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인간아 > 이 기호는 호기롭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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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덕 성령충만기
이기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10월
평점 :
아련하고도 구슬프게 졸라리 재미난다. 그럼에도 웃음 뒤끝에 남는 한숨. 능글맞고 빙충맞고 되바라지고 소외된 떨거지 잡것들이 푸덕푸덕 날겠다고 오지게 부대끼는 모습들이 가득하다. 값지고 비싼 고래고기의 열두 가지 맛보다 더 찰지고 쫄깃하고 흐벅진 닭똥집 씹는 맛처럼 이기호의 첫 소설집은 탱탱하고 올곧게 독자들에게 잘 전달된다. 맛깔스럽고 영양가도 풍부하고 요리솜씨도 일품이라 하겠다.
다만 염려되는 게 하나 있는데, 그건 재기 넘치고 독특한 전달방식이다. 이 소설집의 빼어난 매력이, 차후 작가의 작품창작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 형식에 내용이 잠식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노파심이 생긴다. 산속 기도원에서 열심히 통성기도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자진납세 간절한 부르짖음으로 오열과 통곡으로 눈물과 땀범벅, 원초적이고 본능적이고도 섹시한 도취 와중에 방언과 환상의 은사까지 맛본 다음에, 다시 현실로 돌아와 담배에 불 땡기면서 친구에게 "야, 오늘 은혜 졸라 땡기지 않았냐? 필 제대로 받았다야, 담배맛 죽이네." 나부리는 것처럼 소설 읽으며 설사 방귀 싸는 것처럼 웃어재끼다가 빡세고 푸석푸석한 삶을 살다보니 거룩한 은사, 소설의 감동이 날아간다. 다음 소설의 변주가 형식으로 이어질지, 내용으로 이어질지는 두고봐야 할 것, 다시 강림할 은혜를 기다리듯 목을 빼고 똥꼬 닦고 이기호의 다음 소설을 기다리리라.
웃길 수 있다는 건 슬픔을 안다는 거이고, 웃는다는 거는 슬프다는 거이다. 그러니 웃지만 말고 울었다는 흔적에 대해서도 손길을 내밀어야 하겠다. 멋드러진 출발, 걸판진 입담과 재주와 속내로 잘 갖춰진 새로운 소설가의 시작에 흔쾌히 짧은 셉떳꼭?기도를 보낸다.
부디 열라 오래 살아 벽에 똥칠할 때까지 남는 소설 많이 쓰고, 쓰고 아픈 존재들의 생활까지 꾹꾹 안아 챙겨 내고 작고 여린 웃음 전해 길이 길이 아니게 될 때까지 서로 서로 살아 보세~
* 다른 분들 리뷰 보니 훌륭하고 칭찬일색 할 말마저 별로 없고 그냥저냥 뻘쭘하네. 그냥 한 번 외쳐보세, 고저 이거 맛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