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늘빵 > 여기 만병통치약이 있다. 아픈 사람 이리오라.
공중그네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탁월한 선택이었다. 2005년의 12월, 인터넷 서점의 할인행사 물품 중 고를만한게 없을까 뒤지던 중에 <공중그네> <인터폴> 셋트를 발견. 아니 두 권을 한권 값에 준다네. 이런 할인행사 때는 왕창 많이 지를 염려도 있지만, 한 두개쯤은 질러주는 센스도 있어야.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시작으로, 보통 씨의 책을 다 찾아 읽다가, 연애소설로 나의 관심이 이동, 연애소설에서 이제 일본소설로 관심이 이동 중이다. 그리하여 최근 일본의 몇몇 작가들의 작품을 하나씩 골라 맛보고 있는 중. <공중그네> 역시 그 와중에 나에게 발탁(?)된 놈이다.  

  오쿠다 히데오라는 작가. 소설가로 데뷔하기 전 기획자, 잡지편집자, 카피라이터, 구성작가 등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비슷한 관련 분야의 다양한 직업 변천사 때문인지 모르지만, 처음부터 소설가로 데뷔한 작가들에게 묻어나오는 정통 소설의 구도를 과감히 깨버린다. 아카데미를 통해 영화를 제대로 배운 감독과 생판 아무 것도 없이 맨땅에 헤딩하기로 영화를 배운 감독과의 차이라고 할까. 지나치게 도식화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에서는 그런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유쾌한 한편의 코믹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 하지만 코믹영화라고 해서 그냥 웃고 떠들고 즐기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숨어있는 하나의 교훈.  

  <공중그네> 는 총 5개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어있다.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과 사건은 모두 다르다. 하지만 이야기의 구성방식은 같다. 각각의 단편 속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이라부 의사와 마유미 간호사, 두 사람의 환자 처방법이 특이하다.  

  내가 선택한 길이 과연 맞을까 의심이 들 때, 가장 친한 친구와 다퉈놓고 찜찜할 때, 여자친구로부터 시련당했을 때, 나를 보살펴준 부모님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등등의 사소한 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이런 고민들, 누군가의 나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주고 조언을 해줬으면 하는 바램, 딴지걸지말고 그냥 그래 그래 네가 맞아 네가 옳다 라고 이야기해줬으면 하는 바램을 갖게 된다. 내가 이 분야에서 만큼은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나보다 대단한 고수를 만났다. 이 때 느끼는 좌절감. 나를 포함한 누구나 다 느껴봤을 법한 일이다.

  대학교 1학년 때 짧게나마 정식으로 드럼을 배웠고, 이후 독학하며 이런저런 밴드들을 거치고, 프로젝트를 꾸려 공연을 하기도 하면서, 학교 내에서는 나름대로 최고의 드러머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학교 내 여러 밴드들이 공연할 때 보면 아무래도 나보다 더 나은 이를 찾기가 힘들었다. 아 이런 못말릴 거만함. 내가 거만하다는 걸 안다. 사람들도. 그러면서도 그들은 날 인정해줬다. 하지만 언젠가 나보다 나이 많은 다른 밴드의 드러머가 공연하는 것을 보고 헉! 이런, 이란 반응이 자연스럽게 나온 적도. 잘 모르는 사람이지만 그는 방송국의  세션드러머까지 했다고 하니. 아 이런. 그야물로 우울안의 개구리, 정저지와는 이럴 때 하는 말.  

  홍대 앞 라이브 클럽 재머스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공연을 할 때, 정식 인디밴드가 되었다는 자부심. 이제 언더그라운드의 한 축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웅큼의 흙 정도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는 자부심. 하지만 또 클럽에서 마주치게 되는 대단한 실력파의 밴드들. 이 이럴 때 같은 클럽 밴드지만 정말 우울. 이렇게 노력했는데 이거 밖에 안되나. 세상이 고수는 너무나 많다. 내가 학교에서 후배에게 드럼을 가르치며 하던 말이다. 여기서 아무리 잘해봤자 나가면 고수는 엄청나다.   이럴 때 이라부 의사에게 간다면 딱 좋겠는데.

   소설 속 이라부 의사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오랜 공부기간에서 나오는 해박한 의학지식과 권위주의적인 거만하고 뻔뻔한 태도의 의사들이 절대 아니다. 아니 뭐 이런 의사가 다 있어. 오자마다 반말 찍 하더니 처방은 안해주고 자꾸 딴소리만 해. 내가 야구선수라니깐 같이 캣치볼을 하자고 하질 않나. 서커스단이라니깐 자기도 공중그네 해보고 싶다고 정말 서커스장에 와서 매일같이 연습하지를 않나. 도대체가 이해가 안가. 당신 의사 맞아? 돌팔이 아냐? 당연 의심이 갈 수 밖에. 요즘 또 흰 가운입은 돌팔이들이 한 둘이야? 게다가 의사는 그렇다 쳐. 가슴 곡선 다 보이게 노출하고, 핫팬츠 입고 다니는, 껌 짝짝 씹으며 쇼파에 누워 패션잡지나 읽고 있는 저 여자는 뭐야. 간호사 맞아? 아니 무슨 일본 포르노 찍나. 하지만 이라부 의사를 찾아온 환자들은 다음 날 다시 이곳을 방문하게 마련. 무슨 최면술에 걸린 것도 아니고 말야.  

  이라부의 환자 처방법은 특이하다. 그냥 대놓고 비타민 주사를 시도때도 없이 놓지를 않나. 아니 무슨 처방법이 그래. 비타민 제만 주사하면 다 낫는데? 하지만 다 낫는다. 정말 의학적으로 처방한 것은 비타민 주사가 전부인데도. 이라부를 찾아온 환자들의 공통점은 모두 의사소통의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 그들은 각 분야의 최고의 인물들이지만, 불안과 강박증세, 자신감 부족, 결단력 상실의 문제를 안고 있다. 분명히 이분야에서 만큼은 날 따라올 자가 없는데 하찮은 기본기에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고, 타인에게 알려지기를 숨긴다. 누군가에게 나의 문제점을 솔직하게 상담해보고 싶지만 말 할 사람이 없고, 말할 사람이 있다 해도 내가 그런 문제로 고민한다는 자체가 이미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그러니 혼자서 끙끙 앓고 있을 밖에. 이라부는 바로 이 점을 고쳐준다. 일부러 고쳐주려고 노력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그가 환자와 함께 놀면서 환자는 저절로 자신의 문제를 발견하고 깨닫고 인정하고 마음을 열게 된다. 만병의 근원은 마음에 있나니. 마음을 열면 모든 병은 치유된다.

   분명 비정상적이고 황당한 병원이다. 의사나 간호사나 제대로 된 사람이 하나도 없다. 그러다 한번 이곳을 찾은 환자들은 다시 방문하게 마련. 그것은 어쩌면 병원에 대해, 의사에 대해 가지고 있던 기존의 고정관념들이 깨지면서, 그 자체만으로 마음을 열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환자들은 모두 의사소통의 문제를 겪고 있었으므로. 때로는 안놀아주면 울어버리는, 또 장난감 사달라고 조르고 떼쓰는 어린아이 같지만, 그의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이 환자를 완치로 이끈다. 우리가 못된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나도 같이 못된 놈이 되듯이, 착하고 순수한 어린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동심의 세계로 빠져들어 마냥 투명한 유리거울 같은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과 같다. 이라부의 마음이 환자들의 마음을 열게 하고 치유하게 만든 것이다. 이런 의사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살면서 아직까지 이런 비슷한 의사도 결코 보지 못했다. 물론 예전에 비해 권위주의적인 의사가 많이 줄긴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비지니스 차원에서 다른 병원과 경쟁해 이기려는 자들의 컨셉이 아닐까 생각. 

  이 소설 후딱 읽으며 정말 속으로 혼자서 큭큭 거린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한편의 코믹영화를 보고 난 느낌. 이라부를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벌써 마음이 후련해지고 기분이 상쾌해진다. 옮긴이의 말로 마무리를 대신할까 한다.  

 "인간의 삶에는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이 서로 경계를 알 수 없게 버무려져 있다. 그리고 사람마다 가벼움과 무거움의 정도는 다르다. 한마디로 상대적이다. 인간의 삶은 또한 겉과 속이 다르게 되어 있다. 완벽주의자는 있지만 완벽한 사람은 없듯이, 겉으로는 그렇게 보여도 속까지 그런 사람은 없을지도 모른다. 아 역시 상대적이다.

더러는 가벼워 보이던 것, 하찮던 것, 사소한 성격적 결함이 정신적 결함으로 이어지는 수가 있다. 그렇게 되는 계기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대다수의 사람은 그렇지 않닫는 것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 역시 알 수 없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누구나 만들어 쓰고 있는 가면이 어떤 방패 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 이제 당신의 문제를 치유하기 위해 이라부를 찾아가는 길만 남아있도다. 어서 가자 이라부에게.

 

 

* 알라디너들만 알 수 있는 이야기 하나.  

책을 읽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났다. 이 재밌고 유쾌한 순수한 어린아이 같은 의사의 이미지를 떠올리다가 마태우스님이 생각났다. 아하 마태우스님이라면 이런 의사가 되기 충분해. 아니 왜 기생충학을 전공하신 거지? 기생충들은 웃기지도 못하는데. 정신과 의사가 되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마태우스님은 충분히 재밌고 웃기고 때로는 살짝 괴짜같고 순수 그 자체인 인물.  

또 하나. 이라부 의사와 호흡을 착착 맞추는 마유미 간호사의 이미지를 떠올리니 갑자기 하이드님이 머리에 번뜩. 마유미 간호사 처럼 껌 짝짝 씹으며 쇼파에 누워 패션잡지를 보는 이미지는 결코 아니지만, 호피 무늬를 좋아라하시는 하이드님이 갑자기 떠올랐다. 마유미 간호사는 서커스장에 호피무늬옷을 입고 따라가서 이라부가 공중그네 연습하는 내내 호랑이와 텔레파시 놀이를 한다. 마유미 간호사의 다른 면들은 다 제쳐두고 호피 무늬를 사랑한다는 면에서 동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시비돌이 > 하종강 소장 인터뷰(1)

많은 분들 읽어보시라고 올립니다. 이거 올려두면 책 안나가려나? ㅠ.ㅠ
 
-------------------------------------------------------------------------------------------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을 10월 8일 강남역 근처에 있는 한울법률사무소 내에 있는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났다. 20년을 넘게 매년 300여 차례 이상 노동문제에 관해서 강연을 하고, 노동 문제에 관한 상담을 해온 하종강 소장은 다른 노동자들이나 조직 사업을 하는 동료들에게 부채감이 있음을 거듭 강조했다. 2001년 6월부터 2004년 2월까지 2년 8개월 동안 <휴먼포임>, <하종강의 진짜 노동자>를 연재했고, CBS 라디오에서 노동문제 칼럼을 방송하고 있는 하종강 소장은 그 오랜 시간동안 계속 한 길을 온 것에 대해 '사실 힘들었을때가 별로 없었다'고 말했다. 


 '내가 오늘 이 진정서를 붙들고 하루밤 고생하면 저 노동자가 따뜻한 밥 한그릇 먹게 된다, 이런 만족감이라고 할까, 그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이 항상 있었다. 초등학교 교과서 정도의 인도주의적인 원칙을 만족시킬 수 있는 그런 일이 나를 구원했다'고 겸손하게 말하는 하종강 소장은 자신의 강연에 대해서도 '20년 정도하면 누구나 다 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자신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말을 잘하고, 쉽게 설명하느냐'고 말하는 노동자에게 '20년 하면 그렇게 됩니다'라고 했더니 그 노동자는 '맞아. 나도 눈감고도 기계를 돌리지'(웃음)라고 했다는 말도 전한다.


 그러나 어떤 이는 하종강의 강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하종강의 강연을 들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의 강연엔 늘 그가 직접 겪은 그 생생한 '현실'과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 들어간다. 강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가 파업현장에서, 집회에서, 평범한 일상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겪은 고통, 울분, 저항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여러 감동들이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로 전달된다. 하종강의 강연이 '살아 있다'는 평을 듣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고, 머리에 담긴 게 많아도 결코 하종강이 노동자들과 함께 해온 그 20년 세월을 따라올 수는 없는 것이다. 그의 강의교재는 어떤 체계적인 지식이나 이론이 아니라 바로 하종강 그 자신인 셈이다"


 그 '살아 있음'은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도 느낄 수 있었다. 하종강 소장은 언젠가 '권력과 자본에 대한 입장'이라는 글에서 "이웃의 정당한 몫을 빼앗아 가는 부당한 권력과 자본에 대해 저항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우리 사회 지도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람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는 '그가 부당한 권력과 자본에 대해 어떻게 처신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한 때 '그가 80년 5월 '광주'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가?" 하는 것이 사람을 판단하는 잣대가 됐던 것처럼..."이라고 쓴 적이 있다. 그는 아직 같이 운동을 했던 동료들과, 광주의 기억에 대한 부채감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지만 내가 그 부채감 때문에 자살할만큼 도덕적이지는 못하다'고 씁쓸하게 말하고 있다.


 

  하종강 소장은 노동자들의 경우에도 "'내 생각에는 말이야'라고 하면서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조선일보 생각을 얘기하는 노동자들이 많다"고 얘기하면서 그것이 "아주 비틀리고 왜곡된 근대화 과정 100년의 역사때문인게 가장 크다. 그들 개인의 탓이 아니고, 인격의 탓이 아니고, 결국 사회 구조 탓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그 계급성 때문에 올바른 길을 결국은 찾을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한 개인의 인격과 교양의 문제보다도 그 사람이 어느 구조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느냐가 우리 사회에 유익한 존재가 되는지, 해를 끼치는 존재가 되는지를 결정한다'고 강조하는 하종강 소장은 안티조선운동에 대해서 '이해득실을 따져가면서 하는 과학적인 행동이라기보다는 지식인들의 양심적인, 지사적인 운동'이라고 말했다. 


 하종강 소장은 서울지방노동위원회 공익위원, 한국노동교육원 객원교수, 노동자교육센터 교육위원 등을 맡고 있으며, 인천기독교도시산업선교회 실무자(19 80-1985), 일꾼노동문제연구실 실장(1982-1985), 한국기독교산업개발원연구원(1985-1988), 한울합동법률사무소 노동상담실장(1988-1993), 사단법인 한국산업안전보건교육연구센타 소장(1998-2002), 한겨레노동교육연구소 연구원(1998-2002) 등을 역임했다. 

(인터뷰어 註) 사실 이 인터뷰를 빨리 공개하기를 얼마나 원했는지 모릅니다. 노동문제에 관해서 이렇게 쉽게 설명할 수 있는 텍스트는 흔치 않을거라는 생각도 했고, 물론 더 치열하게 살아온 분들도 있겠지만, 노동문제에 대해 실제와 이론을 접합시키기 위해 고민해온 사람으로는 하종강 소장만한 사람이 없을 것 같아서입니다. 원래 이 원고는 격월간 아웃사이더의 종간호(출판사에서는 휴간이라고 말하지만)의 청탁을 받고 한 원고입니다. 제가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은 출판사죠. 그래서 많이 기다렸는데, 출판사 사정의 여의치 않아서 종간호를 찍는 것마저 계속 연기되어 왔고, 그래서 혹시 찍게되면 다른 원고를 넣자고 양해를 구해서 서프에 올립니다. 너무 길어 둘로 나눠서 올리는데, 정말 시간 내서 한 번쯤 읽어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은 인터뷰입니다.

 

- 다음은 인터뷰 전문입니다.

 

지승호(이하 지) - 2001년 6월부터 2004년 2월까지 2년 8개월 동안 <한겨레21>에 노동자 인터뷰 기사를 연재하셨는데요. 처음에는 <휴먼포임>이었고, 나중에 <하종강의 진짜 노동자>로 바뀌었습니다. 인터뷰 대상을 선정하는 기준은 어떤 것이 있었습니까?
하종강(이하 하) - 제가 마지막회 쓸 때 썼는데요. 주변에 보면 사연을 간직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거든요. 제가 전태일 문학상 받았을 때 주변의 반응이 '다들 소설책 몇권쯤 쓸 만큼의 이야기는 있는 사람이야'라는 반응이었어요. 제가 볼때는 그런 경험들 중에서 자신이나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겪었던 일들, 그런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이 우선 선정대상이었구요. 그 중에서 아주 유명하거나, 출세하지 않은 사람들, 운동권내에서조차 중심에 우뚝 서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주로 했죠.

 

단병호 위원장 같은 분은 갈등의 대상이었는데, 그 분은 운동의 중심에 서 계신 분이고, 소문나지 않게 주변에서 활동하시는 분들 많잖아요. 집회가 열리면 앞에서 그걸 지휘하는 훌륭한 활동가도 있지만, 거기 쏠려다니면서, 두려워 떨면서 이 골목 저 골목 쫓겨다니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 경험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사는 사람들, 주로 그런 사람들이 대상이었는데, 실제로 만나고 싶은 사람들 중에 가장 못만난 사람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예요. 자신이 그런 직업을 갖고 있다는 것을 주변 사람들에게조차 알리지 않고 살았던 사람들이어서 굉장히 설득하기 어려웠어요.

 

 끝내 가명으로 나간 분도 있구요. 사진 멀리서 찍어달라고 한 사람도 있었구요. '20년 친구들도 내가 이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친구 결혼식이다 이러면서 모임 있을때마다 핑계대기 바빴다'고 얘기하는 그런 사람들이 정말 소중한 사람들인데, 많이 만나지 못했어요.

 

지 - 하신 분 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 대상자는 누구였습니까?
하 - 많이 알려진 사람 중에는 홍준표 부위원장이 있었구요. 한국통신 비정규직 투쟁을 500일 넘게 했던... 그 양반은 전국 수백개 전화국에 두세명씩 또는 많아야 몇십명씩 흩어져 있는 비정규직을 모을때부터 같이 봤거든요. 같이 다니기도 했고. 인간의 의지로 어떻게 저렇게 500일이 넘도록 싸울 수 있을까? 그리고 상상속에서 가능한 투쟁은 모두 다 해봤잖아요. 한강 다리에도 올라가보고, 목동 사옥도 점거해보고, 영하 20도 넘는 길거리에서 노숙투쟁도 해보고, 상상으로 가능한 모든 투쟁을 500일 넘도록 할 수 있는 그런 분들을 보면 정말 고개 숙여지구요.

