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facingyou > 라면 국물을 더 내기 위해 소금을 넣고 끓이던 시인
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지음 / 이레 / 200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학교 일로 참여 했던 박경희 감독님의 '미소'팀에 있었을 때, 감독님께서 보여 주셨던 시가 그 후로도 오래 기억에 남았죠. 제목은 '대나무'였습니다. 대나무의 성정을 테러리즘으로 형상화한, 무척이나 담대한 서술과 매끄러운 비유로 날이 선 그 시를 읽은 후, 함민복이라는 시인의 이름도 함께 외우게 되었습니다. 박 감독님은 '미소'라는 영화의 주인공 소정이 함민복 시인의 '대나무'와도 같은 여성이라며 연출부였던 저에게 프린트 된 종이로 그 시를 건네 주셨습니다.

그 후로, 가끔, 감독님은 '긍정적인 밥'과 같은 시의 비유를, 곧잘 예술의 일선에서 노동하며 사색하는 예술 영화의 현재에 빗대어 감탄하곤 하셨습니다. 경제성의 원리로 사장되는 아름다운 작은 시선들, 그런 영화들이, 곧바로 설 수 없을 만큼 한국 영화 시장은 무척이나 시장성에만 경도 되어 있습니다. 가난한 시인의 시가, 작은 영화를 어렵게 준비하던 감독님께 더 작은 것의 더 위대한 예술성을 위한 일종의 연대감처럼 감동을 느끼게 한 모양입니다.

그 후, 3년이 지난 어느 날, 저는 함민복 시인의 산문집을 어느 지하 서점에서 발견하고는, '대나무'를 알게 된 3년 간 그 시를 그저 생각 안에 지녀왔던 것과는 달리, 시집으로는 단 한번도 읽은 적이 없었구나고 자각했습니다. 그러나, 함민복 시인의 시를 읽기 전에, 저는 그의 산문집을 먼저 읽게 되었고, 시인의 시보다 시인의 시작 노트와 시인의 일기를 먼저 마주하며 오히려 더 큰 공감의 기회를 갖게 되어 기뻤습니다. 서점 서가에 꽂힌 그의 시집들 이전에, '눈물은 왜 짠가'라며 나의 마음에 다가오는,그 절절한 시선이 먼저 저의 눈에 사무쳤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시인의 절절함은, 세 시집에서 일관되게, '눈물은 왜 짠가'에 대한 마음 깊은 시간의 흔적들을 미리 알려 주었습니다. 서해의 바닷가에서 시작되는, 겨울 바다 차림의 문장들이, 함민복 시인의 낮고 깊고 성긴 겸허함, 지난함, 오롯함의 현재성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현재의 서해 바닷가와 교차 편집되는 그의 이전 시상들과, 시들과, 그 시들의 연유에 대한 회고들이 그 어떤 산문집보다 저에겐 쉽게 약은 어부의 그물에는 건져지지 않을 진정함으로 다가왔습니다.

시는 영화에서의 구조적 연결과 닮아 있는 장르같습니다. 저는 그의 시를 영화적인 구조처럼 보게 됩니다. 그의 시는, 다큐멘터리처럼, 그것이 놓치지 않는 헐거운 생의 모습들을 툭툭 내뱉습니다. 시인의 이미지들은, 바닷가에 늘어진 늙은 어부의 그물처럼 소중하고 소중하게 생의 작은 슬픔으로 엮어 있습니다.

시인의 목소리는, 나레이션처럼 물질화된 독자의 혹은 관객의 이기심에 짜고 뜨거운 눈물의 정화 작용을 알려줍니다. '눈물은 왜 짠가'라고. 희석되지 않을 불변의 정화력으로 눈물은 인간의 이기심을 털어내는 가장 완성된 형태의 자기 회복 속성임을 느끼며 저는 이 산문집을 읽었습니다. 자신의 눈물이 스스로에게, 자신의 눈물이 타인에게. 타인의 것도 그렇게.

자신에게 들어온 좋은 생각 하나도, 채 옳게 열매 맺지 못하게 하고, 연신 쓸 거리인가 아닌가에 경도된 자신을 발견하기도 하는 시인의 모습이, 젊은 창작자로 살아가야할 저에게도 더욱 고개 들지 못하게 하는 함민복 시인이 가진 아름다움입니다. 그의 그러한 아름다움은 '눈물은 왜 짠가'에 들어 있었습니다.

