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 - 말지 인물탐구에 보면 "무슨 대학교수도, 변호사도, 박사도 아니고 그 흔한 자격증 하나 없는 하종강을 노동자들은 대체 왜 그리도 '애타게' 찾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이 있던데, 스스로는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 - 제가 20년 넘게 했으니까 안한 사람보다는 잘 하겠죠. 제가 남과 좀 다르다고 스스로 평가하는 게 있는데, 노동자들과 정서적으로 일치되기 위해서 굉장히 노력한 경험이 있구요. 처음에 노동자들을 만나면서 노동자들의 정서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어떤 훈련을 했느냐 하면, 노동자들이 쓴 수기들을 있는데로 다 모았어요. 노동자들이 똑같은 주제에 대해서 표현하는 것이 의식의 단계에 따라서 다르거든요. 고향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아주 초보적인 노동자는 두고온 고향을 그리워하는 수준입니다.
그런데 상당한 수준에 있는 활동가는 고향 그러면 우리나라 농업문제를 생각해요. 이런 것이 노동자 수기에 보면 나타나요. 의식의 단계에 따라. 그래서 그걸 몇가지 주제로 대학노트에다가 그 주제에 해당하는 노동자들의 표현을 오려서 의식단계별로 4개 정도로 분류해서 붙이는 이런 직업을 한 1년 가까이 했는데, 그게 굉장히 많이 도움이 됐습니다. 그게 재산이 됐구요. 노동자의 정서에 쉽게 소명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끊임없이 경계하는 것은 제가 '교육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은 욕망을 제어하는 겁니다. 그것이 '정해진 시간동안 이 사람들에게 정말 어떻게 이 내용을 올바르게 전해줄 수 있을까' 하는 그 절실함 외에 '내가 오늘 교육 한 번 잘해서 잘했다는 말 들어야지' 하는 욕심이 앞서지 않도록 경계합니다. 그건 제가 후배들한테 늘 하는 충고거든요.
제가 인터뷰를 저보다 더 전문적으로 하시는 분 앞에서 얘기하기가 쑥스럽지만, 한겨레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에 대해서 기록할때도 '야 정말 하종강 인터뷰 잘한다' 이런 말 듣고 싶다는 욕망을 계속 억제하려고 애썼구요. 내가 만난 이 사람이 몇시간동안 해준 이야기를 얼만큼 진실되게 알찬 대응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이것에 정말 절실하게 신경을 써야지, 뭔가 잘하고 싶다는 욕망, 잘한다는 말을 듣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지 않도록 스스로에게 최면을 많이 합니다.
그래도 바쁘고 힘든 와중에 그 시간을 내서 거기에 와서 앉아 있는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에게 제가 제대로 교육하지 못하면 귀중한 시간을 뺏는거니까, 그건 거의 죄악이거든요. 그런 생각을 항상 합니다. 그걸 못했다고 하면 며칠 동안 후회가 되고, '왜 잘하지 못했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 - 그런 태도가 20년 이상을 하실 수 있었던 힘이 될 수 있었던 것 같은데요. 그래도 인간이니까 간혹 섭섭할때가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웃음)
하 - 간혹이 아니라 굉장히 많아요.(웃음)
지 - 저 같은 경우는 인터뷰를 하고 나면 저보다는 인터뷰 대상자가 훨씬 잘보이는 인터뷰를 해왔다고 평가를 받는데요. 간혹 어떤 분들은 김어준 총수와 비교하면서 '김어준의 인터뷰는 김어준의 재기발랄함이 보이는데, 니 인터뷰는 왜 그렇게 밋밋하냐?'고 하시거든요. 분명히 스타일이 다른거고, 둘 다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웃음)
하 - 김어준 인터뷰를 그렇게 평가하는 사람도 있지만, 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취향은 아닙니다.(웃음) 단병호 위원장 만나서 물어보는게 '정력은 횟수입니까? 지구력입니까?', 이런 식의 질문을 꼭 해야 하나요? 별로 의미가 없지, 저는 '신발 사이즈가 얼마예요?'라고 물어본 적은 있지만, 그 정도에서 그쳐야죠.
지 - 20년 이상 강의하시면서 현실적으로 몸으로 일하는 노동자들과 많이 부딪히셨는데요. 그러면서 스스로 변한 부분은 어떤게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하 - 변화한 부분이 뭐냐? 그건 인터뷰하면서 처음 들어보는데... 스스로 변화한 것, 글쎄요. 내가 처음에 각오했던 것보다는 지금 굉장히 잘 살고 있다는 거구요. 그때 각오했던 수준에 비하면 사치스럽게 사는거죠. 집사람의 경제적인 능력에 힘입은 바가 크지만, 제가 집도 가지고, 차도 가지고 살게 될거라고 생각 못했거든요. 그게 많이 달라진거구요. 생각에는 고지식할 정도로 달라진게 없는 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달라져야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합니다. 일방적으로 너무 노동자편향적이라는 말을 듣는 건 알거든요. 그런데 그건 의도적이기도 한데, 대학교 다닐 때 학생처장이 한 말이 있습니다. 나중에 총장한 양반인데, '자네에게 불만이 있는데, 자네는 박정희 욕은 그렇게 하면서 김일성 욕은 한번도 안하나, 불공평한거 아닌가' 라고 얘기를 하셨어요.
지 - 그런 얘기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으니까.(웃음)
하 - 김일성 나쁘다는 사람은 우리 사회에 흘러 넘치는데, 박정희 나쁘다고 하는 사람은 없지 않느냐, 사회적 균형을 맞추려면 우리 같은 사람은 전심전력을 다해 박정희 욕만 해도 시간이 모자랄거라고 얘기했는데요. 지금 노동운동이 잘못하는 것에 대해서도 공평하게 얘기해야되지 않겠느냐, 잘하는 건 잘한다고, 못하는 건 못한다고. 그런데 가끔 드는 비유 중에 남사당패 줄타는 광대가 줄 위에 올라갈 때 부채만 들고 올라가는데, 부채는 항상 광대의 몸이 기울어지는 반대편으로 펼쳐져야 되거든요.
이것도 사실은 김형수 시인이 어느 잡지에 쓴 표현을 본거예요. 엄정중립을 유지하겠다고 부채를 가운데다 놓으면 바로 떨어져버리거든요. 자신이 얼만큼 옳은 말을 하는가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한 말이 사회에 옳은 영향을 미쳐야해요. 우리 사회가 노동운동에 대한 그릇된 혐오감으로 팽배해있는데, 거기서 공정하게 노동운동을 객관적으로, 합리적으로 비판했다가는 대중의 정서에 노동조합에 대한 혐오감을 그릇되게 양산시키는 효과를 가져오거든요. 그러면 하고 싶은 말도 참아야죠. 자신이 하고 싶은 표현을 스스로 제약할 필요가 있을 때가 있습니다.
