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시들이 사용하는 검은 조근현 미술감독이 가장 기특하게 여기는 소품이다. 내시란 사내가 아니지만 여인도 아닌 존재. 그때문에 이중적인 느낌이 있어야 하지만, 검날의 폭을 좁혔더니 지나치게 여성적인 느낌이 묻어났다. 밤새 고민하던 그는 ‘민첩하다’는 한단어를 떠올렸고 검날의 가운데를 도려내는 모험을 했다. 날렵한 인상을 주면서도 베고 찌르기가 쉬운 이 검은 근육이 물리지 않도록 식칼에 구멍을 뚫는 이치를 차용한 것. 내시는 관련기록이 미미해 창작의 여지가 많았는데 거세된 남근을 이름써서 보관하는 대나무통이나 거세도구들이 새로 고안된 소품들이다.


 정빈 회화

어릴 적부터 골동품을 좋아했던 정빈은 처소 한쪽 벽을 터서 일종의 갤러리를 만들어 두고 있다. 이방에 걸린 당·송대와 한국고대회화는 진짜 그림을 약간 변형하여 아마추어 동양화가가 모사한 것이다. 수천년된 작품이지만 행여 저작권에 문제가 생길까 염려한 처사.

 

 



쇠좆매

의금부 도사 광헌(이범수)이 애지중지하는 무기. 문헌에 등장하는 쇠좆매는 쇠좆 안에 철구슬을 넣어 휘두르는 잔인무도한 무기로 그 모습은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문헌대로 만들면 배우가 다칠 것이므로 동물의 피부 느낌을 살려 재현한 모양새가 이 쇠좆매다.

 

윤서 안경

안경을 구하기 위해 황학동을 드나들던 강정훈 소품팀장은 우연히 안경수집가를 만나게 됐다. 안경은 모양도 좋아야하지만 쓰는 사람의 골격과도 어울려야하므로 한석규와 이범수가 직접 그를 찾아가 이것저것 써보고 안경을 선택했다. 두가지 모두 조선후기에 사용됐던 안경. 한석규가 사용한 철제무테안경은 중인이 썼던 것이고, 동물의 뿔로 만들어 조각까지한 이범수의 안경은 사대부가 썼던 것이다. 영화에는 코팅지를 붙여 선글래스로 만든 한석규의 안경만이 등장한다.

고문기구

의금부에서 사용된 고문기구들로 곤장이나 주릿대처럼 덩치가 큰 것들은 따로 벽에 세워놓았다. 자료를 바탕으로 만들었지만 인두와 송곳처럼 낯익은 도구를 제외하면 그 용도를 모르는 것도 꽤 된다고. 구부러진 갈퀴살 여러 개가 붙어있는건 뼈와 뼈사이를 찍어 비트는 기구다.

 

흑곡비사

김대우 감독이 몇가지 견본 중에서 붉은색 표지를 고른 건 그옛날 청소년기에 ‘빨간책’을 읽던 추억때문이었다고 한다. 음란한 내용은 <소녀경>에서 빌려왔고 그림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오돌또기의 작가들이 그렸다. 감독이 원했던 일본 목판화 우키요에(부세화)와 비슷하지는 않지만, 매우 적나라하다.

 

다이어리

황가(오달수)는 유기전 주인이면서 음란서적 유통책이기도 하다. 직업이 두가지인 사람에겐 다이어리가 필요할 것 같아 한지를 묶어 월력까지 그려넣은 수첩을 만들어주었고, 그때그때 적을 수 있도록 붓 대신 목탄을 덧붙였다. 황가가 윤서를 재촉하며 <흑곡비사> 인쇄와 발행일을 챙겨 기록하는 수첩.