 

 그 다음에 동일방직에서 해직된 노동자인데, 농사꾼과 결혼해서 음성에서 농사 짓는 여성이 있었는데요. 농민회 활동을 거기서 해요. 여성농민회 회장도 맡고 그랬는데, '어디가나 이러고 살아야 되는지 모르겠어' 라는 얘기를 하더라구요.(웃음) 그 사람을 제가 인터뷰하려고 10년만에 만났어요. 그런데 10년전의 그 모습과 그 생각을 그대로 가지고 있더라구요. 제가 환대는 전혀 못받았어요. 인터뷰한다고 전화 했을때도 '우리가 주변 사람들하고 얘기해봤는데, 당신을 인터뷰하는게 좋겠다고 결정을 했다'고 했거든요. 그랬더니 '도대체 어떤 작자들하고 얘기해봤는데' 그러더라구요.(웃음)

 

 인터뷰 다 끝나고 나서 제가 차에 올라타면서, 거기가 흙바닥이잖아요. 시골이니까. 차에 올라타면서 발을 차 앞에서 탁탁 털고 차를 탔더니, '야. 하종강. 저거 발 털고 차타는 꼴 좀 봐라' 그러더라구요.(웃음) 그럴 때 어떤 열등감 이런게 느껴지구요. 마지막회 쓰면서도 요즘 어떻게 지내나 궁금해서 연락해봤더니, 그때 여의도에서 농산물 개방에 반대하는 데모가 매일 열리고 있을때였거든요. 올라와서 매일 물대포하고 싸우느라 정신없을때인데, '한번도 못찾아가서 미안하다'고 입에 발린 인사를 하니까 '아. 뭐. 누가 찾아오면 좋아한데. 젠장' 그러더라구요. 제가 전혀 따뜻한 말을 한번도 못들었지만, 상당히 인상깊은 사람입니다. 

 

지 - 부채감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셨는데요. 아무래도 몸으로 투쟁하는 사람들을 많이 지켜보시니까 그런 생각이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방금 '열등감'이라는 표현도 하셨는데요. 그렇지만 어떤 면에서는 소장님한테 부채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지 않겠습니까?
하 - 그럴까요?(웃음)

 

지 - 운동도 즐겁게 해야 더 효율적으로 오래할 수도 있을 거구요. 역할이 다른 것일수도 있구요. 안치환씨 같은 경우 예전에 '현장에 가끔 가보면 그 사람들의 우월의식 같은 것을 느낄때 불편한 생각이 들때도 있었다'고 표현하던데요.
하 - 안치환씨는 현장에 잘 안오잖아요.(웃음) 제가 그렇게 정서적으로, 감정적으로 접근하는 것에 대해서 '하종강을 보면 항상 2%가 부족한 것을 느낀다'고 얘기하는 후배가 있거든요. 그런 치열한 과학적인 이론이 필요없다는게 아니라 나이들면서 보니까 주변에 저 말고 다른 사람들도 깊은 곳에 그런 부채감이 있어요. 이소선 어머님 만났을때도 제가 두시간 넘게 얘기하고 느낀게 태일이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태일이가 꿈 속에서 '내가 죽으면서 캄캄한 하늘에 구멍 하나 뚫는건데, 어머니가 남은 평생 그 구멍 조금만 더 넓혀주세요. 꼭 그렇게 가세요'"라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그게 어머니한테 '내 아들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말자'는 부채감이 가슴 깊이 있는 거라고 봤구요. 주변에 치열하게 산 사람들일수록 정서적인 부채감을 공유한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게 저급한 차원의 정서가 아니라는 겁니다.

 

 송영수라는 후배를 만났을 때 그 후배는 제가 정말 존경하는 사상적인 교류를 나눌 수 있는 친구였는데, 자기가 20년 넘게 운동을 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이렇게 얘기하더라구요. 그 친구는 결국 최근에 간과 콩팥을 동시에 이식하는 대수술을 받았지만, 신부전증으로 하루에 네 번 투석하면서도 대한민국 최초의 지역일반노조를 만든 사람이거든요.

 

 민주노총의 어떤 활동가도 고개가 숙여지는 후배인데, 그 후배가 저한테 마지막에 헤어지면서 '형이나 나나 비슷한 종류의 인간이라고 생각하는데, 형은 이십년 넘도록 그 일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가 뭐요?' 그래서 '나는 세계관이 바뀌지 않았거든' 이렇게 대답했어요. '나는 내 철학을 안바꿨거든' 했더니 후배가 픽 웃으면서 '그런거라면 저는 벌써 포기했을거예요. 저는 형에 대한 미안함때문이었어요' 그렇게 말하는데, 81년도에 그 후배가 잡혀가서 고문당하다가 내 이름을 말하는 바람에 잡혀간 적이 있었거든요.

 

 그 후배는 자기 때문에 내가 고문을 당하고, 그때 내가 내 후배 이름을 하나 이야기하고, 그 후배가 그 놈 이야기하고 이렇게 엮였으니까 결국 그때 자기 때문에 고문당하고, 감옥에 갔던 사람들이 자기가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을때마다 자꾸 생각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나는 그동안 내가 만났던 노동자들이 너무 불쌍해, 이런 인연을 끊고 사람들은 살지만, 나는 못끊은거야' 라고 그래요. 근데 그 사람은 굉장히 치열한 운동가이고, 사상가예요. 가는 조직마다 항상 운동이론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그런 후배조차 마음 깊은 곳에 그런 부채감이 있다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그런거 보면 그게 꼭 유치하다고 볼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노동자들도 요즘은 교육 끝나고 나면 토론하잖아요. 교육은 일방적으로 주입시키고, 전달하는거지만, 토론은 주고 받는 거잖아요. 그때 저한테 '너무 감상적인 태도로 운동하시는게 아니냐'고 지적하는 노동자들도 있어요. 그럴 때 저는 '오히려 저를 지켜주는게 그 감성일지도 모릅니다'라고 대답하죠

지 - 그런 부분에 대해서 분명히 어떤 부채감을 느끼고, 자기보다 훨씬 더 철저한 사람들에 대해서,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해서 부채감을 느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게 사람을 지치게 만들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저 정도가 아니면 운동 못하는거 아니냐' 하는 좌절감이 들 수도 있구요.
하 - 어떤 사람들이 지치냐 하면요. 운동권내에서도 꼭 성공해야된다는 집념을 가진 사람들은 지쳐요. 그런데 제가 서울대학교 학생회 간부들을 만났을 때 '그 강의를 그 나이 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라고 신기한 듯이 물어보는데, 두가지만 결심하면 된다고 얘기했어요. "'돈을 많이 벌지 않겠다, 운동권내에서 출세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면 정말 할 일은 세상에 널려있다"고 했더니, '그 두가지가 너무 어려운거네요' 그러더라구요.(웃음)

 

 운동권내에서 성공해야된다는 집념을 가진 사람들은 지칠 겁니다. 우리가 예전에 전두환, 노태우하고 싸울 때 '우리의 쌓여진 인식체계와 투쟁을 통해 우리 후손들에게는 민주화된 조국을 보여주자'는 표현을 많이 했거든요. 그런 생각을 하면 우리가 지치려고 하는 사람들을 계속 채찍질하는 생각이 되죠. 우리 후배중에는 제가 그런 생각을 가지는게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열등감'이라고 예리하게 분석을 하는 친구도 있어요.

 저는 조직 사업을 하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조직활동을 안해보지는 않았는데, 그걸 포기한 사람이거든요. '이건 누군가는 반드시 담당해야되는데, 저는 못하겠다'고 포기했는데, 노동조합활동 하던 사람들도 처음에는 저로부터 영향을 받고 시작하지만, 몇 년 활동하면 저보다 훨씬 더 훌륭한 스승들이 되거든요. 갈등을 한번은 다 겪어요.

 

'노동운동이 이런건지 몰랐습니다' 하고. 내부의 적과 싸워야될 때 특히 그런데, 저는 '원래 그런 겁니다. 저는 그걸 포기한거고, 당신은 계속하고 있는 겁니다'라고, 내가 포기한 일을 당신은 계속 하는 거라고 말합니다. 제가 이런 공간에서, 사무실이 굉장히 번듯하고 좋은데, 제가 노동상담이라는 걸 법률사무소 구석에 책상을 하나 갖다놓고 시작했을 때 '너무 편하게 산다'고 굉장히 많은 비난을 받았어요. 심지어 '거기서 좀 기어나와라. 그만 편하게 살고 좀 기어나와라. 우리는 니가 그것밖에 안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하기도 했어요.

 

 조직운동에 복무하지 않는데 대한 비판은 많이 받았는데, 그래서 한동안 시달렸는데, 사람들이 이제는 거의 포기했죠. '내 배를 째든지. 나는 절대로 못한다'고 하니까.(웃음)

 

지 - 어떤 면에서는 역할이 다른 것일 수도 있구요. 운동이라는게 사회가 복잡해지니까 소위 말하는 진정성보다 '그 역할을 얼마나 슬기롭게 잘할 수 있느냐'는 것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우리 사회도 그렇고, 특히 운동진영에서조차 칭찬하는 문화가 부족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소장님조차도 2% 부족하다는 말씀을 듣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얘기하기보다는 '너무 너무 잘해왔다'고 먼저 말하는 방식이어야 할 것 같은데요.
하 - 2% 부족하다는 것은 나머지 98% 정도는 된다는 거니까.(웃음) 홈페이지에 어느 후배가 썼어요. '하선배를 보면 항상 2% 부족함이 느껴진다'고.

 

지 - 78년 동일방직 여공들의 소위 똥물사건과 나체시위를 보고 노동운동에 뛰어들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하 - 그때는 뛰어든게 아니고 관심을 가지게 된거죠. 동일방직에서 124명이 참여했는데, 절반 정도가 저와 동갑이었을거예요. 같은 나이의 여성들이 그런 일을 당하도록, 벌거벗고 싸워야 되고, 똥을 먹어야되는데도 그 사실을 몰랐다는게 굉장히 큰 충격이었죠. 그래서 혼자만 알아서는 안되겠고,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 - 그 당시 우리 노동자들과 여성의 지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던 것 같은데요.

하 - 70년대의 민주화운동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죠.

 

지 - 그만큼 우리 노동자들이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흔히들 우리 노동자들에게는 자신의 계급을 배반하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노동자 중에 한나라당의 지지하는 분들도 꽤 있지 않습니까?
하 - 많죠. '내 생각에는 말이야'라고 하면서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조선일보 생각을 얘기하는 노동자들이 많죠. 아주 비틀리고 왜곡된 근대화 과정 100년의 역사때문인게 가장 크구요. 그들 개인의 탓이 아니고, 인격의 탓이 아니고, 결국 사회 구조 탓이거든요.

 

 하지만 노동자들은 그 계급성 때문에 올바른 길을 결국은 찾을 수 밖에 없어요. 노동자들이 결국은 자기가 한 푼 더 받기 위해서, 자기 아파트 집 한 평 더 늘이기 위해서 싸우는 것이 우리 사회에 유익하게 영향을 미치거든요. 자본가, 사장은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별장을 지으려고 생각하는 순간 사회 전체에 해롭거든요. 노동자들에게 인격과 교양이 가장 중요한 변수라면, 제가 노동운동하는 사람들 편에 서 있을 필요가 없죠.

 

 만나보면 솔직히 노동자 간부들보다 노동조합 탄압하는 인사노무 관리자들이 매너가 훨씬 좋아요. 그 사람들 교양 있고, 학력도 좋습니다. 그런데 그게 중요한게 아니거든요. 어느 구조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느냐가 우리 사회에 유익한 존재가 되는지, 해를 끼치는 존재가 되는지를 결정하거든요.

 

 노동자들이 예전의 정치의식이나 사회의식이 전혀 없는 시절과 비교하면 얼마나 많이 달라졌습니까? 보수의 상징인 것 같은 공무원들조차 노동자의 깃발을 들고 있는걸 보면 우리 사회가 서서히 변화하고 있는 겁니다. 긴 역사 안목에서 보면 굉장히 빠른거죠. 그 사람들이 영원히 조선일보 생각을 자기 생각처럼 얘기하지는 않을 거구요. 예외가 있겠지만, 전반적으로는 바뀔겁니다. 노동자라는 존재 자체가 올바른 선택을 강제받기 때문에 개인의 의지나 인격이나 교양의 영향은 별로 안받습니다.

 

지 -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들을 해야한다고 보십니까?
하 - 조직, 홍보, 교육 같은 일상적인 활동이죠. 왕도가 없어요. 뾰족한 수는 없습니다. 항상 위기를 타개하는 뾰족한 수는 없고, 오히려 수를 쓰다가는 망하는 경우는 있겠죠. 노동조합이 일상적으로 가져야하는 덕목이 있거든요. 노동조합 간부들이 일상적으로 가져야하는 자세 이런게 항상 중요하죠. 아주 지긋지긋할 정도로 끊임없는 조직, 홍보, 교육, 선전활동을 해야하는겁니다. 그런데 그게 역사의 진행방향과 나란히 가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고통속에서도 뿌듯한 성과를 반드시 이루는거죠. 실패할때가 많지만, 반드시 성공하거든요. 박준석씨 같은 사람이 노동운동을 '승리할때까지 패배하는 싸움'이라고 표현한 것도 그런 뜻이죠.

 

지 - 우리가 아직은 노조 가입율도 상당히 낮은 편이고, 사회적으로 노동운동이 활발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은데요. 앞으로의 전망은 어떻게 보십니까?
하 - 많이 낮은 편이죠. 11% 밖에 안되니까. 노동운동을 올바로 이해하는 정서가 역사속에서 한번도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어요. 우리는. 노동운동은 사회에 유익하다, 이것이 사회의 상식으로 건전하게 자리잡지 못했고, 역사속에서 그런 경험이 전혀 없거든요. 토대가 굉장히 취약한거죠. 그런데 그 토대가 취약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근대국가를 형성하는 역사발전과정이 정상적이지 못했기 때문이죠.

 

 일제식민지라는 기형적인 방식으로 자본주의화가 이룩되고, 우리나라에서 근대화 과정을 담당했던 사람들이 다른 나라 기준으로 볼때는 거의 범죄적 집단이었거든요. 이렇게 식민지 시대에 동족을 배신하고, 점령자에게 협력했던 세력, 즉 민족반역세력들이 해방된 이후에도 근대화 과정을 계속 지배한 나라가 학자들 연구에 따르면 월남하고, 대한민국 밖에 없다고 하거든요.

 

 식민지 40년에 분단 60년을 겪으면서 그 와중에 군사독재가 30년이었거든요. 기형적인 역사발전 과정이 우리 한국사회의 노동운동을 기형적으로 탄압한 토대가 되는거죠. 노동자들의 임금인상투쟁이 범죄행위로 취급을 당하는 이런 정서를 가진 이상한 나라잖아요. 지금도 마치 노동자들이 대자본가와의 관계에 있어서 자신들의 권리를 스스로 양보하거나 축소하는 것이 애국인 것처럼 느껴지는 이런 정서가 아직 상당히 많이 남아 있는 잘못된 토대가 있는거죠.

 

 그런데 다른나라보다 노동운동의 성장이 뒤진만큼 역으로 87년 노동자 대투쟁 같은 커다란 역사가 가능했잖아요. 몇십년동안 후퇴된 상황을 한꺼번에 반전시키는 그런걸 보면서 희망을 갖는거죠. 왜냐하면 저는 제 생애가 끝날때까지 그런 장면을 못볼 줄 알았어요. 공무원 노동조합이 다른 나라에 다 만들어지는 걸 봤으니까 언젠가는 만들어질 줄 알았는데, 그 속도가 이렇게 빠를 줄 몰랐거든요.

 

 전국 방방곡곡에 거의 안생긴데가 없거든요. 휴전선에서부터 남쪽 해남, 완도까지. 제가 이 모습을 환갑되기전에 보게 될거라는 생각을 불과 몇 년전까지도 못했거든요. 그래서 전교조 선생님들 만나면 이런 얘기를 해요. 저는 그 분들이 굉장히 부러워요. 저는 평생 그들을 돕는 주변 사람들에 불과하지만, 그 사람들은 아무리 작은 활동을 해도 자신이 그 운동의 주체잖아요.

 

 전교조가 십만명의 조직을 갖추게되는 이런 날이 올 것을 제가 짐작했다면 아마 이 직업을 선택하지 않았을거라고, 저도 열심히 공부해서 교사임용시험보고, 교육노동운동의 주체로 서지, 평생 노동자를 도와줘야하는 것을 내 직업으로 선택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얘기를 합니다. 만나면 그렇게 얘기해요.

 

지 - 역할의 차이라는....
하 - 그게 중요한 역할이고, 내가 그 역할을 맡아야겠다고 선택한 것도 아니구요. 솔직히 현실하고 30% 정도 타협하면서 여기 안주한겁니다. 

 

지 - 사실 '노동운동은 이기적인 운동'이라고 소장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사실 남을 괴롭히지 않으면서 자기 자신의 권리를 추구하는 것은 정당한데도 불구하고, 그동안 시민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욕심을 내서는 안되고, 당연히 희생을 해야되는 것처럼 얘기해왔지 않습니까? 가령 탄핵 사태가 벌어졌을 때 광화문에 앉아 있던 대중들은 굉장한 자부심을 느끼거든요. 그런데 그것을 옆에서 기록하거나 하는 사람의 역할 역시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부채감을 느끼거나 '내가 저 자리에 있을 수 없다'는 열등감을 느끼는 수도 있는 것 같거든요.
하 - 그 사람들은 부채감을 안 느낄 것 같은데... 앉고 싶으면 거기 앉을 수 있잖아요. 자기가 두려워서 거기 앉지 않는 것은 아니잖아요.