지 -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 관해서 "우리 사회가 노동조합이나 노동운동에 대해서 얼마나 오랫동안 국민들에게 그릇된 혐오감을 주입시켜 온 사회인지 설명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우리 사회는 노동조합이나 노동운동이 사회에 유익하다는 정서가 정상적으로 자리 잡아 본 적이 역사적으로 한번도 없거든요"라고 말씀하셨는데요.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들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하 - 홍세화씨 같은 경우는 노동자들이 공부해야한다고 강조하구요. 그리고 제도적으로, 구조적으로 바뀌어야죠. 서서히 바뀌고 있고, 전교조 교사들에 의해 학교교육과정이나 교육내용이 많이 바뀌고 있구요. 노동부가 드디어 선진5개국 노동계의 실태조사를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수백 페이지 보고서를 보니까 입이 벌어져요. 독일에서는 수업시간에 노동문제에 대해서 공부할뿐만 아니라 초등학생들이 교실에서 모의 노사교섭을 해요. 경영진측, 노동조합측으로 나눠서 임금교섭도 하고, 단체별로 계약을 체결하는 활동을 초등학교때부터 해봐요. 우리도 서서히 그렇게 되는거죠.
지 - 보통 노동운동에 대한 비판...
하 - 노동운동이나 노동조합에 대한 그릇된 혐오감에 우리가 얼마나 찌들어 왔는지를 설명하면 때묻지 않은 학생들은 그런 질문을 해요. '그럼 정부에서 기업들이 다 조사해서 노동조합이 없는 회사는 조치를 취해야되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왜 그런걸 나라에서 안하고 있나요?', 그렇게 물어보는 학생이 있었어요. '아, 발상의 전환이 이런거구나. 때 묻지 않은 시선으로 보면 이렇게 보이는구나' 하는 걸 느꼈습니다.
지 - 우리가 너무 자본 위주로 생각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때가 많거든요.
하 - 자본 위주로 생각한다는게 자본가의 이익에 봉사한다는게 아니라 '노동자가 임금인상을 요구하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고, 그럼 경쟁력이 떨어져서 국익에 해롭다, 수출이 저하되서 나라 전체에 해롭다'는 생각에서 못벗어난다는 것입니다. 수십년동안 우리 사회에서 여기까지만 생각하기를 바라고, 사람들을 훈련시키고 가르쳐온거죠.
지 - 예를 들어 지하철 같은 경우 사람이 떨어져 죽는 사고가 자꾸 일어나면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안전대책을 세워야할 것 같은데, '돈 많이 들잖아'라는 생각을 먼저 하는 것 같거든요. 만약에 누가 그런걸 요구하면 '쟤, 유난떠는거 아냐?' 그렇게 생각해왔지 않습니까?
하 - 평등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부딪혔을 때 스스로 깜짝놀라는 경우가 있는데요. 예를 들어 박노자 교수 같은 경우는 '한글은 세종대왕이 만들었다고 하는게 아니라 집현전 학자가 만들었다고 하는게 옳은거 아닌가요?'라고 합니다. 외국사람들은 대체로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 것 같아요. TV 유선방송을 보니까 관광객들에게 똑같은 실험을 각나라별로 해봤는데, 관광버스 운전기사가 술에 만취된 듯이 연기하는 거예요.
그런데 영국 사람들은 굉장히 분노했어요. 기사를 교체시켜달라고 요구했구요. 미국 사람들은 '이 나라에서는 술을 마셔야 운전이 되나 보지?'하고 기사를 바꿔달라고는 요구했지만, 굉장히 개인주의적인 사고 방식을 드러냈어요. 독일 사람들은 이 기사를 교체해달라고 관광회사에 요구하면서, '해고는 하지 마라. 이 사람도 가족이 있을 거 아니냐, 이 사건 하나 때문에 해고하는 건 가혹한 거 아니냐'는 요구를 하더라구요.
그게 평균적인 정서라고 보는거죠. 우리가 독일, 프랑스, 영국 등 대표적인 사민주의적 정권이 몇차례 집권을 했던 대표적인 선진국만 그럴거라고 오해를 하지만, 똘레랑스가 그런데만 있을거라고 생각하지만, 이탈리아도 마찬가지거든요. 한 라디오방송사의 통신원이 얘기하는데, 한 지방소도시의 버스회사가 5년간 300회를 파업했데요.
5년동안 300회나 파업을 해서 도시교통이 마비가 됐는데, '불편하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에 주민들의 반응이 '그 사람들도 파업할 이유가 있어서 했겠죠. 내가 지금 불편하다고 해서 그 사람들 비난하면 내가 파업할 때 누가 날 이해하겠어요?'라고 하는데, 1년에 파업 한두번 한거 가지고 그런게 아니거든요. 3년동안 500회 파업을 한 도시에서 주민들이 그런 반응을 보이는데, 전세계에서 소매치기가 가장 많다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그 정도인거거든요.
우리나라가 노동자의 권리에 관해서는 비이성적인 정서가 있는 나라죠. 여성의 권리가 신장되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잖아요. 장애인의 권리가 확대되는 것이 사회가 진보하는 방향이라고 다 인정하는데, 그런 사람들 중에서조차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의 권리가 확대되는 것은 사회에 이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지 - "정규직 노동자들이 기업을 상대로 임금인상 투쟁을 하면 기업은 이 손실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더욱 억압하면서 만회하는 경우가 많다"는 말씀도 하셨는데, 이런 점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을 원망하기도 하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하 - 그런 분들이 있는게 아니라 대부분 그런 정서를 가지고 있어요. 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 - 그것이 보수세력의 노동운동에 대한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것 같기도 한데요.
하 - 대기업노동자의 기득권을 공격하는 사람은 크게 보면 두 종류인데요. 노동운동이 그렇게 타락하기를 바라면서 공격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은 사용자단체죠. 정부도 그런 편이구요. 현대중공업노동조합이 대기업 노동자의 기득권에 가장 대표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을 때 현대중공업노동조합에 대해서 아무 소리도 안했어요.
노사 협조주의를 표방하는 자기 편이거든요. 실제로 노동운동의 장래를 걱정하고, 노동운동이 도덕성과 정당성을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걱정하면서 그걸 비판하는 사람이 있어요. 비판하는 목소리는 그렇게 두가지로 구분해서 봐야하구요. 전제는 노동자 사회내의 차별을 철폐해야한다는 겁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철폐해야한다는 겁니다.
