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의 이모저모 5
동물 이야기 2
─ 개
김경윤
개를 여라믄이나 기르되 요 개 치 얄 오랴
뮈온 님 오며 리를 홰홰 치며 락 리 락 반겨셔 내 고 고온 님 오며난 뒷발을 버동버동 므르락 나으락 캉캉 즈져셔 도라가게 다.
쉰 밥이 그릇그릇 난들 너 머길 줄이 이시랴.
바둑아 검동이 청삽사리 중에 조 노랑 암캐같이 얄밉고 잔미우랴
미운님 오게 되면 꼬리를 회회 치며 반겨 내닫고 고은님 오게 되면 두 발을 벋디디고 콧살을 찡그리며 무르락 나으락 캉캉 짖는 요 노랑 암캐
이튿날 문 밖에 개 사옵세 웨는 장사 가거드란 찬찬 동여 내어주리라
인간의 역사에서 인간과 가장 가까이 있는 동물을 손꼽으라면 그 동물은 말할 것도 없이 개다. 개야말로 인간이 가장 사랑하고 애용(愛用)해 왔다. 개는 인간의 가장 오래된 가축이기도 하다.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자면 1만 8000년 전 중간석기시대, 즉 빙하시대 말기까지 올라간다. 한국에서는 대략 구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에는 식용이었겠지만, 적극적으로 가축화한 이후 외적 내습의 통보와 수렵 등의 용도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설화적으로 개는 충성과 심부름꾼이며 저승에서 이승으로 안내하는 안내자이다. 우리 나라의 일식과 월식의 유래를 설명하는 설화에서는 불개가 등장하는데, 그 불개가 해와 달을 물고 있을 때, 일식과 월식이 생긴다고 한다. 어원적으로 개는 ‘가이'의 준말로, ‘-이'는 접미사이다. 갇>갈>갈이>가이>개로 변천되었다.
이 개가 접두사로 사용될 때에는 ‘야생 상태의' 또는 ‘질이 떨어지는'의 뜻을 더하게 된다. 개꿀, 개떡, 개먹, 개살구가 그 예이다. 또는 ‘헛된', ‘쓸데없는'의 뜻을 더하기도 하는데 개꿈, 개나발, 개수작, 개죽음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정도가 심한'의 뜻을 갖는 접두사로도 쓰이는데 개고생, 개꼴, 개망신, 개망나니, 개잡놈 등이 꼽힌다. 그러니까 개망신이란 말을 사용하면, 망신 중에 망신을 당했다는 뜻이며, 개잡놈이란 말은 잡놈 중에 잡놈, 상종할 수 없을 정도로 더러운 놈이란 뜻이다.
‘개'라는 말이 언제부터 이렇듯 부정의 파생접사로 사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사람과 가까이에 있으면서 희노애락을 함께 경험했기에 칭찬과 더불어 욕도 함께 먹었지 않나 싶다. 처음에 소개한 사설시조 역시 그런 맥락의 작품이다. ‘개새끼', ‘개자식'이라는 말 속에서 알 수 있듯이 개라는 말 속에 이미 조롱과 비난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경우도 있다. 봉산탈춤에서는 말뚝이가 양반을 조롱하는 언어유희(pun)로 사용하기도 했다.
말뚝이 : (가운데쯤에 나와서) 쉬이. (음악과 춤 멈춘다.) 양반 나오신다아! 양반이라고 하니까 노론(老論), 소론(少論), 호조(戶曹), 병조(兵曹), 옥당(玉堂)을 다 지내고 삼정승(三政丞), 육판서(六判書)를 다 지낸 퇴로 재상(退老宰相)으로 계신 양반인 줄 아지 마시오. 개잘량이라는 ‘양'자에 개다리 소반이라는 ‘반'자 쓰는 양반이 나오신단 말이오.
양반(兩班)을 ‘두 량[兩]'에 ‘나눌 반[班]'으로 읽지 말고, ‘개잘량'이라는 ‘양'자에 개다리 소반이라는 ‘반'자로 보라는 것이다. 여기서 ‘개잘량'이 개가죽으로 만든 방석을 뜻하고, ‘개다리 소반'은 상다리 모양이 개의 다리처럼 휜 막치 소반을 뜻한다. 한마디로 말해 양반은 개자식이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개가 나쁜 의미로만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설화에서의 개가 저승에서 이승으로 인도하는 안내자의 역할을 하는 것처럼, 윤동주에게 개는 밤을 깨우는 자이며, 새로운 세상으로 화자를 인도하는 인도자이다.
志操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白骨 몰래
또 다른 故鄕에 가자
─ 윤동주, 「또 다른 고향」 중에서
일제시대 윤동주의 고향이 백골과 같은 상태로 몰락했을 때, 작은 방에서 윤동주가 울고 있을 때, ‘지조 높은 개'가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가라고, 가라고, 절망하지 말고 꺾이지 말고 ‘또 다른 고향'으로 가라고, 컹~ 컹~ 짖는다. 기독교 성서에서 닭소리가 베드로에게 대오(大悟)의 소리이듯이, 개소리는 윤동주에게 각성(覺醒)의 소리다.
물론 문학작품 속의 개는 대부분이 바로 인간과 친근하여 인간과 운명을 같이 하는 존재이다. 백석은 삶의 공동체가 갖는 원형질을 가장 친근하게 그렸냈던 시인으로 대표적이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개는 바로 인간과 다름없는 그런 존재다. 「모닥불」이라는 작품.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락잎도 머리카락도 헌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와장도 닭의 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이도 큰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상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원시제의에서 가운데 불을 놓고 여러 사람이 춤을 추듯이, 모닥불을 가운데 놓고 슬픔과 기쁨이 녹아난다. 개이빨과 개터럭이 타는 모닥불, 개를 포함한 모든 생명들이 쪼이는 모닥불. 역사의 불!