 


유기

놋쇠를 불에 달궈 두드려만든 방짜유기는 사람 손이 닿으면 소금기때문에 부옇게 흐려진다고 한다. 매매가 1억원에 달하는 3톤 분량의 유기를 수천만원을 주고 빌려온 소품팀은 행여 손을 탈까 바닥에 떨어질까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었고, 장터 왈패들과 광헌이 격투를 벌이다가 넘어지는 유기장엔 깨끗이 닦은 헌유기만 넣어두었다. 유기전은 그릇만 팔거라는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놋쇠로 만든 풍경과 타악기도 파는 곳이었다

 


<음란서생>에 식기 등을 지원해준 회사는 민화로 유명한 회사이기도 했다. 그에 단서를 얻어 밋밋한 백지 대신 프린트한 민화를 틀에 발랐더니 꽃잎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어여쁜 등이 만들어졌다. 기생집에서 랜턴처럼 매달아두기도 하고 바닥에 놓아두기도 하는 등. 정빈(김민정)도 비슷한 등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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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우 감독은 황가(오달수)의 ① 유기전에 유독 애착을 가지고 있다. 유기전은 음란소설을 필사하고 제본하여 대여까지 하는 장소이고, 중요한 사건들이 일어나며, 모든 사건의 접점을 이루는 곳이기도 하다. “여인들이 부담없이 찾아올 만한 가게가 필요했다. 포목전도 있었지만 뭔가 반짝거렸으면 해서 유기전을 떠올리게 됐다.” 평민의 가게가 상세한 모양새를 전하지는 못하겠지만, 나무로 짠 선반마다 세월이 느껴지는 유기전은, 방을 지나 또 다른 방이 나타나는 깊이있는 공간이다. 가장 안쪽엔 황가의 본업인 음란서적 제작소가 자리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중에 도서관 지하에 어떤 공간이 있고 그 안에서 열쇠 만드는 노인을 만나게 되는 작품이 있었다. 그렇게 낯선 공간으로 들어가는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걸 다 보여주자니 상영시간이 길어질 것 같았고, 느낌을 살리지 못해 아쉽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유기들은 대부분 손으로 두드린 방짜유기인데, 3t 분량을 선반에 쌓다보니 아무리 쌓아도 끝나지 않더라는 게 소품팀이 전하는 고충이다. 이중 함부로 굴려도 되는 유기는 소품팀이 보유하고 있던 헌 물건. 소품을 빌려준 유기회사가 헌 유기까지 깨끗이 닦아주어 비록 무너지는 선반 위일지라도 한자리 차지할 수 있었다.

이 공간은 세밀한 소품들도 상상으로 채워야 했다. 어느 시대 어느 땅이고 평민들의 생활을 기록하는 데는 인색한 것이 역사가의 습성이기 때문이다. 입구로 들어가 통로를 두번 돌고 문을 열면 나오는 ② 밀실은 모사장이와 필사장이의 작업실이다. 밧줄을 매달아 난잡한 내용이 적힌 한지를 말리고, 좁지만 번듯한 작업대도 있다. 한지를 썰고 가지런히 모아 구멍을 뚫고 끈으로 엮는 도구가 필요했지만 딱히 기록이 없어 그 용도에 맞는 형태로 다시 만들어야 했다. 밀실과 선반 사이엔 윤서와 광헌과 황가가 머리를 맞대고 <흑곡비사> 마케팅 전략을 논의하는 평상이 놓여 있다.

이 유기전은 밖으로 나가면 목조건물이 다닥다닥 붙은 ③ 상점거리의 일부가 된다. <형사 Duelist>의 장터 오픈세트가 있던 자리에 (원래는 썼던 자재를 재활용하려 했지만) 새로 지은 이 거리는 황량한 듯 덧문을 굳게 닫아걸고 있다. 가게의 자재와 형태만 바뀌었을 뿐 현대와 비슷하게 좁고 북적대는 길목이었을 시장을 재해석한 결과다. 조근현 미술감독은 상점거리가 음란서적 제조·유통의 중심지이므로 낮에는 영업을 하지 않는 듯 한적하고 밤에는 조심스럽게 북적거렸으리라 상상했다. “어떻게 하면 그런 분위기가 날까 생각하다가 판자로 덧문을 만들어 닫기로 했다. 사람은 없고 바람이 불면 먼지가 휘날리는, 마치 <석양의 무법자> 같은.” 밤이 되면 그 덧문 사이로 불빛이 새어나오며 새로 나온 음란소설을 찾는 처자들이 남몰래 문을 두드린다.