또 다른 전제는 그것이 정규직 노동자의 권익을 축소시키는 방식으로 차별을 철폐하는 것은 사회 전체에 해롭다는 겁니다. 우리 경제에 유익하지 않다는 거예요. 기업의 수출이 줄어드는 것보다 더 해로워요. 그러니까 대기업 노동자들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면 기업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통해 손실을 만회한다, 그래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이 더 열악해진다, 그러면 대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인상분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몫에서 만회하려는 자본의 행태가 나쁜거죠.
이 사람들이 나쁜놈들이지, 그러니까 이럴 때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가 같이 힘을 합쳐서 자본가와 싸워야지, 비정규직 노동자가 자본가와 정규직 노동자를 한쪽에 놓고, 자신의 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사회발전에 유익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실질적으로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차이가 큰 게 사실이니까 정규직 노동자는 자신들의 권리를 일정부분 양보하는 것이 우리 사회 전체에 유익하지 않지만, 전술적으로 양보하는 방법을 선택할 필요가 있는 겁니다.
이 방식이 아니고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끌어안을 수 없습니다. 한 사업장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이 임금인상 투쟁을 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까지 같이 인상시켰어요. 그런데 예를 들어 정규직은 8만원, 비정규직은 6만원 인상시켰어요. 그런데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임금이 원래 낮았기 때문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가 더 벌어져요.
정규직은 5만원, 비정규직은 10만원이 인상이 되어야지, 차별이 철폐될텐데, 언젠가는 그렇게 되겠지만, 지금 처음 시작부터 이렇게 성공하기 어렵거든요. 분명한 것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을 위해 같이 싸우지 않았다면 그런 인상도 힘들었거든요.
그러니까 이런 긍정적인 면들을 자꾸 봐야되는거죠. 마찬가지로 대규모 금속사업장의 산별노조 전환의 결의가 부결되었다는 것을 자꾸 비관적으로 보거든요. 조합원 4만명 이상되는 조직이 조합원 2∼300명짜리 조직과 같은 자격을 가지는 조합원이 된다는 것, 자신의 기득권을 일정 부분 포기해야되는 결정을 해야되는데, 이건 노동법상 규약사항이어서 2/3 이상이 찬성해야 법적이 효력이 생겨요. 그런데 2/3가 되지 못했을 뿐이예요.
2/3에 약간 미달되었을뿐이지, 지금까지 보면 과반수는 훨씬 넘었거든요. 이게 얼마나 희망적이예요. 오히려 기대할만한 일이죠. 수만명의 조직을 가지고 있는 조직이 수십명 또는 수백명을 가진 조직과 같은 자격을 가지는, 자기 기득권을 포기한 결의를 하는 사람이 과반수가 넘었습니다. 그러니까 점점 이런 사람들이 많아질거라고 활동가들은 생각하는거죠. 희망적인 측면을 봐야죠. 솔직히 그걸 기적이라고 생각 안하세요? 절반이나 찬성을 했는데.
지 - 그런 것을 많이 알려야되는데, 언론들이 부정적인 측면만 자꾸 부각시키지 않습니까?
하 - 그 사람들은 알고 의도적으로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거 밖에 안보이는거예요. 신문 기사의 제목을 뽑는 것을 보면 그들이 악의적으로 노동운동을 매도하기 위해서 그런 제목을 뽑는 사람들은 조선일보와 경제신문 밖에는 없어요. 그리고 나머지 보수언론들은 그 토양속에서 수십년을 살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오는 거예요. 노동조합에 대한 비판적인 제목들이 자연스럽게 뽑히는 거죠.
지 - 보통 보면 조선일보가 어떤 기사를 쓰면 다른 신문들이 그 프레임대로 기사를 작성하고, 진보진영 역시 그 프레임대로 사고하는 경우가 많이 있지 않습니까?
하 - 거짓말을 계속하면 기정사실이 되는 효과가 있잖아요. '방귀가 잦으면 똥을 싼다'는 표현을 하기도 하는데, 저는 조선일보를 가끔 보거든요. 일부러 보지는 않고, 눈에 띄면 보는데, 볼때마다 깜짝깜짝 놀래요. 이정도까지 하나 싶어서. 그런데 그걸 매일 접하는 사람들은 그 어마어마한 주장들의 한 10% 정도는 사실일거라고 믿거든요. (최소한 노동문제에 관해서는) 사실은 10%도 사실이 아닌데, 120% 거짓말인데, 그러니까 계속되는 기만 속에서 이것이 100% 거짓말일거라는 것을 상상하지 못하는 거거든요. 자신들이 행간의 의미를 걸러서 읽는다고 착각하는 겁니다. 한 10%나 20%는 진실이겠거니 하는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지 - 지하철에서 가끔 주워읽기도 하는데요. 동아일보도 장난이 아니던데요.
하 - 동아일보는 이번 정부 들어서서 자기들이 개혁의 대상이 된 점을 알고, 자기 목에 칼을 들이대는거라고 생각하고, 저항하는거죠. 그들은 역사의식이나 철학을 가지고 하는게 아니라 눈앞의 이익 때문에 비이성적이 되는거죠.
지 - 이 일을 하시면서 가장 힘들었을때가 언제입니까?
하 - 저는 사실 힘들었을때가 별로 없었어요. 90년대초에 세계사적인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을 때 당연히 세계관의 혼란을 겪었죠. 사회주의 국가들이 전부 몰락하고 그랬을 때 겪었는데, 저는 참 다행스럽게 그 와중에도 일이 있었어요. 어떤 일이냐 하면 내가 오늘 이 진정서를 붙들고 하루밤 고생하면 저 노동자가 따뜻한 밥 한그릇 먹게 된다, 이런 만족감이라고 할까, 그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이 항상 있었어요. 초등학교 교과서 정도의 인도주의적인 원칙을 만족시킬 수 있는 그런 일이 나를 구원했다고 표현했더니,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만 알아듣는 말이라고 하더라구요.(웃음) 그런 일이 항상 저에게 있었다는 것이 그 어려운 시기를 견디게 했을 겁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일하고 있는 위치나 조직이 몇 번 바뀌었는데, 그때마다 저는 전화위복이 되었어요.
지 - 사모님께서 일하시고, 후원하시는 분이 한 분 계신다는 얘길 들었는데요. 그래서 버틸 수 있었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하 - 여성운동하는 사람들에게는 나 같은 존재가 한마디로 죽일 놈이지,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제 처가 특수학교 교사거든요. 장애인들을 가르치는 특수학교 교사로 30년 가까이 해왔구요. 그건 제가 감히 침범할 수 없는 자기만의 영역이예요. 자기가 그렇게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자기만의 영역이 없었다면, 우리 가정이 굉장히 더 힘들었을겁니다.