 

지 - 비유가 좀 적절하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하 - 자기가 바쁜 과업이 있었기 때문에 하지 않았던 거잖아요. 그런데 저는 내가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게 옳은 일인지 알지만 포기한거거든요. 솔직히 말해서. 단병호 위원장님처럼 여섯 번씩 감옥에 갔다오고 그렇게 해야죠. 할려면. 그런데 전 그런 사람들한테 물 한잔 떠다주는 걸 선택한거죠. 제 능력이 그 정도 밖에 안된다고 생각한겁니다.

 

지 - 사실 한국 사회는 노조활동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김 - 최근에 더 부정적으로 됐죠. 특히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공격당하기 시작하면서... 가장 개혁적인 대통령이 들어섰는데, 가장 보수적으로 퇴행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어요.

 

지 - 김두한은 자서전에서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빨갱이라고 생각하고, 죽인 것을 자랑스럽게 묘사하기도 했구요. 그 사람의 인생을 TV 드라마에서 미화시키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어머님께서도 노동 운동을 하신 걸 아버님에게 조차 40년간이나 숨겨왔다고 '정범구의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에서 말씀하셨는데요.
하 - 어머니뿐만이 아니고 다 그랬어요. 다른 사람들도. 

 

지 - 예전에 한국전쟁때 학살당한 분들이 그 사실을 얘기하는 것조차 불이익을 당할까봐 얘기하지 못하고 자식들한테까지 숨기고 살았던 역사가 있지 않습니까?
하 - 요즘 조사하는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니까 지금 처음 얘기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더라구요. 4.19 혁명 직후에 민간단체가 만들어져서 민간인 학살 신고를 받았는데, 그때 엄청나게 많이 신고를 했는데, 요즘 조사하는 사람들 얘기 들어보니까 그때 신고했다는 사람은 거의 못보겠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신고한 사람들도 빙산의 일각인거죠.

 

지 - 아직도 그런 정서들이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은데요.
하 - 많이 남아있죠. 박근혜씨가 저렇게 차기 대통령 후보로 인기를 끄는 걸 보세요.

 

지 - 그런 걸 노리고 빨갱이 발언들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게 운동을 하는데 심리적으로 걸림돌이 많이 되는 것 같거든요. 괜히 나서서 발언을 하는데 대한 공포감이 아직도 있는 것 같구요.
하 - 활동가들과 조직운동가들에게는 굉장히 큰 걸림돌인데요. 노동자대중운동 속에서 통일 문제는 큰 걸림돌이 아니예요. 그리고 빨갱이라는 색깔 논쟁이나 이런 것들이 노동조합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하는 대중활동 속에서는 아직은 큰 장벽은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먹고 살자고 사회 전체에는 별로 유익하지 않은 투쟁을 하는구나' 하는 이런 정서가 큰 장벽이예요. 자신의 활동에 대한 정당성이나 철학을 가지기 상당히 어려운 조건들입니다. 노동자들이 임금인상 투쟁을 하면 회사의 경영이 어려워지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나를 위해서 한푼 더 받기 위해서 싸우는구나' 하는 이런 정서를 저 깊은 곳에서 떨쳐버리지 못하거든요.

 

지 - 노동운동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에는 보수언론들의 보도 태도도 한 몫하는 것 같은데요. '이 가뭄에 파업이냐?'고 하기도 하구요. 고액연봉자들이 파업을 하느니, 노동귀족이니, 이기주의니 하고 매도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실상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게 아닌데도 말이죠.
하 - 잠깐만 기다려보세요. 제가 오늘 저녁에 할 강의 때문에 뽑은 자료가 있는데, 그걸 가져올께요. 이 기사 제목들 좀 보세요. '노조 하나에 계파만 9개', '대안없는 반발 목소리, 파업 후에 남은 것은 분열 뿐', '대사업장도 외면하면 산별투쟁', '노조원 설득못한 투쟁노선' 이런 걸 보면요. 얼마나 웃기는지 몰라요. 얼마나 노동자들에 대한 이미지를 왜곡하는지 알 수 있는데요.

 

 '노조 하나에 계파만 9개'라는게 조합원 37,000명이었던 당시 현대자동차 얘기하는거예요. 그 정도의 조직원을 가지고, 전국 사업장의 영업소까지 수십, 수백개가 흩어져 있는 조직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나' 하고 고민하는 조직이 9개 정도 있는게 문제냐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아홉 개의 조직이 선거철만 되면 항상 세 개 정도로 통합이 됩니다.

 

 굉장히 훌륭한 민주주의 훈련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거거든요. 근데 이 기사만 보면 '죽일놈들'이 되는거죠. 그 다음에 '대안없는 반발 목소리'라는 것은 철도노조나 발전노조에 대해 "민영화를 어떻게 하면 합리적으로 할 수 있나를 따지지 않고, 니네들은 왜 반대만 하냐?"고 하는건데요.

 

 어차피 민영화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을 해도 노동조합은 전술상 전면철회를 처음에는 요구할 수도 있어요. 전술의 하나거든요. 그런데 지금 현재 철도나 발전의 민영화가 경제에 유익하지 못했다는 분석이 벌써 나오고 있구요. '파업후에 남는건 분열뿐'이라고 하는데, 파업 후에는 항상 분열이 남아요. 그게 정상입니다.

 

 노동조합이 대중조직이기 때문에 파업을 통해서 얻은 것이 모든 조합원에게 공평하게 돌아가는 것이 어려워요. 어떤 사람은 이익을 많이 보고, 어떤 사람은 적게 보고, 심지어는 손해를 보는 사람도 있어요. 이런 건 당연한거거든요. 그 다음에 '대사업장도 외면하는 산별투쟁', 산별투쟁은 원래 대사업장은 외면하게 되어 있어요.

 

 산별투쟁이 뭐냐하면 조합원이 37,000명인 현대자동차가 조합원이 50명인 다른 금속사업장과 똑같은 자격으로 싸우는게 산별투쟁이거든요. 끊임없이 대사업장 노동자를 설득하면서 하는 것은 산별투쟁입니다. 노조원 설득못한 투쟁노선, 원래 노동조합이라는 것은 노동조합 집행부가 의지를 가지고 노동자 대중을 끊임없이 설득하면서 하는게 투쟁이거든요.

 

 51%가 찬성한 안을 가지고, 49%를 끊임없이 설득하면서 하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거든요. 이게 근대화과정 100년 속에서 잘못된 역사로 인해 어렵게 가게된 거거든요. 한두해에 있었던게 아니기 때문에, 태어날때부터 이런 것에 완전히 찌들었는데, 오히려 이 정도의 이성적인 판단을 하게 된게 기적이죠. 이 잘못된 정보와 선전의 홍수 속에 살면서.

 

지 - 아까도 '노동조합은 원래 이기적인 것'이라는 말씀도 하셨는데요. 우리는 수구기득권들의 잘못에는 그냥 싸잡아서 '저것들은 원래 나쁜 놈들이니까'라고 우리와 다른 세계의 사람들처럼 얘기하고, 진보진영에 있는 사람들의 정당한 요구는 이기심으로 매도하는 풍토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건 보수 언론이나 이런 쪽 말고, 진보진영 스스로도 그런 프레임에 갖혀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당연히 이런 목소리를 내니까 더 깨끗하고 정당해야돼'라고 생각하는 건 옳은거지만, 지나칠 경우 이쪽의 활동을 위축시킬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하 - 내부에서 끊임없이 비판들을 해요. 그건 당연한거예요. 그걸 외부에 대고 노동운동을 공격하는 도구로 사용하니까 문제가 되는거지, 내부에서는 얼마나 치열하게 싸웁니까? 서로 비판을 하고. 저도 매일 노동자들 만나서 반성을 해야한다고 얘기합니다.

 

특히 대기업 노동자들 만나서 '당신들이 대자본가와의 관계에 있어서 자기 스스로의 권리를 축소시키는 것은 반사회적이고, 반동적인 처사지만, 그 방법 외에는 비정규직을 끌어안을 수 없다면 전술적으로 그 방법을 선택해야 된다. 당신들이 좀 손해를 보더라도'라고 얘기하죠. 그런데 노동문제에 대해서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보통 사람들, 조선일보쪽 생각에 찌들어 있는 사람들, 자신이 모르고 있는 것조차 모르고 있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다 보고 있는 매체에서 주로 노동운동을 공격하는 것은 유익하지 않다고 봅니다.

 

지 - 예전에 단병호 민주노총 전 위원장께서도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하셔 가지고 비판을 받은 적이 있지 않습니까? 노동운동에 대해 늘 부정적인 조선일보 같은 매체를 상대한 것은 철저하지 못했던 것 아니냐는 비판이었는데요.
하 - 그러셨더라구요. 그런데 안그런 분들이 더 많죠. 문부식씨 같은 사람들이 문제가 되는거지, 만나면 개인적으로 물어보고 싶어요. 어떤 논리와 어떤 심정으로 그 인터뷰에 응했는지. 단병호 위원장이 안티조선 운동에 대해서 깊이 이해하지 못해서 그랬다고 생각을 해요. 안티조선운동이라는 것은 지식인들의 양심적인, 지사적인 운동이거든요. 이해득실을 따져가면서 하는 과학적인 행동이라기 보다. 그런 걸 공유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지 - 요즘 언론개혁운동이 열린우리당의 당파적인 운동으로 전락한게 아니냐는 민주노동당 지지자들의 비판이 많이 있는데요. 그렇게 볼 수 있는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 지지자들의 태도를 일정 정도 비판할 수 있지만, 여전히 언론개혁운동은 필요한 것 같은데요. 이 문제는 어떻게 풀어가야한다고 보십니까?
하 - 올바르고 공정한 언론이 여기쯤 있다고 쳐요. 그럼 한나라당은 아주 오른쪽에 있어요. 민주노동당은 한참 왼편에 있구요. 열린우리당은 그 가운데 어디쯤 있겠죠. 지금은 언론이 적극적으로 열린우리당이 지향하는 쪽으로 따라오는 것이 진보의 방향입니다. 그런데 절대 여기서 머무르면 안돼죠. 민주노동당 정도의 수준까지 와야 공정한 언론이 되겠죠.

 

 지금은 언론뿐 아니라 정치적인 정서도 마찬가지인데, 한나라당과 같은 정당은 세계정당사에 거의 없거든요. 어떤 사람들은 한나라당이 미국의 공화당 정도의 성격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절대 안그렇거든요. 열린우리당이 미국 공화당 정도되는 보수적인 정당이고, 미국의 민주당은 우리나라에서는 오히려 민주노동당과 가까울 정도의 진보성을 가지는 정당이거든요.

 

 한나라당처럼 거의 범죄적 성격을 가진 세력이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정당은 역사 속에서 다른 나라에 별로 있은 적이 없어요. 정범구씨 같은 경우는 '한나라당은 역사속에서 소멸해야될 정당이다. 소멸할 것이다'고 하거든요. 앞으로 한국 정치는 열린우리당 같은 보수당, 민주노동당과 같은 진보적인 성격을 가진 정당들이 앞으로 정치 지형을 이끌어갈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한나라당 입장에서 볼때는 지금 언론개혁운동이라는 것이 일방적으로 열린우리당쪽 방향인데, 지금까지는 그 방향이 민주노동당의 방향과 일치합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가 가지고 있는 한계가 명백히 있어요. 노동운동에 대해서 적대적인 입장을 가진다는 건데요. 열린우리당은 미국의 민주당보다 보수적이라고 평하는 이유가 최소한 미국의 민주당은 노동운동에 대해 적대적이지 않아요.

 

 미국에서는 항상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는 미국노총의 동의를 얻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고, 미국노총의 동의를 얻지 않고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된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열린우리당은 최소한 노동운동에 대해서 적대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론도 열린우리당과 함께 개혁작업을 추진하면서 거기에 머무르면 안되는거죠. 그때부터 보수반동이 되는 겁니다. 아마 거기서 머무르지 않을 겁니다.

 

지 - 그걸 개혁의 한계로 보시는 겁니까?
하 - 현 정부가 가지고 있는 돌파력의 한계죠.

 

지 - 현 정부가 갈 수 있는게 이 정도라고 보고, 지지자들이 왼쪽으로 끌어오기 위해 비판을 많이 해줘야한다는 얘기들도 있는데요.
하 - 국민의 힘 이런데서 열심히 활동하는 후배들을 만나면 '우리도 그걸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드물게 있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총력을 기울여서 노무현 정부의 개혁이 가능하도록 해야되지 않느냐'고 하기도 하는데, 김영삼이 민자당에 들어 갔을때도 그런 논리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김문수씨가 거기 들어갔던거구요. 이번에 김문수씨가 10만명이 시청 앞에 모여서 집회했을 때 가서 한 얘기보세요. 그렇게 되면 안되지.

 

지 - 김문수 의원 같은 경우를 보면 '정치인도 소시민처럼 하나의 직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때가 있던데요.
하 - '저 사람도 한나라당내에서 소수파니까 자신의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천박한 보수세력이라도 끌어안아야 되는 절박한 처지에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지 - 현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쪽에서는 지나치게 노동자의 편을 든다고 하고, 노동계에서는 기업의 편을 든다고 하고 있는데요.
하 - 평가하기 힘든데, 정책을 일관하는 철학이 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개인적인 면면도 제가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역사 의식으로 무장된 조직활동 속에서 단련되었던 사람들은 별로 없어요. 자유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건데, 지금 현재 한국 사회의 구조는 노무현 정부가 가지고 있는 자유주의적 성향의 권리도 얻기가 상당히 힘든 구조인 것 같아요. 노무현 정부의 개혁성이 이 권력구조를 돌파할만큼의 힘과 의지를 가지고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인권변호사 출신이 대통령도 하고, 장관도 하고, 청와대 곳곳에 포진하지 있는 정부에서 어떻게 이렇게 반인권적인 노동정책이 나올 수 있는가 하고 사람들이 의아해했는데, 그동안 인권변호사 출신이라는 표현의 '인권'에 사람들이 많이 주목했다면 이제는 이 사람들이 변호사들이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거죠. 태생적인 한계라고 볼 수 있을 것 같구요.

 

 처음에는 저도 헷갈렸어요. 노무현 정부가 처음에 친노동자적 정부라고 얼마나 욕을 먹었습니까? 그래서 보수세력을 끌어안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노동자를 공격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봤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보니까 실제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주변에서 고생하고 활동하는 후배들 만나봐도 저를 만나서 대기업노동자, 기득권을 공격하고, 구체적으로 '대기업 생산직이 1년에 5천만원 받는다잖아'하면서 정책 입안에 권한을 가진 후배까지 그렇게 얘기를 하는 걸 보면 실제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지 - '헤게모니를 소위 중산층 노빠들이 장악을 했는데, 그 사람들이 원하는 수준의 개혁이 그 정도일 것이다'라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하 - 제가 알고 있는 사람들은 중산층이 아니거든요.

 

지 - 아까도 "가장 개혁적인 대통령이 집권한 상황에서 노동자의 권리는 퇴행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하 - 그건 피부로 느껴요. 대통령이 여러번 바뀌는 동안 지금처럼 힘든때가 없었어요. 노동자보다 훨씬 잘사는 사람들이 노동자 앞에서 이렇게 당당한 적이 없었어요. 한미은행 노동조합이 여주에 있는 노천교육원에서 파업을 며칠째 벌이고 있을 때 의사들 중에 양심적인 의사가 모인 단체가 있잖아요.

 

 거기서 장기파업장 건강검진 봉사활동을 다녀요. 그런데 거기 갔다 왔다는 겁니다. 밤 12시 넘어서 의사 후배가 전화를 했는데, 갔다 와서 내부에서 굉장히 논란이 있었다는 거예요. 가니까 연봉 오천만원, 육천만원씩 받는 노동자들이 있다는데, 이런 사람들까지 지원을 해야 되느냐고 했답니다. 그래서 전화를 끊고나서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까 의사들 자기들 수익하고 비교해봤거든요. 노동자들보다 훨씬 더 잘사는 사람들이 그렇게 당당하게 노동자들을 꾸짖는 때가 그동안 없었어요.

 

 제가 노동문제하고 관계없는 사람들을 만날때가 있는데, 고등학교 동창이나 교인들을 만나면 '노동자들이 1년에 5,000만원 받는다'고 비난하고, '청소부도 한달에 120만원도 받는답디다',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이 에쿠스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예요. 그런 사람들이 그동안 그렇게 기고만장한 적이 없었거든요. 그러면서 태풍이 몰려왔다고, '태풍이 몰려와서 난리가 났는데, 파업해도 되나'라고 얘기합니다.

 

 제가 한마디도 안했는데, 그렇게 먼저 대놓고 이렇게 얘기할때가 없었습니다. 그건 큰 착시현상이고, 퇴행하고 있는 겁니다. 노동자들의 권리가 존중되는 정서가 한번쯤 사회에 자리잡고, 그것이 도가 지나쳐서 사회발전에 해롭다고 하면 그렇게 얘기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우린 거기까지 못갔거든요. 정상화된 상태에 한번도 오지 못한채 다시 퇴행하고 있는 겁니다.

 

 한번쯤은 노동자의 권리가 존중되는 것이 정상적인 사회 정서로 역사속에서 자리를 잡고, 그리고 나서 '지나치게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다보니까 사회에 해롭다'는 얘기가 나오는게 정상인데, 우리는 거기까지 간게 아니거든요.

