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좋은 저녁   -- 곽재구                 

내가 책을 읽는 동안 
새들은 하늘을 날아다니고 
바람은 내 어깨 위에 
자그만 그물침대 하나를 매답니다. 

마침 
내 곁을 지나가는 시간들이라면 
누구든지 그 침대에서 
푹 쉬어갈 수 있지요. 

그 중에 어린 시간 하나는 
나와 함께 책을 읽다가 
성급한 마음에 나보다도 먼저 
책장을 넘기기도 하지요. 

그럴때 나는 
잠시 허공을 바라보다 
바람이 좋은 저녁이군, 라고 말합니다. 
어떤 어린 시간 하나가 
내 어깨 위에서 
깔깔대고 웃다가 눈물 한 방울 
툭 떨구는 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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