남편에게 실망하고, 남편이 가정에 충실하지 못하고, 이랬더라도 자기 일이 있으니까 그 사람은 그 일을 붙들고 견딜 수 있었을 겁니다. 생각이 일단 굉장히 훌륭하다고 얘기할 수 밖에 없죠. 74년 11월에 처음으로 제가 학교에서 총대를 매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그때는 겁나는게 많잖아요. 징역살고 이러는 것보다 20년동안 가꿔왔던 온 가족의 꿈을 포기해야되는, 가문의 꿈을 포기해야되는 결단을 내려야하거든요.
그래서 며칠 학교도 가지 않고, 집에 틀어박혀서 내 방에서 두문불출하고 있을 때 였는데요. 제 처가 그때 제 여자친구였는데, 저한테 편지를 보냈어요. 뭐라고 썼느냐 하면 '니가 지금 결단하지 못하는 이유가 다른 것 때문이 아니라 학교다닐 때 데모 한번 하고 평생 동안 경제적으로 완벽하게 무능력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을 걱정하는 거라면, 최소한 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어릴때부터 교사가 되고 싶었고, 자라면서 한번도 그 꿈이 바뀐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교사가 될거다.
그래서 우리가 결혼을 하면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도 그 사회의 교사의 생활 수준을 갖는다. 다른게 이유라면 상관할 수 없지만, 학생운동 경력 때문에 경제적으로 무능한 인간이 될 것을 걱정하는 거라면 그런 걱정은 하지마라'는 내용이었어요. 깨알같이 편지에 써서 보냈어요. 제가 그 편지를 증거삼아 아직까지 잘 두고 있습니다.(웃음) 요즘은 우리 후배들이 가끔 처를 만나서 '선배님, 어떻게 그런 결심을 할 수 있었어요?'하고 물어보면 '내가 그때 판단을 좀 잘못했지'하고 농담을 하는데, 아직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어요.
사람들이 노동운동을 많이 떠날 때 가만히 있는 사람만 멍청한 사람인 것 같이 느껴질때가 있잖아요. 자격증 시험에 매달리거나, 학원 강사를 하거나, 그 나이에 늦게 복학을 하거나, 시민운동 영역으로가거나, 그럴 때 가만히 있는 놈만 바보인가 하는 고민을 며칠동안 하다가 이 일을 계속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제 처한테 '여보 당신 남편이 평생동안 노동상담이나 하다가 죽는 사람이 되도 괜찮겠냐?'고 했더니 '나는 당신이 다른거 할까봐 겁나는 사람이니까 계속 그거나 해라'하고 말하는 사람이예요.
그래서 제가요. 제가 만난 노동자들은 해고되고, 구속도 되고, 가압류도 당하고, 분신도 하고 그래요. 그런데 저는 우리 사회에서 교사의 생활수준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게 내가 아마 평생 지울 수 없는 부채감일 것 같아요. 1년 몇 개월동안 해고당했다가 분신한 사람 집에 가보면 싱크대, 냉장고에 막 곰팡이 파랗게 슬어있는 반찬을 보고 그래요.
전 최소한 그렇게는 안살거든요. 교사의 생활수준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래서 전교조 교사들을 만나면 이렇게 누리는 우리가 더 일을 많이 해야한다고 얘기를 하죠. 어느 누구라도 이런 상황이 되면 부채감을 가지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지 - 부채감을 가지면서도 할 수 있다는 것도 대단한 것 같은데요. 그 부채감이 싫어서 도망갈 수도 있지 않습니까?(웃음)
하 - 그 부채감 때문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만큼 제가 양심적이지는 못한거죠. 그러니까 제가 80년도에 수배가 되가지고, 석유가게에서 배달하면서 숨어 있을 때 기훈이처럼 기독교 방송 8층에서 계엄군 탱크위로 떨어져죽는 일 못했잖아요. 근데 기훈이가 그때 쓴 유인물 제목이 '동포여 무엇을 하고 있는가?'였거든요. 어떻게 하라고 한게 아니라. '광주에서 지금 수백명이 죽는데, 동포란 놈이 뭐하고 있느냐'고 하면 평생 뭐라고 대답하겠어요? 숨어있었다고 대답할 수 밖에 없죠.
근데 장례 치른 선배가 만날때마다 하는 말이 '똑똑한 놈들은 전부다 숨어버리고 멍청한 놈들만 남아서 장례를 치렀다'고 해요. 애새끼들이 얼마나 숨었는지 관을 운구할 놈들이 없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부채감에 시달려서 자살을 선택할만큼 양심적이지는 않은거죠. 인터뷰를 하면서도 민망하네요.
지 - 강연료는 안받으시는 경우가 많을 것 같은데요.
하 - 받아요. 안받는 경우보다 받는 경우가 많구요. 물론 보태주고 와야되는데가 많아요. 이런데서 돈 받으면 지옥가겠구나 싶은데가 많죠.
지 - 보통 다른 분들보다는 적게 받으시죠?
하 - 민주노총이 원래 강사료가 적어요. 어제 안동가서 강의했는데, 규정에 따라서 차비만큼 주시더라구요.(웃음)
지 - 기독교인이신데, 최근 일부 기독교계통의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시위나 친미 성향의 대규모 시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 - 한국의 기독교가 기형적인 기독교여서 그렇거든요. 상당히 부끄럽죠. 근데 기독교에 정통이 있어요. 역사적으로 최초로 기록된 성경은 출애굽기라는 성경입니다. 창세기가 아니라. 누구나 다 인정한 사실인데, 출애굽이 애굽(이집트)에서 탈출한 얘기잖아요. 이집트에서 수백년동안 노예생활을 하던 노예들이 모세라는 훌륭한 지도자를 만나서 노예해방전쟁에서 승리해요.
그리고 홍해를 건너서 탈출에 성공합니다. 그러면서 기록을 시작한게 기독교의 시작이예요. 기독교는 노예해방으로부터 시작된 겁니다.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믿던 신이 하나님이었어요. 영어로 여호와죠. 그러니까 기독교가 노예종교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하는 전통이 기독교 2,000년 역사에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그 반대쪽의 전통이 들어와서 토착화된거죠. 기독교에 보면 12지파가 나중에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를 가나안땅에 만들잖아요.
12지파가 재산을 다 공평하게 분담하면서 제사장을 배출했던 레위기파에는 재산을 한푼도 안줘요. 당시의 종교는 권력이기 때문에 종교를 담당하고 있던 지파에게는 한푼의 재산도 주지 않은거예요. 권력을 가진 집단이 경제력을 가지게 되면 또 다른 특권층이 생기는거거든요. 그런데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구조는 수백년동안 자기들이 이집트에서 지겹도록 겪었어요.
