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경영컨설턴트인 찰스 리드비터는 그의 책 《무게 없는 사회》에서 ‘창의적 무지’라는 개념을 신경제의 핵심으로 내세운다. 정보가 넘쳐나는 지식사회로 갈수록 무지한 게 오히려 더 창의적일 수 있다는 개념이다.

알면 알수록 특정한 틀에 갇혀 창의적 사고를 잘 못한다는 것.

델(Dell)의 창업자 마이클 델은 창업 당시 컴퓨터 시장의 유통방식, 조직 관행 등을 잘 몰랐다. 대신 그는 스스로 ‘왜 사업을 반드시 그런 식으로 해야만 할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업계를 잘 아는 사람들은 당시에 컴퓨터 사업이 왜 그렇게 조직돼야 하는가에 대해 수많은 합리적인 이유를 제시할 수 있었다. 그리곤 그런 지식 때문에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새로운 일을 꺼리고, 몸을 사리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델은 조립식 컴퓨터를 직접 개인 소비자에게 판매한다는, 어찌 보면 아주 순진한 아이디어를 끝까지 밀어붙였다. 그게 창의적 무지의 힘이었고, 델을 세계적 컴퓨터 회사로 키운 원동력이었다는 게 리드비터의 해석이다.

창의적 무지의 힘을 보여 주는 영화가 <허드서커 대리인>(감독 조엘 코엔, 1994년)이다.

영화에서 노빌 반스(팀 로빈스)는 허드서커 인더스트리라는 대기업의 주가를 폭락시키려는 음모에 의해 영입된 꼭두각시 회장이다. 부도덕한 이사 머스버거(폴 뉴먼)는 오너였던 허드서커 회장이 자살하자 주가를 의도적으로 떨어뜨려 이를 매수, 회장에 오르려는 음모를 꾸민다. 주가를 추락시키기 위해선 최대한 바보 같은 인물을 찾아 회장 직에 앉혀야 한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사람이 바로 시골에서 갓 상경한 촌뜨기 반스다. 경험도 없고, 순진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그가 회장이 된다면 당연히 주가는 폭락할 것이라고 계산한 것이다. 실제로 반스가 회장에 오르자 주가는 곤두박질치기 시작한다. 자신이 훌륭해서 회장이 된 줄 착각한 반스는 주주들과 언론으로부터 멍청이, 바보라는 비난을 들으면서 혼란을 겪는다.

그리곤 무언가 해야겠다며 서둘러 엉뚱한 사업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이사진에게 최고의 아이디어라며 제시한 것은 흰 종이 위에 달랑 ‘동그라미’가 그려진 설계도.

바로 전 세계 최고의 히트 상품인 ‘훌라후프’의 아이디어였는데 아무도 제품의 가능성을 알아채지 못한다. “그걸 왜 하죠?”, “배터리랑 함께 파나요?”, “유아들한테 안전할까요?”, “어떻게 끝났다는 것을 알 수 있죠?”, 등등의 질문이 쏟아진다.

노빌은 그냥 “이건 그냥 돌리는 것”이라고만 답할 뿐이다. 이사들은 도대체 사람들이 그걸 왜 가지고 놀겠느냐고 반문한다.

머스버거를 대표로 한 이사진들은 결국 제품 생산을 결정한다. 주가가 더욱 폭락할 것이라고 전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웬걸! 제품은 그야말로 전 세계적인 대박 신화를 창조한다.

영화는 이런 식으로 반스의 순진무구한 아이디어가 의도하지 않게 성공을 거두고, 창의적인 제품으로 탄생하는 과정을 흥미롭게 보여 준다.

또한 그의 순수함에 이끌려 사람들이 점차로 그를 좋아하고 따르는 장면을 통해 ‘진실의 리더십’의 진수를 보여 준다. 확고부동한 지식으로 자신만의 고집을 주장하는 게 아니라 유연한 사고로 새로운 것들을 제시하는 리더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 모든 것의 변화가 너무 빠르고, 오늘 알았던 정보가 내일 쓰레기가 되는 시대, 편견 없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고 창의적인 것을 제시할 줄 아는 ‘창의적 무지’란 덕목이 요즘 리더에게 가장 필요한 것일지 모른다.

박일한 기자(ilhan@ermed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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