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코코죠 > 골때리는 소설집 하나
최순덕 성령충만기
이기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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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볼짝시면, 이 소설집은 아주 물건이다. 물건도 그냥 물건이 아니라, 숫제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거나 차마 시도하지 못한 잔인한 농담이고, 우습다 못해 슬며시 뒷골이 땡기는 서슬퍼런 담론이다. 이런 소설을 읽었을 때면 별다른 감탄사는 필요하지 않다. 그저 이마를 탁 때리면서 이렇게 외치면 되는 것이다.

"아, 그거 골때리네!"

골때리는 소설집이 하나 튀어나왔다. 이기호라는 소설가의 최순덕 성령충만기. 고만고만한 나이에 고만고만한 등단, 사실 그는 크게 눈에 뜨이는 소설가는 아니었다. 내가 이기호의 글을 처음 읽은 것은 아주 오래전 한 잡지에 그가 기고했던 짧은 소설 한편이었는데, 그 제목은 '속옷' 이었다. 갓 군대를 제대한 주인공은 트렁크 팬티를 반바지인줄 알고 동네에 입고 나갔다가 슈퍼집 아저씨와 시비가 붙는다. 이게 팬티냐 바지냐를 놓고 싸우다가 결국은 경찰서까지 멱살을 잡고 끌고가며 갑자기 슬픔에 잠겼다는 대충 꽁트같은 내용이었는데, 그 필체가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었다'

같은 농담이라도 기가 막히게 휘영청 뽑아내는 사람이 있고, 그 반대로 분위기를 압도하는 썰렁함을 자아내는 사람이 있다. 이기호는 전자 쪽이다. 그러니까 그의 입을 통하면 뵬 볼일 없던 이야기도 즐거운 농담이 되고 발랄한 한바탕 웃음이 된다. 그게 끝이라면 나는 이 리뷰를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웃고 나면 뒷머리가 서늘해지는 느낌이 이기호의 농담에는 존재한다.  어쩐지 씁쓸해지고 방금까지 웃고 있던 자신이 민망해진다. 바보같이 낄낄 웃고 있던 자신이 나쁜 사람처럼 느껴지고. 그런 의미에서 이기호는 블랙 조크를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사람이다.   

나불나불 떠들어 봤댔자 이 소설집은 직접 읽어봐야 맛이기 때문에 새로운 형식이 어땠다느니 7.80년대의 비루한 삶에 대한 풍자와 페이소스가 눈에 띈다느니 '현실에 분노하지 못하는 인간군상들'의 슬픔이 꾸깃꾸깃 꽉꽉 눌러 담겨져 있다느니 하는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그렇기 때문에 다소의 억지스러움과 유치함이 공존할 수 있다는 주의사항도 일러주지 않겠다.

다만 나는 이기호를 주목할 것이다. 그는 이미 정형화되어 숨막힐 것 같은 한국 문단에서 조심스럽게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젊은 소설가인 것이다.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서 제주도 해녀 복장을 한 처녀를 만났을 때의 신선함과 어처구니없음이 이 정도일까. 말이 많았지만 사실 이 소설집에는 한 마디면 족하다. 이마를 찰싹 후려갈기면서 이렇게-

"아, 그거 골때리네!"

라고 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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