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파란여우 > 그래, 알은 깼어?
데미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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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알을 까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이 글을 쓰면서 불현듯 스친 생각이지만, 이 소설을 한번이라도 읽어본 사람은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적어 보낸 이 구절을 거의 예외 없이 기억하고 있다. 데미안의 전문을 읽지 않은 사람도 귀동냥을 통하여 알을 까고 나오는 새의 이야기가 데미안의 이야기임을 익히 알고 있다. 데미안의 이 한마디는 고뇌에 찬 햄릿의 독백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정도까지 심각하게 이르지 않더라도, 맥베스가 제 아내의 죽음을 전해 듣고 내뱉는 유명한 대사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하루하루는 기록된 시간 마지막 음절까지 조금씩 기어든다” 보다는 더 뚜렷하게 독자들의 머리에 새겨있다. 맥베스의 허망한 이 한마디를 들으며 마침내 죽음으로 향하는 삶의 공허함에 치를 떨며 가슴을 쓸어내렸건만 데미안의 알 깨는 이야기가 더 또렷함은 왜 일까.


10대 초반에서 20대에 이르는 동안 에밀 싱클레어가 겪는 체험 가운데 적지 않은 부분은 독자들 저마다가 섣불리 남들에게 알리지 못한 채 속으로만 끙끙 앓아왔을 법한 제2성장기의 아픔과 흡사해 보인다. 그래서 대개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데미안을 만나는 필수 코스를 선택하는 것인가. 데미안을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만난 나로서는 이 말에 십분공감한다. 성장의 진통은 생각보다 아픔이 컸다. 당시 나는 상당히 심각한 가출을 결심하고 있었고 또 실제로 삶의 지루함과 모멸감에 싫증을 느껴 학교 수업에 충실한 학생이 아니었다. 내 머릿속에는 가방을 하나 꾸려 가지고 집으로부터 가능한 한 먼 곳으로 떠나 작은 수공업 공장 같은 곳에 취직을 해서 낮에는 돈을 벌고 밤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근처의 으슥한 곳을 어슬렁거리는 것이었다. 한 마리 짐승의 몸으로 으슥한 밤공기를 가르며 이 재미없는 시들한 세상, 실컷 떠돌며 살아야겠다는. 그것이 알에서 깨어나는 길이라 다졌다. 그 후 어찌되었냐 물으신다면 그 발칙한 프로젝트는 한여름 밤의 꿈처럼 사라지고 지금, 자판기 앞에서 깨지 못한 알 속의 평안을 찬양하고 있잖은가.