역사책 변두리에 내쳐진 평민이니 복식 기록인들 온전할 리가 없다. 남아 있는 기록은 대부분 19세기가 넘어 사진기술이 도입된 뒤의 복식. 정경희 의상팀장은 그런 황가에게도 세심하게 배려한 옷을 지어주었다. 사대부가 소맷자락이 넓어 엽전 한 꾸러미도 넣을 수 있는 도포를 입었다면, 평민은 소매와 품을 좁혀 편하게 움직일 수 있는 ④ 창의를 입었다. 배색을 위해선 쾌자 대신 비슷한 형태의 서민복 배자를 썼다. 처음 정경희 의상팀장은 소설을 만들어 파는 이라기에 “외국 문물도 앞서 받아들이고 돈냄새도 나는 인물”이라 생각해 황금색이 섞인 의상을 생각했다. 그러나 김대우 감독은 황가가 빈약하고 꾀죄죄하기를 원했다. 정경희 의상팀장은 좋은 옷은 입는 사람이 알아본다고 믿어 하층민의 옷이더라도 까다롭게 원단을 골랐고, 남몰래 샤넬 원단을 쓴 적도 있다. 그런 정경희 팀장이 감독의 주문에 맞춰 찾아낸 옷감은 비단이지만 올이 성기고 겉보기엔 거친 느낌도 나는 인도 실크였다. 그나마도 김대우 감독은 화려하다고 생각해 옷감을 비비고 빨아 남루한 느낌이 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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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한옥은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정말 한옥에 들어가 살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조근현 미술감독은 그것이 20세기 초반 함부로 지은 한옥 탓이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하여 <음란서생>이 수백년 전 한옥을 다시 지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조근현 미술감독은 한옥 답사를 다니던 시절 눈여겨보았던 경주 양동마을로 내려가 150여채가 넘는 양반 가옥과 초옥을 살피고 ① 윤서의 집을 찾아냈다. 김대우 감독 눈에 들어온 집은 대청마루가 시원하고 족자 한점이 걸려 있는 어느 한옥이었다. 그 집을 기본으로 하여 실내는 흥선대원군의 사택이었던 운현궁에서 골라냈다. 중요한 공간 중 하나이기에 자극적이기보다 담담한 정서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이 집에서 조근현 미술감독은 <형사 Duelist>를 찍으면서부터 고심하던 문제 하나를 해결했다. “창호지를 사이에 두고 조명을 비추면 빛이 퍼져서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다. 창문을 뜯어내는 수밖에 없는데, 한옥은 현대건축과 달라 창문 크기를 마음대로 조정할 수도 없다.” 때문에 그가 선택한 소재는 ‘샤’라고 불리는 인조견직물이었다. ‘샤’는 옆에서 보면 창호지와 구분하기 어렵고 빛을 그대로 통과시키는 직물. 부유한 조선 사대부는 비단으로 벽과 문을 발랐다는 기록도 있어 없는 물건을 가져다 썼다는 죄책감을 갖지 않아도 좋았다. 그 대신 운현궁 창호지를 뜯어내어 천을 붙이고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창호지를 복구하는 공사를 해야만 했다.



조선 제일 문장가로 담백한 선비였던 윤서는 의상팀한테도 묵직한 짐이었다. 기존 사극과 다른 옷을 입히고 싶었지만 난데없는 인상을 주면 안 됐고 강직하기에 사치를 부릴 수도 없었다. 그렇게 쾌자가 등장했다. 소매없는 겉옷이라 생각하면 맞을 쾌자는 조선 후기에나 사용됐지만 단아한 푸른 색조를 다치지 않으면서 변주를 시도할 수 있는 아이템이었기 때문이다. 이 기본 형태는 의금부 도사 광헌에게도 적용되었다. 그러나 광헌은 한복 원단에 가까운 윤서의 옷과 달리 현대적인 원단을 사용했다. 감독과 미술 관련 스탭들이 하나같이 말하는 광헌은 부유하게 태어나 외국 문물을 가까이 할 수 있었던 복받은 사대부다. 조근현 감독은 그가 “공부는 못했지만 그림 과외도 받고 하여 취미로 붓을 잡게 되었다”고 짐작한다. 그러므로 광헌은 생기 넘치는 녹색의 무관이다. 텍스처가 도드라지는 원단으로 연두색 옷을 지어입고 패턴 박힌 천을 뒤집는 파격도 시도했다.

