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역사를 만나다 - 세계사에서 포착한 철학의 명장면
안광복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철학은 모든 학문의 기본이 된다는 말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게다. 철학의 중요성은 누누이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한번 물어보자. 철학은 어떻게 배워야 하는가? 대학의 철학과를 가야만 배울 수 있다면 대중이 철학을 배울 수 있는 길은 원천봉쇄되는 것과 같다. 그러면 어떻게 배워야 하는가?

안광복의 <철학, 역사를 만나다>는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된다. 안광복의 것에서 찾을 수 있는 답은 무엇인가. 철학은 난해하다고 여겨진다. 또한 철학의 영역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여겨진다. 철학이 모든 학문의 기본이라면 그것은 인간의 행보와 함께 한 것으로 여겨져야 하건만 철학은 ‘철학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안광복은 그것을 깨기 위해 역사를 동원했다. 세계사의 장면에서 철학을 끄집어내는 것과 동시에 철학의 높은 벽을 허물었다.

이 말에 혹여 <철학, 역사를 만나다>를 상투적으로 등장하는, 철학자들의 연대기를 다룬 것이 아니냐고 의심할 수도 있겠다. 아니다. 질이 다르다. 또한 몰아붙이는 힘도 다르고 주는 재미도 다르다. 철학입문서라고 하기에는 깊이가 부족하다 하겠지만 철학이 인간의 역사와 어떻게 걸음을 맞추었는지를 맛보게 해줄 뿐만 아니라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지식을 넘어 장구한 역사를 맛보는 즐거움까지 보장한다. 그러니 어찌 지루하고도 고루한 백과사전식 철학소개서들과 같은 선상에 놓을 수 있겠는가.

구체적으로 책 속 장면을 들여다보자. 스토아철학, 노자, 십자군 전쟁, 주자학, 프랑스 혁명 등 총 16장면으로 구성된 <철학, 역사를 만나다>의 첫 장면은 ‘플라톤의 이상국가’가 맡았다. 플라톤의 이상국가가 등장하는 시대는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고대 그리스의 양대 산맥을 이루던 시기다. 이 사실은 익히 알려진 것이다. 그런데 <철학, 역사를 만나다>는 다소 생뚱맞은 이야기를 꺼낸다. 플라톤의 이상 국가가 스파르타와 흡사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소크라테스를 스파르타 팬클럽의 회장에 비유하고 스파르타를 ‘민주주의의 백신’이라 말하니 엉뚱함을 넘어 생뚱맞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다. 아테네는 민주주의의 꽃인 반면 스파르타는 ‘스파르타식’으로 불리는 강압적인 사회로 익히 알려졌지만 실상은 좀 달랐던 것이다. 플라톤은 왜 스파르타와 같은 사회를 원했을까? 플라톤의 스승 소크라테스는 엉뚱한 모함으로 죽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그것을 가능케 한 이유 중 하나가 아테네의 사회 구조였다.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민주주의라고 알려졌지만 그 민주주의는 제대로 빛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연설을 출세의 도구로 삼아 말만 잘하면 성공하는 사회, 그것이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아테네의 다른 모습이었던 것이다. 플라톤은 그 사회에 실망했다. 때문에 이상국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려질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이 아테네와 겨루고 있던 스파르타와 비슷했던 것이다. 장면이 핵심에 다다를 때, <철학, 역사를 만나다>의 생뚱맞아 보이는 문제 제기는 진지해진다. 전후사정을 무시한 채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지식의 위험함을 지적해주기 때문이다.

한 장면을 더 엿보도록 하자. 일곱 번째 장면인 십자군 역시 단편적인 지식의 위험을 알려준다. 먼저 십자군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성지 회복’을 위한, 종교적인 무장 세력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참일까? <철학, 역사를 만나다>에서는 십자군이 ‘무지’했다고 알려준다. 얼마나 무지했는가 하면 병사들이 마을에 도착해서 “여기가 예루살렘이냐?”라고 묻기도 하고, 아군을 공격하기도 했을 정도란다. 게다가 어찌나 병폐를 끼치는지 무슬림보다 기독교들이 먼저 그들을 두려워했을 정도라고. 이런 병사들이 과연 종교적 대의를 위해 움직인 이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철학, 역사를 만나다>는 분명하게 답을 내린다. 종교가 아니라 정치적인 이해를 위해서였다고 말이다. 영토 전쟁이나 권력 다툼을 위한 그럴 듯한 핑계가 필요했을 뿐이지, 실상 종교적 대의는 큰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이러한 지적은 상당히 ‘깨는’ 것들이다. 십자군하면 얼마나 거룩해 보이던가. 어떤 나라는 침공할 때 스스로를 십자군 운운할 정도다. 그런데 알고 보면 십자군이란 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것인가. 단편적인 지식을, 아니 단편적인 지식만을 알려주던 사회를 탓하게 될 수밖에 없다.

<철학, 역사를 만나다>의 장면들을 접할 때마다 의아심이 든다. 알고 있던 지식들, 특히 교과서에서 접한 것과 상당히 맥이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이유는 뭘까? 이 대목에서 <철학, 역사를 만나다>가 빛을 발하는데 그것은 사건을 지배하는 세상의 철학을 기본 바탕으로 풀어냈기 때문이다.

그런 탓에 스파르타도 다르고 여겨지고, 십자군도 다르게 여겨진다. 히틀러가 니체를 좋아한 이유를 알 수 있게 되고, 공리주의가 어떻게 자본주의에 날개를 날아 줬는지도 알게 된다. 더군다나 이 과정은 결코 어렵지 않다. 세상 상식 이야기하는 수준이라고 할까. 때문에 사전 지식이 없더라도 막힘없이 읽을 수 있다.

<철학, 역사를 만나다>는 본격적인 철학서도, 개괄적인 철학입문서도 아니다. 때문에 그 분야의 깊이만큼은 얕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 역사의 장면을 통해 철학이 어떻게 탄생하고 어떻게 쓰였는지를 알려주고 철학이 ‘철학만의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철학, 역사를 만나다>는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그러니 어찌 뻔한 책들과 동일선상에 놓고 보겠는가. <철학, 역사를 만나다>, 유쾌하고도 특별한 시간을 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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