이 소설이 독자를 끌어들이는 것은 단순히 그 소재가 특정한 나이 또래의 관심에 맞아 떨어지기 때문만은 아니다. 예를 들면, 어린 시절 싱클레어가 모험담을 호기롭게 늘어놓는 제 또래 아이들에게 뒤지지 않을 속셈으로 실제 있지도 않은 도둑질 이야기를 지어낸 다음 그것이 약점이 되어 프란츠 클로머의 협박에 끌려 다니게 되고, 또 그로 인해 가족으로부터 스스로 소외된 채 자신만의 비밀스런 세계를 구축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가족의 보호와 사랑으로도 막아낼 수 없고, 오직 개개인이 어떤 식으로건 감당해야만 하는 영역이 분명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뭣 좀 알기 시작하는’ 과정이 막막한 아픔 속에서 그려진다. 그래서인지 싱클레어가 성장과 변모의 과정에서 겪는 우여곡절은 많은 경우 상당히 설득력 있는 심리묘사와 강한 흡입력을 지닌 문체로 그려진다. 해서, <데미안>은 대다수 독자들이 사춘기를 전후한 시기에 품었을 만한 죄의식이나 은밀한 욕망을 공공연하게 형상화함으로써 그 죄의식과 욕망이 ‘보편적’인 것임을 확인시켜주는 위안을 던져준다. 이러한 위안의 ‘보편성’은 삶의 광대무변함을 아직 알지 못하는 ‘어른도 아니고 애도 아닌’, 그러나 사는 게 뭐 다른 게 있겠나 하는 시니컬한 ‘그들’의 혼란스러움과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값진 것임은 틀림없다. <데미안>의 미덕이 여기에 있다. 이성에 눈떠가는 싱클레어가 육체적 욕구와 정신의 명령 사이에서 고뇌하고 방황하는 모습은 바로 ‘나’이므로. 그러므로 이것은 ‘내 얘기’가 된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내가 의문을 품은 부분은 어린 싱클레어가 도둑질 이야기를 지어냄으로써 곤경에 빠지게 되고, 이것은 종교적 경건함으로 무장한 가정과 경건함이 통하지 않는 외부 세계사이의 갈등이라는 사회적 성격을 건드리게 된다. 그런데 데미안이 등장해서 프란츠의 협박을 차단한 후 싱클레어의 경험이 품고 있는 사회적 차원의 갈등 문제는 점차 슬그머니 사라지고 추상화된 내면세계의 관념 대립이라는 형태로 변모한다는 점. 이것은 이성에 대한 갈망이나 종교적 고뇌를 겪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성격을 띤 외부와의 문제와 잠시 만나는 듯하다가 추상적 관념으로 돌아버린 구도. 이러한 문제는 데미안이나 그의 어머니인 에바부인이라는 추상적 인물설정으로 어느 새 연결된다. 데미안은 처음에는 마음을 읽는 독심술을 부리는 소년으로, 나중에는 텔레파시나 초감각적인 인물로 확대되고 그의 어머니인 에바부인도 ‘초능력자’로 묘사되기에 이른다. 성별과 시간의 흐름, 선과 악을 초월하는. 신비하다 못해 추상적이고 입체파 화가의 그림 한 점을 대하는 듯하다. 무수히 연결된 꼭짓점으로 통하는 선들을 통과하며 비로소 하나의 형체를 형성하는 면이 탄생되는. 누가 그랬던가. 입체파는 허세라고. 얼마 전 작고한 비디오 아트의 거장 백남준은 “모든 예술은 다 사기성을 띤다.”라고 인정한다. 이런 맥락으로 보면 신비적이고 초월적인 결말로 나아간 <데미안>은 소설적 허세다.


감정의 동화를 오버랩하면서 스무 살 이전의 애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불투명하고 불안정한 독자에게 ‘이건 우울하고 은유적인 방황에서 헤매는 내 얘기다!’로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데미안>. 인간적 성장의 지향점에서 사회적 성격으로 연결되다가 신비화 전략으로 추상적으로 매듭을 지은 미완의 이야기. 여전히 알은 깨지 못한다. 원래부터 알은 깨지 못할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단단하거나, 알을 깰 만큼 강건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제3의 돌발발언을 찾자면 인간은 원래 알 속에 있지 않다. 공중에 먼지처럼 떠다니다가 씨앗을 맺고 바람처럼 흘러 다니다가 분해 되어 사라지는 존재. 그러니 깨어야 할 알이 어디 있냐고. 그러나 이런 식의 관점으로 이 소설을 읽는 일은 독일 문학의 거장인 헤르만 헤세를 욕보이는 일이며 억지다. ‘알 속에 갇혀있다’로 이 소설은 출발한다. 복지부동의 명제. 그 후 어떻게 되었는가. 알은 그래 깼어? ‘안간힘’만 쓰고 있을 뿐.


교양 있는 사람들은 스무 살 이전에 <데미안>을 읽었다고들 한다. 왜냐하면 ‘명작고전’이라고들 하니까. 나도 당신도 우리는. 그런데 이십년도 더 지난 지금 와서 읽어보니 이것이 명작인 이유는 첫째는 헤르만 헤세라는 작가의 명성 둘째, 그 당시 시대적 상황인 1차 세계대전의 탄생(20세기의 인류사의 지각대변동)을 위한 구습의 파괴였다는 해설 셋째가 선과 악을 비롯한 통념적인 도덕관을 초월하고 있다는 신비적 매력. 이십여 년이지나 다시 만난 <데미안>의 결론은 ‘난 변했어요! 그러니 알 속에서 어울렁 저울렁 산답니다’. 시대도 변하고 나도 변하고 인생이란 변하는 것. 책이라고 별 수 있겠나. 그런데 그 '알' 누가 깬 사람 있다면 연락 좀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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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권만 구입했기에 1권 보고 나서 볼 요량으로 빌려왔지염

 

 

 

   알고 싶은것도 궁금한것도 쫌...되서리...

