다. 앞에 적은 5 권 중에서 세 권, 그리고 가장 최근에 나온 듯한 <뜻을 세우고 삽시다>, 이렇게 4 권이다.

2.
그의 신작 에세이 <인생론>의 <책머리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이것은 나의 서른 아홉번째 책이다. 나는 5만여장의 원고를 쓰면서 70여년의 생애를 열심히 살았다."

필자는 5만여장의 원고를 썼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그 많은 원고가 전부 새로운 내용으로 되어 있을까? 안병욱의 에세이가 갖는 가장 큰 특징은 새로 만든 책이 드물다는 것이다. 내가 4권의 책을 읽고나서 거칠게 정리해 본 바에 따르면 4권의 책은 100페이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그는 그 정도의 이야기를 가지고 우선 300페이지 짜리 책을 만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책들의 내용을 이러저리 짜맞춰서 다시 또 한 권의 책을 만든다. 이렇게 하여 몇 권의 책을 만든 다음 또다시 그 책들을 엮어 '신작 에세이집'을 만든다. 그런 책들에 들어 있는 내용을 가지고 신문에 연재를 한다. 그렇게 연재한 내용을 묶어서 다시 또 한 권의 책을 만든다. 바로 이것이 그의 다작의 비결일지도 모른다. 40여권에 이르는 그의 에세이들이 거의 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그가 잘쓰는 말대로 '불가능처럼 보이는 가능성'인 것이다 이건 내가 괜히 하는 말이 아니다. 과연 그러한지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

위에 적은 책 중에서 가장 먼저 나온 것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하 <지상>>으로 줄여 적음)이다. 책의 내용과 출판에 대한 간략한 사정을 적은 저자의 머리말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몇 해 전에 갑인출판사에서 출판한 수상집을 젊은 세대들을 위하여 새롭게 가로조판을 하면서 몇 편의 글을 추가하여 한 권의 책으로 내놓는다."

그러니까 이 책의 새로움은 가로조판을 했다는 데에만 있고 몇 편의 글이 추가되었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몇 년 전에 나온 책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말이다. 그는 앞서 낸 책에서 이것저것을 뽑아서 '새' 책을 만든 것이다.

<처음을 위하여 마지막을 위하여>(이하 <처음>으로 줄여 적음)에 실린 33편의 글 중에서 <지상>에서 뽑아 놓은 게 7편이나 된다. 그럴만한 까닭은 필자가 쓴 <책 머리에>를 읽어보면 알 수 있다: "나의 여러 책 가운데서 인생론에 관한 글을 뽑은 것이 이 책이다. 어떤 글을 고르느냐. 편집자에게 일임하였다." 새로 쓴 글이 없음을 아예 까놓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책도 이미 다른 책에 실린 것을 편집자가 알아서 뽑아서 만든 것이다. 그러니 이미 앞서 나온 다른 책을 읽은 독자라면 이 책을 살 까닭이 없다. 책의 편집 과정이 이러하니 당연히 진정한 의미에서의 새 책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 내용은 어떠할까? '책머리에'라는 글은 저자가 자신의 책에 담긴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해서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처음>의 <책머리에>의 첫머리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인생의 세가지 중요한 선택이 있다. 첫째는 직업이요, 둘째는 배우자의 선택이요, 셋째는 인생관과 가치관의 선택이다. 우리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엄한 생명을 가지고 오직 한번 뿐인 인생을 산다. 인생은 일회전으로 끝나는 엄숙한 시합이다. 산다는 것은 진지한 시합이다. 산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산다는 것은 보람있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고귀한 것이다."

