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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줏빛 소파
조경란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5월
평점 :
품절
2004년 4월의 어느날엔가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연극 [남자충동]을 보았습니다. 사실 그 날은 그 연극을 5번째 쯤 보던 날이였을겁니다. 3월 중순에 처음 보고 너무 좋아서 반복해서 보다보니 총 13번을 보게 되었네요. 연극이 시작되기 전 유정이라는 역을 맡으신 이남희 배우분(지금은 연극[이]에서 연산군역을 하십니다) 께서 알은체를 하시며 손을 흔들어주셨습니다. 그날은 2층에서 보고 있었는데 어떻게 알아보시고는.. ^^ 그런데 저희 뿐 아니라 저희 옆자리에 앉으신 분들께도 손을 흔들어주시더군요 그래서 좀 주의깊게 살펴봤지요. 제가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데 잠깐 봐도 되겠냐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빌려드렸죠. 너무 이쁘게 생기셨길래 연극배우시냐? 라고 물었떠니 그 옆에 앉아계신 여자분이 작가라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다시 그 예쁘신 분은 그 옆에 여자분을 가리켜 이분이야 말로 작가시죠! 하는겁니다. 음..그래서 여쭤봤더니 그 예쁘신분은 소설가 조경란님이였고, 그 옆에 여자분은 뮤지컬 겨울연가와 사랑은 비를타고의 작가 오은희 님이셨습니다. 와우~ 어찌나 반갑고 만나서 영광이던지!! 그렇게 우연한 만남이 인연이 되어서 오은희 선생님께서 극을 쓰신 뮤지컬들을 보러다니고, 조경란님이 쓰신 소설들을 찾아 읽었죠. 그리고 처음 읽은 조경란님의 작품이 바로 [나의 자줏빛 소파] 입니다.
어떤 분의 일기를 보면 스스로를 그레이라 칭하시며 먹구름을 몰고 다니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조경란님이야말로 먹구름중에 상~~ 먹구름을 몰고 다니시는 분이시죠. 어떤 소설을 보면 끊임없이 상대와 대화하며 극을 이끌어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음..대표적인 작품이라면 김하인님의 [국화꽃 향기] 정도 랄까요! 서로 주고 받는것이 많기 때문에 문체도 간략하고 스피디 하지요. 그런데 조경란님의 작품은 어쩜 이리 혼자서 생각하고 혼자서 결론내리는것들로 이루어져 있는지. 누가 이 여자에게 말하는 법! 을 좀 가르쳐주지! 하는 안타까운 마음까지 들 정도였습니다. 사람들은 움직입니다. 그냥 가만히 있지는 않고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우체국에서 우체국 밖으로, 6층에서 옥상으로, 대형 서점으로, 전철로... 그런데 그들의 움직임은 마치 귀신에 홀린 넋나간 사람들의 움직임 같습니다. 그 움직임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그 움직이는 동안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는 그들에게 시선이 집중됩니다. 우리가 실제로 동네를 걷게 될때 또는 오래 다닌 직장을 갈때 아무래도 아는 사람과 만나게 되지 않던가요. 그것이 통성명을 하고 어디사냐! 뭐 이런것을 나누지 않은 사이더라도 말이죠. 그래서 목만 까닥 하며 목례를 하곤 합니다. 그러나 조경란 님의 소설속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양 사람들 사이를 그냥 쑤욱~~ 지나갑니다. 조경란 님의 소설은 참 건조합니다. 그냥 작은 불씨 하나만 붙어도 확~ 불이 붙을것만 같습니다. 사람사이의 관계에 있어서도 질퍽함이란 찾아볼수가 없습니다. 싫으면 떠나면 되는것이고, 안보면 되는것이고, 그냥 끊으면 끊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이란 한없이 고독한 존재여서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려고 무진장 애를 쓰며 삽니다. 그리고 군중속에 있을때는 또 혼자 있고 싶어!! 라고 노래를 부릅니다. 참 어이없는 인간들이죠. 그런데 조경란님의 소설속 사람들은 관계속에서 애쓰는 모습이 전혀 없습니다. 사람이 사는것 같지가 않고 사물이 사람을 대신하는것 같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조경란이란 분이 이런사람이 아닐까.. 상상을 하게 됩니다. 밖으로 표출하기보다 안에서 삭히고, 재미있어도 웃지 못하고, 슬퍼도 울지못하는..그런 분이 아닐까 하고 말이죠. 이정재와 이영애가 나왔던 [선물]이라는 영화에 보면 이정재가 개그 배틀 같은것에 나가는데 이영애가 죽어갈때 마지막 결승전을 치룹니다. 그때 웃기면서 눈물을 흘리던 장면이 있습니다. 조경란님의 작품 딱 그거같습니다. 아니 조경란님이 딱 그럴것 같습니다. 개그를 보면서 단순히 그 개그를 보지 못하고 그 안의 어떤것을 보는... 실제로 어느 지인의 말씀에 따르면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를 보시고는 조경란님이 펑펑 우시는걸 봤다고 합니다. 저는 사실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고 크게 웃었습니다. 단순한 말의 유희를 보면 웃지 않고 못베기지요. 허나 조경란님은 반복되는 그것들만을 보지 않고 그 안의 것을 보았던거겠지요. 날마다 찾는 고도, 그러나 오지 않는 고도, 어쩌면 안올껄 알면서도 또 기다리는 고도...
재미있는 소설을 좋아하는 우리 태양님은 이 책을 앞에 1/5 정도 읽었나요.. 자기 타입 아니라면서 멀리 치워둡니다. 어쩌면 나의 솔직한 모습이 태양님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한번 더 진지해보고, 한번더 천천히 호흡하며 읽어보니 그 안에 웅크리고 있는 제 모습이 보입니다. 자꾸 안으로 안으로 움츠려 드는... 그런데 책 읽을때만 움츠려 들렵니다. 책을 덮는 순간 대중속으로 팍~~ 파고들랍니다. 바라건데 조경란님도 조금은 대중속으로 들어왔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대세를 따르는 그런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방식을 택했으면 합니다. 다음번 작품에서는 좀더 밝은 먹구름을 조금 걷어낸 여자를 만날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