그래서 구조적으로 이걸 막은거예요. 그래서 나머지 11개지파가 자신들의 수입중에 1/10을 걷어서 이 사람들을 먹여 살렸는데, 그게 십일조예요. 그게 다른 종교에는 없습니다. 기독교에만 안식일이 있어요. 6일 일하고 하루는 쉬어야 한다, 그걸 우리 한국 교회에서는 하나님이 6일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7일째 쉬었으니까 인간도 따라서 쉬어야한다는 이것만 가르쳐요.
그런데 성경에 안식일을 규정한 내용을 살펴보면 거기 뭐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냐 하면 '안식일이 되면 주인인 너부터 반드시 쉬어라. 그래야 너의 남자 종도 쉬고, 여자 종도 쉬고, 너의 집에 온 손님도 쉰다, 니가 열심히 일을 하면 너의 종이 쉬지 못한다. 그러니까 반드시 너부터 쉬어라' 이것은 열심히 노동하는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는 집단에서만 나올 수 있는 계율이거든요.
이것을 종교적인 측면만 강조하는 것은 올바른 기독교가 아닙니다. 부활이라는 신앙은 기독교에만 있어요. 부활은 불교처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게 아니라 땅에 묻힌 시체가 거기서 생기가 돋고, 육신이 다시 살아나는거예요. 이건 다른 종교에는 없거든요. 왜 기독교에만 부활신앙이 있냐 하면 노예의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노예해방전쟁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전쟁이라고 하더라도, 정당한 전쟁이라고 하더라도 이기는 노예가 많았겠어요? 지는 노예가 많았겠어요? 숫하게 죽었죠. 그러니까 정의로운 싸움에 죽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힘이 필요하냐하면 '우리가 지금은 이렇게 죽지만, 언젠가는 살아나서 원수 갚는 날이 오는거야' 이런 믿음이 필요한거죠.
우리가 파업 열 번하면 한번 승리해요. 근데 우리가 왜 해요.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이 그렇게 경찰하게 비참하게 깨지면서 마음 속에 어떤 생각을 합니까? '우리가 지금은 비참하게 깨지지만, 언젠가는 우리가 승리하는 날이 오는거야. 이 놈들아. 노동자의 뜻이 옳다고 밝혀지는 날이 오는거야', 똑같은 겁니다. 기독교에 보면 기독교가 노동을 담당하는 계급인 노예로부터 출발했다는 증거가 곳곳에 있어요.
이런 걸 잊지않겠다고 강조하는 기독교의 전통이 있고, 열심히 복바치면 하나님이 복을 내리신다, 교회에 백원내면 천원으로 갚아준다는 것만 강조하는 전통이 있는데, 우리는 후자가 토착화된거예요. 그러니까 그 인간들 중에 중요한 사람들이 옛날 전두환, 노태우때 '만수무강하시옵소서'하는 조찬기도회 하던 놈들이잖아요.
그 사람들은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는 자신들이 입바른 소리를 하면 바로 자신들에게 피해가 오니까 용기가 없어서 하지 못했던 것이고, 지금 노무현 정권은 자신을 비판한다고 탄압하는 정권은 아니니까 마음 놓고 저러는거죠. 언론도 마찬가지죠. 조선일보가 과거 군사독재정권에서 끽소리 못하고 있던 것은 자신들이 손해를 볼까봐 두려웠기 때문이고, 지금 이 정권은 언론탄압하지 않을 정권인 것을 아니까 그러는거죠.
노무현 정부가 그 정도의 수준은 가지고 있는겁니다. 그래서 노동운동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교회를 다닌다고 신기해하는데, 기독교내에서 그런 전통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남미에는 신부들이 게릴라가 돼서 총들고 싸우잖아요. 하기 싫어도 할 수 밖에 없는, 그들의 신앙속에서는 버리지 싶지만, 잡을 수 밖에 없는게 총이거든요.
지 -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의원이 일부 역사 교과서가 반미·친북·반재벌적 시각으로 기술됐다고 문제를 제기하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둘러싸고 보수세력들이 총집결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
하 - 그건 무식해서 그렇죠. 자신들이 무식하다는 걸 모르는거예요. 대학교에 지난번에 가니까 학생들이 강연제목을 '우리가 모르는 대한민국'이라고 붙였더라구요. 최소한 모른다는 것은 아는거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자신들이 모르는 것조차 모르는거죠.
그 입장에서는 깜짝 놀랄만한 내용으로 보일 수도 있어요. 근데 3.1운동 같은 것에 대해서도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의 영향을 받았다고 계속 가르치던 사람들이 실제 러시아 혁명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았다고 하면 깜짝 놀라는거죠. 무식하니까 친북, 좌경이니 하는 얘기가 나오는겁니다.(웃음) 태평양 바다 건너 미국 대통령의 선언이 더 큰 영향을 줬겠어요? 아니면 바로 붙어 있는 나라에서 일어난 엄청난 역사적인 태풍인 러시아 혁명이 영향을 많이 줬겠어요?
어느게 영향을 많이 끼쳤겠어요? 3.1 운동이 일어나기 몇 년쯤 전에 일어났던 사건인데, 옳으면 옳은데로, 그르면 그른데로 가르치자는거죠. 그걸 찬양하자는게 아니라. 그래야 올바로 보는 역사의식이 생기죠. 남북전쟁도 링컨 대통령이 훌륭한 인품으로 노예를 평등한 인간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일어난거라고 가르치는 나라니까. 당시 미국의 북부는 급속히 공업화가 진행되어서 공장이 세워지고, 자본가 계급이 형성되면서 해방된 노예들이 물밀 듯이 몰려와서 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동자가 필요한 상황이 되었고, 남부는 목화를 재배하는 수많은 흑인노예가 반드시 필요한 농업경제체제였습니다.
두개의 상이한 경제적인 이해관계의 충돌로 일어난 전쟁이 남북전쟁인데, 이렇게 안 가르친 나라에서 그런 얘기가 나오면 깜짝깜짝 놀래는거죠. 그런데 우리도 그렇게 될겁니다. 서서히 7차 교육과정에서는 3.1운동에 끼친 러시아 혁명의 영향이 한줄 정도 반영이 됐구요. 전교조 선생님들도 거북선을 이순신이 혼자 만들었다고 가르치지는 않거든요. 한글도 세종대왕이 혼자 만들었다고 가르치지 않구요.
