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호밀밭 > 웃고 있는 삐에로를 닮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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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덕 성령충만기
이기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10월
평점 :
단편 소설을 묶은 소설집의 제목은 작가와 잘 어울리곤 한다. 신경숙의 소설집 제목은 은근함이 있다. <딸기밭>이나 <종소리>는 은은한 매력이 느껴진다. 은희경은 <타인에게 말걸기> <상속>과 같이 약간은 냉소적인 제목의 소설집을 냈었다.(<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라는 은희경의 두 번째 소설집의 제목은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이었어야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김연수는 <스무 살>,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로 서정성을, 김영하는 <오빠가 돌아왔다>로 호방함과 호기를 내보인다.
제목만으로 마음을 끄는 소설집이 있다. 이 소설집도 제목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끌 만하다. 마음이 끌렸던 이유는 호기심이었다. <최순덕 성령 충만기>는 다소 예민한 제목이다. 이 제목을 어떤 간증처럼 듣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소설집을 사서 표제작부터 읽는 일은 드문 편인데 이 책은 최순덕의 이야기부터 읽고 싶었다. 최순덕에 대한 이야기는 성경처럼 2단으로 구성된 심상치 않은 편집이 눈길을 끌었다.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의인 최순덕에게 내린 성령의 감화 감동 이야기라 이곳에 하나의 보탬과 빠짐없이 기록하노니>로 시작하는 성경을 본뜬 편집과 구성이 독특했다.
단편 소설을 읽을 때마다 새로운 초콜릿 상자를 여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이 8편의 작품은 얌전하게 선택되기를 기다리는 초콜릿과는 다르다. 줄을 맞춰 있지도 않을뿐더러 줄을 서라고 해도 제대로 설 것 같지 않은 초콜릿이다. 금박의 포장지를 뚫고 나올 만큼 개구쟁이 같고, 몸에 붙은 아몬드를 흔들어서 툭툭 털어 버릴 것 같은 자유분방함이 있다. 사실 이 소설들은 달콤함이나 이국적인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초콜릿보다는 땅에서 자라는 감자처럼 흙 냄새가 나는 소설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실체도 알기 힘든 고독에 허덕이는 사람들도 아니고, 그렇다고 스스로 마이너리그라고 자책하는 사람들도 아니고, 쨍하고 해뜰 날을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들도 아니고 허황된 희망에 부풀어서 사는 사람들도 아니다. 그들은 현실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았지만 현실에 뿌리내리지는 않은 사람들로 보인다. 그들은 땅 밑으로도 사라질 수 있고, 머리카락의 힘으로 하늘로 떠오를 수도 있고 뒤로 걸어 다닐 수도 있다. 어느 날 스타가 되어서 나타날 수도 있고, 햄릿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 이 소설 속 주인공들의 이름은 이시봉, 최순덕, 순희, 순녀 등으로 도시적이거나 세련된 느낌을 주는 이름들이 아니다. 순한 이름으로 독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딱딱한 현실이 아닌 조금은 몽롱한 환상의 세계에 반쯤 기대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 소설 속 주인공들은 웃고 있어도 정말로 웃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삐에로 분장을 한 것과 같다. 하지만 풍선처럼 둥글둥글한 삐에로 옷을 벗으면 마른 몸매가 드러날 것만 같고, 삐에로의 분장을 지우면 울고만 있을 것 같은 슬픔이 느껴진다. 잘 읽히는 재미난 문장이 속도감 있게 다가오지만 마냥 웃고만 있을 수는 없는 소설들이다. 그렇다고 이 소설들을 읽고 마음이 허탈했다거나 쿵 했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읽는 사람은 웃어도 쓰는 사람은 웃으며 쓰지는 않았을 것 같은 소설들이 모여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이 소설, 저 소설을 기웃대며 읽고 있다. 한 달 간 거의 소설만 붙들고 있는 듯하다. 그러다 보니 이 소설과 저 소설이 합쳐지고, 저 소설 주인공이 이 소설 주인공과 겹쳐져도 별 무리 없이 연결되는 특이한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그런데 이 소설집만은 좀 달랐다. 이 소설들은 신생아실에 엄마 이름 이기호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올망졸망 모여 있는 아기들과도 같다. 이 소설들이 이기호라는 이름표를 단 8명의 쌍둥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절대로 일란성 쌍둥이는 아니다. 누구는 키가 크고, 누구는 얼굴이 길다. 누구는 벌써 옹알이를 하고 있는가 하면 누구는 발만 꼼지락거린다. 비슷비슷한 8명, 혹은 10명의 쌍둥이를 낳은 엄마는 누구에게는 파란 옷을 입히고 누구에게는 머리핀을 꽂아서 구별을 해 주어야겠지만 이 쌍둥이들은 그렇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누구는 웃고 있고, 누구는 울고 있는, 개성 강한 쌍둥이들이다.
흥부네 집 자식들처럼 못 먹고 못 입고 있지만 그래도 심성 고와 보이는 쌍둥이들을 만난 기분이다. 지금은 흥부네 자식이지만 언젠가는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로 부잣집 도련님, 아가씨로 변신할 꿈을 간직하고 있는 쌍둥이들. 다음에는 더 고운 옷을 입은 모습으로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