  김경의 인터뷰집 이후로 인터뷰집의 새로운 재미를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근데 이거 인터뷰집 맞나? ^^;;

 

 

 헌 책방에서 사려다가 놓친책..

  아마 고3때였던가 고 2때였던가..

  한국 단편집몰아치기로 읽어댈때 분명 읽었을게다..

  기억에는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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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stella.K > '아~피곤한데' 피로를 부르는 버릇 5가지

 

'아~피곤한데' 피로를 부르는 버릇 5가지


춘곤증때문에 피곤한 게 아니다. 당신을 피곤하게 만드는 건 당신의 버릇이다. ‘아이빌리지닷컴’이 지적하는 고쳐야 할 나쁜 생활 습관 5가지.

1. “책상에 뼈를 묻을테야”

한 자리에 몇 시간씩 같은 자세로 앉아 있으면 몸은 ‘수면 모드’로 들어간다. 특히 TV나 모니터를 볼 때는 평소보다 눈을 덜 깜빡거리게 돼서 눈이 뻑뻑해진다.

→ 30분에 한번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쭉 펴고 기지개를 펴자. 산책은 피곤할 때 카페인 같은 각성 효과가 있다. 창가에서 잠시 일광욕만 해도 효과가 있다.

2. “난 숨도 공주처럼 쉬지”

평소 우리가 하는 가벼운 호흡으로는 충분량의 산소를 마실 수 없다. 혈중 산소량은 줄고 이산화탄소량은 늘어나면 피로를 느낀다.

→ 하루에 단 몇 번이라도 복식호흡을 해 보자.

3. “물 마실 시간이 어딨어?”

갈증을 느낄 때쯤이면 이미 체내 수분이 2~3% 줄어든 것. 수분이 부족하면 뇌에 혈액공급이 줄고 심장에 부담은 커진다.

→ 하루에 최소 9컵, 활동량이 많다면 12컵을 마셔라. 레몬즙을 타거나 허브 티를 마셔도 된다.

4. “자기 전, 책을 꼭 봐요”

밤에도 밝은 조명 아래서 생활하면 수면유도 호르몬인 멜라토닌 분비가 감소해 수면의 질이 나빠진다.

→ 잠 자기 몇 시간 전부터는 밝은 등 대신 갓 씌운 스탠드를 이용해 간접조명.

5. “왜 땅만 보고 걷냐고요?”

안 좋은 자세는 피로를 부추긴다. 관절이 하나 비틀어져 있으면 등과 골반까지 온통 긴장된다.

→ 앉았을 때 고개를 너무 숙이진 않는지? 섰을 때는 허리를 펴고 배를 넣어 슬쩍 내려다 봤을 때 두 발 끝이 보여야 한다.

이자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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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아직도 진정한 작가로 불리오는 건축가가 많이들 계신다고 늘 생각한다.단지 외국의 디자인을 모방하는것이 아닌 창작의 고통의 추구하기위해 늘 고민하고 생각하는 그런 분들이 계신다고 믿고있다. 그런분들중 시인으로 불리워지는 건축가..곽재환.

그의 흰 머리와 검은 수염은 늘 그를 예술가로 연상시키는 트레이드마크가 되기도한다. 분명한것은  그의 건축에는 다양한 공간과 여유가 느껴진다는 점이다. 자연이 느껴지고 공간이 느껴지고 인간미가 느껴진다.

영남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맥건축사사무소 대표로 있다. 건축 전문 인터넷 방송 아키TV 방송위원, 주간신문 위클리솔 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4.3그룹 이시대우리의건축전, DMZ,
예술문화운동 작업전 등에 참여했다. 비전힐스클럽하우스로 한국건축문화대상(입선)을, 제일영광교회로 서울시 은평구건축상(금상)을, 은평구립도서관으로 2001 한국건축문화대상(본상)을
수상했다.