지 - 홍세화 선생님께서"'공무원, 교사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허구적 신화에서 벗어날 때 공직사회의 부패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으며, 마침내 국민에게 봉사하는 진정한 공복이 될 것이다. 교사들 또한 사회구성원에 대한 국가주의 이데올로기 의식화의 마름 노릇을 그만 둘 때 진정한 교사가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공무원노조와 전교조의 민주노동당 지지 선언은 국가의 왼손들이 오랜 동안 빼앗겼던 시민적 권리의 탈환이자 인격주체 선언이며 우리 사회 진보를 위한 거보이다"라고 하셨는데요. 우리 사회에서 교사나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강하게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하 -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는 것은 정권의 하수인이 되지 말자는거지,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가지지 말자는게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공무원이나 교사의 정치적인 활동을 법적으로 제약하는 나라가 전세계에 거의 없어요. 미국에 있었던 해치법이라는 것을 중요하게 내세우는데, 그게 아마 1920년대에 있었던 법일 겁니다. 지금은 미국도 그렇지 않거든요. 공무원과 교사들이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을 억압하는 사회는 거의 없어요. 사회를 그렇게 운영하면 동맥경화에 걸려서 나중에 사회에 커다란 혼란이 발생합니다. 자유로운 의사가 발현이 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것이거든요.
지 - 단병호 의원이나 배일도 의원 같이 노동계에서 현실 정치계로 가신 분들이 많은데요. 그런 현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 - 그런 현상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는게 부끄러운 일인데... 어떻게 보면 당연한 현상이거든요.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가 단병호 위원장 인터뷰하면서도 계속 집요하게 물어보는게 '정치하려고 노동운동하지 않았느냐는 비난이 부담스럽지 않았느냐'는 건데, 우리나라니까 그런 의문이 생기는거지, 다른 나라 같은 경우는 제도권 교육과정 속에서, 철학시간, 역사시간에 다 가르쳐요. 사회발전 법칙 중에 양질 전하의 법칙이 있잖아요.
양적인 집적이 질적인 변화를 초래한다, 물의 비등점을 들어 설명하잖아요. 계속 가열하면 열이 상승되고, 에너지가 축적되는 양적인 변화가 계속되다가 비등점에 다다르면 액체는 기체로 전환하잖아요. 다른 나라에서는 철학 시간에 양질전하의 법칙의 현실적인 사례로 노동운동에 대해서 가르쳐요. 노동운동이 점점 조직을 확대하고, 종업원 숫자가 늘어나는 것이 양적인 전하의 축적이에요.
그러다가 일정 단계에 이르면 정치적 권력을 장악하고, 정치세력화 하면서 사회의 정책을 바꾸는거예요. 이렇게 가르치는 나라에서는 운동하다가 정치하는 것을 하나도 이상하다고 생각안해요. 이렇게 되니까 스웨덴 같은 나라에는 재벌들이 재벌을 인정하는 조건으로 재벌이 85%의 세금을 부담하겠다는 것에 동의할 수 밖에 없었던 거구요.
핀란드 같은 곳에서는 재산과 수입에 비례해서 벌금을 부과하니까 노키아 부회장이 교통위반을 한번 했다고 벌금을 1억 3,000만원씩 내잖아요. 그게 사회 성격이 바뀌지 않으면 불가능하거든요. 열린우리당 같은 정권이 몇 번씩 바뀌어도 이런 제도는 안생겨요.
그런데 노동운동이 정치세력화함으로써 이런 변화가 오는거거든요. 작년에 한달동안 네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죽었어요. 목매죽고, 불타죽고, 떨어져죽고, 한달 사이에 그렇게 죽었는데, 대한민국 국회에서 이것에 대해서 한마디가 안나와요. 이제는 절대로 그렇게 못하죠. 민주노동당은 숫자가 중요한게 아니라 이 단계에서 사회성격을 바꾼다는 의미가 있는거예요. 한명도 없었던 것에서 10명이 있는 것은 죽은 것과 산 것만큼의 차이가 있는거죠.
지 - 지금은 정치하려고 노동운동을 했다는 비판은 많이 수그러든 것 같구요. 민주노동당 의원이 10명이 된데 대해 상당한 기대가 컸던 것만큼 의회에 들어가서 어쩔 수 없이 타협하고, 마모될 것을 걱정하는 마음도 큰 것 같은데요.
하 - 모르겠어요. 개인적으로 변절을 하는 사람이 생길지는 모르지만, 조직적으로 민주노동당의 성격이 바뀌는 것은 불가능하죠.
지 - 변절이라기 보다... 노무현 정부가 제가 볼때는 상당한 의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득권한테 힘에서 밀려버린 면들이 없지 않아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 것처럼 힘의 부족을 절감하고 타협하고, 굴복하지 않을까 하는 걸 우려하는거죠.
하 - 굴복이라고 표현하기는 그런데, 현재의 권력구조를 돌파해낼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겠구요. 노무현 대통령은 누가 얘기한 것처럼 당선됐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큰일을 한거예요. 가장 큰 공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었다는 것만으로도 한국 보수세력들이 백년만에 큰 위기의식을 느끼게 만들어서 이성적인 판단을 불가능하게 만들어서 탄핵사태가 일어난거거든요. 얼마나 웃기는 일이예요? 초등학생들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국회에서 벌어진건데, 우리 아이들도 밥먹다가 TV에서 '불법 자금이 우리의 1/10을 넘지 않았습니까?'라고 한나라당 의원이 그러니까, '야 니들이 지금 그 말이 나오냐?'고 하더라구요.(웃음)
지 -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한나라당 의원이 나와서 '노무현 대통령이 함정을 파놓고 기다렸다. 그걸 모두 알고 있다'고 하니까 손석희 아나운서가 '그걸 알면서 왜 하셨습니까?'라고 하는 걸 듣고 뒤집어졌는데요.(웃음) 참여정부와 비슷하게 민주노동당도 지금 현재 여러 가지 사회구조나 권력구조를 돌파할 힘이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 - 당연히 부족하죠. 그러니까 소금이 음식을 부패하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하잖아요. 소금이 양이 작으면 짜게 만드는 역할은 못해도 부패하지 않게 만드는 정도의 역할은 할 겁니다.
지 - 다른 분들 같은 경우는 충분히 행보가 이해가 가는데, 배일도 의원에 대해서는 좀 의외라는 반응들이 있는 것 같은데요.
하 - 그 사람은 서울 지하철 노조에서 몇 번 임기동안 노동조합위원장하면서 충분히 예견했잖아요. 그 홈페이지 게시판에 가보면 결국 한나라당에게 잘보여서 국회의원하려는 거 아니냐는 공방이 벌써 몇 개월전부터 계속 게시판을 도배하다시피 올라왔었어요. 오히려 우리가 짐작했던 것보다는 한나라당 안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더라구요.
국가보안법이나 이런 것에 있어서는. 그런데 배일도씨가 한국 대기업에서는 최초로 서울지하철노동조합을 만들었잖아요. 그 이후에 대기업 노동조합이 만들어진거구요. 지하철 노조가 처음 만들어졌을때는 우리 사회에서 굉장히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저도 그런 충격을 받았구요. 그게 그 사람의 몫이고, 역할인거죠. 그런데 그 사람도 역사의식으로 단련되는 조직운동 속에서 배양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한계를 가지는거죠.