② 광헌이 그림을 그리는 작업실도 처음엔 녹색이 감도는 방이었다. 조근현 미술감독은 민속촌에서 보았던, 붉은 목재를 쓰고 아기자기한 화단을 꾸며놓은 이국적인 한옥을 떠올리며, 푸른 화단이 놓인 광헌집 외벽을 상상했다. 그러나 영화는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어느덧 초목이 시드는 늦가을이 되었으니 마당에 푸른빛이 남아 있을 리 없었고, 작업실에서도 녹색을 걷어내야 했다. 다만 일본풍이 섞인 녹색비단보료는 살아남았다. 광헌이 소유한 부(富)는 반입식인 정빈의 처소와 비슷하게 입식과 온돌이 섞인 작업실 구조에서도 드러난다. 조근현 미술감독의 추리다. “지금으로 치면 강남에 사는 부유층에 해당하는 사대부들이 먼저 온돌을 시험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꺼번에 집을 뜯어고칠 수는 없지 않나. 아마 잠을 자는 장소는 온돌을 깔고 나머지는 중국처럼 입식이었을 거다.” 광헌은 그림그리는 무관이기에 중국에서 제작해온 탁자와 의자가 유용하기도 했다.



광헌과 윤서가 조우하는 공간은 의금부다. 김대우 감독과 조근현 미술감독은 조선 후기 사진 기록에 영감을 받아 의금부 감옥을 원형으로 설계했지만, 원형 감옥이 들어갈 만한 실내 세트가 없어, 곡선을 그리며 휘어지는 절충안으로 만족했다. 대신 ③ 고문실에 정성을 쏟았다. 넓은 판석으로 바닥을 깔고 쇠갈고리가 늘어진 고문실은 중세 유럽을 모방한 듯도 싶다. 그러나 조근현 미술감독은 단호하게 부정했다. “사진을 보았더니 고문실은 반지하처럼 낮은 장소에 지어진 듯 싶었다. 그래서 반단 아래에 방을 만들었고, 피를 씻어내기 쉽도록 돌을 깔고 도랑을 냈다.” 피에 젖은 고문기구와 그 피를 씻을 우물이 있는 이 방에서 윤서와 광헌은 자신의 진정한 마음과 대면하는 시험을 받게 될 것이다.

“시치미 떼는 영화의 느낌, 수묵담채화처럼 은근하며 대담하게”

조근현 미술감독 인터뷰-

<천군> <형사> 이후 또다시 시대극을 선택했다. 이유가 무엇이었나.
=한번 더 사극을 하면 제대로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극은 벽만 만들어선 세트를 지을 수 없다. 기둥이 보여야 하고 기둥을 잇는 들보가 있어서 윗부분까지 올려야 한다. 조명을 하기도 어려워서 프리 프로덕션 단계부터 미술과 촬영, 조명이 긴밀하게 협조할 필요가 있다. 이번 영화에선 그동안 쌓인 노하우와 함께 일했던 팀들이 커다란 에너지를 만들어냈다.

-<음란서생>을 어떤 톤의 영화로 만들고 싶었는가.
=영화를 준비하던 초반에 김대우 감독과 수묵담채화 한점을 보고 이런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선비들이 있고 가장자리에 건물이 걸쳐 있는 그림이었는데, 색이 연하고 군데군데 붉고 푸른 포인트가 있는 정도였다. 나는 이 영화가 시치미 떼는 영화인 것 같아 그런 분위기의 화면에서 엽기적이고 코믹한 대화가 흘러나왔으면 했다.

-일부러 고증에 얽매이지 않고자 하는 사극도 있지만 그 반대의 길을 선택했다.
=조선시대 사용했던 물건들이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그리고 근거도 필요했다. 사람들은 눈에 익은 소품이나 의상이 아니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단 한줄이라도 문헌이나 기록을 바탕으로 삼았다. <음란서생>을 보다보면 저것이 조선시대 의상의 색채가 맞나, 그때 쓰이던 물건인가 의아할 때도 있겠지만 모두 고증을 거쳤다. 순수하게 창작한 부분은 기록에 남아 있지 않은 내시관과 그곳에서 쓰이던 거세 도구 정도다.

