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끼사스 > 미국판 '순애보'
위대한 개츠비 소담 베스트셀러 월드북 55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199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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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안 것은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통해서였다. 이 소설을 읽은 사람은 잘 알겠지만 주인공 '와타나베'는 틈만 나면 <위대한 개츠비>를 꺼내 읽는다. 3번째 읽던 어느날 그에게 동경법대 다니는 수재 '나가사와'가 다가온다. 주인공과 몇마디 주고받은 그는 이렇게 중얼거린다. '이 책을 세번 읽었다면 나랑 친구가 될 수 있지.' 그리고 나서 그 둘은 절친한 사이가 된다.

1차대전을 통해 경제적 풍요로 가득한 부자나라가 된 미국. 1920년대-전후의 풍요가 극치를 이루던-의 미국 풍속을 소설적 요소와 결합시켜 예술적 경지에 이르렀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 <위대한 개츠비>다. 그 자신이 파티와 환락으로 가득한 사교계의 한가운데 있었던 피츠제럴드는 '캐러웨이'라는 이름의 '나'를 관찰자로 내세워 미국의 1920년대식 사랑을 그려낸다. 그 중심에는 개츠비와 데이지, 사랑하는 방법조차 너무 다른 두 연인이 있다.

개츠비는 '소박했던' 시기의 옛사랑이었던 데이지를 다시 찾고자 한다. 하지만 그러기에 그는 너무나 가난하다. 이미 부자와 결혼하여 사교계에 몸담고 있는 그녀를 찾기 위해 그는 '닥치는대로' 돈을 벌어들인다. 축재의 방법은 더할 나위없이 비열하고 치졸했지만 그건 아무래도 괜찮았다. 왜냐하면 우선 세상이 '비열하고 치졸했기 때문'이고, 더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이 그녀에게 다가가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으므로.

웨스트 이그에 저택을 지어놓고 불특정 다수를 불러들이는-물론 데이지를 만나기 위해-호화 파티를 연일 열던 중 드디어 개츠비는 그녀를 만난다. 막상 옛사랑을 앞에 두고서 지나치게 긴장하는 개츠비를 위해 '나'는 둘 사이에 매개 역할을 기꺼이 수행한다. 덕분에 둘은 빠르게 가까워지고 남편이 있음에도 데이지는 점차 마음이 흔들린다. 사실 데이지와 남편 뷰캐년 사이를 이어준 것은 '사랑'이 아니었다. 둘 사이에는 풍요한 시대의 저속한 욕망과 계산이 있었을 뿐.

하지만 순조로울 것만 같던 개츠비의 계획은 데이지가 그의 차로 남편의 정부를 치어 죽이면서 급반전을 맞는다. 데이지의 행동은 그녀의 삶에 또 하나의 미성숙한 흔적을 남기는 것이었지만, 그녀가 이를 거부하면서 그 흔적은 질곡의 세월을 거쳐 겨우 안식처에 다다른 개츠비의 '순수'를 무참하게 덮어버린다. 닿지 못한 맘과 함께 싸늘히 식어가는 그의 시신 곁을 서성이는 것은 오직 '나' 캐러웨이 뿐. 누구도 그를 기억하려 하지 않은채, 풍요와 망각의 품 속으로 자신을 내맡긴다. 데이지 또한 예외일리 없다.

시대에 따라 모든 것이 변해가고 '사랑' 또한 예외가 아니다. 피츠제럴드는 디테일한 요소들-잡지 '다운태틀', 20년대 유명 흥행사 '벨라스코' 등-까지 신경쓰면서 소설 속에 자신의 시대를 완벽하게 복원한다. 그리고 그 배경 위에 도저히 시대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인물 군상들을 꼼꼼히 그려넣는다. 그러나 개츠비 만은 어느 정도 예외다. 물론 그의 물적기반은 철저히 환경에 예속되어 있다. 하지만 그의 정신만은 한 여인에 대한 불타는 집념으로 인해 자유롭다. 그 정신이 열매를 맺으려 할 때 시대는 가차없이 이를 단죄한다. 몽매한 시대와 사람들은 도저히 그 정신의 고결함을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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