그가 "나의 많은 책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한 권 고르라고 하면 이 책을 고르겠다"고 하는 <인생론>은 '직업의 선택', '배우자의 선택', '인생관의 선택'에 각각 한 장씩을 배당하고 있다. 그러니까 <처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인생론>의 '제 1장 시작의 말'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인생에는 세가지 중요한 선택이 있다. 첫째는 직업의 선택이요, 둘째는 배우자의 선택이요, 셋째는 인생관의 선택이다."(p. 11)

두 권의 책의 '첫머리에'와 '시작의 말'이 똑같은 구절로 시작한다. 하나는 '인생의'로 시작하는데 다른 책은 '인생에는'으로 시작하니까 다르다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어쨋든 내용이 똑같다는 건 두말할 나위도 없다. <처음>은 그가 쓴 글 중에서 "인생론에 관한 글"을 뽑아 놓은 것이고, <인생론>은 제목 그 자체가 아예 '인생론'이다. 일이년 사이에 그의 인생관이 크게 바뀌진 않았을테니까 내용이 달라졌음을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작년에 영남일보에 연재한 글에는 얼마나 다른 내용이 실렸을까? 연재 글들을 묶은 <뜻을 세우고 삽시다>의 '머리말'을 보자: "유일명, 유일생,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요, 제일 소중하게 생각하는 단어다. 우리는 천상천하에서 오직 하나 밖에 없는 생명을 가지고 오직 한번 뿐인 인생을 산다. 인생은 두번 살 수 없다. 인생은 연습이 없는 진지한 시합이요, 일회전으로 끝나는 엄숙한 경기다."

<처음>의 '책머리에'를 그대로 가져다 놓았다. 무슨 놈의 '시합'은 그리 좋아하는지? 이러한 반복은 '책머리에'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내용은 거기서 거긴데, 똑같지는 않지만 말만 조금씩 바꾼 글 제목에도 해당된다.

어머니의 눈동자, 어머니의 조건, 위대한 모상들(<지상>)
어머니(<뜻을 세우고 삽시다>)
인생의 안식처, 결혼은 결혼, 결혼행진곡, 행복한 결혼(<지상>)
결혼의 의미, 가정은 인생의 안식처, 인간 최초의 학교, 사랑은 행복의 조건(<인생론>)
가정은 도덕의 학교, 행복의 3대 요소(<뜻을 세우고 삽시다>)
생명의 의미, 오기인, 생명에 대한 4대 의무, 오애인, 생명은 아름다운 것(<인생론>)
생명의 탄생, 식은 인생의 대본, 장수의 비결, 정식, 신체관리(<뜻을 세우고 삽시다>)

이 정도면 앞에서 내가 그의 책들은 수없이 서로 겹친다고 한 말이 실감날 것이다. 이런 반복 앞에서 나는 그가 '상호텍스트성'이라고 하는 포스트모던적 글쓰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까지 가졌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난 걸까? 분명이 내용이 겹친다는 걸 저자나 출판사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겹치면 팔리지 않으리라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도 저자나 출판사는 그 상식을 벗어나고 있다. 분명이 이건 종이낭비인데도 말이다. 그건 분명 이렇게 만들어도 책이 팔린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아닌가? 출판사는 책만 팔리면 된다는 생각으로 그랬다치자. 자신이 이미 쓴 글 중에서 편집자가 알아서 뽑아 또 책을 내게 하는 저자는 도대체 무슨 속셈을 가지고 있는가? 어디다 써도 말이 될만한 구절들을 모아서 글을 만들고 그걸 다시 조금 변형해서 책으로 만들어도 되는가? 그렇게 해서 저서목록에 한 권을 추가하는 것이 그렇게 자랑스러운가? 이건 출판사와 저자가 종이장사에 나섰다는 증거밖에 안된다. 내 머리 속에 떠오른 생각은 단 하나 뿐이다. '지적인 불성실.' 이건 독자를 기만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안병욱의 에세이 4 권을 놓고 책마다 내용이 중복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그러면 이제 그의 책 한권을 놓고, 그 책 안에서도 똑같은 이야기가 반복되고 있음을 밝혀 보이려 한다. 내가 거론한 책중에서 가장 먼저 나온 <지상>을 살펴보자.

이 책의 제목은 책에 실린 글 한편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 책에 실린 글 대부분이 새로 쓰여진 것이 아님은 앞에서도 지적한 바 있다.