-<음란서생> 촬영이 끝나가고 있다. 가장 보람있었던 기억은.
=배우들이 진짜 그 시대로 돌아가 연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고 말해주었을 때다. 흔히 영화가 픽션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필름이 돌아가는 순간만은 모든 게 진짜다. 그러므로 카메라에 세트의 두면만 잡힌다고 해서 나머지 두면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리얼한 연기가 나올 수 없다. 모든 스탭의 에너지가 한번에 담겨 구현되는 게 배우의 연기가 아닌가. 그런데 미술이 연기에 도움이 되었다니 내겐 큰 보람이다. 세트와 의상, 소품, 분장팀도 모두 좋았다. 구체적으로 주문하지 않고 믿고 맡겨도 좋은 팀들이었고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컸다. 상점거리 오픈세트만 해도 애초 <형사> 자재를 재활용하자고 말했지만 세트 제작회사 대표가 욕심을 내서 값비싼 자재로 다시 짓고 말았다. 그 회사, 아마 하나도 안 남았을 거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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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안나이트>는 성기를 묘사하는 단어만으로 몇 페이지를 채우고야 체위로 넘어가는 성(性)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 책에서 여인의 성기는 향기로운 허브고 거친 동물이며 천국의 문이기도 하지만, 문장이 은유의 일가를 이루었기에, 부끄러운 짓이라 욕하는 이가 없다. 그렇다면 수백년 전 조선의 선비는 어떠했을까. 음란서적을 제조하고 배포하는 <음란서생>의 황가의 말에 따르자면 “이쪽 관례가 제목은 점잖게 짓는 거라서…”라고 전해진다. 그 말은 <음란서생>의 점잖은 태도와도 통하지 않을까 싶다. 권세에 몸을 팔지 않는 꼿꼿한 사대부가 어쩌다 난잡한 소설에 혹하여 밤마다 자세를 연구하나, 그것이 가능한 자세인지 혹여 해보셨는지 물으면, 문득 화를 낸다. “우리 집안을 어찌 보고 그런 질문을 하시오.” 그러므로 <음란서생>은 그림 또한 점잖고 우아해야만 할 것이다. <반칙왕>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작가이기도 했던 김대우 감독은 이 영화가 “콘트라스트가 강한 누아르처럼” 보이기를 원했다. “화면은 심각하지만 그 내용은 코미디인” 영화를 원했던 그는 색감이 진한 검정과 적색을 기본으로 삼아 제목이 전하는 웃기는 느낌과 사뭇 다른 그림을 완성해가고 있다.

그 그림엔 어찌보면 평범한 기준 하나가 적용되었다. 김대우 감독과 조근현 미술감독은 조선시대 물건이 예쁘더라며 고증에 기반한 의상과 세트를 만들자고 뜻을 모았다. 현대의 시선으로 다시 만든 모조품이 아니라 정말 그 시절 썼던 옛 물건을. 조선의 미(美)에 매혹되어 한옥답사동호회에 몸담기도 했던 조근현 미술감독은 “잘 지은 한옥에서 하룻밤 자고나면 몸이 개운해진다”며 엄격한 실용성을 추구하다보면 닿게 되는 아름다움을 강조했다. <음란서생>은 다만 조선일 뿐 몇 세기인지조차 애매한 영화이기는 하다. 그러나 김대우 감독은 “당쟁이 일어났고 가식이 자리를 잡은 시대”라면 조선 중기 이후가 아닐까 단서를 던진다. 당쟁과 가식은 <음란서생>이 존재하기 위한 전제이기 때문이다. 비겁하다고 욕을 먹어도 속세의 다툼엔 뜻을 두지 않던 선비 윤서(한석규)는 몇 문장 설핏 들여다본 음란서적을 잊지 못해 스스로 작가가 되고, 정적인 의금부 도사 광헌(이범수)에게 삽화를 청한다. 그리고 겹겹이 지어입은 가식의 옷이 하나씩 어깨 아래로 허리 아래로 벗겨져 떨어진다.

텃밭도 일구어낼 넓은 도포 자락으로 허위를 덮던 시대. <음란서생>의 미술은 그 시대를 재현하여 관객을 설득하고 드라마의 정조를 더하는, 꼭 필요한 그릇이 되고 있다. 게다가 그 그릇은 예쁘기도 하다.