개가 얼마나 우리와 친근한 동물이었는지 알려면, 우리 민족의 속담을 살펴보면 된다. 속담 속에 등장하는 동물 중 1위 역시 개다. 무수히 많지만 한 10개쯤 소개해 본다. 자, 우리의 국어실력을 테스트해보자.
개가 개를 낳지. 개가 겨를 먹다가 말경 쌀을 먹는다. 개가 똥을 마다할까. 개가 룡상에 앉은 격. 개가 미쳐 나면 소도 미쳐 난다. 개가 벼룩 씹듯. 개가 콩엿 사 먹고 버드나무에 올라간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산다. 개발에 편자. 개 꼬리 삼 년 묵어도 황모 되지 않는다.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 개는 나면서부터 짖는다. 개는 인사가 싸움이라. 개도 나갈 구멍을 보고 쫓아라. 개도 닷새가 되면 주인을 안다. 개도 부지런해야 더운 똥을 얻어먹는다. 개도 손 들 날이 있다. 개도 안 짖고 도적 맞는다. 개를 따라가면 측간으로 간다. 개 못된 것은 짖을 데 가 안 짖고 장에 가서 짖는다. 개 보름 쇠듯. 개 씹에 보리알 끼이듯. 개 잡은 포수. 개 팔자가 상팔자. 개 핥은 죽사발 같다. 개 호랑이가 물어 간 것만큼 시원하다.
개와 관련된 관용어도 많다. 개 발싸개 같다. 개 발에 땀 나다. 개 방귀 같다. 개 새끼 한 마리 얼씬 안 하다. 개 싸대듯 하다. 개 잡듯 하다. 개 콧구멍으로 알다. 개 패듯 하다.
개와 관련된 은어(隱語)로는 개밥과 개털이 있는데, ‘개밥'은 대접을 받지 못하는 자이고, 동의어로는 ‘좆밥'이 사용된다. ‘개털'은 가진 것이 없는 자이다. 박노해의 산문시, 「징역에서들 보면」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어쩜 징역에 와서까지 지 잘났다고 세상에 모르는 것이 없고 유명인사 중에 친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실세들과 한때 형님 아우 안 해본 놈이 없고 전부 다 운수 나쁜 탓이요 남의 탓, 그러다가 누구 약점만 잡았다 하면 그 성능 좋은 두뇌로 뒷다마 치고 지 몸 하나 편해보려고 온갖 짱구를 굴려대는 사기범 경제범들이 얼마나 개밥인지 아십니까 지식인들이여 전문가들이여 잘 나가는 사람들이여
진급평점이나 올려볼까 가석방이라도 먹어볼까 법무부 교육대로 고자질 투서질 안테나질로 참 여러 사람 징역 깨지게 하는 밀대들이 얼마나 좆밥인지 아십니까 공무원들이여 이상한 신고정신 투철한 분들이여
수 억대 뇌물을 주고받고 술값 몇 백 만원쯤 우습게 쓰고 사시던 회장님 사장님 국장님 이하 님자 돌림들이 영치금 하나 없는 불쌍한 ‘법무부 자식'들에게 200원짜리 빵 하나 주는 게 아까워서 제 관물대에 썩어가도록 재어놓는 꼬라지가 얼마나 개털인지 아십니까 자본가들이여 권력자들이여 잘 먹고 잘 사시는 분들이여
개 중에는 권력형 개가 있다. 김지하의 담시 「오적」에 나오는 개들.
셋째놈이 나온다 고급공무원 나온다.
풍신은 고무풍선, 독사같이 모난 눈, 푸르족족 엄한 살,
콱다문 입꼬라지 청백리(淸白吏) 분명쿠나
단 것을 갖다주니 쩔레쩔레 고개 저어 우린 단것 좋아 않소,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말구
어허 저놈 뒤좀 봐라 낯짝 하나 더 붙었다
이쪽보고 히뜩히뜩 저쪽보고 혜끗혜끗, 피둥피둥 유들유들
숫기도 좋거니와 이빨꼴이 가관이다.
단것 너무 처먹어서 새까맣게 썩었구나, 썩다못해 문들어져
오리(汚吏)가 분명쿠나
간같이 높은 책상 마다같이 깊은 의자 우뚝나직 걸터앉아
공(功)은 쥐뿔도 없는 놈이 하늘같이 높이 앉아 한 손으로 노땡큐요 다른 손은
땡큐땡큐
되는 것도 절대 안 돼, 안될 것도 문제 없어, 책상 위엔 서류뭉치, 책상 밑엔 지폐뭉치
높은 놈껜 삽살개요 아랫놈껜 사냥개라, 공금은 잘라먹고 뇌물은 청(請)해먹고
내가 언제 그랬더냐 흰구름아 물어보자 요정(料亭)마담 위아래로
모두 별탈 없다더냐.
개에 관한 시 중에서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서정주의 「자화상」이다. ‘애비는 종이었다'로 시작되는 이 충격적인 작품은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라는 명구를 거쳐 다음과 같이 끝난다.
찬란히 틔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詩)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서정주. 지금은 어디에서 병든 수캐 마냥 헐떡거리고 있을까.
글쓴이 『창』 기획위원. 친절하고 알기 쉬운 철학입문서 『철학사냥』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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