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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아주 예전부터 이 노래를 들었다.
김만준의 모모
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
모모는 생을 쫓아가는 시계바늘이다
모모는 방랑자 모모는 외로운 그림자
너무 기뻐서 박수를 치듯이 날개짓하며
날아가는 니스의 새들이 꿈꾸는 모모는 환상가
그런데 왜 모모 앞에 있는 생은 행복한가
인간은 사랑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을
모모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
모모는 생을 쫓아가는 시계바늘이다
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
모모는 생을 쫓아가는 시계바늘이다
내 이름은 김삼순에 나오면서 다시한번 반향을 일으켰던 [모모]가 이 노래의 원작인줄 알았다. 그런데 [인간은 사랑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을] 이라는 부분에서 이 책은 자기앞의 생의 모모이구나 라는것을 확신 할 수 있었다. 책의 제목이 모모 였다면 더 잘 팔리고 더 많이 읽혔을까? 왜냐하면 나처럼 저 노래를 [모모]의 그 모모로 착각하면서 읽은 자기앞의 생이 아닌 모모를 읽은 사람이 참 많기 때문이다. 뭐 제목이 무슨 상관이겠는가. 이제라도 많은 이들이 자기앞의 생을 읽으면서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그리고 열네살 꼬마의 너무나 뜨거운 사랑을 마음으로 느끼면 되는것이 아닌가.
아이의 일찍 철든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어른스럽게 굴려고 자기도 모를 말들을 지껄여 대는 모모의 모습에서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눈물도 나왔다. 저 어린것을 저렇게 만든건 아이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이 문제였다는 생각에 더더욱 마음이 찡해왔다. 한번에 휘리릭~ 읽히는 책임에도 참 오래 들고 있었다. 어느날은 밤을 새가며 읽었는데도 다 읽혀지지가 않았다. 한문장 한문장 내 것으로 만들려 애쓰며 읽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모하메드에게 빨려 들어가 그 아이의 아픔에 동참하다가 헤어나올 수 없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모모는 지금 무엇이 되어 있을까? 하밀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던 것처럼 글쟁이가 되어 있을까? 마치 자전적 소설처럼 소설은 작가가 된 그가 과거 회상을 하는듯한 형식으로 씌여져 있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의 제제도 떠오르고, 은희경 소설 새의 선물의 그 발칙한 12살 소녀 진희도 생각이 난다. 그러나 이 아이 모모 만큼 아픔을 가까운 곳에서 겪은 주인공은 없으리라. 마지막..로자 아주머니와의 이별식은 그야말로...가장 끔찍하면서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식이 아니였나 싶다. 죽은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모모의 마음이 그런 슬픈 이별식은 탄생 시킨것이다.
모모가 그런 이별식을 겪으면서 깨닫는 것이 세상의 힘겨움 앞의 절망이 아닌 더 큰 사랑의 새김이였으면 좋겠다. 왜 제목은 자기앞의 생 일까..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세상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라는것인가, 아님 자기 앞에 놓여진 생을 잘 견뎌내라는 것일까? 그것도 아님, 힘겨운 내 생애, 썅~~ 뭐 이런 의미일까?? 모모는 자기 앞에 놓여진 생을 잘 살아 냈으리라 믿고 싶고, 이글을 쓰는 작가가 되어서 아니 뭐 꼭 작가 까지는 아니더라도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던 그 사랑으로 자신의 생을 사랑하며 사는 그런 사람이 되어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