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chika > 삶에 필요한 것, 작은 위로
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
공선옥 지음 / 당대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오늘 나는 교육을 핑계로 사무실을 나와 사전에 계획한 대로 영화관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텅 비어있는 영화관에서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영화를 보는데 문득 '사는 게 거짓말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영화에서 말하는 저 이야기들이 모두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이야기들이 아니라 지금도, 내가 영화를 보면서 감상에 빠져 눈물흘리고 있던 그 시간에도 놀림받는 아이들이 있고, 임금체불에 불법 체류자로 쫓기며 죽음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삶'은 어떤 것일까.

사람들이 극찬을 할 때쯤 읽어야지, 하고 있다가 책 무덤의 바닥에 깔려있는 이 책을 꺼낸 것은 한참 바쁘고 정신없이 보내던 지난 주였다. 주말에 성서피정이 있다고 해서, 쉬는 시간에 읽으려고 들고 갔는데 읽어야 할 성경을 제껴두고 읽게 될 만큼 나는 그녀의 이야기에 빨려들어갔다.

내가 읽어야 할 성경의 한 부분은 '루가복음'이었다. 성경을 읽지 않은 이들에게는 생소한 것이겠지만, 책 리뷰를 쓰면서 나는 루가복음에 대한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그전까지 내가 무심코 읽었던 루가복음의 내용은 '가난하고 소외받은 이들에 대한' 것이라는 강의를 들었다.  다른 복음서에는 나와 있지 않은 루가복음만의 특수문헌을 보면 그 모든 것이 그 당시 소외되고 억압받던 여자, 특히 과부, 세리, 이방인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산상설교로 유명한 '마음이 가난한 자는 행복하다'라는 것 조차(마태오복음이라는 성경의 다른 복음서에 실린 내용이다), 루가복음사가는 힘들여 올라가야하는 산위에서의 설교가 아니라 약하고 힘없는 이도 쉽게 찾아 갈 수 있는 평지에서의 기쁜소식으로 전하고 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이라고. 루가복음사가는 '마음이 가난한'이라는 말로 본질을 흐리지도 않는구나...

나는 공선옥 산문집 '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가 바로 그러한 책과 같다고 느낀다. 저 높은데서 이상을 말하는 것도 아니고, 넌 왜 그렇게밖에 못사니? 하며 질타하는 것도 아니고 아름다운 세상만을 이야기하는 구름에 뜬 이야기책도 아니어서 그렇다.

공선옥은 무턱대고 희망을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또 그렇다고 해서 이 세상살이가 한맺히도록 절망만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를 절절히 느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더욱 더 이 책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가 쉽지 않다. 나는 이렇게 편히 지내며 고작 그들의 힘든 삶에 눈물 한방울 흘리고 돌아서서는 잊어버리고 마는데. 안그렇겠는가.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그렇다고 멀리해서는 안된다. 내가 눈 감고, 고개를 돌려버린다고 이 세상이 아름답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아름다운 것만 보고, 즐거운 것만 느끼며 내가 행복하면 된다고 하기엔 너무 많은 감정을 가지고 있고 이 세상에 너무 많은 마음을 줘버렸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그 스치듯 흘리는 작은 대사 한마디에 나도 모르게 눈물을 주륵 흘려버리면서 '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를 떠올렸지만 지금 집에 와서 책을 들춰보다 생각을 바꾼다. "삶에 필요한 것, 작은 위로" 라고.

친구가 없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가상친구를 만들어야 했던 은혜에게도, 탈북자라는 꼬리표 때문에 이질감속에 살아야 했던 소년 소녀에게도, 불법체류자라는 것 때문에 임금도 못받으며 일하고 추운 겨울 동사해야만 했던 김원섭씨도, 죽음에 내몰리며 노동하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도, 사회 모순에 희생되어 악인으로 낙인찍히는 이들에게도... '좋은 세상은 올 거예요'라며 미소 지으며 말할 수 있는 '작은 위로'를 주는 친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마음이 먹먹해지지만, 그래서 괜히 한숨 지으며 멍..하니 있게 되지만 그렇게 되라고 이 책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삶에 필요한 것은 작은 위로"라는 걸 떠올리며 내가 위로받고, 또 내가 위로 해주며 '좋은 세상 올 거예요'라고 미소지어야 한다. 이 책을 읽은 모두는 그래야 한다. 우리의 미소가 세상 한가득 퍼져나갈 수 있어야 한다.

 

*** 내가 오늘 보고 온 영화는, 짐작하겠지만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제작한 '다섯개의 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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