 

지 - '노동과 건강'과의 인터뷰에서 "인권변호사 출신이 대통령이 되고, 민정수석이 되고, 국정원장이 되고, 법무부 장관이 됐다. 근데 무슨 일이 벌어졌나. 집시법이 개악됐고, 테러방지법이 만들어졌다. 이건 한나라당이 밀어부친게 아니라 노무현 정부의 작품이다. 그래서 내가 노동자들에게 말한다. 아하, 그 사람들은 원래 인권에 초점을 맞춰 이해하면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변호사라는 게 중요하다. 변호사가 누구냐. 제도권이 부여하는 최고의 특권을 쥔 사람들이다. 개혁은 태생적으로 불가능한 거였다고 말한다"고 하셨는데요.
하 - 정확하게 그 표현은 아니지만, 그 취지의 얘기를 했어요. 제가 변호사들로부터 도움을 받으면서 노동활동을 오래한 사람으로서 예의에 어긋나는 말인지 모르지만, 제가 창안해낸 표현이 아니고 누군가 방송에서 그렇게 표현하는 걸 들었어요. 그래서 참 일리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 거거든요. 그러니까 노무현 정부와 같은 정부가 계속 집권을 한다고 해도 파병이 철회되거나 하기는 어려울거라는 겁니다.

 

 그 정권의 성격의 한계라는 거죠. 집시법이 개정되고 이런 것은 집권세력 내부의 세력관계가 있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경찰들의 주장이 10분 받아들여진거거든요. 안기부의 주장이 10분 받아들여진거거든요. 그러니까 이걸 내부에서 적절하게 통제하지 못한거죠. 노무현 정부가 그걸 옳다고 믿는다기 보다. 예를 들어서 천하의 세원테크에서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노동자가 한명은 죽고, 한명은 가사상태에서 몇 개월간 신음하고 있습니다.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그런 사업장의 관할 경찰서에 노사화합에 공헌한 공로로 경찰의 날에 대통령이 표창을 했거든요. 그런데 실상을 알고 그렇게 했을거라고 믿지는 않습니다. '집권 세력내에 이런 것이 제대로 전달될 수 있는 통로가 확보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에 저런 코미디가 생기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죠.

 

 노무현 대통령이 실상을 알고도 대통령 자신의 이름으로 그 경찰을 포상했을 것이라고 이렇게 믿고 싶지는 않은겁니다. 예전에 현대중공업 정문에 드러누웠던 그 모습을 아직도 사람들은 기억하니까요. '나를 밟고 지나가라'고 했던 그 모습을 사람들은 기억하니까요. 그런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과 똑같지는 않을 겁니다.

 

지 - 예전에 파업현장에서 했던 얘기들 때문에 공격도 많이 받았지 않습니까?
하 - 보수세력들에게는 좋은 공격 수단이 되죠.

 

지 - 1년에 300회 이상 노동에 관한 강연을 다니신다고 알고 있는데, 요즘도 계속 그렇게 하십니까?
하 - 아마 그 정도 될 겁니다. 많이 줄이려고 애쓰고 있는데, 세어보지는 않았어요. 사람들은 항상 그런 걸 궁금해해요. '하루에 몇 명이나 만납니까? 강의를 몇 번이나 합니까?' 그러는데, 우리가 하는 일을 개량화하는걸 정서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래서 계산해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지 - 저도 가끔 그런 질문을 받는데요. '몇명이나 인터뷰했냐?' 이런거.(웃음)
하 - 사람들은 꼭 그런 걸 궁금해하죠?(웃음) '민주노총에 있는 변호사는 얼마 받습니까?', 이런거. 그래도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우리 사회에서 착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죠.

 

2부에서 계속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시비돌이 > 하종강 소장 인터뷰(2)

 

지 - 말지 인물탐구에 보면 "무슨 대학교수도, 변호사도, 박사도 아니고 그 흔한 자격증 하나 없는 하종강을 노동자들은 대체 왜 그리도 '애타게' 찾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이 있던데, 스스로는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 - 제가 20년 넘게 했으니까 안한 사람보다는 잘 하겠죠. 제가 남과 좀 다르다고 스스로 평가하는 게 있는데, 노동자들과 정서적으로 일치되기 위해서 굉장히 노력한 경험이 있구요. 처음에 노동자들을 만나면서 노동자들의 정서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어떤 훈련을 했느냐 하면, 노동자들이 쓴 수기들을 있는데로 다 모았어요. 노동자들이 똑같은 주제에 대해서 표현하는 것이 의식의 단계에 따라서 다르거든요. 고향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아주 초보적인 노동자는 두고온 고향을 그리워하는 수준입니다.

 그런데 상당한 수준에 있는 활동가는 고향 그러면 우리나라 농업문제를 생각해요. 이런 것이 노동자 수기에 보면 나타나요. 의식의 단계에 따라. 그래서 그걸 몇가지 주제로 대학노트에다가 그 주제에 해당하는 노동자들의 표현을 오려서 의식단계별로 4개 정도로 분류해서 붙이는 이런 직업을 한 1년 가까이 했는데, 그게 굉장히 많이 도움이 됐습니다. 그게 재산이 됐구요. 노동자의 정서에 쉽게 소명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끊임없이 경계하는 것은 제가 '교육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은 욕망을 제어하는 겁니다. 그것이 '정해진 시간동안 이 사람들에게 정말 어떻게 이 내용을 올바르게 전해줄 수 있을까' 하는 그 절실함 외에 '내가 오늘 교육 한 번 잘해서 잘했다는 말 들어야지' 하는 욕심이 앞서지 않도록 경계합니다. 그건 제가 후배들한테 늘 하는 충고거든요.

 제가 인터뷰를 저보다 더 전문적으로 하시는 분 앞에서 얘기하기가 쑥스럽지만, 한겨레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에 대해서 기록할때도 '야 정말 하종강 인터뷰 잘한다' 이런 말 듣고 싶다는 욕망을 계속 억제하려고 애썼구요. 내가 만난 이 사람이 몇시간동안 해준 이야기를 얼만큼 진실되게 알찬 대응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이것에 정말 절실하게 신경을 써야지, 뭔가 잘하고 싶다는 욕망, 잘한다는 말을 듣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지 않도록 스스로에게 최면을 많이 합니다.

 그래도 바쁘고 힘든 와중에 그 시간을 내서 거기에 와서 앉아 있는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에게 제가 제대로 교육하지 못하면 귀중한 시간을 뺏는거니까, 그건 거의 죄악이거든요. 그런 생각을 항상 합니다. 그걸 못했다고 하면 며칠 동안 후회가 되고, '왜 잘하지 못했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 - 그런 태도가 20년 이상을 하실 수 있었던 힘이 될 수 있었던 것 같은데요. 그래도 인간이니까 간혹 섭섭할때가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웃음)
하 - 간혹이 아니라 굉장히 많아요.(웃음) 

지 - 저 같은 경우는 인터뷰를 하고 나면 저보다는 인터뷰 대상자가 훨씬 잘보이는 인터뷰를 해왔다고 평가를 받는데요. 간혹 어떤 분들은 김어준 총수와 비교하면서 '김어준의 인터뷰는 김어준의 재기발랄함이 보이는데, 니 인터뷰는 왜 그렇게 밋밋하냐?'고 하시거든요. 분명히 스타일이 다른거고, 둘 다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웃음)
하 - 김어준 인터뷰를 그렇게 평가하는 사람도 있지만, 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취향은 아닙니다.(웃음) 단병호 위원장 만나서 물어보는게 '정력은 횟수입니까? 지구력입니까?', 이런 식의 질문을 꼭 해야 하나요? 별로 의미가 없지, 저는 '신발 사이즈가 얼마예요?'라고 물어본 적은 있지만, 그 정도에서 그쳐야죠.

지 - 20년 이상 강의하시면서 현실적으로 몸으로 일하는 노동자들과 많이 부딪히셨는데요. 그러면서 스스로 변한 부분은 어떤게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하 - 변화한 부분이 뭐냐? 그건 인터뷰하면서 처음 들어보는데... 스스로 변화한 것, 글쎄요. 내가 처음에 각오했던 것보다는 지금 굉장히 잘 살고 있다는 거구요. 그때 각오했던 수준에 비하면 사치스럽게 사는거죠. 집사람의 경제적인 능력에 힘입은 바가 크지만, 제가 집도 가지고, 차도 가지고 살게 될거라고 생각 못했거든요. 그게 많이 달라진거구요. 생각에는 고지식할 정도로 달라진게 없는 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달라져야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합니다. 일방적으로 너무 노동자편향적이라는 말을 듣는 건 알거든요. 그런데 그건 의도적이기도 한데, 대학교 다닐 때 학생처장이 한 말이 있습니다. 나중에 총장한 양반인데, '자네에게 불만이 있는데, 자네는 박정희 욕은 그렇게 하면서 김일성 욕은 한번도 안하나, 불공평한거 아닌가' 라고 얘기를 하셨어요.

지 - 그런 얘기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으니까.(웃음)
하 - 김일성 나쁘다는 사람은 우리 사회에 흘러 넘치는데, 박정희 나쁘다고 하는 사람은 없지 않느냐, 사회적 균형을 맞추려면 우리 같은 사람은 전심전력을 다해 박정희 욕만 해도 시간이 모자랄거라고 얘기했는데요. 지금 노동운동이 잘못하는 것에 대해서도 공평하게 얘기해야되지 않겠느냐, 잘하는 건 잘한다고, 못하는 건 못한다고. 그런데 가끔 드는 비유 중에 남사당패 줄타는 광대가 줄 위에 올라갈 때 부채만 들고 올라가는데, 부채는 항상 광대의 몸이 기울어지는 반대편으로 펼쳐져야 되거든요.

 이것도 사실은 김형수 시인이 어느 잡지에 쓴 표현을 본거예요. 엄정중립을 유지하겠다고 부채를 가운데다 놓으면 바로 떨어져버리거든요. 자신이 얼만큼 옳은 말을 하는가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한 말이 사회에 옳은 영향을 미쳐야해요. 우리 사회가 노동운동에 대한 그릇된 혐오감으로 팽배해있는데, 거기서 공정하게 노동운동을 객관적으로, 합리적으로 비판했다가는 대중의 정서에 노동조합에 대한 혐오감을 그릇되게 양산시키는 효과를 가져오거든요. 그러면 하고 싶은 말도 참아야죠. 자신이 하고 싶은 표현을 스스로 제약할 필요가 있을 때가 있습니다.

지 -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 관해서 "우리 사회가 노동조합이나 노동운동에 대해서 얼마나 오랫동안 국민들에게 그릇된 혐오감을 주입시켜 온 사회인지 설명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우리 사회는 노동조합이나 노동운동이 사회에 유익하다는 정서가 정상적으로 자리 잡아 본 적이 역사적으로 한번도 없거든요"라고 말씀하셨는데요.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들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하 - 홍세화씨 같은 경우는 노동자들이 공부해야한다고 강조하구요. 그리고 제도적으로, 구조적으로 바뀌어야죠. 서서히 바뀌고 있고, 전교조 교사들에 의해 학교교육과정이나 교육내용이 많이 바뀌고 있구요. 노동부가 드디어 선진5개국 노동계의 실태조사를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수백 페이지 보고서를 보니까 입이 벌어져요. 독일에서는 수업시간에 노동문제에 대해서 공부할뿐만 아니라 초등학생들이 교실에서 모의 노사교섭을 해요. 경영진측, 노동조합측으로 나눠서 임금교섭도 하고, 단체별로 계약을 체결하는 활동을 초등학교때부터 해봐요. 우리도 서서히 그렇게 되는거죠.

지 - 보통 노동운동에 대한 비판...
하 - 노동운동이나 노동조합에 대한 그릇된 혐오감에 우리가 얼마나 찌들어 왔는지를 설명하면 때묻지 않은 학생들은 그런 질문을 해요. '그럼 정부에서 기업들이 다 조사해서 노동조합이 없는 회사는 조치를 취해야되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왜 그런걸 나라에서 안하고 있나요?', 그렇게 물어보는 학생이 있었어요. '아, 발상의 전환이 이런거구나. 때 묻지 않은 시선으로 보면 이렇게 보이는구나' 하는 걸 느꼈습니다.

지 - 우리가 너무 자본 위주로 생각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때가 많거든요.
하 - 자본 위주로 생각한다는게 자본가의 이익에 봉사한다는게 아니라 '노동자가 임금인상을 요구하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고, 그럼 경쟁력이 떨어져서 국익에 해롭다, 수출이 저하되서 나라 전체에 해롭다'는 생각에서 못벗어난다는 것입니다. 수십년동안 우리 사회에서 여기까지만 생각하기를 바라고, 사람들을 훈련시키고 가르쳐온거죠.

지 - 예를 들어 지하철 같은 경우 사람이 떨어져 죽는 사고가 자꾸 일어나면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안전대책을 세워야할 것 같은데, '돈 많이 들잖아'라는 생각을 먼저 하는 것 같거든요. 만약에 누가 그런걸 요구하면 '쟤, 유난떠는거 아냐?' 그렇게 생각해왔지 않습니까?
하 - 평등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부딪혔을 때 스스로 깜짝놀라는 경우가 있는데요. 예를 들어 박노자 교수 같은 경우는 '한글은 세종대왕이 만들었다고 하는게 아니라 집현전 학자가 만들었다고 하는게 옳은거 아닌가요?'라고 합니다. 외국사람들은 대체로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 것 같아요. TV 유선방송을 보니까 관광객들에게 똑같은 실험을 각나라별로 해봤는데, 관광버스 운전기사가 술에 만취된 듯이 연기하는 거예요.

 그런데 영국 사람들은 굉장히 분노했어요. 기사를 교체시켜달라고 요구했구요. 미국 사람들은 '이 나라에서는 술을 마셔야 운전이 되나 보지?'하고 기사를 바꿔달라고는 요구했지만, 굉장히 개인주의적인 사고 방식을 드러냈어요. 독일 사람들은 이 기사를 교체해달라고 관광회사에 요구하면서, '해고는 하지 마라. 이 사람도 가족이 있을 거 아니냐, 이 사건 하나 때문에 해고하는 건 가혹한 거 아니냐'는 요구를 하더라구요.

그게 평균적인 정서라고 보는거죠. 우리가 독일, 프랑스, 영국 등 대표적인 사민주의적 정권이 몇차례 집권을 했던 대표적인 선진국만 그럴거라고 오해를 하지만, 똘레랑스가 그런데만 있을거라고 생각하지만, 이탈리아도 마찬가지거든요. 한 라디오방송사의 통신원이 얘기하는데, 한 지방소도시의 버스회사가 5년간 300회를 파업했데요.

 5년동안 300회나 파업을 해서 도시교통이 마비가 됐는데, '불편하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에 주민들의 반응이 '그 사람들도 파업할 이유가 있어서 했겠죠. 내가 지금 불편하다고 해서 그 사람들 비난하면 내가 파업할 때 누가 날 이해하겠어요?'라고 하는데, 1년에 파업 한두번 한거 가지고 그런게 아니거든요. 3년동안 500회 파업을 한 도시에서 주민들이 그런 반응을 보이는데, 전세계에서 소매치기가 가장 많다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그 정도인거거든요.

 우리나라가 노동자의 권리에 관해서는 비이성적인 정서가 있는 나라죠. 여성의 권리가 신장되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잖아요. 장애인의 권리가 확대되는 것이 사회가 진보하는 방향이라고 다 인정하는데, 그런 사람들 중에서조차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의 권리가 확대되는 것은 사회에 이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지 - "정규직 노동자들이 기업을 상대로 임금인상 투쟁을 하면 기업은 이 손실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더욱 억압하면서 만회하는 경우가 많다"는 말씀도 하셨는데, 이런 점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을 원망하기도 하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하 - 그런 분들이 있는게 아니라 대부분 그런 정서를 가지고 있어요. 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 - 그것이 보수세력의 노동운동에 대한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것 같기도 한데요.
하 - 대기업노동자의 기득권을 공격하는 사람은 크게 보면 두 종류인데요. 노동운동이 그렇게 타락하기를 바라면서 공격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은 사용자단체죠. 정부도 그런 편이구요. 현대중공업노동조합이 대기업 노동자의 기득권에 가장 대표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을 때 현대중공업노동조합에 대해서 아무 소리도 안했어요.

 노사 협조주의를 표방하는 자기 편이거든요. 실제로 노동운동의 장래를 걱정하고, 노동운동이 도덕성과 정당성을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걱정하면서 그걸 비판하는 사람이 있어요. 비판하는 목소리는 그렇게 두가지로 구분해서 봐야하구요. 전제는 노동자 사회내의 차별을 철폐해야한다는 겁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철폐해야한다는 겁니다.

 또 다른 전제는 그것이 정규직 노동자의 권익을 축소시키는 방식으로 차별을 철폐하는 것은 사회 전체에 해롭다는 겁니다. 우리 경제에 유익하지 않다는 거예요. 기업의 수출이 줄어드는 것보다 더 해로워요. 그러니까 대기업 노동자들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면 기업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통해 손실을 만회한다, 그래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이 더 열악해진다, 그러면 대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인상분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몫에서 만회하려는 자본의 행태가 나쁜거죠.

 이 사람들이 나쁜놈들이지, 그러니까 이럴 때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가 같이 힘을 합쳐서 자본가와 싸워야지, 비정규직 노동자가 자본가와 정규직 노동자를 한쪽에 놓고, 자신의 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사회발전에 유익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실질적으로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차이가 큰 게 사실이니까 정규직 노동자는 자신들의 권리를 일정부분 양보하는 것이 우리 사회 전체에 유익하지 않지만, 전술적으로 양보하는 방법을 선택할 필요가 있는 겁니다.

 이 방식이 아니고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끌어안을 수 없습니다. 한 사업장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이 임금인상 투쟁을 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까지 같이 인상시켰어요. 그런데 예를 들어 정규직은 8만원, 비정규직은 6만원 인상시켰어요. 그런데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임금이 원래 낮았기 때문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가 더 벌어져요.

 정규직은 5만원, 비정규직은 10만원이 인상이 되어야지, 차별이 철폐될텐데, 언젠가는 그렇게 되겠지만, 지금 처음 시작부터 이렇게 성공하기 어렵거든요. 분명한 것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을 위해 같이 싸우지 않았다면 그런 인상도 힘들었거든요.

