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냐 >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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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
공선옥 지음 / 당대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책 한권 읽지 못한 일주일. 바쁘기도 했고, 정신도 없었지만....이 책을 읽는데 일주일 넘게 걸렸다. 이 두껍지 않은 책을 붙들고 절절맸다. 반 정도 남았길래....에라이, 쫌전에 한달음에 해치웠다. 징하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이데올로기를 에세이로 남긴 소설가가 또 누가 있었지. 사회적 이슈들을 하나하나 꼬집고 타박하며, 거친 분노를 담아내는 글. 소설가다운 정제된 문체에 담아내기엔 버거운 이야기들.
진보주의자의 글이 어디 이뿐이랴. 좌파의 주장이 새삼스러울까. 그러나, 그녀의 글에는 더 지독한 냉기가 흐른다. 어머니가 쓰던 뉴-슈가와 맛나니 이야기.
"....이제 어느 정도 먹고 살 만해진 세상이 되었다는 것일까. .....물론 화학조미료의 해악에 대해 모르는 바도 아니고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일에 지친 사람들도 천연조미료 좋다는 거 다 안다. 하지만 문제는 언제 만들어 먹을 여력이 그들에겐 없다는데 있다. 밤늦도록 제 몸 다 녹여가며 일하고 돌아와 언제 멸치 갈고, 마늘 말려 빻고, 양파 버섯 따위 재료를 섞어.....또한 조미료 치지 않은 음식을 일에 지쳐 깔깔한 입에 넣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친환경, 생태주의적 삶. 누가 몰라서 않나. 누군들 잘 먹고 잘 살고 싶지 않을까. 순진한 문제의식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인생'들이 우리 옆에 있다. 잊고 있었음을 부인하지 않겠다.
그녀의 말대로 가난은 없고 빈곤만 남아있는 시대, 가난은 그래도 어느 정도 '숨 쉴 구멍'이라도 있지만, 빈곤은 그야말로 삭막 자체인 것 같은....그런 시대다. 어른들은 돈 보고 화아! 하니....그저 꽃 하나에도 화아! 하는 저 어린것들에게 가혹한 세상......그녀는 "세상은 너무도 더럽고 자본은 너무도 악랄하여, 이런 세상에 대고 아름다운 노래 따위 나는 부를 수 없다"고 부르짖는다.
감히, 토를 달 수 있을까. 이렇게 절박한데. 실상 아무리 외면하고 무시하려 해도. 분명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데. 그녀처럼 이렇게 '소설가의 산문집'이라는 우아한 틀에다 그악스럽게 따지고 드는 이가 별로 많지 않을 뿐인데.
어쩐지, 책장을 넘길수록, 처음의 충격과 고통 대신, 비겁한 반론이 꿈틀거린다. 나는 이미 기득권층. 이미 세상을 너무 많이 알아버렸고, 타협해버린 사회인이라 그런걸까. 영어공화국을 만들거냐며, 영어하는 그놈들에게 무시당하면서 영어가 밥 먹여주냐구 따지는 그녀 앞에....그럼, 영어가 중요하죠. 어차피 세상은 그놈들이 움직이는데, 영어 잘 하는 나라에 투자 한푼이라도 더 하는 거 사실이죠...라고 변명한다. 그녀는 투사이지만, 투사들의 정직한 분노를 어떻게 포장해야 더 잘 통할까....라고 꼼수만 생각한다. 뾰족한 대안 없는 목소리라고 궁시렁거린다.
사실, 누군가에게 이 책을 선물해볼까 하다가....계속 망설인다. 마치 '의식화'하려는 내 속셈을 너무 쉽게 들켜버릴거 같고, 이런 너무 솔직한 주장들이 오히려 거부감을 부르지나 않을까 겁이 나서. '전략적 사고'만 얘기하는 '입만 살아있는 좌파'에겐 버거운 책이다. 그래서 책을 읽는데 그렇게 오래 걸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