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urblue > 생활의 냄새
WOMAN - 최민식 사진집
최민식 사진, 천양희.오정희.이경자.조은.신현림.하성란.천운영 글 / 샘터사 / 2005년 9월
평점 :
절판


최민식의 사진은 밝다.

60년대와 70년대, 전쟁 이후의 궁핍한 생활과 고단한 삶을 여과 없이 드러낸 인물들을 사실적으로 포착한 사진들 앞에서, 고작 밝다 라고 뭉뚱그려 말하다니, 나는 다른 표현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씻지 못해 꼬질꼬질한 얼굴과 몸, 그런 몸을 가리지도 못한 채 그저 매달려 있는 다 해진 옷, 근심 많은 세월이 켜켜이 쌓여 만든 듯한 골 깊은 주름, 땅바닥에 되는대로 주저앉거나 엎드린 품새…… 이런 모습들을 앞에 놓고, 밝다고 말하는 게 가당키나 한 소리일까 

 

다른 표현을 찾고 싶지만, 그의 사진들은, 여전히 내게는 밝다. 그러한 인상은 사진 속에서 숨쉬고 있는 인물들의 건강함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생선 좌판 뒤에, 틀림없이 비린내가 물씬 풍길 낡은 옷을 입고 앉아 커다랗게 벌린 입에 국수 가락을 막 물고 있는 중년의 여인이나, 성치 못한 몸으로 밥벌이를 위해 옆구리에 신문을 끼고 뛰는 청년, 시커먼 얼굴에 함박 웃음을 지으며 카메라를 응시하는 아이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그들에 대한 동정이나 예전엔 저랬대 식의 회상이 아니다.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열심히 사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었고, 형편이 넉넉치 않은 그들에게도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생의 한복판에 서 있는 사람들, 그들이 보여주는 삶의 한 순간, 그들에게서 풍기는 생활의 냄새. 최민식의 시선은, 그래서 밝게 느껴진다.

 

[WOMAN]은 최민식의 사진들 중에서도 여자들을 찍은 것만 모아 놓은 사진집이다. 다른 사진집에서 이미 본 것도 있고, 새로운 것도 있다. 1950년대부터 2005년 현재에 이르기까지, 부산, 김해 등 우리 나라에서 중국, 네팔을 거쳐 그리스, 독일까지, 최민식의 시선에 포착된 수많은 여인들이 그 안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페이지를 하나하나 넘기면서 그들과 만난다. 때로 놀라서 시선을 고정시킨다. 어쩌면 저렇게 웃을 수 있을까 싶게 환한, 활짝 핀 얼굴들을 만날 때가 그러하다. 어떻게 그 순간을 잡아냈을까, 나도 저렇게 웃을 때가 있을까, 저렇게 예쁘게 보일까.

 

머리말에서 최민식은 여성의 아름다움이 가장 소중하고 가치있는 것이라 믿는다고 고백한다. 사진을 보면 그의 고백을 믿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것이, 여자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애정이라고 생각한다. 실은 그의 다른 사진들을 보면서 항상 느끼는 감정을 고스란히 맛보게 된다. 사진 속의 여인들에게서는 삶/생활의 냄새가 난다. 

 

책의 말미에는 7명의 여성 문인들이 각각 여자의 사춘기 / 사랑 / 노동 / 결혼 / 임신, 육아 / 이혼, 독립 / 독신이라는 테마로 쓴 글이 실려 있다. 이 사진집의 기획 의도를 알 것도 같다. 그러나 그것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하다. 7편의 글 가운데에는 함량 미달인 것들도 있다. 여성으로서의 삶을 보여주기는커녕 사진이 포착해낸 다양한 모습들을 앞에 두고, 진부한데다 진정성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 글을 잘도 써서 붙였다 싶다. 사진을 보면서 차곡차곡 쌓였던 감정들이 오히려 글로 망가진다. 별 하나는, 그래서 뺀다. 

 


부산, 1965


부산, 1999

* 위 사진들은 [WOMAN]에는 실려있지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