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두가지로 크게 분류해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그림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고려하지 않고 순수 조형적 요소만을 감상의 대상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로테스크한 작품의 경우 의미가 가지는 일반적 가치를 전복하고, 선과 면 색채 등의 순수 미술의 요소로 사람의 감정에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뭉크나, 프란시스 베이컨 등의 그림을 보면 무엇을 표현한 것인지 정확하지 않은 작품을 보게 됩니다. 그럴 경우 그림이 뜻하는 바를 파악하기 보다는 선들의 배치와 그 조화감, 색채의 아름다움에 몸을 맡기고 자연스럽게 감상하면 됩니다. 뜻하지 않게도 사람의 얼굴 속에서 물이나 새와 같은 어떤 이미지를 떠올릴 수도 있게 됩니다. <우선은 색채와 선, 조화와 구성이 주는 아름다움을 즐기십시오>
이 단계를 넘어가게 되면, 작품이 갖고 있는 의미를 전복하여 생각하게 됩니다.
즉, 피투성이의 죽어가는 시체를 그린 흉측한 그림에서 우리의 시대와 가치를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잔혹미학의 대표성은 패러디 및 현실반영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고, 현실이 추악하면 추악할수록 그 엽기성과 잔혹성은 짙어진다고 합니다. 마릴린 맨슨이나 나인 인치 네일 등의 퍼포먼스 그룹이 인기를 갖는 이유나, 데이빗 린치 감독의 <이레이져 헤드> 를 감상할 때 느끼는 불편하면서도 매력적인 감정은 우리의 현실이 그만큼 부조리하고(논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추잡한 면이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깨달음의 매력>이 그로테스크한 작품을 감상할 때 일종의 각성처럼 마음에 맺히는 과정이 바로 아름다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