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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진이다 - 김홍희의 사진 노트
김홍희 글.사진 / 다빈치 / 2005년 1월
평점 :
절판
‘길치’처럼 ‘기계치’라는 말이 있다. 기계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인데 나 역시 이것에 해당됐다. 그런 까닭에 집 구석구석에 기계들이 널려있어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 중에는 하나의 장면을 영원히 보존할 수 있는 매력적인 수동 카메라도 있었다. 하지만 기계치는 그것도 두려워했다. 그것 역시 기계이기에 만지면 오슬오슬 소름이 돋는 것만 같기에 그랬다.
그렇게 지내던 중에 시간이 흐르고 흘러 21세기가 됐는데 그때부터 세상에서는 필름 카메라 대신 디카(디지털 카메라)가 대세인양 등장하기 시작했다. 친구들과의 가벼운 술자리에서도, 동창회에서도 디카를 보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핸드폰처럼 디카도 진정으로 21세기형 인간의 필수품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큰마음 먹고 디카를 마련했다. 작동방법이 너무나 단순한 것이 매력인 디카, 그것을 소유하는 것으로 나는 마침내 기계치에서 탈출할 수 있다고 여겼다. 또한 ‘나도 사진을 찍는다’는 기쁨을 만끽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기분은 일주일을 넘지 못했다. 기계치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기회는 얻었건만 기쁨이 금세 사그라졌다. 사진을 찍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으면 친구들이 서로의 것을 평가해주곤 하는데 나는 그것조차 해보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나조차도 내 사진이 만족스럽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정말 그랬다. 인터넷에서 본 그 아름답고, 황홀한 장면들은 내 사진에서 눈꼽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부터 사진이 미워졌다. 사진을 찍는 것이 매력적이라고 여겼지만 결국 디카를 친구에게 건네주고 말았다. 그리곤 사진을 찍지 않았다.
그로부터 2년이 흘러 우연히 김홍희의 <나는 사진이다>를 만나게 됐다. 우연히라도 이 사람을 만난 건 무슨 의미일까? 아마도 사진의 매력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게다. 또한 일종의 대리만족이라도 느껴보고자 하는 심정이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사진이다>는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 아니었다. 회한이랄까? 왜 디카를 친구에게 건네줬는지 후회스러운 감정이 들게 만들었다. 다시 사진을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사진이란 무엇인가?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김홍희도 그것을 모른단다. 그것을 알면 끝이란다. 그래서 사진을 찍는단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사진이란 사진을 찍는 사람의 ‘모든 것’을 담아낸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으며 난 내가 찍었던 사진들을 떠올려봤다. 난 사진들을 미워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그것들을 미워했다. 하지만 김홍희의 말대로라면 난 나를 미워한 것이었다. 그 대목에서 천천히 생각해봤다. 정말 그것이 사실인가? 반박할 수는 없을 것일까?
반박, 그것은 불가능했다. 사진을 찍는 순간부터 난 소위 ‘대가’들의 수준을 탐냈다.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세상살이에 그런 일이 일어날 리는 만무하다. 물론 난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사진만큼은 예외로 생각했던 것이다. 찍기 쉬워졌다는 이유로 어마어마한 착각을 했던 게다.
사진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글을 쓰듯 연습하고 또 연습해야 하는 것이었다. 또한 친구를 사귀듯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하는 것이었다. 또한 회화를 보듯 공부하고 또 공부해야 하는 것이었다. 사진도 예외는 아니었건만, 우습게도 단번에 경지를 꿈꿨다가 홀로 실망했던 것이다.
내가 찍었던 사진들을 가물가물한 기억에서 찾아본다. 평범하다. 화려하지 않다. 못난이들이다. 하지만 김홍희의 말처럼 그것들이 모두 나의 것이자 내 일부임을 생각해본다. 그래서 미움을 버리기로 했다. 쉽지 않지만 사랑하기로 했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인간이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 안에는 추한 모습까지도 포함돼 있다. 그래서 그 못난이 사진들도 사랑하기로 했다. 그러면 다시 당당하고 즐겁게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지만 생각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리라. 김홍희의 말처럼 계속 찍고 찍어봐야 한다. 생각만 해봤자 죽도 밥도 안 된다. 일단 찍어봐야 한다. 그래, 그 말도 맞다. 디카를 구해야겠다. 내 사진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