다른 세 권도 마찬가지지만 안병욱의 글의 특징중의 하나는 격언이 셀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온다는 것이다. 등장인물도 많고 동시에 같은 말이 여러차례 반복되고 있다. 본래 격언이라는 건 앞 뒤 문맥을 딱 잘라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어디에 붙여도 말이 통하고 그럴싸해 보인다. 안병욱의 글들은 이 특징을 잘 구사하고 있다. 그러니까 전혀 다른 내용을 말할 때에도 똑같은 격언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격언을 통해서 <지상>에 등장한 인물들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좀 지루하지만 적어본다.

괴테, 칸트, 아리스토텔레스, 맹자, 링컨, 프랭클린, 공자, 펄벅, 졸라, 비스마르크, 나폴레옹, 쉴러, 피히테, 키에르케고르, 루소, 파스칼, 제롬, 바이런, 스탈, 샤미소, 바스타, 브라우닝, 플라톤, 스탕달, 하이네, 프루스트, 크세노폰, 우나무노, 몽테뉴, 스위프트, 로댕, 생텍쥐베리, 시세로(어떤 글에서는 키케로라고 하기도 한다), 보나르, 워싱턴, 데모크리토스, 세르반테스, 에머슨, 칸포아모르, 앙드레 모로와, 베르그송, 에리히 프롬, 스피노자, 발자크, 니체, 키츠, 쇼펜하우어, 빈켈만, 셰익스피어, 안창호, 소포클레스, 로맹 롤랑, 슈바이처, 간디, 에디슨, 한스 카롯사, 밀러, 불바리톤, 핀다로스, 힐라리(힐라리 클린턴이 아니라 히말라야 등산가이다), 베토벤, 이순신, 멘스필드, 바울, 칼라일, 위고, 러스킨, 하이데거, 노자, 장자, 석가, 에피쿠로스, 디즈레일리, 헬렌 켈러, 크로포트킨, 마키아벨리, 다빈치, 케네디, 오르테가, 올코트, 미켈란젤로, 김활란, 단테, 파스칼. 내가 빠뜨린게 있을지도 모르지만 하여튼 자그마치 84명이다.

이 많은 인물들의 격언이 300페이지 정도 되는 책에 나온다. 이 정도면 수필집이 아니라 격언집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공자나 맹자, 노자나 장자 등이 인용될때면 그들의 말이 길게 인용된다. 수도없이 많은 고사성어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격언, 고사성어가 이 책에만 나오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 등장한 것과 똑같은 격언이 다른 책에서도 반복적으로 나온다. 이 책에서는 '독일의 시인 괴테는 이렇게 노래했다'로 쓰였으면 다른 책에서는 '독일의 어느 시인은 이렇게 갈파했다'로 쓰인다. 같은 책에서도 그런 식의 문장이 반복되는 건 물론이다.