함민복의 처음 시집 '우울씨의 일일'에는 라면 국물을 더 내기 위해 소금을 넣고 끓이던 시인의 일상이 있습니다. 없고, 모자란 자기 정화의 소금기를 어느새 가난함만이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견고한 물질의 시대를 살고 있는 저 자신을 반성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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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머 씨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장 자끄 상뻬 그림 / 열린책들 / 199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비오는 날 장화를 신으면 나는 용감해졌다.
걸음걸이도 씩씩해지고 물이 고여 있어도 피하지 않고 철벅거리며 지나 다녔다. 피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일부러 물이 고여 있는 쪽을 골라 걸어 다녔다.

장화.
오늘도 망설이며 살아가는 당신과 나에게 필요한,
우리들 어린 시절의 장화.
                     박상천. 어린 시절·5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느릅나무나 너도 밤나무나 소나무의 꼭대기에 마치 늙은 원숭이 처럼 높이 앉아서 바람결 따라 살살 몸을 움직이면서 들판과 호수와 그 뒤의 산 등을 쳐다보고 있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 소년, 이마위 오른쪽에 흑 갈색 머리를 핀으로 묶고 다니는 목덜미와 귓볼 밑에 작게 움푹 파인 곳에는 햇빛을 받으면 빛을 발하기도 하는 카롤리나 퀴켈만이라는 여자아이를 좋아했던 소년, 말도 안되는 억지로 누명을 뒤집어 씌우고, 올림 바 음 건반 위에 구역질 나는 코딱지를 붙여 놓은 괴팍한 노처녀 미스 풍켈 선생님께 혼이나서 자살을 결심하고 죽으려고 가문비 나무에 오르던 소년. 
 한 소년의 순수한 눈을 통해 그려낸 잔잔한 에피소드마다 삽화를 곁들인 맑은 동화 같은 소설<좀머씨 이야기>를 읽다보면 내 유년의 뜰 작은 화단의 돌밑에 포개어 숨겨둔 그림들이 함께 떠 오른다. 작은 면 소재지에 있던 성당의 첨탑은 높기만 하고 비 오는 날이면 귀신이 나온다던 자귀나무숲에는 왜 처녀의 귓볼같은 꽃만 피워내는지, 내 어깨에 네 어깨가 스쳤을 그 비밀스러운 날이 새벽빛처럼 앉아 있을 법한 내 유년의 뜰에도 대 숲같은 깊이를 알수 없는 소문만 무성히 남기며 미루나무 강둑을 따라 느릿느릿  사라지곤 하던 검은 옷을 입고 다니던 이가 소설속같이 있었다.
내게 남아 있는 그 비밀스러움처럼
소설 속 화자 소년은
호두나무로 만든 지팡이를 손에 쥔 채 텅 빈 가방을 등에 메고 '이른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마을 근방을 걸어다니나 마을 사람 중에서 '그가 어디를 무엇 때문에 그렇게 다니는 것인지?' 아무도 알지 못했고 알려하지 않았던 그러나 어린시절 기억 속에 고여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이름도 정확하지 않은 밀폐공포증 환자인 좀머라는 남자와 관련된 혼자만의 비밀을 조심스레 꺼낸다