조근현 미술감독은 <장화, 홍련>을 하며 집에도 이야기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집엔 누가 처음 살았고 이 방은 언제 어떤 이유로 새로 지었는지 사연을 만들었다. <음란서생>에선 왕이 비와 더불어 노니는 ① 숲속의 정자가 그랬다.” 정자는 여가를 위한 공간이어서 지은 이의 취향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왕의 정자는 불에 타다 남은 처량한 자태다. 지고의 권력을 지닌 그가 어찌하여 번듯한 정자를 올리지 않았을까. “왕은 불쌍한 남자다. 나는 그가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었고 그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정자를 내버려두었다고 가정했다.” 정을 모르는 채 내시와 어울려 혼자 자란 아이. 왕은 그저 비어 있으나 상처보다 아린 정자의 폐허로 윤서를 불러들이고 그 순간 사랑하는 여인을 잃게 된다.

그 여인 또한 정자에 머문다. 거처하는 방과 놀이터 비슷한 공간으로 이루어진 ② 정빈(김민정)의 처소는 팔각정 안에 사각정이 들어앉은 독특한 구조다. 어머니가 쓰던 정자를 정빈에게 내준 왕의 마음이 보이고, 굳이 그 터를 차지하려한 정빈의 성정이 내비치는 것이다. 스케치 단계에서 이 정자는 붉은 기 도는 갈색으로 벽을 두르고 푸른 옷을 입은 정빈을 주인삼으려 했다. 그러나 김민정에겐 진한 보라색이 어울렸고, 정자 또한 중간톤의 보라색으로 바뀌었다. 체구가 작은 정빈이 카리스마를 가진 존재로 두드러지기 위해선 보색보다는 비슷한 색조를 배치하여 색을 강조하는 편이 나았기 때문이다. 대담한 사용이라 하여 눈을 끌었던 ③ 정빈의 검은색 당의와 치마는 눈여겨보면 속이 비치도록 엷은 검정천 아래에 진한 보라색 옷이 숨어 있다.

<음란서생>의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몇겹의 옷을 겹쳐 입는다. 정경희 의상팀장은 패턴을 모아놓은 봉투에 원단을 붙여놓았는데, 많게는 열 조각 가까운 원단이 쓰였다는 사실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옷도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지만 단순하게 한벌만 입어서는 이야기를 만들 수 없다.” 모든 천을 염색해서 쓰는 정경희 의상팀장은 옷감의 결을 이루는 텍스처에서도 사연을 찾아내고 치마 아래 숨어 보이지 않는 속옷에도 감정을 불어넣는다. 때로는 글자 그대로 뒤집기도 한다. ④ 왕의 곤룡포가 그렇다. “용무늬를 수놓았는데 그걸 뒤집어봤더니 용이 진흙탕에서 꿈틀대는 듯하여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검정에 가까운 곤룡포에 뒤집은 천을 붙였다.” 왕의 색은 본디 붉은색이라 하지만 문헌엔 새파란 쪽빛 곤룡포도 기록되어 있으며 금박은 진짜 금을 사용해 호화로웠다 한다. 그러나 한벌을 짓자면 수백만원이 들어야 하는 금박을 쓸 수는 없기에 가장 비싼 천을 쓰되 그 위에 천을 한겹 덮는 대안을 만들었다. 왕과 정빈이 입은 옷은 사치의 극단에 있을 테지만 은은하게 숨을 죽여 경박하지 않다.

정빈이 은밀한 자리에서 입는 옷은 검은 당의와 붉은 원삼보다 훨씬 자유롭다. 그녀의 평상복인 ⑤ 엷은 분홍빛 의상은 가슴 밑부분에서 편안하게 퍼지는데, 드라마 <해신>을 보았다면 그 선이 눈에 익을 것이다. 조근현 미술감독은 “그 옷은 통일신라시대 복식이다. 요즘 1970년대풍의 옷을 입는 것처럼, 당시에도 비슷하지 않았을까”라고 시대를 거스른 의상의 형태를 설명했다. 정빈이 음란서적 제조소인 유기전 밀실에서 윤서를 만나는 순간은 선홍색으로 타오른다. 정경희 의상팀장은 음란한 색이 무엇인지 찾다가 불타는 듯 새빨간 색을 떠올렸고 그 위에 기계수를 놓은 ⑥ 노방 베일을 덧붙였다. 여염집 여인들이 흔히 입는 단순한 치마저고리지만 색이 과감하여, 정인을 찾은 한 여인으로서 정빈의 마음이 배어 있는 셈이다.



