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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책 - 제3회 푸른문학상 수상작 ㅣ 푸른도서관 12
강미 지음 / 푸른책들 / 2005년 12월
평점 :
성장소설은 친구이자 스승이다. 차가운 마음을 보듬어주니 친구가 되고 주어진 것을 뛰어넘는 내면의 힘을 이끌어주니 스승이 된다. 그렇기에 성장소설은 언제나 반갑다. 특히나 현실의 색을 생생하게 담아낸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 면에서 강미의 <길 위의 책>은 반가운 성장소설이다. 여고생들의 일상 위에 도서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성장소설들의 아름다운 장면들을 덧칠한 <길 위의 책>은 부담 없이 어울릴 수 있으면서도 만남이 헛되지 않도록 만드는 가르침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길 위의 책>의 주인공 이름은 필남. 여고생으로 상당히 소극적인 성격을 지녔다. 집에서나 학교에서도 주위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리지 못한다. 성격에는 환경적인 이유가 크다. 필남에게는 집안 환경이 그 이유가 된다. 필남의 집안은 재혼으로 인해 가계도가 복잡하다. 친형제와 이복형제까지 다사다난한 환경을 두루 갖추고 있다.
게다가 필남이 창피하게 여기는 것처럼 집이 식당을 한다. 부모님이 하는 것인데 식당일이 워낙에 거칠다보니 필남의 어머니는 필남에게 자랑스러운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필남은 집 밖을 맴돌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집 밖에서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다. 붙임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성격이 쾌활한 것도 아니니 쉬는 시간에도 혼자 돌아다니는, 이른바 ‘왕따’다.
다만 그 ‘왕따’를 당하는 정도가 심각한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필남이 그것을 불편해하지지 않기에 별다른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필남이 좋아하는, 책을 보거나 꽃을 구경하는 데는 혼자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친해지는 것은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니 필남은 오히려 혼자가 낫다는 생각까지 한다. 결국 필남이라는 여고생은 교실에서 있건 없건 간에 별로 티가 나지 않는, 아웃사이더인 셈이다.
하지만 삶은 언제나 변할 가능성을 무궁무진하게 열어놓기 마련이다. 필남의 삶도 그렇다. 필남에게 그것은 무엇인가? 책이다. 필남은 선생님 도움으로 어렵사리 학교 도서반 모임에 들어간 상태로 새 학년이 되고 새로운 도서 목록을 얻게 되는데 그 내용은 성장소설이 된다. 필남은 물론이고 도서반 학생들 모두 한 해 동안 성장소설을 가슴에 끼고 살아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길 위의 책>을 말하면서 밝혔듯이, 성장소설은 친구이자 스승이 된다. 도서반 학생들이 만나는 성장소설들도 그렇다. <외딴방>, <호밀밭의 파수꾼>,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데미안> 등이 친구가 되어 그들을 엮어줄 기회를 마련하고 스승이 되어 그들에게 우정이 무엇이고 앞으로 나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우쳐 주는 기회를 마련해준다. 물론 소극적인 성격의 필남도 여기에서 예외는 아니다.
필남과 같은 공간에 있던 여고생들은 어떻게 변할까? 서로에게 익숙하지 않던 때에, 서로에 대한 오해, 서로에 대한 질투로 적대심과 미움이 불꽃처럼 타오른다. 욕하고 화를 내고 싫증낸다. 여고생들은 도망치려 한다. 삐끗하는 걸 감당하지 못한다. 하지만 책으로 만들어진 인연은 그들 사이에 존재하던 미움을 봄눈 녹듯 서서히 지워나가고 새싹이 돋듯 서로에 대한 정을 키워가게 된다.
<길 위의 책>에서 친구의 모습을 찾자면 역시 여고생들의 변하는 모습을 보는 것일 게다. 작은 모임에서 지지고 볶는 그 모습들을 보는 것은 아기자기한 맛이 있으면서도 생각 이상으로 굴곡 짙은 감정을 경험케 한다. 더욱이 현실과 동떨어진 생활을 묘사해 생생함을 얻는데 실패하는 성장소설들이 많은데 비하면 여고생들의 삶과 고민을 설득력있게 그린 지은이의 솜씨는 확실히 눈에 띈다.
그렇다면 스승의 모습은 무엇일까? 필남이 성장소설을 보며 감정을 만들고, 그것에서 다시 자신의 내면을 변화시켜가는 모습이 그것일 게다. 지은이는 필남의 고민을 유명한 성장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내면과 서로 엮어가며 풀어내는 시도를 했고 적절하게 그것을 소화해냈다. 덕분에 필남의 내면이 변하는 모습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머무르지 않고 확실한 공감대를 얻어낼 수 있게 됐다. 더욱이 주인공과 책 속의 인물을 엮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지고 있으니 어렵지 않게 책 내용 그대로에 빠져들 수 있다.
필남은 책 덕분에 개인에서 벗어나 세상과 소통할 여지를 마련했다. 그것은 독서의 힘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데 <길 위의 책>도 소극적인 누군가를 필남처럼 변화시킬 가능성을 담고 있다. 삶은 언제나 변할 가능성을 무궁무진하게 열어놓기 마련이다. <길 위의 책>을 만나는 것도 그 가능성의 하나라고 표현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아니다. 비약은커녕 적절하다고 말하고 싶다. 이만큼 유쾌한 친구이자 마음 좋은 스승이 되어주는 책을 자주 보기는 어려울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