『좀머 아저씨가 분명하고 확실하며 오해의 소지가 없는 제대로 된 문장을 말하는 소리를 나는 딱 한번 들었다. 나는 그말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고, 아직도 그 말은 내 귓가에 생생하다. 7월 말 날씨가 지독히도 나빴던 어느 일요일 오후의 일이었다...
우박이 떨어진 도로에 이슬비가 내리던 날 좀머 아저씨 옆으로 차를 몰면서 아버지가 열린 창문을 통해 큰소리로 외쳤던 것이다.
'그러다가 죽겠어요'라는 말에 좀머는 '아주 고집스러우면서도 절망적인 몸짓으로 지팡이를 여러 번 땅에 내려치면서 크고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나는 온 몸을 떨었다.무릎이 너무나 떨려서 자전거를 타는 것은 고사하고 거의 걷지도 못할 지경이었다.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짐을 싣는 곳에 얹어 놓은 악보책을 잡고 자전거를 옆으로 밀면서 갔다.그것을 밀고 가는 동안 말할 수 없이 참담한 생각들이 내 마음을 짓눌렀다. 오한이 날 정도로 몹시 흥분하게 만들고 참담한 생각들이 마음을 짓눌렀던건 미스 풍겔 선생의 난리법석도 매 맞을것과 집 밖을 나오지 못하는 감금이 무서워서도 뭔가를 두려워 했던 것도 아니었다.그런것들 보다는 이 세상 전체가 불공정하고 포악스럽고 비열한 덩어리 뿐 다른 아무것도 아니라는 분노에 찬 자각 때문이었다.그리고 그 못된 개의 잘못은 또 다른 문제였다.모든 것이 문제 였다. 어떤것에 대한 예외도 없이 모든 것이 다 그랬다.우선 제일 먼저 내게 맞는 자전거를 사주지 않은 우리 어머니가 원망스러웠고 어머니를 그렇게 하도록 만든 아버지가 그랬으며,선 자세로 자전거를 타야 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몰래 나를 비웃었던 누나와 형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를 구역질나게 만들었던 하르트라웁 박사님 댁 개의 똥도 그랬고, 호숫가 길을 꽉메워 나를 늦게 도착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던 산보객들도 그랬다.푸가 형식으로 나를 괴롭히고 모욕스럽게 만든 작곡가 헤슬러도 그랬다. 말도 안되는 억지로 내게 누명을 뒤집어 씌우고, 올림 바 음 건반 위에 구역질 나는 코딱지를 붙여 놓은 미스 풍겔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그리고 내가 딱 한번 필요로 하였을 때 도와 줄 것을 간청하였지만 비겁하게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어긋난 운명의 수레바퀴가 돌아가는 모양만 지켜보았을 뿐 다른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세상 사람들이 자비롭다고 하는 하느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잘못되기를 바라는 그런 모든 것들에게 의리를 지킬 필요가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세상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그토록 비열한 세상에서 노력하며 살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이나 그런 못된 악에 질식해 버리도록 두는 편이 더 낫지 않겠는가?그런 사람들이나 잘 먹고 잘 해 보라지! 나를 포함시키지 말고 말이다! 나는 앞으로는 결코 그 사람들이랑 같이 어울리지 않으리라! 이 세상에 작별을 고하리라! 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리고 말겠다!』
미스 풍겔의 야단을 맞고 나오면서 소년이 되뇌였던 다소 길게 인용한 이 부분이 책 <좀머씨 이야기>의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는건 아닐까 한다, 철저한 은둔생활을 해야만 했던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어쩌면 자신의 모습이고. 전쟁 때문이었건 황폐화된 마음 때문이었건 불신이었건 냉담이었건 간에. 하루종일 지팡이를 짚고 제발 날 내버려 달라며 걸어다녀야만 했던 결국 밀짚모자만 남겨두고 호수속으로 사라지게 만든 그 고통과 자유를 어린 영혼의 눈을 통해서 이야기 하려했음인지도 모르는 미궁속에서도

단 하나 짧고도 맑은 동화같은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정곡을 누르는 정갈한 고립감 하나를 만나게 된다. 그 고립감이란 프랑수아 플라스의 <마지막 거인>의 한마디 "침묵을 지킬 수는 없었니?"에서 느꼈던 안타까움과는 정 반대의 질감같은, 오히려 손을 놓아버려서 편안해진 그런 느낌을 만나게 된다. 그 끝은 모두 한 길이지만.
 
내가 어째서 그렇게 오랫동안 또 그렇게 철저하게 침묵을 지킬 수 있었는지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두려움이나 죄책감 혹은 양심의 가책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나무 위에서 들었던 그 신음 소리와 빗속을 걸어갈 때 떨리는 입술과 간청하는 듯하던 아저씨의 말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욕심이 한량없어서 너를 붙잡아 매었던 시절 당신도 내게 그런 말을 했었지...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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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이매지 > 다시 즐기는 놀이판
왕의 남자 - O.S.T.
이병우 작곡 / 알레스뮤직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영화는 단순히 배우의 연기와 시나리오의 탄탄함이 전부가 아니다. 영화를 보고 나온 뒤, 우연히 그 영화의 음악을 들으면 마법처럼 영화의 장면이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은 느껴봤을 것이다. 그만큼 영화음악의 힘은 알게 모르게 영화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사실 한동안 우리 영화에서는 외국의 팝송들을 인용한 경우가 많았었는데, 최근들어 우리만의 음악을 영화에서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왕의 남자>의 음악을 담당한 이병우는 돋보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음악가이라는 편애모드가 다소 작용하고 있지만.)