 그러니까 이런 긍정적인 면들을 자꾸 봐야되는거죠. 마찬가지로 대규모 금속사업장의 산별노조 전환의 결의가 부결되었다는 것을 자꾸 비관적으로 보거든요. 조합원 4만명 이상되는 조직이 조합원 2∼300명짜리 조직과 같은 자격을 가지는 조합원이 된다는 것, 자신의 기득권을 일정 부분 포기해야되는 결정을 해야되는데, 이건 노동법상 규약사항이어서 2/3 이상이 찬성해야 법적이 효력이 생겨요. 그런데 2/3가 되지 못했을 뿐이예요.

 2/3에 약간 미달되었을뿐이지, 지금까지 보면 과반수는 훨씬 넘었거든요. 이게 얼마나 희망적이예요. 오히려 기대할만한 일이죠. 수만명의 조직을 가지고 있는 조직이 수십명 또는 수백명을 가진 조직과 같은 자격을 가지는, 자기 기득권을 포기한 결의를 하는 사람이 과반수가 넘었습니다. 그러니까 점점 이런 사람들이 많아질거라고 활동가들은 생각하는거죠. 희망적인 측면을 봐야죠. 솔직히 그걸 기적이라고 생각 안하세요? 절반이나 찬성을 했는데.

지 - 그런 것을 많이 알려야되는데, 언론들이 부정적인 측면만 자꾸 부각시키지 않습니까?
하 - 그 사람들은 알고 의도적으로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거 밖에 안보이는거예요. 신문 기사의 제목을 뽑는 것을 보면 그들이 악의적으로 노동운동을 매도하기 위해서 그런 제목을 뽑는 사람들은 조선일보와 경제신문 밖에는 없어요. 그리고 나머지 보수언론들은 그 토양속에서 수십년을 살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오는 거예요. 노동조합에 대한 비판적인 제목들이 자연스럽게 뽑히는 거죠.

지 - 보통 보면 조선일보가 어떤 기사를 쓰면 다른 신문들이 그 프레임대로 기사를 작성하고, 진보진영 역시 그 프레임대로 사고하는 경우가 많이 있지 않습니까?
하 - 거짓말을 계속하면 기정사실이 되는 효과가 있잖아요. '방귀가 잦으면 똥을 싼다'는 표현을 하기도 하는데, 저는 조선일보를 가끔 보거든요. 일부러 보지는 않고, 눈에 띄면 보는데, 볼때마다 깜짝깜짝 놀래요. 이정도까지 하나 싶어서. 그런데 그걸 매일 접하는 사람들은 그 어마어마한 주장들의 한 10% 정도는 사실일거라고 믿거든요. (최소한 노동문제에 관해서는) 사실은 10%도 사실이 아닌데, 120% 거짓말인데, 그러니까 계속되는 기만 속에서 이것이 100% 거짓말일거라는 것을 상상하지 못하는 거거든요. 자신들이 행간의 의미를 걸러서 읽는다고 착각하는 겁니다. 한 10%나 20%는 진실이겠거니 하는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지 - 지하철에서 가끔 주워읽기도 하는데요. 동아일보도 장난이 아니던데요.
하 - 동아일보는 이번 정부 들어서서 자기들이 개혁의 대상이 된 점을 알고, 자기 목에 칼을 들이대는거라고 생각하고, 저항하는거죠. 그들은 역사의식이나 철학을 가지고 하는게 아니라 눈앞의 이익 때문에 비이성적이 되는거죠.

지 - 이 일을 하시면서 가장 힘들었을때가 언제입니까?
하 - 저는 사실 힘들었을때가 별로 없었어요. 90년대초에 세계사적인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을 때 당연히 세계관의 혼란을 겪었죠. 사회주의 국가들이 전부 몰락하고 그랬을 때 겪었는데, 저는 참 다행스럽게 그 와중에도 일이 있었어요. 어떤 일이냐 하면 내가 오늘 이 진정서를 붙들고 하루밤 고생하면 저 노동자가 따뜻한 밥 한그릇 먹게 된다, 이런 만족감이라고 할까, 그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이 항상 있었어요. 초등학교 교과서 정도의 인도주의적인 원칙을 만족시킬 수 있는 그런 일이 나를 구원했다고 표현했더니,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만 알아듣는 말이라고 하더라구요.(웃음) 그런 일이 항상 저에게 있었다는 것이 그 어려운 시기를 견디게 했을 겁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일하고 있는 위치나 조직이 몇 번 바뀌었는데, 그때마다 저는 전화위복이 되었어요.

지 - 사모님께서 일하시고, 후원하시는 분이 한 분 계신다는 얘길 들었는데요. 그래서 버틸 수 있었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하 - 여성운동하는 사람들에게는 나 같은 존재가 한마디로 죽일 놈이지,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제 처가 특수학교 교사거든요. 장애인들을 가르치는 특수학교 교사로 30년 가까이 해왔구요. 그건 제가 감히 침범할 수 없는 자기만의 영역이예요. 자기가 그렇게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자기만의 영역이 없었다면, 우리 가정이 굉장히 더 힘들었을겁니다.

 남편에게 실망하고, 남편이 가정에 충실하지 못하고, 이랬더라도 자기 일이 있으니까 그 사람은 그 일을 붙들고 견딜 수 있었을 겁니다. 생각이 일단 굉장히 훌륭하다고 얘기할 수 밖에 없죠. 74년 11월에 처음으로 제가 학교에서 총대를 매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그때는 겁나는게 많잖아요. 징역살고 이러는 것보다 20년동안 가꿔왔던 온 가족의 꿈을 포기해야되는, 가문의 꿈을 포기해야되는 결단을 내려야하거든요.

그래서 며칠 학교도 가지 않고, 집에 틀어박혀서 내 방에서 두문불출하고 있을 때 였는데요. 제 처가 그때 제 여자친구였는데, 저한테 편지를 보냈어요. 뭐라고 썼느냐 하면 '니가 지금 결단하지 못하는 이유가 다른 것 때문이 아니라 학교다닐 때 데모 한번 하고 평생 동안 경제적으로 완벽하게 무능력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을 걱정하는 거라면, 최소한 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어릴때부터 교사가 되고 싶었고, 자라면서 한번도 그 꿈이 바뀐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교사가 될거다.

 그래서 우리가 결혼을 하면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도 그 사회의 교사의 생활 수준을 갖는다. 다른게 이유라면 상관할 수 없지만, 학생운동 경력 때문에 경제적으로 무능한 인간이 될 것을 걱정하는 거라면 그런 걱정은 하지마라'는 내용이었어요. 깨알같이 편지에 써서 보냈어요. 제가 그 편지를 증거삼아 아직까지 잘 두고 있습니다.(웃음) 요즘은 우리 후배들이 가끔 처를 만나서 '선배님, 어떻게 그런 결심을 할 수 있었어요?'하고 물어보면 '내가 그때 판단을 좀 잘못했지'하고 농담을 하는데, 아직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어요.

 사람들이 노동운동을 많이 떠날 때 가만히 있는 사람만 멍청한 사람인 것 같이 느껴질때가 있잖아요. 자격증 시험에 매달리거나, 학원 강사를 하거나, 그 나이에 늦게 복학을 하거나, 시민운동 영역으로가거나, 그럴 때 가만히 있는 놈만 바보인가 하는 고민을 며칠동안 하다가 이 일을 계속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제 처한테 '여보 당신 남편이 평생동안 노동상담이나 하다가 죽는 사람이 되도 괜찮겠냐?'고 했더니 '나는 당신이 다른거 할까봐 겁나는 사람이니까 계속 그거나 해라'하고 말하는 사람이예요.

 그래서 제가요. 제가 만난 노동자들은 해고되고, 구속도 되고, 가압류도 당하고, 분신도 하고 그래요. 그런데 저는 우리 사회에서 교사의 생활수준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게 내가 아마 평생 지울 수 없는 부채감일 것 같아요. 1년 몇 개월동안 해고당했다가 분신한 사람 집에 가보면 싱크대, 냉장고에 막 곰팡이 파랗게 슬어있는 반찬을 보고 그래요.

 전 최소한 그렇게는 안살거든요. 교사의 생활수준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래서 전교조 교사들을 만나면 이렇게 누리는 우리가 더 일을 많이 해야한다고 얘기를 하죠. 어느 누구라도 이런 상황이 되면 부채감을 가지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지 - 부채감을 가지면서도 할 수 있다는 것도 대단한 것 같은데요. 그 부채감이 싫어서 도망갈 수도 있지 않습니까?(웃음)
하 - 그 부채감 때문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만큼 제가 양심적이지는 못한거죠. 그러니까 제가 80년도에 수배가 되가지고, 석유가게에서 배달하면서 숨어 있을 때 기훈이처럼 기독교 방송 8층에서 계엄군 탱크위로 떨어져죽는 일 못했잖아요. 근데 기훈이가 그때 쓴 유인물 제목이 '동포여 무엇을 하고 있는가?'였거든요. 어떻게 하라고 한게 아니라. '광주에서 지금 수백명이 죽는데, 동포란 놈이 뭐하고 있느냐'고 하면 평생 뭐라고 대답하겠어요? 숨어있었다고 대답할 수 밖에 없죠.

 근데 장례 치른 선배가 만날때마다 하는 말이 '똑똑한 놈들은 전부다 숨어버리고 멍청한 놈들만 남아서 장례를 치렀다'고 해요. 애새끼들이 얼마나 숨었는지 관을 운구할 놈들이 없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부채감에 시달려서 자살을 선택할만큼 양심적이지는 않은거죠. 인터뷰를 하면서도 민망하네요.

지 - 강연료는 안받으시는 경우가 많을 것 같은데요.
하 - 받아요. 안받는 경우보다 받는 경우가 많구요. 물론 보태주고 와야되는데가 많아요. 이런데서 돈 받으면 지옥가겠구나 싶은데가 많죠.

지 - 보통 다른 분들보다는 적게 받으시죠?
하 - 민주노총이 원래 강사료가 적어요. 어제 안동가서 강의했는데, 규정에 따라서 차비만큼 주시더라구요.(웃음)

지 - 기독교인이신데, 최근 일부 기독교계통의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시위나 친미 성향의 대규모 시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 - 한국의 기독교가 기형적인 기독교여서 그렇거든요. 상당히 부끄럽죠. 근데 기독교에 정통이 있어요. 역사적으로 최초로 기록된 성경은 출애굽기라는 성경입니다. 창세기가 아니라. 누구나 다 인정한 사실인데, 출애굽이 애굽(이집트)에서 탈출한 얘기잖아요. 이집트에서 수백년동안 노예생활을 하던 노예들이 모세라는 훌륭한 지도자를 만나서 노예해방전쟁에서 승리해요.

 그리고 홍해를 건너서 탈출에 성공합니다. 그러면서 기록을 시작한게 기독교의 시작이예요. 기독교는 노예해방으로부터 시작된 겁니다.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믿던 신이 하나님이었어요. 영어로 여호와죠. 그러니까 기독교가 노예종교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하는 전통이 기독교 2,000년 역사에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그 반대쪽의 전통이 들어와서 토착화된거죠. 기독교에 보면 12지파가 나중에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를 가나안땅에 만들잖아요.

 12지파가 재산을 다 공평하게 분담하면서 제사장을 배출했던 레위기파에는 재산을 한푼도 안줘요. 당시의 종교는 권력이기 때문에 종교를 담당하고 있던 지파에게는 한푼의 재산도 주지 않은거예요. 권력을 가진 집단이 경제력을 가지게 되면 또 다른 특권층이 생기는거거든요. 그런데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구조는 수백년동안 자기들이 이집트에서 지겹도록 겪었어요.

 그래서 구조적으로 이걸 막은거예요. 그래서 나머지 11개지파가 자신들의 수입중에 1/10을 걷어서 이 사람들을 먹여 살렸는데, 그게 십일조예요. 그게 다른 종교에는 없습니다. 기독교에만 안식일이 있어요. 6일 일하고 하루는 쉬어야 한다, 그걸 우리 한국 교회에서는 하나님이 6일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7일째 쉬었으니까 인간도 따라서 쉬어야한다는 이것만 가르쳐요.

 그런데 성경에 안식일을 규정한 내용을 살펴보면 거기 뭐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냐 하면 '안식일이 되면 주인인 너부터 반드시 쉬어라. 그래야 너의 남자 종도 쉬고, 여자 종도 쉬고, 너의 집에 온 손님도 쉰다, 니가 열심히 일을 하면 너의 종이 쉬지 못한다. 그러니까 반드시 너부터 쉬어라' 이것은 열심히 노동하는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는 집단에서만 나올 수 있는 계율이거든요.

 이것을 종교적인 측면만 강조하는 것은 올바른 기독교가 아닙니다. 부활이라는 신앙은 기독교에만 있어요. 부활은 불교처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게 아니라 땅에 묻힌 시체가 거기서 생기가 돋고, 육신이 다시 살아나는거예요. 이건 다른 종교에는 없거든요. 왜 기독교에만 부활신앙이 있냐 하면 노예의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노예해방전쟁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전쟁이라고 하더라도, 정당한 전쟁이라고 하더라도 이기는 노예가 많았겠어요? 지는 노예가 많았겠어요? 숫하게 죽었죠. 그러니까 정의로운 싸움에 죽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힘이 필요하냐하면 '우리가 지금은 이렇게 죽지만, 언젠가는 살아나서 원수 갚는 날이 오는거야' 이런 믿음이 필요한거죠.

 우리가 파업 열 번하면 한번 승리해요. 근데 우리가 왜 해요.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이 그렇게 경찰하게 비참하게 깨지면서 마음 속에 어떤 생각을 합니까? '우리가 지금은 비참하게 깨지지만, 언젠가는 우리가 승리하는 날이 오는거야. 이 놈들아. 노동자의 뜻이 옳다고 밝혀지는 날이 오는거야', 똑같은 겁니다. 기독교에 보면 기독교가 노동을 담당하는 계급인 노예로부터 출발했다는 증거가 곳곳에 있어요.

 이런 걸 잊지않겠다고 강조하는 기독교의 전통이 있고, 열심히 복바치면 하나님이 복을 내리신다, 교회에 백원내면 천원으로 갚아준다는 것만 강조하는 전통이 있는데, 우리는 후자가 토착화된거예요. 그러니까 그 인간들 중에 중요한 사람들이 옛날 전두환, 노태우때 '만수무강하시옵소서'하는 조찬기도회 하던 놈들이잖아요.

 그 사람들은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는 자신들이 입바른 소리를 하면 바로 자신들에게 피해가 오니까 용기가 없어서 하지 못했던 것이고, 지금 노무현 정권은 자신을 비판한다고 탄압하는 정권은 아니니까 마음 놓고 저러는거죠. 언론도 마찬가지죠. 조선일보가 과거 군사독재정권에서 끽소리 못하고 있던 것은 자신들이 손해를 볼까봐 두려웠기 때문이고, 지금 이 정권은 언론탄압하지 않을 정권인 것을 아니까 그러는거죠.

 노무현 정부가 그 정도의 수준은 가지고 있는겁니다. 그래서 노동운동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교회를 다닌다고 신기해하는데, 기독교내에서 그런 전통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남미에는 신부들이 게릴라가 돼서 총들고 싸우잖아요. 하기 싫어도 할 수 밖에 없는, 그들의 신앙속에서는 버리지 싶지만, 잡을 수 밖에 없는게 총이거든요.

지 -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의원이 일부 역사 교과서가 반미·친북·반재벌적 시각으로 기술됐다고 문제를 제기하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둘러싸고 보수세력들이 총집결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
하 - 그건 무식해서 그렇죠. 자신들이 무식하다는 걸 모르는거예요. 대학교에 지난번에 가니까 학생들이 강연제목을 '우리가 모르는 대한민국'이라고 붙였더라구요. 최소한 모른다는 것은 아는거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자신들이 모르는 것조차 모르는거죠.

 그 입장에서는 깜짝 놀랄만한 내용으로 보일 수도 있어요. 근데 3.1운동 같은 것에 대해서도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의 영향을 받았다고 계속 가르치던 사람들이 실제 러시아 혁명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았다고 하면 깜짝 놀라는거죠. 무식하니까 친북, 좌경이니 하는 얘기가 나오는겁니다.(웃음) 태평양 바다 건너 미국 대통령의 선언이 더 큰 영향을 줬겠어요? 아니면 바로 붙어 있는 나라에서 일어난 엄청난 역사적인 태풍인 러시아 혁명이 영향을 많이 줬겠어요?

 어느게 영향을 많이 끼쳤겠어요? 3.1 운동이 일어나기 몇 년쯤 전에 일어났던 사건인데, 옳으면 옳은데로, 그르면 그른데로 가르치자는거죠. 그걸 찬양하자는게 아니라. 그래야 올바로 보는 역사의식이 생기죠. 남북전쟁도 링컨 대통령이 훌륭한 인품으로 노예를 평등한 인간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일어난거라고 가르치는 나라니까. 당시 미국의 북부는 급속히 공업화가 진행되어서 공장이 세워지고, 자본가 계급이 형성되면서 해방된 노예들이 물밀 듯이 몰려와서 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동자가 필요한 상황이 되었고, 남부는 목화를 재배하는 수많은 흑인노예가 반드시 필요한 농업경제체제였습니다.

 두개의 상이한 경제적인 이해관계의 충돌로 일어난 전쟁이 남북전쟁인데, 이렇게 안 가르친 나라에서 그런 얘기가 나오면 깜짝깜짝 놀래는거죠. 그런데 우리도 그렇게 될겁니다. 서서히 7차 교육과정에서는 3.1운동에 끼친 러시아 혁명의 영향이 한줄 정도 반영이 됐구요. 전교조 선생님들도 거북선을 이순신이 혼자 만들었다고 가르치지는 않거든요. 한글도 세종대왕이 혼자 만들었다고 가르치지 않구요.

