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이매지 > 전유성의 책에 관하여 중구난방 스스로 묻고 답하기

책은 왜 읽는가?
안 심심하려고 읽는다. 사람이 살다보면 심심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아는 사람은 안다.  책을 읽으면 안 심심하다. 심심할 때 가장 싸게 먹히는 취미가 책읽기다.

 

어떤 책을 읽는가?
그냥 닥치는 대로 읽는다. 집에 있는 책 중에 아무거나 읽는다. 새로 나온 책도 좋고 전에 읽어본 책도 꺼내 읽는다. 전에 한번 읽었다고 그 책 내용을 다 외우지 못한다. 그래서 다시 읽는다. 다시 읽으면 새삼스레 반가운 글귀들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다.

 

어떤 책을 구입하는가?
우선 친구나 가까운 사람들이 어떤 책을 읽는가를 살펴본 다음 그들이 읽는 책을 구입해보면 그와 나는 공통의 화제를 가질 수 있다. 놀러 간 친구 집 혹은 사무실에서 발견한 책을 구입한다.

베스트셀러라는 걸 보고 9번 10번을 구해 읽는다. 이유는? 1번 2번은 잘 안 바뀌지만 9번10번은 잘 바뀌니까! 다양한 책을 구입해서 읽을 수 있다. 어쨌든 1번 2번은 학교 다닐 때부터 잘 안 바뀌는 놈들이다. 꼴찌부터 읽으면 다양하게 읽을 수 있고 사람도 마찬가지더라.

 

책 읽으면 뭐가 좋은데?
아까 질문이랑 비슷하잖아! 책 읽으면 안 심심하다니까 그러네!

 

어떻게 읽는가?
그냥 맘에 드는 문구가 있으면 연필로 사정없이 밑줄 찍찍 그으며 읽는다. 나중에 다시 읽을 때 보면 그 밑줄 그은 놈들이  반갑게 뛰쳐나온다. 밑줄 그어놓은 걸 한가할 때, 시간 남아돌아갈 때 공책에 옮겨 적으면 좋고 ! 아니면 말고!  신간을 잽싸게 구해서 오자(틀린  글자)를 찾아내는 즐거움! 출판사에서 전화해서 오자 알려주는 재미! 이거 재미있다. 한 일주일 갈 수 있다. 심심할 때마다 전화 걸어 몇 페이지에 오자 발견했다고 전화하면 출판사 직원들의 공손하게 숙이는 저자세의 목소리를 들을 때의 쾌감! 요즘 같은 세상에 저토록 겸손하게 독자를 왕으로 모시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가?  말 그대로 독자는 왕이 될 수 있다.

 

책의 다른 용도는?
우선 수면제 대용이다. 찾아보면 분명히 수면제 대용으로 쓸 책이 꼭 있다. 해외여행 갈 때 읽다가 신세진 교민에게 선물하기! 비행기 안에서 스튜어디스에게 선물하고 말 걸기! 책상다리 안 맞을 때 밑에 고여 균형 맞추기! 웬수 같은 놈이라도 집들이 가야 할 때가 있다. ‘드럽게’ 어려운 책 선물하며  “이거 내가 얼마 전에 읽은 책인데 너무 감명을 많이 받았어! 너도 읽어볼래?  정말 좋은 책이야” 한마디 해두면 재미가 서 말이다. 가끔 전화 걸어 “그 책 읽어보니까 어때? 괜찮지?” 하고 읽었나 안 읽었나 확인하기!

 

책에서 뭘 얻을 수 있는가?
중요한 질문이다. 내가 처음 책에서 뭘 얻은 건 중학교 2학년 때 작은고모가 읽던 일본 소설 <빙점>이란 소설이다. 다른 건 기억이 안 나는데 초등학교 여자애가 집에 갈 차비를 잃어버렸는데 주위 친구들이 차비 잃어버린 걸 걱정해주니까 정작 본인은 “내가 잃어버린 돈을 주운 사람은 얼마나 기쁠까?” 라고 말하던 대목! 그래 세상은 이렇게도 볼 수 있고 저렇게도 볼 수 있구나 ! 세상 보는 시각을 여러 가지로 볼 수 있게 해준 결정적인 계기가 된 책이다. 소설 제목이 ‘빙점’인지 아닌지도 사실은 잘 모르겠지만 여자아이가 한 말은 확실하게 기억한다.

 

지금 머리맡엔 어떤 책들이 있는가?
귀찮아서 오른쪽에 있는 것만 말해도 되겠는가?

 

좋다! 니 마음이다. 말해봐라!

박완서의 <그 남자네 집>
조성관기자의 <
실물로 만나는 우리들의 역사>
이시드로 파로디의 <
여섯 가지 사건>
천운영의 <
명랑>
엘케하이덴하이히 <
세상을 등지고 사랑할 때>
원민하의 <
불안>

<좋은 시 2005>

<괴짜 경제학>
경순호의 <건강경>

<코앞에서 본 중세>
기리노 나쯔쇼오  <
얼굴에 흩날리는 비>



















왼쪽에서 숱한 책들이 총 맞은 병사들처럼 널브러져
있다. 책들에게 나는 신이다. 책은 내 손이 저를 택해 안수해주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신도들이다.

 

시간 다됐다. 마지막으로 할말은 ?
책을 읽는 건 안 심심해지는 일이지만 책에 대해 쓰는 일은 정말 하기 싫은 일이다.

 

 

전유성 / 서라벌대학 연극연출과 졸업. 연예계의 대표적인 아이디어뱅크인 전유성님, 독서광으로 유명하다. 1998년 교보문고 구매왕 베스트5에 꼽히기도 했으며 후배들에게 ‘책 선물을 잘해주는 선배’로도 소문나 있다. 전유성님은 “시집을 통해 개그에 필요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남다른 시각을 접한다”고 한다.

※ 본 칼럼은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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