이병우의 매력을 처음으로 느꼈던 것은 <장화, 홍련> 때였다. 긴장감있고, 영화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선율. 그 뒤로 <스캔들>, <연애의 목적>과 같은 작품에서도 그는 실력을 발휘해서 괜찮은 영화 음악들을 쏟아냈다. 그리고 이번 <왕의 남자> ost도 제법 잘 빠진 작품들로 가득차있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 영화는 유독 음악이 필요한 장면이 많았다. 주인공들이 광대이기때문에 그들이 놀이판을 벌일때면 당연히 음악은 등장해야했다.  게다가 인물간의 갈등요소들이 두드러지기때문에 그것을 음악으로 섬세하게 표현하는 것도 필요했다. 애잔한 선율이 주가 되는 음악(몇 곡에서는 덩실덩실 춤이 나올 것 같지만 대개는 애잔한 선율이었다.)은 다시금 영화의 내용을 떠올리게 하여 마음을 짠하게 만든다. 이병우를 좋아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영화를 괜찮게 본 사람이라면 ost도 실망하지 않고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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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marina🦊 > 젊음과 함께 한 그때 그 영화들
내 인생의 영화 내 인생의 영화
박찬욱, 류승완, 추상미, 신경숙, 노희경 외 지음 / 씨네21북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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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지금은 없어졌지만, <씨네21>의 '내 인생의 영화' 코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꼭지 중 하나였다. 지금이야 소설가든 누구든 '수필'을 여기저기에 잘도 쓰고 책도 술술 잘 펴내지만, 옛날에는 이런 '잡문'을 읽을 일은 대단히 드물었다. 어쨌건, '내 인생의 영화'는 영화나 글을 둘러싼 직업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인생에서 큰 의미를 가진 영화에 대한 잡담을 하는 코너였다. 가끔, 아주 인상적인 글을 읽을 수도 있는 꼭지였다.


이 '내 인생의 영화'에 실린 글들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빠진 원고들이 있긴 해도, 꽤 많은 글들이 실려있다.


공지영이 <닥터 지바고>에 대해 쓴 글, '지금은, 슬픈 귀를 닫을 때'는 공지영에 대해 갖고 있던 안 좋은 선입견을 강화사키는 동시에 해소해 주었다. 신경숙이 쓴 "내 친구 미순아!"는 한 편의 감동 드라마였다. 김해준이 쓴 <우묵배미의 사랑>은 유쾌하다. 노희경이 쓴 <바그다드 카페> 이야기는, 조만간 백수가 될지도 모르는 내게는 작은 위로. 글 잘쓰기로 유명한(그리고 내가 처음 영화에 대한 글을 읽기 시작하던 때에 지대한 영향을 준 책을 집팔하기도 한) 박찬욱 감독의 글은 또 어떤가. 윤제균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가 쓴 <7일간의 사랑>을 읽고 웃은 기억은 또렷하다. "7일 동안 하는 거 아니었어?"라니. 인정옥의 <영웅본색>이야기에서는 그 시대를 산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싸한 기운이 느껴진다.


밑줄긋기/


이훈을 만난 시간이 길지는 않았다. 데이비드 보위의 노래 제목처럼 딱 '5년'. 그가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우리의 열광적인 청년 시절도 막을 내렸다는 걸 우리는 알았다. 그가 남긴 낙서 중에 이런 문장이 있다. "물어보지도 않는데 서른 살에 죽을 거리고 자꾸 입방정을 떨더니만 정말 서른 살에 골로 간 마크 볼란......" 무인도에 한 장만 가져가라면 고르겠다던 보위의 <지기 스타더스트> 앨범에 수록된 '로큰롤 자살'엔 또 이런 말이 나온다. "당신은 카페를 그냥 지나쳤지. 너무 오래 살았다고 생각했으므로 먹지도 않았네." 그런데 왜 그대는 96년 그날 밤 신촌에서, 불이 나기로 돼 있던 '롤링스톤즈' 카페에 들어갔던 건가. 이만하면 박찬욱을 충분히 가르쳤다고 생각했는가, 그대는? 화장됨으로써 두 번 불탄 이훈을 양수리 찬물에 띄워 보내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우리는 서로에게서 중년 사내의 피곤한 눈빛을 발견해야 했다. 이제 정신 차릴 때가 되었다고, 그동안 이 세상 물정모르는 철부지한테 너무 오래 끌려 다녔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 순간부터 이미 우리에게는 페라라고 뭐고 안중에도 없었다.
-박찬욱, '청춘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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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회원님들  서재를 보니 이 책에 대한 칭찬이 자자 하더군

  그래서 구입했는데.. 사실은 책장과 책 18권을 준다기에..행여나..혹시나 하는 마음도

  가지고 구앱했는데.. ^^;;;;  여튼!! 2월달에 내 손에 들어 올테니 2월의 첫 책은

  달려라 아비가 되겠군.....

                               그 책장은 누구에게 돌아갈까.....으흐....부러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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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쁜하루 2006-01-26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스투 누르는걸깜빡했다..난..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