격언과 등장인물의 반복에 이어 내용의 반복을 살펴보자.
<어머니의 눈동자>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샘터에서는 샘물이 사방에 철철 넘쳐 흐른다. 어머니의 가슴 속에는 사랑의 태양이 있고, 사랑의 샘터가 있다. 우리는 어머니의 사랑의 태양을 받고 성장했다. 어머니의 가슴 속에는 사랑의 태양이 있고 사람의 샘터가 있다. 우리는 어머니의 사랑의 태양을 받고 성장했다. 어머니의 가슴 속에서 넘쳐 흐르는 맑은 샘물을 마시면서 우리의 몸과 마음이 자라왔다."(p. 21) 고작 6줄의 문장 속에서도 똑같은 말이 반복된다. 그런데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이 말이 다른 글에서도 그대로 되풀이 된다는 것이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샘터에 샘물이 넘쳐서 주위에 철철 흐르듯이 어머니의 가슴 속에서도 따뜻한 물이 한없이 솟는다. 우리는 이 사랑을 먹고 자랐다. 우리는 이 사랑의 힘으로 성장했다."(p. 36) 이 한권의 책에서, 제목을 달리한 글마다 반복되는 구절들을 몇 개 적어본다. "행복은 만인의 간절한 원이다." "가난하더라도 만족하게 부족하더라도 만족하라." "도산선생은... 저마다 '훈훈한 마음으로 빙그레 웃는 얼굴'을 가져 보자고 말했다." "결혼은 인생의 엄숙한 선택이다. 자의에 의한 선택이건, 타의에 의한 선택이건, 중대한 선택이다." "결혼식은 결혼식이 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여자는 적당하게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 한다. 사랑하는 여성은 사랑하는 남성 앞에서 수치의 표정이 풍부해진다. 말할 때나 웃을 때에는 몸가짐 전체에 수치가 감돈다. 이것이 남성의 사랑을 더욱 자극시킨다." "괴테의 시 가운데 <앉은뱅이꽃의 노래>라는 것이 있다." "행복이란 단어는 인생의 사전에서 가장 큰 캐피털 레터로 써야 할 말이다." "사랑은 인생의 사전에서 가장 큰 대문자로 써야 할 단어이다." "20여년 전에 배운 중학교 영어 교과서의 삽화 하나가 생각난다. 어떤 교회를 짓는데 세 사람의 석공이 와서 날마다 대리석에 조각을 한다. 뭣 때문에 이 일을 하느냐고 물은즉, 세 사람의 대답이 각각 다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밀레의 그림을 무척 좋아했다." "남자는 사업에 살고 여자는 애정에 산다." "칸트는 행복을 원하는 것도 좋지만 행복을 누리기에 합당한 사람, 행복을 누릴만한 자격이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밖에도 수없이 많은 '공자님 말씀'이 되풀이 된다. 그렇다면 내가 이 책을 100페이지도 되지 않는다고 한 말이 이해가 될 것이다. 이렇게 반복되는 말이 다른 책에 토씨만 바뀌어서 또 나오는 건 말할 것도 없다. 다른 책을 펼쳐봐도 새로울 게 없다. 결혼식 주례에서 하는 이야기는 어디에나 나온다. 어머니의 눈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수십년 전의 독일 신문의 설문조사 결과는 만고불변의 진리처럼 인용된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계모는 아이를 사랑하지 않으며 고아는 언제나 못된 심성을 가진 자들이다. 그가 보기에는 남자는 예나 지금이나 사업에 살고 여자는 애정에 산다. 아무리 아파트가 많아도 우리는 흙을 밟아야 하고 슈바이처의 박애정신은 시도때도없이 실천해야 한다.

그가 쓴 책에는 그가 새로운 지식을 습득한 흔적이 없다. 그는 불변의 진리를 터득했기 때문에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아무 것도 새로 배우지 않아도 되는걸까?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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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urblue > 가슴 아파 낳은 아이
고슴도치 아이 그림이 있는 책방 1
카타지나 코토프스카 지음, 최성은 옮김 / 보림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 유명 연예인 부부가 아이를 입양하여 뉴스가 되었다. 그들 부부가 그간 보여온 반듯하고 행복한 이미지에 더하여 입양 사실은 미담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공개 입양이 미담이 되는 것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일 뿐더러 그들이 유명 연예인이기에 나올 수 있는 반응일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입양은 대부분 은밀하게 이루어진다. 입양아는 물론이거니와 주위 모든 사람들을 속이기도 한다. 그래서 주로 갓난아기의 입양으로 한정되고, 심한 경우 임신을 가장하였다가 아이를 낳은 것처럼 데려오기도 한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불임 가정에서 아이를 갖기 위한 온갖 노력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방법이 입양인 경우가 많고, 설사 양부모에게 그럴 의도가 전혀 없다 하더라도 주변의 편견과 냉대가 상당히 심각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드라마에서 그렇게나 많은 출생의 비밀이 등장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최근 들어 공개 입양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지만, 그때 문제가 되는 것은 주변의 손가락질과 따돌림이라고 한다. 데려다 키운 아이, 근본 없는 아이라고 백안시하며 자신의 아이들에게 입양아와 어울리지 말라고 주저 없이 가르치는 이 땅의 이웃들 때문에 공개 입양 가정이 도망치듯이 이사를 하는 일도 많단다. 어렵게 입양을 결심했을 양부모나 한번 버림받았다가 가정을 찾은 아이 모두에게 상처가 아닐 수 없다.

