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미네르바 > 그래도 희망이 있는 것일까
파리대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
윌리엄 골딩 지음, 유종호 옮김 / 민음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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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의 어느 날, 학교 ‘숲 속 교실’에서 야외수업을 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한쪽 모둠이 소란스러워지더니 한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가까이 가보니 남자아이들 몇 명이서 벌레를 잔인하게 죽이고 있었고, 그것을 본 지영이가 울고 있는 거였다. 지영이는 학습 부진아이다. 생김새부터 보통 아이들과는 눈에 띄게 다르다. 남자아이들뿐만 아니라 몇몇 여자아이들에게까지 늘 왕따를 당하고 괴롭힘을 받아서 몹시 내 맘을 아프게 하는 아이였다. 지영이는 무척이나 마음이 여리다. 그래서 쉽게 상처받고 잘 운다. 나는 남자아이들이 또 지영이를 괴롭혀서 운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죽은 벌레가 불쌍하기 때문에 우는 거란다. 얼마나 서럽게 울던지 난 그 아이를 오래 안아 주고 괜찮다고 하며 등을 다독여 주었지만 그만 나도 눈물이 나고 말았다.

그러면서 생각한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잔인하게 벌레를 죽이는 아이들과, 또 다른 한쪽에서 죽은 벌레가 불쌍해서 우는 아이... 그 모습을 보면서 인간의 본성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인간은 원래 선한데 살아가면서 악을 배우는 것일까? 아님 원래는 악한데 교육이나 환경에 의해서 악한 모습이 사라지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흰 도화지처럼 깨끗한 상태로 태어났는데 살아가면서 선이나 악을 배워 가는 것일까?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책은 노벨 문학상 수상작품이면서, 오래 전에 영화로도 상영되었다. 그러나 난 영화도 보지 못했고, 책도 이제야 접했다. 비행기의 추락으로 무인도에 불시착한 아이들은 그 곳에서 나름대로 규율을 만들고 대장을 뽑아 살아갈 방도를 마련한다. 대장 랠프는 권위와 문명을 상징하는 소라를 갖고서 모임이 필요할 때면 소라를 불어 그 집단을 이끌어 나간다. 랠프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인물로 그 곳을 탈출하기 위해서는 봉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린다. 하지만 잭은 랠프와는 달리 야만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봉화보다는 사냥에 더 열을 냈고, 잔인하게 멧돼지를 사냥하면서 쾌감을 느끼며 그의 야만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처음 그 섬에 불시착했을 때만 해도 아이들은 바깥 세상에서의 규율과 도덕에 젖어 있어서 쉽게 살생을 하지 못했고, 나쁜 짓을 했을 때는 양심이 그들을 일깨워서 죄책감을 느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잭을 비롯한 몇몇 아이들은 친구 사이먼을 잔인하게 죽이는 일까지 감행한다.

합리와 질서와 도리가 우선시 되었던 집단은 잭이 주도권을 잡으면서 파괴와 타락과 야만으로 변해갔다. 천둥 번개와 폭우가 거세게 몰아치던 밤, 아프리카의 원주민이 어떤 의식을 치르듯 그들은 광기에 몸을 맡기고, 결국 폭발하고 만다. 그들이 얼굴에 칠한 푸르거나 희거나 검은 색칠은 곧 가면을 의미한다. 그것은 그들의 광기를 억눌러 왔던 이성이나 질서를 마비시키고 해체하며 야만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물론 사이먼은 한밤중에 멧돼지 사냥 후 즐겁게 파티를 하고 있을 때 산에서 내려왔기 때문에 그들은 사이먼이 괴물이라고, 혹은 멧돼지라고 여겨서 죽였다. 하지만 그들의 이성은 이미 그가 그들의 친구 사이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집단적 광기는 더 이상 이성이 자리잡을 수 없는 상태로 몰고 간다. 두 개의 세계, 즉 “한 쪽에는 사냥과 술책과 신나는 흥겨움과 솜씨의 멋있는 세계가 있었고, 다른 한쪽엔 동경과 좌절된 상식의 세계가 있었다”(103쪽) 그 두 세계는 화합할 수 없는 세계로 경험도 감정도 판이하게 달라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

인간에게 내재된 공포나 두려움은 기실 실체가 없는 망상일 때가 많다. 이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보지도 못한 괴물과 유령에 두려워 떨기만 하였다. 그러나 오직 한 명, 사이먼은 그 정체를 찾아 나서고 기껏 그 괴물의 정체가 죽은 시체라는 것을 알고 진실을 알리려고 했으나 그는 가차없이 죽임을 당한다. 사이먼이 파리대왕과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고도의 상징을 나타내고 있다. 파리대왕은 말한다 “나는 너희들의 일부야”라고.

그들은 만 5세에서 12세의 어린 아이들이다. 세상의 악에 덜 오염된 아이들이, 문명의 이기가 전혀 침범할 수 없는 천혜의 자연 조건을 갖춘 외딴섬에 있다면 그들이 건설하는 사회는 인류가 꿈꾸는 유토피아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섬에서 일어난 일들은 어른들 세계의 복사판이다. 그것은, 우리는 모두 카인의 후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일까? 자기 동생 아벨을 살해하고 도망쳐 온 카인의 후예. 인간에게 선천적으로 내재해 있는 본성은 결국 어둠과 죄악임을 증명하는 것...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부분에서 “잃어버린 천진성과 인간 본성의 어둠과 돼지(피지)라고 하는 진실하고 지혜롭던 친구의 추락사가 슬퍼서 마구 울었다”(303쪽)라고 하는 것은 아직 우리 인간이 전적인 타락에서 구원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나만의 억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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