지 - 홍세화 선생님께서"'공무원, 교사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허구적 신화에서 벗어날 때 공직사회의 부패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으며, 마침내 국민에게 봉사하는 진정한 공복이 될 것이다. 교사들 또한 사회구성원에 대한 국가주의 이데올로기 의식화의 마름 노릇을 그만 둘 때 진정한 교사가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공무원노조와 전교조의 민주노동당 지지 선언은 국가의 왼손들이 오랜 동안 빼앗겼던 시민적 권리의 탈환이자 인격주체 선언이며 우리 사회 진보를 위한 거보이다"라고 하셨는데요. 우리 사회에서 교사나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강하게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하 -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는 것은 정권의 하수인이 되지 말자는거지,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가지지 말자는게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공무원이나 교사의 정치적인 활동을 법적으로 제약하는 나라가 전세계에 거의 없어요. 미국에 있었던 해치법이라는 것을 중요하게 내세우는데, 그게 아마 1920년대에 있었던 법일 겁니다. 지금은 미국도 그렇지 않거든요. 공무원과 교사들이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을 억압하는 사회는 거의 없어요. 사회를 그렇게 운영하면 동맥경화에 걸려서 나중에 사회에 커다란 혼란이 발생합니다. 자유로운 의사가 발현이 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것이거든요.

지 - 단병호 의원이나 배일도 의원 같이 노동계에서 현실 정치계로 가신 분들이 많은데요. 그런 현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 - 그런 현상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는게 부끄러운 일인데... 어떻게 보면 당연한 현상이거든요.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가 단병호 위원장 인터뷰하면서도 계속 집요하게 물어보는게 '정치하려고 노동운동하지 않았느냐는 비난이 부담스럽지 않았느냐'는 건데, 우리나라니까 그런 의문이 생기는거지, 다른 나라 같은 경우는 제도권 교육과정 속에서, 철학시간, 역사시간에 다 가르쳐요. 사회발전 법칙 중에 양질 전하의 법칙이 있잖아요.

 양적인 집적이 질적인 변화를 초래한다, 물의 비등점을 들어 설명하잖아요. 계속 가열하면 열이 상승되고, 에너지가 축적되는 양적인 변화가 계속되다가 비등점에 다다르면 액체는 기체로 전환하잖아요. 다른 나라에서는 철학 시간에 양질전하의 법칙의 현실적인 사례로 노동운동에 대해서 가르쳐요. 노동운동이 점점 조직을 확대하고, 종업원 숫자가 늘어나는 것이 양적인 전하의 축적이에요.

 그러다가 일정 단계에 이르면 정치적 권력을 장악하고, 정치세력화 하면서 사회의 정책을 바꾸는거예요. 이렇게 가르치는 나라에서는 운동하다가 정치하는 것을 하나도 이상하다고 생각안해요. 이렇게 되니까 스웨덴 같은 나라에는 재벌들이 재벌을 인정하는 조건으로 재벌이 85%의 세금을 부담하겠다는 것에 동의할 수 밖에 없었던 거구요.

 핀란드 같은 곳에서는 재산과 수입에 비례해서 벌금을 부과하니까 노키아 부회장이 교통위반을 한번 했다고 벌금을 1억 3,000만원씩 내잖아요. 그게 사회 성격이 바뀌지 않으면 불가능하거든요. 열린우리당 같은 정권이 몇 번씩 바뀌어도 이런 제도는 안생겨요.

 그런데 노동운동이 정치세력화함으로써 이런 변화가 오는거거든요. 작년에 한달동안 네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죽었어요. 목매죽고, 불타죽고, 떨어져죽고, 한달 사이에 그렇게 죽었는데, 대한민국 국회에서 이것에 대해서 한마디가 안나와요. 이제는 절대로 그렇게 못하죠. 민주노동당은 숫자가 중요한게 아니라 이 단계에서 사회성격을 바꾼다는 의미가 있는거예요. 한명도 없었던 것에서 10명이 있는 것은 죽은 것과 산 것만큼의 차이가 있는거죠.

지 - 지금은 정치하려고 노동운동을 했다는 비판은 많이 수그러든 것 같구요. 민주노동당 의원이 10명이 된데 대해 상당한 기대가 컸던 것만큼 의회에 들어가서 어쩔 수 없이 타협하고, 마모될 것을 걱정하는 마음도 큰 것 같은데요.
하 - 모르겠어요. 개인적으로 변절을 하는 사람이 생길지는 모르지만, 조직적으로 민주노동당의 성격이 바뀌는 것은 불가능하죠.

지 - 변절이라기 보다... 노무현 정부가 제가 볼때는 상당한 의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득권한테 힘에서 밀려버린 면들이 없지 않아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 것처럼 힘의 부족을 절감하고 타협하고, 굴복하지 않을까 하는 걸 우려하는거죠.
하 - 굴복이라고 표현하기는 그런데, 현재의 권력구조를 돌파해낼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겠구요. 노무현 대통령은 누가 얘기한 것처럼 당선됐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큰일을 한거예요. 가장 큰 공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었다는 것만으로도 한국 보수세력들이 백년만에 큰 위기의식을 느끼게 만들어서 이성적인 판단을 불가능하게 만들어서 탄핵사태가 일어난거거든요. 얼마나 웃기는 일이예요? 초등학생들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국회에서 벌어진건데, 우리 아이들도 밥먹다가 TV에서 '불법 자금이 우리의 1/10을 넘지 않았습니까?'라고 한나라당 의원이 그러니까, '야 니들이 지금 그 말이 나오냐?'고 하더라구요.(웃음) 

지 -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한나라당 의원이 나와서 '노무현 대통령이 함정을 파놓고 기다렸다. 그걸 모두 알고 있다'고 하니까 손석희 아나운서가 '그걸 알면서 왜 하셨습니까?'라고 하는 걸 듣고 뒤집어졌는데요.(웃음) 참여정부와 비슷하게 민주노동당도 지금 현재 여러 가지 사회구조나 권력구조를 돌파할 힘이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 - 당연히 부족하죠. 그러니까 소금이 음식을 부패하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하잖아요. 소금이 양이 작으면 짜게 만드는 역할은 못해도 부패하지 않게 만드는 정도의 역할은 할 겁니다.

지 - 다른 분들 같은 경우는 충분히 행보가 이해가 가는데, 배일도 의원에 대해서는 좀 의외라는 반응들이 있는 것 같은데요.
하 - 그 사람은 서울 지하철 노조에서 몇 번 임기동안 노동조합위원장하면서 충분히 예견했잖아요. 그 홈페이지 게시판에 가보면 결국 한나라당에게 잘보여서 국회의원하려는 거 아니냐는 공방이 벌써 몇 개월전부터 계속 게시판을 도배하다시피 올라왔었어요. 오히려 우리가 짐작했던 것보다는 한나라당 안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더라구요.

 국가보안법이나 이런 것에 있어서는. 그런데 배일도씨가 한국 대기업에서는 최초로 서울지하철노동조합을 만들었잖아요. 그 이후에 대기업 노동조합이 만들어진거구요. 지하철 노조가 처음 만들어졌을때는 우리 사회에서 굉장히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저도 그런 충격을 받았구요. 그게 그 사람의 몫이고, 역할인거죠. 그런데 그 사람도 역사의식으로 단련되는 조직운동 속에서 배양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한계를 가지는거죠.

상당히 노사협조적인 행태를 보일 수 밖에 없었던것이고, 이번 지하철노조의 파업이 궤도공동파업이라는 시도를 했으면서도 무참하게 무너질 수 밖에 없었던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는 배일도 전 집행부가 그동안 해왔던 노사협조적인 성향이 굉장히 큰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결국 조직에서 스스로 이탈하는 사람들이 대개 배일도 시대부터 제기된 사람들일거예요.

 노동조합은 전체가 결정하기 전까지는 자기 의사에 반하더라도 거기에서 이탈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같이 시작해서 같이 끝내야해요. 소수가 다수에 승복하고. 아무리 자기 생각이 옳아도 다수가 거기에 동의하지 않으면 승복하고 있어야 되는데, 나와버린거거든요.

 차곡차곡 쌓여진 벽돌 더미 속에서 밑의 몇장이 빠지면 전체 대오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것입니다. 과반수가 그 파업을 접어야된다고 동의해서 접은 것이 아니라 소수의 대오가 이탈해버리니까 더 이상 버티질 못하고 무너진거죠. 노동조합이 승리하려면 내부에서 치열한 논쟁을 거쳤더라도 밖에서는 구별이 안되야 돼요. 모르는 사람들이 볼때는 누가 찬성을 했는지, 누가 반대를 구별이 안되도록 해야되는데, 그 원칙을 지키지 못한거죠.

지 - 결국 자이툰 부대를 이라크에 파병했는데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 - 당연히 파병하지 말았어야죠. 명분없는 전쟁에 우리가 참여한거구요. 한미관계를 고려해서 국익의 차원에서 했다고 하지만, 아마 파병하지 않았다고 해도 국익에 큰 해가 없었을 겁니다. 파병을 하지 않을 경우 우리가 구체적으로 어떤 해를 입을 건지 설명해보라고 하면 아마 설명하지 못할 겁니다.

지 - 그리고 많은 노동자들이 개인적으로는 이라크 파병을 찬성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 - 대중의 정서는 그런게 있죠. 김선일씨 죽었을때도 공수부대 파견해서 보복을 해야된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어요. 그러니까 이걸 현단계속에서만 파악해서는 안되구요. 전체 역사진행과정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느냐를 파악해야되는데, 우리는 제도언론속에서 그게 배양이 안되는거죠.

 주5일근무제가 실시했던 첫주에만 방송에 다섯 번 출연을 했는데, 노동문제에 대해서 방송에 나가서 이야기할 때 우선 힘든 점이 뭐냐하면 아나운서를 이해시키는 것이 힘들어요. 아나운서도 노동조합이나 노동운동에 대해서 잘못한 혐오감을 수십년동안 주입받아온 보통 사람일때가 많아서 (손석희 아나운서처럼 자기가 파업을 주도하고, 구속된 경험이 있는 사람은 다르지만) '주5일 근무제가 도입이 되면서 주당 노동시간이 40시간으로 줄어들지만, 기존의 임금시수는 저하시키지는 않는다'는 조항이 있다고 설명했더니, 잠깐 광고나가는 시간에 아나운서가 저한테 묻더라구요.

 '그럼 노동자들이 (우선 아나운서가 노동자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하는데 오래 걸려요) 일은 예전보다 훨씬 적게하면서 돈은 다 받겠다는건데, 그게 도둑놈 심보 아닌가요?', 그게 보통사람들 생각일수도 있어요. '일은 적게했으면, 그만큼 돈도 적게 받아야지, 그대로 다 받겠다면 옳지 않은 것 아니냐?', 그래서 제가 '인류의 역사는 노동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조금씩 적게 일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더 잘살게되는 방향으로 발전해오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주5일근무제가 도입되는 과정을 역사발전과정 속에서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게 제도권 교육 속에서 갖춰져야합니다. 다른 나라 제도권 교육속에서는 갖춰져있거든요. 남북전쟁에 대해서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이런 해석을 배우면 사람들의 집단적인 이해관계와 관련해서 이들이 현단계 속에서만 파악되는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되는지 파악하게 되거든요. 이라크 파병 문제도 역사의식을 가지고 판단하면 길이 쉽게 보이거든요.

 제가 방송에서 칼럼을 하면서 '운동권 세미나에서나 쓰던 정체성이란 단어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이 얘기하는 화두가 됐습니다. 조금 심하게 얘기하면 개나 소나 다 정체성을 이야기합니다'라고 얘기했다가 방송에 항의 전화가 많이 왔다고 하더라구요. '우리가 개나 소란 말이야?'하구요. PD가 전화로 그런 뜻이 아니라고 변명을 했다고는 하는데, 정체성도 지금은 헷갈려요.

 조금씩 역사적인 호흡을 가지고 보면 조선사회 이후 40년은 일제 식민지 이게 정체성이었잖아요. 그 이후에는 이승만 친일독재정권 이게 우리 정체성이었고, 그 이후에는 군사독재정권 이게 우리 사회의 정체성이었거든요. 긴 안목으로 보면서 계속 넘겨야돼요.

지 - 1994년에 '항상 가슴 떨리는 처음입니다'로 제6회 전태일문학상을 받으셨는데요. 어떤 내용입니까?
하 - 제가 노동자들을 만나서 겪었던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적은 겁니다. 왜냐하면 웬만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들이 노동자들의 생활 속에는 많아요. 예를 들어 '빵과 장미'라는 켄로치의 유명한 영화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감동했다는. 그런데 그건 한국의 환경미화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예요. 정말. 그거보다 10배도 더 영화같은 일들이 노동자의 생활 속에서 일어나요. 이런 걸 누군가는 기록해야겠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것이 이렇게 많은데, 그러니까 그걸 짬짬이 기록하다가 몇 년간 기록했던 것을 모아서 냈어요. 소설을 쓴건 아니고, 기록문학 부문에서 상을 받은거죠.

지 - 또 준비하시는 책은 없으신가요?
하 - 지금 책내자는 곳은 많은데, 제가 짬이 안나서 그걸 정리할 수가 도저히 없구요. 지금 한겨레에서 2년전부터 책을 내자고 준비를 해서 제 손에 넘어온 교정 원고를 7개월째 손을 못대고 있어요. 솔직히 그것보다 더 중요하고, 급하고, 의미 있는 일들이 항상 있어요. 어제 제가 이 자료를 만드느라고 밤을 샜거든요. 오늘 저녁에 사람들 만나서 이야기하려고, 그런데 이거 밤새면서 쓸 정도의 시간이면 교정원고를 다 보죠. 그런데 이런 일들이 항상 저에게 있어서 그게 복이죠.

지 - 특별한 계획 같은 건 없으십니까?
하 - 별로 없어요. 이 상태로 오래했으면 좋겠구요. 환갑 지나서 이른, 여든 되도 지금처럼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 - 마지막으로 특별히 해주실 말씀은 없으십니까?
하 - 멋있게 표현하면 노동자는 선이다, 노동운동은 사회에 유익하다, 노동조합은 사회에 유익하다, 이런 생각을 한번쯤은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노동운동에 대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정상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가정을 한번쯤은 해봐야합니다.

 제가 가끔 하는 얘기지만, 파업을 앞두고 있는 조종사들 수백명 앞에서 '여러분들 중에서 조종사란 직업을 선택하면서 내가 노동조합 깃발 아래 모여서 파업할 것이라고 상상한 사람 있으십니까?'했더니 없어요. 그 수백명 중에 단 한명도 없었다는 것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그날 강의 마치고 나서 한 사람이 나한테 오더니 '아까 손들지는 않았지만, 이런 날이 올지 짐작하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노동조합 간부한테 물어봤어요. '저 사람 어떤 사람이야?' 그랬더니, 외국에서 조종사가 됐다는거예요.(웃음) 지금 노동조합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올바르지 못한 정서를 갖고 있느냐 하면 노동조합 간부를 맡은 사람이 집에 가서 가족들에게 '내가 우리 회사 노동조합의 간부를 맡았습니다' 했을 때 기뻐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이건 정상적인게 아닌거예요. 왜 그런 것을 맡았냐고 탓하거나 당장 그만두라고 하지 않으면 다행인거죠. 초등학교 반장을 맡아도 온 가족이 기뻐하는 나라에서 노동조합 간부를 맡은 걸 걱정해야하는건 올바른 정서가 아니예요. 한 위원장이 하는 말이 길을 가다가 동창생을 만났대요. '오래간만이다. 술한잔하자'고 호프집 들어가서 '이번에 우리 회사에서 노동조합이 설립됐는데, 내가 위원장을 맡았다'고 그랬더니 노동조합에 대해서 털끝만큼도 모르는 동창이 말하기를 '내가 면회는 갈게'라고 하더랍니다.(웃음) 이건 결코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예요.

 근데 그게 웃을 일이 아닌게 실제로 그러니까. 제가 지난주에 춘천시청에 가서 공무원들 대상으로 얘기하면서 이 얘기하니까 사람들이 다 웃어요. 보니까 춘천시청 공무원노조 지부장이 구속됐다가 나온지 얼마 안된거예요. 우리가 말하는 건 특별한 노동운동도 아니구요.

 비정상적인 현실을 가능하면 현실적으로 만들어보자는 것이지, 민주노동당 의원이 10명씩 생기고, 저 같은 사람을 인터뷰하는 것이 우리나라가 특별히 좌편향적이거나, 노동자 편향적이된게 아니라 엄청나게 비정상적이었던 사회가 정상화되는 과정에 있는 것 뿐이거든요.

지 - 아웃사이더 임성환 대표가 양심적 병역거부로 들어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제 면회를 갔다 왔는데요. 우리 사회가 그 사람들을 굳이 감옥에 보내지 않아도 될 정도의 사회가 된 것 같은데, 이미 대체복무제가 사실상 시행되고 있구요. 이런 저런 형태로 많이 빠져나가고 있지 않습니까? 유명한 사람들이나 신문에 크게 나오면 잠시 흥분을 하기도 하는데, '원래 저 새끼들은 그럴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정작 분노하는 것은 자기들하고 비슷한 처지에 있을 것 같은 양심적 병역거부자 같은 사람들에게 표시하거든요. 리플 달리는 거 보면 '죽여야돼'하는 식으로 리플이 달리기도 하구요. 얼마전에도 체력장 하는데 질서를 안지킨다고 고생학생 백명의 머리를 밀었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거기 달린 리플들을 보면 거의 전부가 '별 것도 아닌 일을 문제 삼은 미친 고등학생들. 머리 좀 깍인 것 가지고 왜 지랄들이냐. 죽여라' 이렇게 달리거든요.(웃음)
하 - 어떤 사회나 권력과 자본이 국민들의 의식을 자신들이 유리한 방향으로 조율하는데, 우리는 이 왜곡된 비틀린 역사속에서 그런 것이 다른 사회보다 몇배나 증폭이 된거거든요. 식민지 40년, 분단 60년, 그 와중에 군사독재 30년 이런 과정을 거쳐 건설된 대한민국인데 정상적일 수 있겠습니까?