 

건축가 곽재환씨는 '시인 건축가'로 불린다. 시에도 화자가 있듯이 건축에도 화자가 있다고 여긴다.
 건축물은 건축가가 등장시킨 화자이고, 이용자는 독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곽씨는 건축을 '투명 인간의 붕대'라고 비유한다. 건축이 보이지 않는 존재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곽소장님은 "현대 문명이 아무리 변한다 해도 인간은 자신의 존재 기반이자 근원인 자연에 대한 원천적 지향을 갖고 있다. 이것이 보편성이다"라고 말한다. 그의 대표작인 은평구립도서관에서 석교와 반영정, 그리고 응석대가 바로 도시 안에서 자연(보편성)을 경험하게 하는 장치들이다.

쉬어가라’고 유혹하는 듯한 공간을 만나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더구나 그 공간이 딱딱한 도서관이라면 어울리지 않아도 한참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서울 은평구 불광동 산기슭에 지어진 은평구립도서관에 가면 저절로 이구석 저구석에서 쉬고 싶어진다

공공 도서관의 현실은 열악하기만 하다. 수적으로 부족할 뿐만 아니라,수험생들의 공부방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도서관은 공공성도 없고, 도서관 본래 기능에도 충실하지 못하다.
공공 도서관은 아직 지역 사회의 인프라가 아니다. 곽재환소장은 은평구립도서관에서 두 단계를 뛰어넘었다.  어린이도서관의 열풍이전부터 그의 건축에는 자연이 있었고 사람이 있었다.
지식과 정보 슈퍼마켓으로서의 도서관에서 한 걸음 나아가 지역 주민들이 모이는
너른 마당인 동시에 스스로를 돌아보는 사색의 공간을 제공하고자 했다. '광장과 밀실'이 공존하는 지역 문화 센터를 설계한 것이다.

그는 도서관의 주인을 청소년이나 책으로 한정하지 않았다.
어린이에서 노인, 가정주부, 연인들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찾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좋다. 동네 어린이들이 숨바꼭질을 할 수 있고, 잔디를 깔아놓은 옥상에
누워 구름이나 별을 보아도 무방하다. 다섯 기둥이 서 있는 중앙 계단에서는 혼인식을 올릴 수도 있다. (사랑공식발췌및 편집)

지하철 3호선 연신내 역에서 내려 불광동 경사지에 조밀하게 들어선 단독주택과 다세대주택
사이로 난 좁은 골목을 따라 한참 올라가면 산 정상 가까이에 단정한 형태의 은평구립도서관이 슬그머니 나타난다.

회색의 노출콘크리트라는 딱딱한 재료와 엄격한 좌우대칭의 직사각형과 정사각형이 되풀이된 건물의 외형을 처음 접하면 이 공간이 쉬어가라고 발길을 잡을 것이란 생각을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계단을 올라 구석구석 살피다 보면 그 중 한 곳에서 책을 들고 앉아 석양을 바라보며 바람에 머리를 흩날리고 싶어진다. 서쪽을 향해 불광동을 내려다보며 자리잡아 마치 해지는 모습을 감상하기 위해 일부러 터를 잡은 듯한 분위기다.

설계를 담당한 곽재환(맥건축) 소장도 “해질 무렵 노을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기는 모습을 건축동기로 삼았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서향은 도서관의 자리로 적합하지 않다. 독서와 도서의 보존 측면에서 불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곳의 서향은 도시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오히려 설계을 위한 촉매로 작용했다고 한다.
곽소장님은 “석양의 황홀하면서도 신비한 빛과 그 우수가 주는 메세지는 도서관의 어떤 텍스트 못지않은 효과를 낸다”며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자연의 경이로움에 눈뜨게 하고, 삶과 죽음의 의미를 일깨워 준다”고 설명했다.

설계자가 의도한 대로 늦여름 해질녁 은평구립도서관은 저녁산책을 나온 주민들로 가득해, 공부하기 위한 도서관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공원같은 분위기다. 특히 건물 형태가 외부 여러 곳으로부터 접근할 수 있도록 열려 있을 뿐 아니라 산꼭대기에 있는 불광근린공원으로 올라가는 계단같은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건물 전체가 공원처럼 느껴진다.

개발로 훼손되고 새 건물에 매몰돼버리기 쉬운 자연공간을 건물이 선 뒤에도 분위기가 살아나도록 배려한 장치다.