 

몇 년 전 나는 인생의 한가지 계획을 세웠다. 몇 년에 거쳐 몇 단계로 이루어질 그 계획의 마지막은 입양이다. 가급적 공개 입양을 생각한다. 결혼을 하든 하지 않든, 아이를 낳든 낳지 않든 관계없이 꼭 이루고 싶은 인생 계획이다. 우리 나라에서 비혼 여성의 입양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거나 공개 입양 가정이 주변의 몰이해와 냉대로 고통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 이후의 일이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아이를 키우는 것, 엄마가 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내 계획을 이루기 위한 과정에서 어떤 난관에 부딪치게 될지도 알지 못한다. 내 노력이란 것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상태이기도 하다. 그러나 결코 잊지는 않고 있다.

 

책 소개를 보자마자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실제 아이를 입양한 엄마가 그 아이에게 들려주기 위해 만들었다는 이 동화책은 일종의 준비 과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입양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였는지, 아이에게 입양 사실을 숨기지 않고 어떻게 설명했는지, 아이를 자기 자식으로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이에게 어떤 걸 기대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다. 많이 생각하고 많이 고민했을 엄마의 모습이 느껴진다. 종이를 오려 붙여 그림을 만들면서 자신의 아이를 떠올렸을, 세상의 수많은 엄마 중 한 사람의 모습이다.  

 

혈연에 대한 집착이 강한 사회, 근본을 따지고 드는 사회에서 입양은 여전히 어려운 문제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고 한다. 단지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만들어 가는 것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고 한다. 영화 <바람난 가족>에서 호정(문소리)은 아이에게 다른 엄마들은 배 아파 아이를 낳았지만 엄마는 가슴 아파 널 낳았으니까, 넌 틀림없는 내 아들이라고 말한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충 저런 얘기였다.) 배가 아프든 가슴이 아프든 서로를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사회도 그대로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작은 그림책이지만 그런 변화에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읽으면서 입양아와 입양 가정에 대한 몰이해와 편견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또한 서로를 배려하고 다른 사람의 인권을 존중하는 한 방법이 아니겠는가.

 

내게는 내 인생의 계획을 다시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제자리만 뱅뱅 돌며 다음 단계로 쉬이 발을 내딛지 못하고 있던 나를 슬쩍 밀어주는 부드럽고 따뜻한 바람이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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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urblue > 생활의 냄새
WOMAN - 최민식 사진집
최민식 사진, 천양희.오정희.이경자.조은.신현림.하성란.천운영 글 / 샘터사 / 2005년 9월
평점 :
절판


최민식의 사진은 밝다.

60년대와 70년대, 전쟁 이후의 궁핍한 생활과 고단한 삶을 여과 없이 드러낸 인물들을 사실적으로 포착한 사진들 앞에서, 고작 밝다 라고 뭉뚱그려 말하다니, 나는 다른 표현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씻지 못해 꼬질꼬질한 얼굴과 몸, 그런 몸을 가리지도 못한 채 그저 매달려 있는 다 해진 옷, 근심 많은 세월이 켜켜이 쌓여 만든 듯한 골 깊은 주름, 땅바닥에 되는대로 주저앉거나 엎드린 품새…… 이런 모습들을 앞에 놓고, 밝다고 말하는 게 가당키나 한 소리일까 

 

다른 표현을 찾고 싶지만, 그의 사진들은, 여전히 내게는 밝다. 그러한 인상은 사진 속에서 숨쉬고 있는 인물들의 건강함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생선 좌판 뒤에, 틀림없이 비린내가 물씬 풍길 낡은 옷을 입고 앉아 커다랗게 벌린 입에 국수 가락을 막 물고 있는 중년의 여인이나, 성치 못한 몸으로 밥벌이를 위해 옆구리에 신문을 끼고 뛰는 청년, 시커먼 얼굴에 함박 웃음을 지으며 카메라를 응시하는 아이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그들에 대한 동정이나 예전엔 저랬대 식의 회상이 아니다.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열심히 사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었고, 형편이 넉넉치 않은 그들에게도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생의 한복판에 서 있는 사람들, 그들이 보여주는 삶의 한 순간, 그들에게서 풍기는 생활의 냄새. 최민식의 시선은, 그래서 밝게 느껴진다.