지 - 이번에 알자르카위가 테러대상국에 지정했는데요. 만약 테러가 일어나면 공황상태에 빠질 것 같습니다. 그리고 조선일보 등에서는 '복수하자'는 목소리를 높일 거구요. 사회는 급속도로 극우적으로 갈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하 - 빨리 철수하고 와야지, 그래야 세계평화에도 이바지할거구요.(웃음) 다른 얘기지만 경총에 있는 어떤 분이 '지금 화염병들고, 쇠파이프 들고 싸우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이런 전투적 조합주의가 어디 있습니까?' 그렇게 얘기를 하길래 제가 '그럼 그게 한국 노동자가 태어날때부터 특별히 포악해서 그런 현상이 생겼겠습니까?'라고 되물었어요. 지금 가장 파업을 많이 하는 노동자가 병원노동자들이예요.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것을 직업으로 택한 간호사들이 가장 과격하다는 뜻인데, 성격이 특별히 포악한 사람들이 간호사를 선택했냐 하면 그건 아니거든요. 영국 같은 나라는 공공의료가 95%가 되는 나라가 있는가하면 우리는 공공의료가 10%밖에 안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기는거거든요. 이런 구조적인 관점으로 봐야죠. 개인의 인격이나 덕성의 문제로만 볼게 아니라.

지 - 한울노동문제연구소에서는 어떤 일을 하나요?
하 - 여긴 연구소니까 연구해야 되구요. 상담을 또 많이 합니다. 처음에 상담소였으니까. 그리고 교육도 하는데, 교육은 제가 하고 있구요. 교육은 계획 세워서 하는 게 아니라 요구되는 것만 하고 있어요. 그리고 솔직히 연구소장이 연구 못한지 오래됐어요. 한 2년 됐어요. 우리가 격월로 하던 한울노동법 강좌라고 있었는데, 그걸 하지 못한지가 오래됐습니다.

지 - 현장에서 부딪히는 것들이 살아있는 연구가 아닐까요?(웃음)
하 -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정확하게 읽지 못하면서 얘기하면 그건 거짓말이 될거니까 그걸 정확하게 읽으려고 애는 쓰고, 최소한의 공부는 하죠.

지 - 워낙 바쁘신 분인데, 많은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시비돌이 > 알라딘이 만난 작가들 - 지승호

 

2004-01-03

  <비판적 지성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회를 바꾸는 아티스트> , <다시 아웃사이더를 위하여>를 낸 지승호 씨는 국내 유일의 전문 인터뷰어다. 인터넷에서부터 이름을 날리기 시작해서 지금은 진짜 컬럼주의를 표방하는 「서프라이즈」(http://www.seoprise.com)에서 '지승호의 인터뷰정치'를 맡아 운영 중이다. 또한 웹진 「시비걸기」(http://freechal.com/sibi) 편집장으로 활발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알라딘은 전문 인터뷰어로 일해 오면서 3권의 인터뷰집을 내기까지 그가 경험한 어려움과 보람,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물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그를 만나러 가는 마음은 굉장히 설레고, 또 걱정되었다. '최소한 50개의 질문은 준비했어야 했는데...' 같은 조바심과 애초부터 상대가 안되는 프로와 아마추어의 만남이라는 부담을 안은 채 인터뷰는 시작되었다. 그를 인터뷰한 글 중에서 가장 나은 것이길, 그리고 그의 작업이 더 많은 독자에게 알려지길 바랄 뿐이다. (인터뷰 | 알라딘 편집팀 사회과학 담당 최성혜)


좀 더 배고파지더라도 진지한 작업을 하고 싶어

알라딘 : 세 번째 인터뷰 모음집을 내셨는데요, 여기까지 달려온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혹은, 이 책을 읽은 독자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은 무엇입니까?

지승호 : 지금은 어느 정도는 직업이 된 거지만 (이걸로 먹고 살고 싶은 부분이 있고, 좀 되어가고 있긴 한데) 하지만 뭐 아마추어라고 아직도 생각하고 있어요. 실력 면에서도 그렇다고 생각하고, 아직 생계 면에서도 완전히 안정이 된 게 아니니까요. 그리고 주위에서 기자들이나 다른 사람들 만나면 정말 그렇게 ('아마추어'라고) 보는 것 같아요. 부족한 점 많고, 저는 더 채워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 보면 저 같은 사람이 이룩한 성과를 보면 '우리 사회 프로들은 뭐했나?'하는 반문이 나올 수도 있거든요. 방대한 조직을 갖고 있고, 언론고시를 통과한 사람들이 제 나름의 역할을 했느냐, 우리나라에서 언론이 제대로 했느냐를 따져보면 자기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제 스스로는 아직까진 더 많이 변신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독자들한테 얘기하고 싶은 부분은, 저 같은 경우는 아직은 우리 사회에서 대하는 대우라든지 (물론 책을 본 분들은 인정해 줄 지는 몰라도) 여러 가지 보면은 저는 뭐..., 야구선수로 따지면 연습생 선수 출신으로 연습 '졸라' 해가지고 성공을 한 케이스거든요. 그래 가지고 홈런을 막 30개씩 치고 그런다면, 그만큼 인정해줘야 한다는 거죠. 그만큼 인정한 상태에서 그 사람의 작업환경이나 대우가 달라져야 된다는 것까지 같이 고민해 주셔야지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제가 하는 작업이 만약 필요한 작업이라면 너무 논평하듯, 남의 일 얘기하듯 하지 마시고, 이런 작업을 해나가는데 어떤 장애가 있을 수 있고, 또 어떻게 해야 더 많은 사람들이 같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부분까지 같이 고민해 주셨으면 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은 제가 이쪽 진영에서 여기 저기 하다 보니까, 일종의 대표성을 띠게 된 부분이 있는 것 같고, 저에 대해서 과중한 기대를 하시면서 이것저것 다 해주길 바랄 때도 있는데, 그럴 경우 대단히 부담스럽거든요. 그래서 때로는 '당신네 정치들 입장에 맞는 인터뷰가 필요하면, 그걸 할 수 있는 인터뷰어를 당신네 진영에서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 왜 자기들은 안하려고 하면서 나 혼자 다 하라고 하느냐'고 시니컬하게 반응할 때도 있어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같이 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러려면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야 되고, 생계도 어느 정도는 보장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알라딘 : 인터뷰 작업을 해오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어떤 점입니까?

지승호 : 제가 매일매일 비관하지만 어떤 점에서는 굉장히 무뎌요. 인터뷰 작업은 재밌는데, 외적인 상황에서 디프레스되는 부분이 있죠. 특히 뭘 하고 싶은데, 여건이 안 될 경우, 그런 상황에서 짜증나는 리플들을 볼 때 문득문득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런데 기본적으로 생각날 때 그것을 글로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비판적 지성인은 무엇으로 사는가>(책날개)에 쓴 것처럼 제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면서 남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고, 누군가를 만난다는 자체가 즐거운 일인데다가 그 만남에서 무언가를 얻어내는 찌릿함,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그 기록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저한테는 상이죠. 그런 걸로 버티는 거죠.

제가 제 인터뷰의 최초의 독자인 셈이거든요. 인터뷰를 할 때는 이런 저런데 집중을 하다 보니까 잘 못 느끼다가 글로 정리하면서 보면 굉장히 재밌는 부분을 발견할 때가 많아요. 사람들이 재미있었다는 리플을 달아주면 그것도 행복한 일이구요. 최근에는 한겨레신문 한나라당 출입기자 안수찬씨 인터뷰가 반응이 좋았는데, 이런 게 계속 인터뷰를 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요즘 들어 회의할 때가 있어요.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작업량이 늘다보니까 제가 봐도 허접한 인터뷰들을 양산해내고 있거든요. 그런 글을 쓰는 것 자체가, 기대치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부분들이 괴로워요. 사실 뭐 언제 특별하게 마음에 드는 글을 써본 적도 없는 것 같지만, 요즘은 그나마 이 정도면 괜찮은 것 같다고 생각되는 글들이 거의 없어요. 그런 상황에서 가끔은 이런 가증스런 얘기들을 하는 인터뷰도 해야 되고, 제 작업의 의미를 기계적으로 강변하기도 해야죠. 그리고 제가 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묻고 싶을 때가 있어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세요?' 아니면 '절 얼마나 아시죠?'라고 시니컬하게 묻고 싶을 때가 있죠.

이제는 결단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좀 더 배가 고파지더라도 진지한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도무지 글쓰기가 즐겁지가 않거든요. 쓰레기(?) 같은 책을 세 권이나 냈고, 또 준비 중입니다. 먹고 살려는 발버둥이죠.(웃음) 물론 먹고 사는데 아직은 별로 보탬이 안되지만...

지승호의 인터뷰가 담긴 책들,
왼쪽부터 <크라잉 넛>
<사회를 바꾸는 아티스트>
<비판적 지성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성실함은 지승호의 힘이고, 유연함은 지승호의 테크닉이다"

알라딘 : 지승호 씨의 인터뷰 작업은 진보정치를 위해서나 한국 사회를 위해서나 새로운 아군을 얻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평을 많이 받고 있는데요. 스스로 자신의 장점은 어떤 점이라고 생각하세요?

지승호 : 최내현 씨가 이번에 추천사를 이렇게 써줬거든요. "내가 한 얘기들을 촘촘히 읽고 와서 질문하는데, 답답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반면 무슨 얘기를 해도 될 것 같은 편안한 생각도 드는 묘한 기분이었다. 그건 지승호와 인터뷰해 본 사람 만이 알 것이다. 성실함은 지승호의 힘이고, 유연함은 지승호의 테크닉이다".

그런데 전 아주 성실하거나 아주 유연하거나, 아주 글을 잘 쓰는 건 아닌데 당장 필요한 것을 조금씩 다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많이 보고, 상대방의 얘기도 비교적 잘 이해하고, 타자도 좀 빠른 편이고, 글씨도 좀 빠른 편이고, 머리도 그런대로 돌아가는 편이고... 그런데 확실하게 제가 이거 하나는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어요. 그래서 두렵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해야할 텐데, 사람들이 볼 때 예전만 못하다 그러면 안되는 거니까.

또 인터뷰하신 분들 중에서 많은 분들이 저랑 이야기하면 편하다고 그렇게 말씀하세요. 이야기를 하다보면 뭐든 얘기를 해도 될 것 같은 편안함을 느낀다고. 저는 인터뷰가 차분하면서도 선정적이지 않길 바라죠. 어떤 걸 강조하면서 사람들을 어느 방향으로 끌어가려는 것 보다는 툭 던져주는 게 오히려 더 오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규정하지 않고, 편견이 없고, 그런 점도 장점이라고 볼 수 있겠죠. 사실 기자들은 신문사 프레임으로 사람을 대할 수 밖에 없고, 또 그 사람들은 이 사회의 엘리트니까 사람을 보는 틀이 있다구요. 그런 게 인터뷰를 가두는데. 저는 저를 드러내지 않죠. 그런 게 차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알라딘 : 인터뷰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지승호 : 제 성격이 어느 모임에 가서 공식적으로 자기소개도 못하는 성격이에요. 근데 하니 리포터할 때, 후배가 신해철 씨 인터뷰 가는데 같이 가재요. 가서 제가 인터뷰했는데, 그 사람 말이 일리가 있고 일관성이 있는 게 재밌더라구요. 그리고 나중에 김어준, 이 사람도 했는데 재밌고 의미 있는 이야길 많이 하고.(웃음) 술자리에서 하는 이야기들 있잖아요. 굉장히 재미가 있으면서도 공적으로,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는 말들이 많이 나옵니다. 굉장히 솔직하게들 말하잖아요. 그런데 인터뷰한다고 그러면 딱딱하고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는데, 술자리에서는 원론적이지 않은 재밌는 말을 한다구요. 그런 걸 꺼내보자는 생각을 했고, 어느 정도는 성공한 것 같아요.

가령, 예전에 YS가 단식투쟁할 때 '보름달' 먹다가 걸렸다는데 그런 이야기는 보통 인터뷰에서 안 물어보거든요. 그런데 기분 나쁘지 않게 물어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인간적으로 보일 수도 있잖아요.(웃음) 클린턴이 YS에게 전화했을 때 그렇게 좋아했는데 뭐가 그렇게 좋았나, 이런 것도 재미있을 거고.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 재미와 함께 한국 현대사의 이면을 들여다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재밌으면서도 유의미한 걸 해보고 싶었습니다.

김규항의 '그 페미니즘'이라든지 뭐 많죠. 진중권이나 홍세화 선생님도 있고. 점점 인정은 받고 있는데 앞으로도 그만큼 보여줄 수 있는가가 문제죠. 그리고 또 이런 게 있어요. 제가 '인터뷰'란 장르를 다시 생각해 보게 했다는 점은 있는 것 같아요. 칼럼은 일정 부분 네거티브할 수 밖에 없지만 인터뷰는 포지티브할 수 있거든요. 그 사람에게 멋진 말, 매력적인, 희망적인 부분을 듣고 말하니까요. 그게 맘에 들더라구요. 우리 사회에 이런 사람이 있어, 이런 사람과 함께 고민하고, 이 사람이 못하는 부분은 우리가 채워가자, 이렇게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방식이거든요. 저는 이게 좋아요. 제 인터뷰의 방식도 그렇게 갔으면 좋겠구요.

사람의 의도나 생각을 들어보고 욕하든지, 말든지

알라딘 : 특히, 인터뷰이 컨택에 있어서 인터뷰어의 주관이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다시 아웃사이더를 위하여>를 읽은 몇몇 분들은 앞으로는 '인사이더'도 인터뷰해 줬으면 좋겠다고 하시는데요. 인터뷰 대상자는 어떻게 선별하고, 이런 의견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승호 : 그 때 그 때 봐서 이 사람은 할 말이 있겠다, 생각이 들 때 컨택합니다. 월드컵 때 '김어준이 생각하는 월드컵'에 대해서 막 논란이 됐었잖아요. 그런데도 아무도 김어준한테 왜 '우리가 강팀이다' 같은 글을 쓰는지 의도나 생각은 들어보지 않고 욕하거나 찬양을 했잖아요. 그 사람의 의도나 생각을 들어보고 욕을 하든지, 말든지 하자는 거죠. 논란이 되고 있는 행동을 한 사람에게 발언의 기회를 주자는 거고, 자세하게 들어보고 싶다 이런 거죠.

간혹 제 정치적 지향을 이야기하는데, 전 그게 그렇게 강하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정권은 5년이면 끝나지만, 전 역사에 남는 인터뷰어가 되고 싶거든요. 그렇지만 그렇다고 애매모호한 정치적 태도를 취해서는 안되는 거고, 지금 우리나라에 이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고 얘기를 하는 거죠. 그게 틀리면 거기에 대한 책임을 져야 될 거구요.

간혹 인터뷰 섭외가 맘에 안 들거나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맞는 사람을 인터뷰하지 않으면 욕을 하는 사람도 있거든요. 그러면 저는 '당신들 정치적 지향을 대변할 수 있는 대변자를 키워야지 왜 나한테 모든 것을 맡기냐' 이렇게 말하죠. 이것 저것 요구하는 사람들을 보면 '내가 이 작업을 할 동안 당신들은 이 일에 대해 얼마나 생각했고, 이 일이 그렇게 필요하다면 그렇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줬느냐' 이렇게 반문하고 싶어요. 뭔가를 요구하려면 함께 고민하면서 해나가야 합니다. 사람이 이슬만 먹고 살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웃음)

신해철 씨가 인터뷰 때 '거리의 악사가 노래하면 외국 사람은 동전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음악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그러면 당연히 안줄 수도 있다. 다만 그 사람이 그 선택을 한 것에 대해서는 비난해서는 안된다'(<사회를 바꾸는 아티스트>, p.267)고 했거든요. 전 인터넷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정도 직업으로 생각하는 경우에 해당이 되겠죠). 일정 부분 자신이 그것이 좋아서 나와서 연주하는 거리의 악사거든요. 그러면 그 연주가 좋아서 계속 듣고 싶으면, 기타줄도 사주고, 그 다음날 다시 나올 수 있게 빵값을 주는 게 옳은 거 아닐까요? 주기 싫으면 안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너 연주도 못하는 새끼가 왜 나와서 연주를 하냐?'고 말하는 순간부터 파렴치한 사람이 되는 거죠. 그리고 어느 정도 위치가 된 사람들에게는 '넌 그 정도 됐으니까 상처받는 게 우습다'고 말하거든요. 거리 연주를 취미로 하면 상처 안 받아요. 그런데 생계란 말이에요. 최소한 다음에 나와서 공연할 수 있게는 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안하고 "너는 왜 그렇게 하니? 인사이더도 하고, 누구도 하라구. 더 자세히 하란 말야!" 이러면 상처받죠.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우스운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제가 아주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런데도 프로 비슷한 무리로는 인정받는 거잖아요. 가령, TV에서 홍명보가 축구하는데 시청자가 축구 보면서 골 못 넣는다고 욕을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런데 막상 홍명보 앞에서 기술분석까지 하고, 코치하면 얼마나 우습겠습니까? 홍명보도 그 정도는 충분히 알고 있는데요. 인터넷이란 게 인터랙티브한 공간이다보니까 그런 측면이 어느 정도 있거든요. 전 충분히 알고 있는 얘기고, 그 점에 대해서 그 분보다 훨씬 더 많은 고민을 해온 부분을 너무 쉽게 얘기할 때는 좀 답답합니다.

세상은 짧은 시간에 바뀌지 않는다

알라딘 : 김신명숙, 정경희, 최용익 등 언론 관계자와의 인터뷰도 많이 하셨는데요, 인터뷰를 보면 지승호 씨가 인터뷰를 통해서 시민운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언뜻 듭니다. 프리랜서 직업을 갖고 있지만, 지승호 씨 인터뷰는 뚜렷한 목적의식이 있다고 느껴지거든요. 인터뷰를 전업으로 삼게 된 데에는 개인의 사회적 지향도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되는데요.

지승호 : 같이 고민하지 않으면 문제를 풀지 못해요. 세상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혼자서 평생 하나의 문제를 풀어나가기도 쉽지 않은 게 세상이잖아요. 그런 고민들이 모여서 이 세상이 조금씩 바뀌는 거죠. 어떤 분들은 좀 더 심층적으로 해달라고 하는데, 심층적인 것은 제 역량 밖이고, 또 신도 아닌 이상 다 완벽하게 해낼 수가 없어요. 제가 언젠가 힘들다고 그러니까 누가 그러더라구요. 자원봉사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뭘 그러냐고. 탑골 공원 같은 데서 밥 좀 퍼 보면 그런 말 못한다는 둥 그래요. 역할이 다른 부분인데 그걸 그렇게 말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그런 리플 다시는 분들이 전 봉사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계속 말씀드리지만, 여러 역할이 모여서 세상이 바뀔 수 있는 거거든요.