산기슭에 예사로 고층건물들이 들어서는 서울에서, 산기슭에 지었으면서도 전혀 산을 거스르지 않게 한 점이 특히 돋보인다.

도서관의 성격을 형성하는 것은 네가지 공간요소다. 그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뒷산에서
 도서관 옥상으로 연결되는 석교(夕橋). 이 석교는 산 정상의 불광 근린공원으로 직접 이어지면서
 건축과 자연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건물 자체도 계단 모양으로, 1층의 지붕이 2층의 옥외공간으로, 2층 지붕은 3층의 옥외공간으로 사용된다. 각 층의 옥외 공간에는 석양을 바라볼 수 있는 응석대(凝夕臺)가 각각 8개씩 24개가 배치돼 있다. 멀리서 도서관을 바라보았을 때 도서관의 형태를 결정짓는 것도 이 응석대다.

피라미드 형태의 유리로 만들어진 도서관 현관을 들어서면 건물 맞은편 유리벽 너머로 연못(반영정·反影井)이 보인다.반영정은 수면에 주위를 둘러싼 건물이 비치도록 하는 동시에 하늘을 수면에 끌어 담는다. 검은 대리석 바닥의 연못에 담긴 물에 하늘을 넣기 위한 장치인 셈이다. 반영정은 또 지하 1층부터 3층에 이르는건물 전체에 자연채광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연못을 둘러싼 노출 콘크리트 벽면은 현대적인 조형물처럼 느껴진다.

1층에 위치한 어린이 열람실은 도서관 주변 주민들에게 특히 사랑받는 공간이다. 어린이들의 분위기에 맞춘 실내모습 뿐 아니라 엄마와 함께 하는 코너 등이 인기다.

지하의 자료실 겸 열람실은 천장의 일부분이 1층으로 트여 수직적인 확장감을 통해 실제보다 훨씬 넓고 시원해 보인다.

지하층 시청각실에서는 토요일과 일요일에 영화가 무료로 상영된다.

엄무성 은평구립도서관장은 “주민들이 좋아하는 공간을 유지·관리하는데 큰 보람을 느낀다”며
 “주중에도 하루 이용객이 2천5백명을 넘고, 주말에는 하루 4천명 가까이 이용한다”고 말했다.
다만 응석대나 불광공원으로 이어지는 외부 계단의 시설물을 공원을 이용하는 일부 사람들이 훼손하는 일이 잦아 관리업무가 쉽지만은 않다고 털어놓았다. 열린 공공 공간으로 설계한 의도를 제대로 살리려면 이용객들의 매너가 따라줘야 한다는 말이다.

도서관을 자주 이용한다는 김상준군(S대 전기공학과 4년)은 “공부가 잘 안될 때 탁 트인 전망을 내다보면  답답하던 마음이 시원해진다”고 말했다.

건축학도를 위한 감상포인트

◈건물외관=노출콘크리트와 엄격한 직사각 형태의 사용 등 전형적인 모더니즘의 조형언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솟대나 응석대 등에서 언뜻 포스트 모더니즘의 분위기도 느껴진다. 멀리 골목에서 접근하면서 나타나는 전경에서 전체적인 조형미를 살펴본다.

◈솟대=건물 초입에 다섯개의 원기둥이 우뚝 서 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주기 위한 일종의 입구 역할을 하는 동시에 이곳이 도서관임을 알리는 표석이다. 도서관의 현관을 들어서기 전에 건물 외부에서 한차례의 진입과정을 거치는 셈이다. 다섯개의 솟대는 살고(生), 알고(知), 놀고(戱), 풀고(業), 비는(祈) 행위를 상징한다는 설명이다.

◈응석대=각 층 옥외공간에 8개씩 24개가 있으며, 그 앞에 각각 잔디밭이 자리잡고 있다. 응석대에 들어 앉으면 마치 찻집에 간 것 같은 아늑함을 맛볼 수 있다. 실제로 응석대마다 사람들이 자리잡고 일어나지 않아 앉을 기회를 차지하기가 쉽지 않다.

