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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기생뎐
이현수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9월
평점 :
이현수의 <신기생뎐>이 찾은 곳의 이름은 부용각. 이곳은 기생집이다. 황진이가 살던 시절의 기생집일까? 아니다. ‘오늘날’의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기생집이다. ‘기생’이라는 단어가 새삼스러운 오늘이다. 지은이도 필히 그것을 알터이다. 그럼에도 지은이는 굳이 현대 속에서 기생의 뒤를 쫓았고 부용각에서 눌러앉아버렸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기에 그리한 것인가.
부용각을 보자. 고고한 자태가 흐른다. 자부심이 담 벽으로 넘쳐날 만큼 부용각 안을 넘실거린다. 그 가운데 오마담이 있다. 오마담, 그녀는 부용각의 대표 기녀로 소리의 대가다. 전국에서 한 소리 한다는 사람들도 그녀의 소리 앞에서는 껌뻑 죽는 시늉을 할 정도다. 그러나 나이 앞에 기생이라고 장사 있겠는가. 할머니라고 불리어도 어색하지 않을 그 나이에 이른 지금, 술과 남자 때문에 곯은 그녀의 몸은 소리를 내지 못한다. 이제 그녀의 소리가 예전 같지 않다.
오마담 옆에는 타박네가 있다. 늙어서도 부티가 흐르는 오마담에 비한다면 타박네는 속된 말로 ‘빈티’가 흘러넘친다. 누구라도 기생집 안에서 비쩍 마르고 작은 그녀를 본다면 자연스럽게 부엌데기를 연상하리라. 그 연상은 틀린 것이 아니다. 다만 오마담이 소리에서 그렇듯, 타박네의 음식솜씨 또한 천하일품이다.
음식만 훌륭한가. 사람 다루는 솜씨도 제법이다. 오마담이 남자의 사랑에 속절없이 무너져 모든 것을 빼앗기고 있음에도 부용각이 버틸 수 있는 건 타박네 덕분이다. 그러니 남자들아, 타박네 보기를 우습게보면 아니 된다. 소리는커녕 아름다운 목소리도 없고 입에서 나오는 건 욕뿐이라고 하지만 그녀는 엄연히 부용각이 이름을 얻는데 일등공신이니까.
타박네 옆에는 미스 민이 보인다. 오마담에 이어 부용각의 대표 기녀가 되는 여인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집사라고 할 만한 박기사가 보인다. 오마담에 대한 일편단심으로 부용각에 찾아왔고 주저앉아 버린 인물이다. 뒤로는 웬 살쾡이 눈을 한 제비가 보인다. 김사장이다. 부용각을 한 입에 삼켜버리려고 마음 착하고 사랑 주는데 인색치 않은 오마담을 구슬리고 있다. 또한 기녀들이 보이고 멀찍이서 테크놀로지 세상을 벗어나 부용각의 문을 열고 싶어 안달하는 현대인들이 보인다. 그대들아, 서두르지 마시오. 부용각은 언제나 여기 있나니.
부용각, 그곳에는 고귀함이 흐른다. 기생집에 고귀함이 웬 말이냐고 타박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허나 이름만 갖고 어찌 판단할까. 도마뱀 꼬리 자르고 도망가듯 어제의 것을 잊고 오늘과 내일의 것을 잡고자 애걸복걸하는 사람들이 북적 북적거릴 때 어제는 물론이요, 오래 전의 것들까지 가슴 속에 담아두려 하는 이들이야말로 고귀하다 할 수 있다. 사랑받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는 사랑을 주고, 사랑 주고 싶어 하는 이들로부터 사랑 받아주니 어찌 아름답지 않을까.
그러나 부용각을 쫓는 이현수의 눈길은 애처롭다.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기 때문일 테다. 노래방 반주와 소리가 한 곳에서 나오니 어찌 애처롭지 않을까? 그 속에서도 지키겠다고 입을 꽉 깨무는, 마지막 기생일지 모르는 미스 민이 있고, 미스 민을 측은하게 바라보는 오마담이 있으니 애처롭지 않을 수가 없다.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묻기에 “기생”이라고 말하면 입을 다물 줄 모르고 황당한 눈빛을 취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니 애처로울 수가 없을 테지.
그렇다면 이현수는 그 애처로움을 담아내고 싶었던 것일까? 오늘날에 기생은 어떠할지를 말하고 싶었던 것인가. 그것 때문에 부용각에 눌러앉아 버린 것인가. 그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웬 뚱딴지같은 말이냐고 하겠지만 그것이 사실이다. 이현수는 기생의 삶, 그것을 말하려는 게다. 그것을 보여주려는 게다. 기왕지사 애처롭게 보여주겠다면 눈물 콧물 쥐어짜는 슬픈 기생 이야기 많을 테지만, 이현수는 선을 넘지 않는다.
애처로움도 있지만 천년을 버틸 것 같은 부용각의 빼어난 마루처럼 영원할 것이라 약속하는 것 같은 부용각의 자부심도 있다. 자신감도 있다. 우직한 면모도 있고 되레 촉촉이 젖은 눈가로 쳐다보던 이들에게 찬물 한바가지 던지는 용맹한 타박도 있다. 이것을 어찌 하나로 말할까? 그러니 그저 <신기생뎐>은 기생의 것, 기생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려고 한다고 밖에 달리 할 말을 찾을 수가 없다.
의도가 보이지 않기 때문일까. 기생을 말하던 책 중에서 기생의 면모를 보여주는데 <신기생뎐>은 단연 으뜸이다. 단어 하나하나 공 들인 기색이 역력하고 그들의 속내까지 들으려고 노력한 지은이의 노력덕분에 기생의 한숨과 눈물은 물론이요 사랑과 우정까지 내 것 인양 맛보게 해준다.
어쩌면 그리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부용각을 보는 동안은 그곳에서 기생이 되는 것 같다고. 지나친 과장처럼 들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시대를 거스른 이야기를 담아낸 <신기생뎐>은 그것을 가능케 한다. 믿지 못하겠다고? 부용각의 문을 열어라. 오늘날에 속에 기생집이 있듯, 그 안에 사람들이 살고, 그 중에 진짜 기생이 있듯이, <신기생뎐>에 그것이 있음을 알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