글쟁이들은 몸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기본적으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령 반전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반전에 관한 글을 쓰는 게 마음이 무거울 때가 있어요. 하지만 어느 게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반전시위에 나가서 한 사람의 힘을 보태는 것도 중요하고, 소위 '노빠' 사이트에서 '우리도 전쟁에 반대하고, 파병에 반대한다'는 글을 쓰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짱돌 던지는 것보다 반전운동 관련 인터뷰나 글을 쓰는 걸 더 잘하고,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라크 파병반대 농성 후 연행된 강철민 이병 인터뷰를 한 것도 그런 취지고.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걸 하는 거죠. 서프라이즈가 친노 사이트인데 거기서 지승호가 파병반대하는구나, 반대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전하는구나, 있는 그대로 봐주면 좋죠. 세상은 짧은 시간에 바뀌지 않으니까, 연대하고 개혁하고 해야죠. 언론개혁에 대해서 이야기한 부분도 자연스럽게 문제의식을 느끼니까요. 각자 자기에게 좋은 방식의 운동을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알라딘 : 연관되는 질문인데요. 스스로 자기 정체성을 어떻게 보십니까? 개인 인터뷰어라는 게 어느 집단에 소속된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요. 그 점이 지식인과 같다고도 생각했습니다. 논점을 형성하고, 논쟁하고, 균열이 있는 곳에 틈입해서 그 부분을 터뜨린다는 점이요.

지승호 : 전 누구에게 딱지를 붙이거나 어떤 사람을 판단하기를 꺼리거든요. 제가 지식인이냐 아니냐가 뭐가 중요해요? 제가 무슨 말을 하느냐가 중요하죠. '지식인'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을 가만히 보면 (우리 나라에서 이 말은 '계몽적이고 훈육적이다, 가르치려 든다' 이렇게 비하하는 의미로도 쓰이니까...) 상대방 뒤통수 치고 싶을 때 네티즌들이 '지식인' 어쩌고 저쩌고 그런다구요. 자기들은 훨씬 더 싸가지 없는 방식으로 계몽하면서...

진중권 선생이 <다시 아웃사이더를 위하여>에서 그랬거든요. '나는 내가 옳으냐, 그르냐라는 답을 기다리고 있는데, 상대방은 내가 말하는 방식만을 가지고 얘기한다'구요. 보통 진중권에 대해 '재수없다. 가르치려 한다'고 말하지만, 제가 볼 때는 그렇게 비난하는 사람들이 더 그렇거든요. 표현 방식의 예의 없음은 피차 마찬가지거든요. 그렇게 따진다면 지식인으로 불리는 부류는 좀 더 고민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한텐 뭔가 깨져야할 게 있어요. 그런데 신해철 씨가 말한 것처럼 상대방이 외투를 입고 있으면 주먹으로 때려서는 충격 못 받죠. 그 때는 망치로 때려야 주먹으로 때린 것 같은 효과를 얻는 겁니다(<사회를 바꾸는 아티스트>, p.266). 근데 이 때 망치로 때리는 건 '선의를 가지고' 하는 거거든요. 근데 네티즌들 보면 솔직하지도 않고, 비겁하면서도 '지식인'들 어쩌고 하면서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댑니다.

인터넷이라는 동네가 계급장 떼고 싸우는 동네거든요. 그 말이 맞으냐, 틀리냐가 더 중요합니다. 지식인급 논객이라고 해서 글씨가 크게 나오는 것도 아니고, 네티즌이 봐주는 법도 없구요.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이 중요하지, 지식인이나 아니냐 그런 범주화는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구요. 서로들 좀 더, 자신에게나 남에게나 솔직해졌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알라딘 : 서프라이즈에 결합하신 후로는 지승호 씨의 인터뷰 성과가 그 때 그 때 업데이트 되니까 보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편한 점이 있습니다.(웃음) 그런데 정작 본인은 괴롭기도 할 것 같거든요. 네티즌들의 리플이라든지, 인터뷰에서 불거진 문제가 다른 지면이나 다른 사람 말로 옮겨져서 와전되는 경우라든지, 다양할 것 같은데요. 정리의 문제도 있겠고요.

지승호 : 서프라이즈는 제가 작업하기 가장 좋은 곳이에요. <인물과 사상> 직원들과 만나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거든요. 어떤 운동 단체 또는 사람을 지원하고 밀어주는 것이 <인물과 사상>이 거의 효시라는 생각도 들거든요. 근데 이 분들은 좀 좌파적이에요. 모여서 회의하고, 따지기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지지하는 것에 대해 정서적인 대가를 바라는 부분이 있어요. 내가 인정받고 싶은 그런 게 보입니다. 거기에 비해서 서프라이즈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열려있죠. 대가도 안 바라고, 너가 하는 작업이 의미 있으니까 지원한다, 이거거든요. 그냥 내가 니가 하는 작업을 도와줄 수 있고, 같이 술 한 잔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거거든요. 조금은 우파적인 코드가 있는 거죠. 간혹 서프라이즈의 네티즌이 지나치다고 말도 하는데, 그건 인터넷의 속성입니다. - 무명, 다중 ID만 믿고 막말하는 건 - 그런 건 어디나 다 있어요. 오히려 서프라이즈는 그런 면에서 험악하지 않죠. 다른 사이트에 비해서 덜 험악하다고 생각합니다.

서프라이즈가 여러가지 점에서 100% 해결되지 않아도 제가 작업하는 데는 자유롭죠. '노빠' 사이트라고 꼭 '노빠'해야 되는 것도 아니고, 제가 서프라이즈 균형을 잡는 역할도 하고, 한 발 물러나 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재밌게 본 인터뷰는 옛날 <Paper>

알라딘 : 다른 사람의 인터뷰 중, 재밌게 본 건 어떤 게 있나요?

지승호 : 황경신 씨 인터뷰요. <Paper>, 옛날에요. 재밌었고. 그리고 인터넷에서 출처없는, 퍼온 인터뷰도 재미있는 게 많은데, 보통 인터뷰어까지 긁어오진 않아서 누가 한 건지는 모르는 것들이 있죠. 의 문화적 소양 같은 건 부럽긴 한데, 황경신 씨 인터뷰는 재밌는데 불편해요. 그게 물론 황경신 씨의 잘못은 아니죠. '세상은 아름답고 밝다' 이런 식으로 기득권에 기여하는 면이 있어요. 왜 그런 말이 있잖아요. 세상이 불공평하게 유지되는 데는, 선량한 사람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으로 족하다는. 거기 보면(이건 하나의 예에 불과하지만) 굉장히 좋은 일도 많이 하고,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들이 많아요. 봉사 활동도 많이 하고, 그런데 그 분들을 보면 조선일보랑 친한 만화가랑 아무런 거리낌없이 어울리잖아요. 결국은 그게 기득권 유지에 봉사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알만한 분들이 왜 그 모순을 못 보고 우아하게 구시는지들 답답할 때가 있는데요. 이건 좀 다른 이야기지만, 안수찬 기자 인터뷰에서도 나온 이야기인데, 이 사회의 엘리트들이 다 한나라당에 달라붙어 있어요. 그러면 이 사람들이 한나라당에 기여하고 복무하고 도움을 주는 거거든요. 사회의식이 없는 거죠, 능력은 있는데. 이런 점은 사실 불편합니다.

알라딘 : 앞으로의 계획이랄까, 새롭게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들려주세요.

지승호 : 집중해서 하고 싶은 부분은 평전 작업인데, 이건 나중에 그렇다는 거고 현재는 지금까지 해오던 식의 다이제스트 - 평전과 비교해서 그렇다는 거지 사회적으로 보면 지금 제 인터뷰도 장편이죠 - 식 인터뷰를 계속 하겠죠. 또, 총선 전에 정치인 관련 인터뷰집 내고 싶고, 영화감독 인터뷰집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근데 한 가지 뿌듯한 건 사람들이 제 인터뷰 때문에 긴 글에 조금씩 적응하시는 것 같아요. 호흡이 길어지는 거죠. 예전에는 60~70매의 인터뷰만 해도 길다고 하던 분들이 200매 짜리 인터뷰에 간혹 '조금 더 자세한 얘기가 있었으면 좋았을 걸'이라고 말씀하시거든요. 그럴 때 드는 기분은 묘하죠. 아까 쭉 얘기한대로 섭섭한 부분도 있고, 기분이 좋아지는 부분도 있고...

알라딘 : 긴 인터뷰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기분 좋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이 어서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길거리 악사다. 어쩌면 인터넷에서 글을 쓰는 비주류 논객들은 다 그런 셈이다.
길거리 악사가 음악이 좋아 길거리에 나와 연주하며 빵 살 돈을 구걸(?)하듯이,
난 글쓰고 누군가를 만나 얘기하는 게 좋아 글을 쓰며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

<사회를 바꾸는 아티스트>의 서문에서 지승호 씨가 한 말이다. 그냥 멋있게 보이려고 한 말인 줄 알았는데, 만나보니 그는 실로 거리 악사의 마음을 지녔다. 앞으로 그가 서 있는 무대는 좀더 넓어지고 커지겠지만, 그가 노래하는 음악 만은 여전하리라 믿는다. 배고픔을 긍지로 바꾼 지승호, 그에게 알라딘 독자들이 힘이 되었으면 좋겠고, 이 인터뷰가 그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웃사이더>, <인물과 사상> 인터뷰어. 인터넷 '한겨레' 하니 리포터로 활동하고 있으며, 정치 웹진 「서프라이즈」에서 지승호의 인터뷰정치를 운영하고 있다. 웹진 시비걸기(http://freechal.com/sibi)의 마스터로도 활동한다. 지은 책으로 <비판적 지성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크라잉 넛, 그들이 대신 울부짖다>(공저), <사회를 바꾸는 아티스트> 가 있다.

지승호의 책 모두보기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시비돌이 > 이루어지지 않는 꿈 ...

 

한동안 글을 쓴다는 것이 참 무서웠습니다. 그리고 내가 가는 곳 몇 곳 외에는 가지고 않았고, 그나마 많은 시간을 집에서 책을 읽거나 몇군데 매체에서 맡긴 일들을 위한 인터뷰 준비, 녹취, 정리로 시간을 보내며 누에고치 속에서 지냈습니다.
 
그리고 몇가지 힘든, 마음 아픈 일을 겪었는데, 그로 인해 무기력해지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불쌍해보이고, 연민이 생기더군요. 어쩌면 적당한 분노와 세상에 대한 적당한 욕심은 삶에 대한 애정이 있다는 뜻일 겁니다. 너무 큰 원망과 분노의 축적은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드나 봅니다.
 
자꾸 초조해집니다. 내가 가진 뭔가가 있는데, 그것을 해보지도 못하고, 보여주지도 못하고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그래서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지고, 그래서 자꾸 인정을 받으려고 안달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제 일에 관심도 없고, 별로 인정하지도 않는 혜린이와도 티격태격 싸우다가 화가나서 두들겨패기도 합니다.
 
그동안 그렇게 폭력에 대한 성찰을 해왔어도 이 모양 이 꼴입니다. 어쩌면 이러다 미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언젠가 '나는 내가 어릴때 갖혀 있는 그 다락방에서 성장이 멈춘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절 잘아는 사람들이 저한테 가장 많이 하는 말도 그겁니다. 나쁜 의미로 '언제 어른될래?'하는 경우도 있고, 안타까운 듯이 얘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얼마전에도 '당신은 청소년같아'라고 말한 사람이 있는데, 그때 속으로 '많이 컸네. 국민학생에서'라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어쩌면 제 인터뷰어로서의 유일한 장점은 다락방 구석에서 세상을 관찰하는 힘일지도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 인터뷰가 재미없고, 특색이 없다고 말하지만, 막상 인터뷰이들이 '자신의 말을 제대로 전달했다'고 인정하거나, 일정하게 존중받는 인터뷰어가 된 이유는 몸에 밴 참을성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사람들은 남의 얘기를 제대로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이해 못합니다. 자기 스스로 조금만 안다 싶으면 잘난척하고 싶어하고, 남을 존중하지 않고, 남의 얘기 잘라먹는 걸 다반사로 하는 사람들이 말입니다. 참을성 있게 남의 말을 듣는다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의 공적인 성과를 인정한다는거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라고 봅니다.
 
제 스스로는 무서운 절제가 몸에 밴건데, 아니 안으로 안으로 마음을 갉아먹고 들어가는 거라고 봐야겠죠. 누군가는 또 그랬습니다. '당신은 충분히 주인공이 될 수 있는데, 왜 남을 비추는 역할만 하냐고'.
 
전 그게 편하거든요. 그리고 그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오래하는 길이라는 생각도 들구요. 근데 그런 생각도 사치였던 것 같습니다. 오래하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정작 중요한건 지금 당장 버텨내는 것일텐데요. 요즘 들어 절 만나는 사람들은 이런 격려들을 해줍니다. 조만간 지승호는 굉장히 유명해질거다. 좀 외람되게 말한다면 저 역시 제가 마음만 먹는다면 그런 상품성을 충분히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가 그 상황을 견뎌내지 못할거라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는거죠. 조명기사 내지는 작가 같은 스탭 역할을 하고 싶은데, 잘해내지도 못할 배우로서의 역할을 요구받는다고 할까요.  
 
어떤 사람은 저한테 그런 말을 합니다. '당신이 하고 싶은 일 하느라고 주위 사람들한테 무신경한 걸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오른다'구요. 그래서 저는 수시로 동전 던져달라고 징징거리기도 했습니다. 제가 제일 화가나는 것은 그런 행동에 대해서 모든 걸 돈때문이라고 보는 그런 얄팍함이었습니다.
 
그게 그런 부분에 무책임했고, 또 그걸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에게 빚을 지는 것이 노무현 대통령이 '난 국민들에게만 빚졌다'고 말한 그런 심정이라고 위안을 삼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참 민망하고, 아팠던 부분이죠. 다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제 자신의 작업의 큰 틀은 제가 움직여왔다는 겁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느라고, 그리고 그게 일정 정도 한국 사회에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나이 40 먹도록 이가 아파도 견적이 얼마 나올지 몰라 병원에도 못갈 정도로 돈을 모아놓지 못한 신세임에도 불구하고, 돈 문제로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쫓아가서 아가리를 찢어놓고 싶을 정도로 분노를 느낍니다.   
 
올초에 여기저기서 일거리를 줬음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으로 수입을 올릴 수가 없어서 '뭘해서 생계를 유지하지'를 고민하고 있을때 한 방송국에서 전화가 오더군요. 사실 저 혼자만 있으면 어디가서 얻어먹고 다니고, 대충 찜질방에서 자고 그래도 되는데, 이제 혜린이가 중학교를 가니까 슬슬 걱정도 되고 예전처럼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제 성격을 아는지라 메일을 달라고도 하고, 시간을 좀 끌면서 생각을 했는데, 이미 '어떻게든 이겨 나가야지, 견뎌내야지'라는 생각을 속으로 하고 있었고, 그쪽에서도 간곡한 문자와 메일을 보내서 나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제가 돈을 벌어오기를 바래야되는 사람이 '너 그거 하지마. 차라리 다른거해서 돈벌어'라고 하더군요. 제가 그걸 하면서 얼마나 스트레스 받을지 아는거겠죠.
 
그리고 한 신문사에서도 '위에서 반대하는 사람이 있지만, 어차피 이 사람은 어느 시점에서 뜰 사람인데, 우리 신문에서 시작하게 하는게 우리에겐 좋은 기회일 수 있다'고 지면 줄 것을 추진하고 있답니다.
 
한참 뛰어놀아야할 나이에, 그리고 뛰어놀고 싶기만한 나이에 돈벌이를 위해 자신없는 일을 해야만 하는 어린아이가 된 듯한 공포감에 싸여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평가들이 일정 부분 과도한 기대이고, 거품이라고 생각하기에 더욱 두렵습니다. 제가 더 잘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역할과 능력이 있는데, 다른 능력과 역할에 대한 기대감이 무산되면서 상처를 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습니다.
 
전 정말 인터뷰 전문 무크지를 하나 만들어서 우리 사회의 부족한 부분 중 하나인 공적 기록을 차곡차곡 남겨보고 싶은 게 꿈인데, 왜 저한테는 그걸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까요? 별로 돈도 많이 안되는데... 나이 40먹고 이렇게 칭얼거리는거 정말 쪽팔라기도 합니다.
 
그리고 제게 지금 주어진 역할을 감당해나가느라 제 꿈은 점점 멀어질 것 같아 두렵기도 합니다. 살날도 많이 남지 않은 것 같은데요.
 
 얼마전 짝사랑도 병이며 따라서 의학적인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더군요. 제가 세상이나 어떤 사람들에게나 늘 짝사랑하듯이 관계를 유지해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국의 임상심리학자 탤리스 박사의 연구보고에 의하면 '짝사랑은 사실은 조증(躁症), 우울증, 강박장애가 뒤섞인 심각한 정신질환이며 심하면 자살로 이어질 수도있다'고 합니다. 짝사랑은 사람을 헤어나기 어려운 절망적 상황에 빠뜨려 신체적-정신적으로 극한적인 탈진상태에 이르게 하기 때문에 조기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기사를 보고 심각하게 고민하게 됩니다.
 
그래서 다짐의 의미이기도 했지만, 세계최고의 인터뷰어가 되고 싶다는 조증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가, 내가 하는 인터뷰는 누구라도 할 수 있다, 정말 쓰레기 같은 글이라는 우울증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가 그러는 것 같습니다. 특정한 몇사람에게 집착하는 경향도 있구요. 그게 늘 관계를 나쁘게 만드는 것 같은데 말이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