상당히 노사협조적인 행태를 보일 수 밖에 없었던것이고, 이번 지하철노조의 파업이 궤도공동파업이라는 시도를 했으면서도 무참하게 무너질 수 밖에 없었던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는 배일도 전 집행부가 그동안 해왔던 노사협조적인 성향이 굉장히 큰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결국 조직에서 스스로 이탈하는 사람들이 대개 배일도 시대부터 제기된 사람들일거예요.
노동조합은 전체가 결정하기 전까지는 자기 의사에 반하더라도 거기에서 이탈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같이 시작해서 같이 끝내야해요. 소수가 다수에 승복하고. 아무리 자기 생각이 옳아도 다수가 거기에 동의하지 않으면 승복하고 있어야 되는데, 나와버린거거든요.
차곡차곡 쌓여진 벽돌 더미 속에서 밑의 몇장이 빠지면 전체 대오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것입니다. 과반수가 그 파업을 접어야된다고 동의해서 접은 것이 아니라 소수의 대오가 이탈해버리니까 더 이상 버티질 못하고 무너진거죠. 노동조합이 승리하려면 내부에서 치열한 논쟁을 거쳤더라도 밖에서는 구별이 안되야 돼요. 모르는 사람들이 볼때는 누가 찬성을 했는지, 누가 반대를 구별이 안되도록 해야되는데, 그 원칙을 지키지 못한거죠.
지 - 결국 자이툰 부대를 이라크에 파병했는데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 - 당연히 파병하지 말았어야죠. 명분없는 전쟁에 우리가 참여한거구요. 한미관계를 고려해서 국익의 차원에서 했다고 하지만, 아마 파병하지 않았다고 해도 국익에 큰 해가 없었을 겁니다. 파병을 하지 않을 경우 우리가 구체적으로 어떤 해를 입을 건지 설명해보라고 하면 아마 설명하지 못할 겁니다.
지 - 그리고 많은 노동자들이 개인적으로는 이라크 파병을 찬성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 - 대중의 정서는 그런게 있죠. 김선일씨 죽었을때도 공수부대 파견해서 보복을 해야된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어요. 그러니까 이걸 현단계속에서만 파악해서는 안되구요. 전체 역사진행과정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느냐를 파악해야되는데, 우리는 제도언론속에서 그게 배양이 안되는거죠.
주5일근무제가 실시했던 첫주에만 방송에 다섯 번 출연을 했는데, 노동문제에 대해서 방송에 나가서 이야기할 때 우선 힘든 점이 뭐냐하면 아나운서를 이해시키는 것이 힘들어요. 아나운서도 노동조합이나 노동운동에 대해서 잘못한 혐오감을 수십년동안 주입받아온 보통 사람일때가 많아서 (손석희 아나운서처럼 자기가 파업을 주도하고, 구속된 경험이 있는 사람은 다르지만) '주5일 근무제가 도입이 되면서 주당 노동시간이 40시간으로 줄어들지만, 기존의 임금시수는 저하시키지는 않는다'는 조항이 있다고 설명했더니, 잠깐 광고나가는 시간에 아나운서가 저한테 묻더라구요.
'그럼 노동자들이 (우선 아나운서가 노동자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하는데 오래 걸려요) 일은 예전보다 훨씬 적게하면서 돈은 다 받겠다는건데, 그게 도둑놈 심보 아닌가요?', 그게 보통사람들 생각일수도 있어요. '일은 적게했으면, 그만큼 돈도 적게 받아야지, 그대로 다 받겠다면 옳지 않은 것 아니냐?', 그래서 제가 '인류의 역사는 노동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조금씩 적게 일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더 잘살게되는 방향으로 발전해오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주5일근무제가 도입되는 과정을 역사발전과정 속에서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게 제도권 교육 속에서 갖춰져야합니다. 다른 나라 제도권 교육속에서는 갖춰져있거든요. 남북전쟁에 대해서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이런 해석을 배우면 사람들의 집단적인 이해관계와 관련해서 이들이 현단계 속에서만 파악되는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되는지 파악하게 되거든요. 이라크 파병 문제도 역사의식을 가지고 판단하면 길이 쉽게 보이거든요.
제가 방송에서 칼럼을 하면서 '운동권 세미나에서나 쓰던 정체성이란 단어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이 얘기하는 화두가 됐습니다. 조금 심하게 얘기하면 개나 소나 다 정체성을 이야기합니다'라고 얘기했다가 방송에 항의 전화가 많이 왔다고 하더라구요. '우리가 개나 소란 말이야?'하구요. PD가 전화로 그런 뜻이 아니라고 변명을 했다고는 하는데, 정체성도 지금은 헷갈려요.
조금씩 역사적인 호흡을 가지고 보면 조선사회 이후 40년은 일제 식민지 이게 정체성이었잖아요. 그 이후에는 이승만 친일독재정권 이게 우리 정체성이었고, 그 이후에는 군사독재정권 이게 우리 사회의 정체성이었거든요. 긴 안목으로 보면서 계속 넘겨야돼요.
지 - 1994년에 '항상 가슴 떨리는 처음입니다'로 제6회 전태일문학상을 받으셨는데요. 어떤 내용입니까?
하 - 제가 노동자들을 만나서 겪었던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적은 겁니다. 왜냐하면 웬만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들이 노동자들의 생활 속에는 많아요. 예를 들어 '빵과 장미'라는 켄로치의 유명한 영화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감동했다는. 그런데 그건 한국의 환경미화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예요. 정말. 그거보다 10배도 더 영화같은 일들이 노동자의 생활 속에서 일어나요. 이런 걸 누군가는 기록해야겠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것이 이렇게 많은데, 그러니까 그걸 짬짬이 기록하다가 몇 년간 기록했던 것을 모아서 냈어요. 소설을 쓴건 아니고, 기록문학 부문에서 상을 받은거죠.
지 - 또 준비하시는 책은 없으신가요?
하 - 지금 책내자는 곳은 많은데, 제가 짬이 안나서 그걸 정리할 수가 도저히 없구요. 지금 한겨레에서 2년전부터 책을 내자고 준비를 해서 제 손에 넘어온 교정 원고를 7개월째 손을 못대고 있어요. 솔직히 그것보다 더 중요하고, 급하고, 의미 있는 일들이 항상 있어요. 어제 제가 이 자료를 만드느라고 밤을 샜거든요. 오늘 저녁에 사람들 만나서 이야기하려고, 그런데 이거 밤새면서 쓸 정도의 시간이면 교정원고를 다 보죠. 그런데 이런 일들이 항상 저에게 있어서 그게 복이죠.