가장 마지막에 짓고 있는 ⑦ 내시관은 공이 많이 들어간 세트 중 하나이기도 하다. 내시들의 공간이란 기록에도 남아 있지 않아 온전히 상상해내는 수밖에 없었다. 이 공간의 중심은 커다란 나무욕조. 나무가 습기를 먹으면 세월이 묻어난다는 점에 착안하여 공간 전체를 나무로 마감하고 무채색을 사용해 어두운 기운을 불어넣었다. 지금까지 사극에 등장한 내시들은 녹색이나 청색을 주로 입었다. 그러나 <음란서생>은 대나무통에 죽은 성기를 담아 진열하는 내시들의 불행을 검은색으로 애도하였으며, 그 아래 붉은색을 넣어, 이제 사내가 아니지만 여인도 되지 못하는 정욕을 암시했다. 기생을 끼고 앉은 ⑧ 조 내시(김뢰하)의 붉은 옷이 검은 정복을 한겹 벗은 실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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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말순씨 (2disc)
박흥식 감독, 문소리 외 출연 / 엔터원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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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책스런 엄마와 살짝 싸가지 없는 아들내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인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였던것 같다. 엄마 말순씨는 생각보다 비중이 크지가 않았고 대신 엄마와 같은 위치의 여러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여기서 이들이 엄마와 같은 위치라는 건 비중을 떠나 나 주인공 박광호가 쓴 126호 행운의 편지를 받을 대상이라는 점이다.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있는 재명이, 손가락 두개가 잘린 철호, 그리고 내가 사랑하고 지켜주고 싶은 옆방 누나 은숙. 또 이들의 공통점을 찾으라면 이들은 내 편지를 4일안에 다른 사람에게 보냈어야 했는데 보내지 않았고, 또 정말 내게서 사라졌다는 점이다.

웬 쌩뚱맞게 행운의 편지? 라고 생각하다가 나의 어린 아침마다 몇 통씩 우편함에 들어 있던 행운의 편지가 떠올라 피식 하고 웃고 말았다. 그때는 정말 그랬다. 안쓰면 무슨일이 날까봐 힘겹게 힘겹게 써서 친구들 집 대문에 꼽아놓고 도망오기 바빴다. 요즘도 그런 편지가 돈다지? 프린트를 하거나 복사를 하는 아이들이 있다고 들은적이 있다. 어쨋든, 그 행운의 편지는 웬지 행운보다는 불안함과 두려움을 더 많이 안겨주었던것 같다. 이 영화가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 그것이 아닐까? 사춘기와 행운의 편지의 공통점 같은것! 사춘기는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변화를 겪기는 하지만 이 변화가 나쁜것이라고 보다는 한층 더 성숙해지는 소중한 시기이다. 그런데 이 시기에 우리는 참 많이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고 갈팡질팡했었다. 좋은면 보다는 나쁜 쪽이 더 많이 부각되고 마치 사춘기는 반항기 라는 등식마저 성립했었다. 사춘기는 어쩌면 행운을 가져다 줄 그 언젠가를 위해 몇통의 편지를 쓰는 그런 시기가 아닐까 한다.

한 소년의 성장통을 보여주는 것이 의도였다는 이 영화는 연기자들의 무덤덤한 연기가 참 일품이다. 처음에는 문소리씨 너무 연기를 성의 없이 한거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것이 정말 그 시대 엄마들의 모습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윤진서도 튀지 않고 조용 조용, 강민휘도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연기를 맘껏 펼쳐 보인 듯 하다. 솔직히 나의 어린 시절에도 우리 동네에 바보가 있었다. 너무 싫어서 매일 보면 도망 다니기 바빴는데 이상하게 나만 보면 다른 애들에 비해서 더 ?아 왔었던 것 같다. 애들이 야! 저 바보가 너 좋아하는거 아니야? 이 소리를 할때마다 더 부끄럽고 화가나고 했었는데 어쩌면 재명이처럼 친구가 되고 싶어서 그렇게 ?아다녔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30대 중, 후반의 사람들에게 어린시절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영화일 듯 싶다. 그리고 지금의 청소년 들에게도 모양새는 다르겠지만 동일한 성장통이 있을꺼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미 어른이 되어버려서 이해할 수 는 없지만 잘 이겨내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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