 

[WOMAN]은 최민식의 사진들 중에서도 여자들을 찍은 것만 모아 놓은 사진집이다. 다른 사진집에서 이미 본 것도 있고, 새로운 것도 있다. 1950년대부터 2005년 현재에 이르기까지, 부산, 김해 등 우리 나라에서 중국, 네팔을 거쳐 그리스, 독일까지, 최민식의 시선에 포착된 수많은 여인들이 그 안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페이지를 하나하나 넘기면서 그들과 만난다. 때로 놀라서 시선을 고정시킨다. 어쩌면 저렇게 웃을 수 있을까 싶게 환한, 활짝 핀 얼굴들을 만날 때가 그러하다. 어떻게 그 순간을 잡아냈을까, 나도 저렇게 웃을 때가 있을까, 저렇게 예쁘게 보일까.

 

머리말에서 최민식은 여성의 아름다움이 가장 소중하고 가치있는 것이라 믿는다고 고백한다. 사진을 보면 그의 고백을 믿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것이, 여자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애정이라고 생각한다. 실은 그의 다른 사진들을 보면서 항상 느끼는 감정을 고스란히 맛보게 된다. 사진 속의 여인들에게서는 삶/생활의 냄새가 난다. 

 

책의 말미에는 7명의 여성 문인들이 각각 여자의 사춘기 / 사랑 / 노동 / 결혼 / 임신, 육아 / 이혼, 독립 / 독신이라는 테마로 쓴 글이 실려 있다. 이 사진집의 기획 의도를 알 것도 같다. 그러나 그것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하다. 7편의 글 가운데에는 함량 미달인 것들도 있다. 여성으로서의 삶을 보여주기는커녕 사진이 포착해낸 다양한 모습들을 앞에 두고, 진부한데다 진정성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 글을 잘도 써서 붙였다 싶다. 사진을 보면서 차곡차곡 쌓였던 감정들이 오히려 글로 망가진다. 별 하나는, 그래서 뺀다. 

 


부산, 1965


부산, 1999

* 위 사진들은 [WOMAN]에는 실려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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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urblue > 함께 살았던 바퀴벌레를 기억하기
'그'와의 짧은 동거 - 장모씨 이야기
장경섭 지음 / 길찾기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내 얘기를 좀 해 보자. 나는 감정적인 사람이 아니다. 인간인 이상 희로애락을 모를 리 있을까마는, 감정의 진폭이 크지 않다고 해야 할까. 자외선과 적외선의 영역을 배제한, 가시광선 정도의 감정의 파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기쁨과 슬픔과 행복과 고독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볼 수 없을 정도로 한계를 넘어본 일이 없다. 그래서일 것이다, 스무 살부터 10년 가까운 세월을 혼자 사는 동안 도가 지나친 외로움을 단 한 번도 맛 본 적이 없는 것은.

 

혼자인 것이 자연스럽지만, 반면 타인과 함께 생활하는 것도 내게는 별다른 결심이나 준비를 필요로 하지 않는 일이다. 어느 눈발 흩날리는 저녁 남동생이 가방 두 개를 들고 올라왔을 때도, 올케 될 사람에게 사정이 생겨 몇 달 간 같이 지내야겠다고 동생이 느닷없이 통보했을 때도, 사촌들, 친구들, 동생 친구들이 며칠씩 묵어간다 할 때도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그러라고 했다. 동생과 같이 살던 3~4년 동안 다툼 한 번 없었고, 올케가 집에 머물 때에도 불편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한때는 문학 소녀를 꿈꾸었으나 감수성/창의성 없음을 일찌감치 깨닫자마자 미련 없이 포기했고, 공부를 해볼까 하던 생각은 호기심 제로에 지구력 꽝인 성질이므로 바로 접었으며, 직장에서는 성공해 보리라 다짐했으되 투지나 의욕보다는 게으름이 앞서는 인간인지라 다시 포기. 지금은 그저 잘 먹고 잘 놀면서 최대한 즐겁게 사는 것이 목표이며, 그래도 가급적 (정치적/경제적/생태적 등등으로) 올바른 삶을 살아야겠다고 (느슨하게나마) 생각하고 있다.