지 - 특별한 계획 같은 건 없으십니까?
하 - 별로 없어요. 이 상태로 오래했으면 좋겠구요. 환갑 지나서 이른, 여든 되도 지금처럼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 - 마지막으로 특별히 해주실 말씀은 없으십니까?
하 - 멋있게 표현하면 노동자는 선이다, 노동운동은 사회에 유익하다, 노동조합은 사
회에 유익하다, 이런 생각을 한번쯤은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노동운동에 대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정상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가정을 한번쯤은 해봐야합니다.
제가 가끔 하는 얘기지만, 파업을 앞두고 있는 조종사들 수백명 앞에서 '여러분들 중에서 조종사란 직업을 선택하면서 내가 노동조합 깃발 아래 모여서 파업할 것이라고 상상한 사람 있으십니까?'했더니 없어요. 그 수백명 중에 단 한명도 없었다는 것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그날 강의 마치고 나서 한 사람이 나한테 오더니 '아까 손들지는 않았지만, 이런 날이 올지 짐작하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노동조합 간부한테 물어봤어요. '저 사람 어떤 사람이야?' 그랬더니, 외국에서 조종사가 됐다는거예요.(웃음) 지금 노동조합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올바르지 못한 정서를 갖고 있느냐 하면 노동조합 간부를 맡은 사람이 집에 가서 가족들에게 '내가 우리 회사 노동조합의 간부를 맡았습니다' 했을 때 기뻐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이건 정상적인게 아닌거예요. 왜 그런 것을 맡았냐고 탓하거나 당장 그만두라고 하지 않으면 다행인거죠. 초등학교 반장을 맡아도 온 가족이 기뻐하는 나라에서 노동조합 간부를 맡은 걸 걱정해야하는건 올바른 정서가 아니예요. 한 위원장이 하는 말이 길을 가다가 동창생을 만났대요. '오래간만이다. 술한잔하자'고 호프집 들어가서 '이번에 우리 회사에서 노동조합이 설립됐는데, 내가 위원장을 맡았다'고 그랬더니 노동조합에 대해서 털끝만큼도 모르는 동창이 말하기를 '내가 면회는 갈게'라고 하더랍니다.(웃음) 이건 결코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예요.
근데 그게 웃을 일이 아닌게 실제로 그러니까. 제가 지난주에 춘천시청에 가서 공무원들 대상으로 얘기하면서 이 얘기하니까 사람들이 다 웃어요. 보니까 춘천시청 공무원노조 지부장이 구속됐다가 나온지 얼마 안된거예요. 우리가 말하는 건 특별한 노동운동도 아니구요.
비정상적인 현실을 가능하면 현실적으로 만들어보자는 것이지, 민주노동당 의원이 10명씩 생기고, 저 같은 사람을 인터뷰하는 것이 우리나라가 특별히 좌편향적이거나, 노동자 편향적이된게 아니라 엄청나게 비정상적이었던 사회가 정상화되는 과정에 있는 것 뿐이거든요.
지 - 아웃사이더 임성환 대표가 양심적 병역거부로 들어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제 면회를 갔다 왔는데요. 우리 사회가 그 사람들을 굳이 감옥에 보내지 않아도 될 정도의 사회가 된 것 같은데, 이미 대체복무제가 사실상 시행되고 있구요. 이런 저런 형태로 많이 빠져나가고 있지 않습니까? 유명한 사람들이나 신문에 크게 나오면 잠시 흥분을 하기도 하는데, '원래 저 새끼들은 그럴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정작 분노하는 것은 자기들하고 비슷한 처지에 있을 것 같은 양심적 병역거부자 같은 사람들에게 표시하거든요. 리플 달리는 거 보면 '죽여야돼'하는 식으로 리플이 달리기도 하구요. 얼마전에도 체력장 하는데 질서를 안지킨다고 고생학생 백명의 머리를 밀었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거기 달린 리플들을 보면 거의 전부가 '별 것도 아닌 일을 문제 삼은 미친 고등학생들. 머리 좀 깍인 것 가지고 왜 지랄들이냐. 죽여라' 이렇게 달리거든요.(웃음)
하 - 어떤 사회나 권력과 자본이 국민들의 의식을 자신들이 유리한 방향으로 조율하는데, 우리는 이 왜곡된 비틀린 역사속에서 그런 것이 다른 사회보다 몇배나 증폭이 된거거든요. 식민지 40년, 분단 60년, 그 와중에 군사독재 30년 이런 과정을 거쳐 건설된 대한민국인데 정상적일 수 있겠습니까?
지 - 이번에 알자르카위가 테러대상국에 지정했는데요. 만약 테러가 일어나면 공황상태에 빠질 것 같습니다. 그리고 조선일보 등에서는 '복수하자'는 목소리를 높일 거구요. 사회는 급속도로 극우적으로 갈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하 - 빨리 철수하고 와야지, 그래야 세계평화에도 이바지할거구요.(웃음) 다른 얘기지만 경총에 있는 어떤 분이 '지금 화염병들고, 쇠파이프 들고 싸우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이런 전투적 조합주의가 어디 있습니까?' 그렇게 얘기를 하길래 제가 '그럼 그게 한국 노동자가 태어날때부터 특별히 포악해서 그런 현상이 생겼겠습니까?'라고 되물었어요. 지금 가장 파업을 많이 하는 노동자가 병원노동자들이예요.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것을 직업으로 택한 간호사들이 가장 과격하다는 뜻인데, 성격이 특별히 포악한 사람들이 간호사를 선택했냐 하면 그건 아니거든요. 영국 같은 나라는 공공의료가 95%가 되는 나라가 있는가하면 우리는 공공의료가 10%밖에 안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기는거거든요. 이런 구조적인 관점으로 봐야죠. 개인의 인격이나 덕성의 문제로만 볼게 아니라.
지 - 한울노동문제연구소에서는 어떤 일을 하나요?
하 - 여긴 연구소니까 연구해야 되구요. 상담을 또 많이 합니다. 처음에 상담소였으니까. 그리고 교육도 하는데, 교육은 제가 하고 있구요. 교육은 계획 세워서 하는 게 아니라 요구되는 것만 하고 있어요. 그리고 솔직히 연구소장이 연구 못한지 오래됐어요. 한 2년 됐어요. 우리가 격월로 하던 한울노동법 강좌라고 있었는데, 그걸 하지 못한지가 오래됐습니다.
지 - 현장에서 부딪히는 것들이 살아있는 연구가 아닐까요?(웃음)
하 -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정확하게 읽지 못하면서 얘기하면 그건 거짓말이 될거니까 그걸 정확하게 읽으려고 애는 쓰고, 최소한의 공부는 하죠.
지 - 워낙 바쁘신 분인데, 많은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