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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의 거장을 만나다 - 유럽.아시아에서 아메리카 대륙까지 인류의 정신문화를 찾아서
김준태 지음 / 한얼미디어 / 2006년 1월
평점 :
괴테, 쉴러, 발자크, 호돈, 에머슨, 톨스토이… 문학을 사랑하는 이에게 이들의 이름은 ‘과거’가 아니다. 생각할 때마다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첫사랑처럼 이 작가들은 불멸의 작품과 더불어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매일매일 부활하고 있다.
이들은 문학의 거장이다. 때문에 이들의 인간됨과 작품에 대해서는 책 한권, 아니 두 권 세 권으로 말하기에도 부족하다. 그런데 시인 김준태는 단 한권의 책으로 이들을 한 자리에 모아보려고 한다. 동서양에서 손꼽히는 세계문학의 거장들을 한데 모은 <세계문학의 거장을 만나다>에서 그들이 살던 공간을 엿보며 그들이 만든 문학의 향수를 맛보려 하는 것이다.
과감한 시도다. ‘최고’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이들을 어찌 한자리에 모을 수 있겠는가. 의심을 해본다. 숱하게 등장했던, 무미건조한 지식들을 정리한 백과사전식의 소개책자가 아닐는지. 과감한 시도는 용두사미가 되어 되레 실망을 주는 것이 아닐는지. 하지만 <세계문학의 거장을 만나다>는 그것들과 격을 달리한다. 책상 앞에서 정보를 모아 정리한 것이 아니라 작가가 직접 발품을 팔아 동서양을 가로지르며 세계 곳곳을 찾아다녔기 때문이리라.
첫 번째로 찾은 곳은 유럽. 문학사에서 유럽은 어떤 의미일까? 세계문학의 3대 성서인 <단테>와 <실낙원> 그리고 <파우스트>가 태어난 곳, 르네상스를 꽃피우며 서양정신의 근본을 이루었던 곳, 가장 오래됐으며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프랑크푸르트도서전’이 열리는 곳이 바로 유럽이다.
지은이는 유럽에서 누구를 만나는가? 괴테, 하이네, 브레히트, 빅토르 위고, 로자 룩셈부르크, 그림형제 등 이름 하나하나가 별처럼 빛나는 대문호들이다. 지은이는 이들이 잠들어 있는 곳을 찾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베를린에 자리 잡은 브레히트의 집하며 발자크가 묻혀 있는 페르 라세즈 공동묘지, 괴테와 실러가 문학적 고민을 두고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는 바이마르 시 등 유럽 곳곳을 찾아다녔다.
그곳에서 지은이는 죽은 이들을 부활시킨다. 그들이 살아간 장소에서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문학이 주는 감흥을 한층 더 높여 세우고 있다. 철학자 헤겔 옆에 묻히고 싶어 했던 브레히트의 집필실에서 기존의 서사극 이론을 뒤집어 버린 브레히트의 작품을 살피고, 나치에 항거하다가 베를린 운하에 던져진 로자 룩셈부르크를 기리는 묘지에서 오늘도 그녀가 독일 노동자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를 살펴보고 있다.
지은이의 이러한 시도들 하나하나는 애틋하기 그지없다. 문학은 문학책을 벗어나 날개 짓을 하며, 과거의 것은 오롯이 오늘의 것이 되어 한층 더 가깝게 느껴지니 설레는 마음을 만족시켜주기에 충분하다. 더욱이 하이데거, 막스 베버, 헤겔 등 문학이 아닌 분야에서도 맹활약했던 거장들 또한 만날 수 있으니 만족감은 배가 된다.
유럽에 이어 지은이가 찾은 곳은 미국이다. 미국문학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유럽의 정신을 계승했으면서도 유럽의 것을 거부하고 자신들만의 정신을 만들려고 했던 미국. 문학도 국가와 맥을 같이한다. 그래서일까. <모비 딕>, <모히칸족의 최후>, <주홍글씨> 등 책에 소개된 작품들은 미국적인 흐름을 보여준다. 덕분에 미국문학의 거장들을 쫓는 자리에서는 유럽에서 맛볼 수 없었던, 정신이 성숙해져가는 현장을 엿볼 수 있는 즐거움까지 있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아시아와 러시아문학인데 여기에서는 몇 가지 아쉬움을 생긴다. 먼저 호치민, 반레, 라자지, 마오쩌둥,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등 6명만이 언급된 것은 그렇다. 6명 개개인을 만나는 자리의 깊이는 다른 지역에 견줘도 손색이 없지만, 특히 마오쩌둥과 호치민을 작가로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뿌듯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이들만이 등장하는 것이 의아스러울 정도로 아쉬움을 남긴다.
또한 이 지역들은 문학적으로 보면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생소한 지역이다. 그것을 고려해 지은이가 개척하는 마음으로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작가들을 소개해줬으면 한층 더 풍부한 이야기로 작품의 본래 의미를 살릴 수 있었을 텐데 그것이 없다는 것도 일말의 아쉬움을 남긴다. 유명한 지형도를 그대로 답습한 것이 옥의 티라면 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아쉬움을 뒤로한다면 유럽과 미국을 종횡무진 돌아다니며 거장들을 쫓은 지은이의 수고는 아름답다. 생생한 그들과의 만남과 그로 인해 배가 되는 문학적 감흥은 척박한 풍토에서 꽃을 피우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니 무엇을 망설이랴. 첫사랑을 만나는 것 같은 그 설레는 감정들을 복 돋아주는 <세계문학의 거장을 만나다>, 문학에 빠진 이에게 즐거운 여행길을 알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