◈석교=도서관 옥상에 설치된 다리. 석교를 건너면 바로 산정상 불광공원으로 이어진다. 석교를 건너 산으로 건너가자면 자신이 드라마틱한 연극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이 든다. 다만 현재는 철문을 해 달아 막아 두었다. 엄무성 도서관장은 “공원 이용객들이 석교를 통해 도서관 옥상에 올라와 술판을 벌이는 등 문제가 많아 철문을 설치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곽재환 소장은 “빠른 시일내에 철문을 없애고 석교를 통해 오갈 수 있어야 건물의 건축적 의미가 살아날 것”이라고 안타까와 했다.

◈반영정=피라미드형의 유리 천장이 있는 도서관 현관을 지나 곧바로 만나게 되는 반영정은 도서관을 이용하기 전에 꼭 감상해야 할 장소다. 아무런 기능도 갖추지 않은 빈 공간을 계획한 설계자의 의도에 대한 궁금증이 수수께끼를 풀 때처럼 피어오른다.
한국적인 공간이 가진 가운데 마당이란 의미도 읽히면서, 동시에 하늘을 물에 담는 행위와 책을 읽는다는 정적인 활동을 은유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각 층에서 내려다 보이는 반영정의 표정이 제각각인 점도 흥미롭다.

뒷산 경사면을 그대로 살린 도서관으로 들어서면 동선과 시선이 사방으로훤히 트인다.
불광근린공원 산책로를 건물까지 끌어들여 석교(夕橋)로 연결시켰고, 응석대(應夕臺)와 반영정(反影井)은 노을과 하늘을 담아내고 있다. 도서관 안이 지식과 정보 습득의 공간이라면 건물 밖은 자연과 교감하는 공간인 셈이다.

2001년 한국건축문화대상 본상을, 2002 서울시 건축상은상을 각각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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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의 집’ 은평구립도서관
  



 

 

노출 콘크리트로 빚어낸 서사적 아름다움


도서관이 단지 책만을 보관하는 곳이라면 더 이상 그곳은 도서관이 아니다. 은평 구립도서관은 지
역주민들은 물론 그곳을 이용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독서 이외에 또다른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그
것은 자연과 인간, 그리고 건축에 대한 한없는 상상의 메아리이다.

앎의 집이 시작되다

"도사나 회화 또는 기타 자료를 수집, 정리, 보관하여 이용자의 요구에 따라 신속하고 효과적이며
창조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봉사하는 기관"이 사전적 의미로 일컬어지는 도서관이다. 한 지역에
도서관을 계획한다는 것은 지역 주민들에게 독서의 장을 마련하고 나아가 정보화 시대에 걸맞게 지
역 주민의 다양한 문화 욕구를 충족시킨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

 




◀ 건물의 옥상 부분이 녹지로 조성되고 응석대와 함께 휴식 공간으로 이용된다.


하지만 대부분 공공 건축물로 인식되어
온 우리의 도서관은 기능적인 측면만을
너무 강조한 탓에 그저 책을 보관하는
독서실 수준의 장소로 인식되기고 하고,
또는 넉넉지 않은 재정이 나은 편에 속
하는 국립, 시립도서관마저 전형적인
관공서 건물 형태로 권위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우리도 모른
사이에 획일적인 삶을 강요당하게 되고
우리의 창의적이고 진취적인 꿈은 침해
받게 된다.

이런 현실에서 이번에 선보인 은평구립
도서관은 지역도서관이 어떤 모습을 띠
어야 하는지 우리에게 던져주는 의미가
깊다.

도서관의 내부 기능 이외에 옥상공간에
산책 공원의 기능을 결합시켜 자칫 개
발이란 이름 하에 훼손되기 쉬운 공원의 본래 성격을 유지하고자 하였다.

마을에서 전정-응석대-반영정-석교를 따라 오르는 공간은 색다른 체험의 장을 제공하고 이로 인해
도서관은 지역사회에서 산교육장이자 주민과 함께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삶의 공간으로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응석대나 석교 부근에서 석양을 바라보는 공간은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며 자칫 잃어버리기 쉬
운 정서적인 측면을 부각시키는 지혜를 제공하는 배움의 장이 된다. 그것은 발 건축가가 도서관에
불어넣고자 한 '앎의 집'의 또 다른 의미로 자연과 인간의 관계맺음을 통해 이용객들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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