 

스스로를 정의하자면 강철 신경의 소유자라고 할까. 혼자면 혼자인대로 누군가와 같이라면 또 그대로,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지 않으면서/못하면서 상처 받는 일도 없고 아쉬울 것도 없이 지금껏 살아온 것이다. 방바닥에 치약이 밟힐 일도, 외로움을 이기기 위한 방법으로 바퀴벌레와의 공존을 덜컥 인정할 일도, 가능성이 전혀 없는 삶이다.

 

이 사람 장모씨는, 어느 날 외로움의 정도가 지나쳐서, 방바닥에서 밟힌 치약을 보며 서러워져서 바퀴벌레라는 이질적인 존재와의 동거를 시작했다고 한다. 예민하고 지치기 쉬운 자아는 틀에 박힌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만나는 계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혼자 밥 먹고, 혼자 거리를 걷고, 혼자 쇼핑하고, 혼자 잠드는 게, 뭐 어때서? 맘이 내키면 하고 안 내키면 마는 거지, 그만한 일로 지치고 고민하고, 도와줄 누군가/무언가를 필요로 한단 말이야? 하기야, 나처럼 무딘 감수성과 무(쇠)신경으로 무장한 채 의외성이라고는 전혀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만 세상에 우글거린다면 문학이든 그림이든 예술 자체가 존재할 수 없었을 터다.

 

장모씨는 바퀴벌레와의 생활을 제법 즐긴다. 그(것)는 일상을 나누고 대화를 들어주는 상대니까. 그(것으)로 인해 더 이상 외롭지 않으니까. 그러나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염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에게 바퀴벌레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와는 별개로 바퀴벌레는 인간의 영역에 속하지 않은, 다른 존재인 것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경계를 나누어 스스로를 안쪽에 가둔다. 처음엔 야생으로부터 떨어져 나왔고, 다음엔 농촌으로부터 도시를 분리했으며, 그리고는 같은 인간 안에서도 온갖 구분을 만들어냈다. 다른 존재를 배제함으로써 자신을 규정하려는 부단한 노력의 끝자리에 지금 우리들이 서 있다. 장모씨가 공존을 인정한 바퀴벌레는, 그렇게 수없이 구분된 다양한 존재로 읽힌다. 바퀴벌레를 포함한 생태계 내의 다른 생명체 / 여성 / 외국인 노동자 / 장모씨의 또 다른 자아 등등. 그래서 처음 읽었을 때 작가가 과욕을 부린 것이 아닌가 의아했다. 지나치게 많은 얘기들, 넘쳐 흐르는 의미들. 

 

다시 읽으면서, 여러 가지 얘기들을 결국 두 가지로 집약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온갖 경계’에 대한 문제 제기와 끝끝내 장모씨의 머리 속에서 떨쳐지지 않은 난 잘못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 장모씨의 여자친구는 그가 경계를 구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한다. 주변 사람들은 장모씨가 그렇게 구분 없이 다른 영역을 넘나드는 것을, 그리하여 그 쪽 영역의 어둠이 자기들에게 전해질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장모씨는 자신의 삶의 방법이 딱히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내가 뭐 어쨌다고 그래.라고 소리쳐 보기도 하지만, 역시 한편으로는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사는 것에 일말의 불안함을 지울 수 없고, 그래서 끊임없이 난 잘못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것은 심지어 나처럼 둔하고 속 편한 사람에게조차 낯설지 않은 상황이다. 이 지점에서 비로소 장모씨와 나의 공통분모를 알아본다. 장모씨가 던지는 그 많은 얘기들은 실은 내 생활 속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문제들이다. 비록 강철 신경을 가진데다 잘 먹고 잘 노는 게 목표라지만 내 주위에도 엄연히 여러 가지 경계가 존재하고, 그 안/밖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고민할 수 밖에 없다.

 

동면에 빠져든 장모씨에게 여자친구는 봄이 다가온다고, 봄은 전투의 계절이라고 얘기한다. 무엇을 위한, 어떤 전투일까. 잊지 않기. 함께 살았던 바퀴벌레를 기억하기, 그로 인해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을 기억하기, 해답을 찾기 위한 고민을 기억하기. 나에게도 올 봄은 전투의 계절이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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