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호] [리뷰] 재주소년에게서는 ‘제주 내음’이 난다 (06.01.18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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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 재주소년에게서는 ‘제주 내음’이 난다.



예사롭지 않았던 첫 만남이 떠오른다.
2003년 ‘재주소년’이라는 이름이 적힌 음반을 처음 들었을 때, 묘한 설레임에 한동안 심장이 멈추지를 않았다. 소년의 음악이라서 그럴까? 내 안에 숨겨진 “소녀심”을 솟아오르게 했던 첫 만남이었다.

 

20살의 재주소년은 제주가 좋아, 제주로 학교를 간 독특한 사내들이다.
그리고 ‘제주도를 닮은 그들의 음악’은 일산의 자취방에서 홈 메이드로 소박하게 시작했다. 당시의 유행이나 시장성과는 거리가 있는(?) 포크느낌의 그들의 음악은 처음 걱정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였으리라. 하지만 대담하리만큼 자신감 넘치는 그들의 음악은 결국 많은 ‘소녀심’을 휘어잡았다.

“한국 인디계의 아이돌” 이라는 특별한 애칭이 그들의 음악의 저력을 보여주는 대표 수식어가 될 정도로 말이다.

 

그들의 등장 이후, 벌써 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이제 그들은 소년이란 말보다 청년이라는 말이 자연스러울 나이이지만 또 한번 “소년, 소녀를 만나다 Part2”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무대가 마련되었다.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그들은 여전히 여드름 자국이 채 가시지 않은 소년이고 관객석을 가득 채운 소녀와 만나는 ‘설레는’ 공연을 만들어 주는 것을.
조금 달라진 점이라면 이제는 그들만의 농담과 재치로 관객들을 능숙하게 이끄는 자연스러움을 지니게 되었다는 정도일 뿐.

 

갈대가 바람에 흩날리고, 나뭇가지로 햇살이 살며시 비치는 공원으로 두 소년이 기타를 메고 성큼 걸어 나온다.
무대도 그렇고, 조명도 그렇고, 음향까지도 두 소년만을 위해 준비된, 아니 소년이 소녀를 만나기 위해 준비된 맞춤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주 잘 어울리는 그 공원에서 소년들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1부의 테마는 겨울이다.
한 겨울의 귓불을 간질이는 햇살 같은 따뜻함으로, 온통 하얗게 세상을 채우는 눈꽃의 포근함으로, 소곤소곤 귀에다 대고 속삭이는 듯한 그들의 편안한 음악이 공연장을 가득 메운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그들의 매력이 이어진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어색한 멘트, 그러면서도 “매끄럽죠?” 하는 순진무구함을 가장한 뻔뻔함. 기자는 ‘피식’ 웃음이 나왔지만 소년들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원래 무대에서는 주로 경환이 멘트를 이어가는데, “경환이는 목을 아껴야 하니까, 오늘은 제가 진행을 하겠습니다.” 하며 상봉이 나선다. 예상외의 선전이다. 20분이상의 멘트도 아주(?) 매끄럽게 흘러갔으니, 재치와 유머러스함을 검증 받았다고나 할까? 솔직하게 말하면 그들의 음악만큼이나 매력적인 그들만의 대화방식엔, 의도 하지 않지만 숨을 죽이고 귀 기울이게 되는 마법이 숨겨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것 또한 음악 못지않은 그들의 재주가 아닐까 싶다.

 

2부는 희망이다.
소년들이 아리따운 여성 3인조 밴드를 만났으니 자연스럽게 신나고 밝고 경쾌한 무대가 이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게다가, 델리스파이스의 윤준호의 톱 연주가 묘한 분위기를 이끌어 낸 ‘루시아나’나, 이소은과 함께 한 무대, 델리스파이스 김민규와 함께 부른 ‘섬’도 다양하고 풍성한 희망을 심어 주었다.
유난히 소년을 만나러온 게스트들이 풍성했던 무대였는데, 재주소년의 무대에 걸맞게 모두 편안한 차림이었다. 예솔이로 더욱 유명한 이자람, 그리고 오랜만에 솔로앨범으로 한창 활동 중인 이한철이 통기타 하나로 무대를 채웠다. 그들도 그 무대에서는 소년이 되고, 소녀가 되어 편안하고 따스한 희망을 전해 주었다.

 



 

무엇보다도 앵콜 무대에서 확실하게 변신한 재주 소년의 모습이 압권이었다.
“저희 공연은, 1부와 2부 그리고 앵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라고 강조할 때부터 심상치 않았지만, 완벽(?)을 추구하는 그들의 노력에 절로 탄성이 새어 나오는 무대였다. 귤의 트롯버전 ‘굴’을 비롯해서, 나훈아 작사 작곡의 ‘땡벌’ 도 최고였지만, 역시나 압권은 비의 ‘태양을 피하는 방법’이었다. “재주소년 맞아?” 라고 할 정도로 모두들 입을 다물지 못하는 변신이었다.


경환이 조용히 쪼그려 앉아서 안경을 벗더니, 비의 보잉선글라스를 끼고 ‘음악 큐!’를 외친다. 꽤 자신감 있는 손놀림으로 하늘을 찌르지만, 관객들의 애써 웃음을 삼키며 그의 무대를 즐겨야만 했다. 게다가 갑자기 등장한 백 댄서의 허리를 잡고 능숙하게 돌리는 모습에서 이제 그들은 소년에서 청년으로 거듭난다. 하지만 그 무대 뒤에 수줍은 소년의 웃음이 빠지지 않는 다는 것, 소년들이 소녀들을 위해 노력하여 준비한 것이라는 것을 객석을 가득 매운 관객 모두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강남 한복판에서 만난 ‘제주’의 상큼한 내음.
한겨울에 만난 봄 볕 같은 따스함.
소년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소녀는 한없이 행복했다.
그리고 앞으로 또 3년, 아니 30년이 지나도 영원히 제주의 내음이 물씬 풍기는 소년을 만나러 다시 이곳을 찾겠다고 마음먹게 되는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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