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 - 컬러판
생떽쥐베리 / 문예출판사 / 199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초등학교 5학년때까지 살던 집은 양쪽이 대칭구조를 이룬집이였다. 부엌이 있고 마루 딸린 방이 있고 사이에 광이 있고, 그리고 마루 딸린 방이 있고 부엌이 있고. 연탄보일러였는데 연탄 많이 들어간다고 겨울에는 오른쪽 방만 난방을 해서 봄, 여름은 왼쪽 방이 언니와 나 그리고 오빠 이렇게 삼남매의 방이되지만 늦가을부터 겨울이 되면 다섯 식구가 오른쪽 방 한칸에서 옹기종기 살았다. 방과 방사이의 광에는 정말 많은 것들이 있었다. 입지않는 옷, 농사지어서 가져다 놓은 쌀, 이런 저런 농산물들... 그리고 간간히 보이는 책들.. 그 책들 사이에서 어린 왕자라는 책을 발견했다. 책이라고 해봤자 책장사 아저씨의 말빨에 넘어가 사놓은 학생대백과 사전과 계몽사에서 나온 세계명작동화가 다 였기에 저렇게 이쁜표지에 귀여운 그림이 있는 책은 너무나 반가웠다. 그런데 책장을 펼치고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책장을 덮었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건지 알수가 없었다. 내게 어린왕자는 가장 어려운 책중에 하나가 되었다.

중학교때 참 친하게 지내고 싶은 친구가 있었다. 아니 실제로 친하게 지냈는지도 모른다. 음..뭐랄까 뭔가 해결되지 못한 짐으로 남은 친구가 있다. 동성애(?)까지는 아니였어도 웬지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말한마디 걸기가 힘들었고, 똑같은 선물을 받아도 그친구가 주면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그 친구도 나도 그냥 편안하게 대했으면 좋았을껄 뭐가  그리 걸리는것이 많았던지.. 나중에 어른이 되어 그 친구에게 받은 편지속에는 어릴적 나를 많이 닮고 싶어했다는 글이 들어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오바를 떨었던것 같다. ^^;; 그 친구는 지금 초등학교 선생님이고 결혼해서 임신중이라고 했다. 선 머슴아 같아서 시집이나 갈까..했는데 신기하다 여튼..그 친구는 중학교때 어린왕자를 읽고 울었다고 했다. 그래서 아마 내가 이 친구를 더 멀리했는지모르겠다. 나는 이해하기도 힘든 책을 읽고 감동을 먹다니... (내가 쫌..나보다 잘난 사람을 싫어하는 경향이 좀 있었지..^^;;) 그래서 다시 집어 들었다. 이제 내용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데 눈물 흘릴만한 대목은 잘 모르겠더군 억지로 울어볼려고 했는데 영 눈물이 안나오데. 그렇게 나의 어린시절의 어린왕자는 결코 친구가 되어주지 못했다.

스물아홉이 되었다. 막 서른을 앞두고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서른 쯤 되면 뭐가 되도 되있을줄 알았고 돈도 좀 어느정도 벌어서 안정적인 경제력을 갖게 될줄 알았다. 그러나 스물아홉의 나나 예전 열아홉의 나나 별반 다를게 없었다. 그래서 멋진 서른 만들기 위안으로 책을 읽기로 했다. 어릴적 못읽었던 책! 그런 책들을 위주로 읽기로 했다. 나도 감동먹고 눈물도 흘리고 싶은데 그렇게 안되었던 책 어린왕자를 제일 먼저 꺼내 들었다. 어린왕자 눈에 비친 어른들의 세계가 얼마나 어리석은지 보이기 시작했다. 어린 왕자에게 길들여짐을 가르치는 여우가 보였고 이 세상에 하나뿐인 어린왕자의 장미가 보였다. 힘겹고  지친 어린왕자가 보였고 어린왕자와 함께 사라진 불빛이 보였다. 그리고..엉엉 울고 있었다. 이제 울고 싶어서  우는것이 아니라 눈물이 나서 우는것이 되었다. 오래도록 마음을 굳게 닫고 살아온 강퍅한 나의 마음에 한줄기 눈물이 쏴..하게 내리면서 꽃씨를 뿌려주는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꽃씨가 내눈물을 먹고 아름답게 자라나는것 같았다.

어릴때 그렇게 안읽히던 책중 하나인 만화책 [17세의 나레이션]을 두번째로 읽었다. 마지막에 주인공이 연극을 하는데 연극제목이 [어린왕자]였다. 또 눈물이 나더라. 17세의 소녀 주인공이 이 연극에서 맡은 역할은 [여우] 였는데 어린왕자가 떠날것을 알면서도 길들여지기를 바라는 여우를 불쌍한 시선으로 보더군, 그리고 길들여짐으로써 다가오는 행복이 너무 짧다고 17세는 말하고 있었다. 연극이 끝나고 한층 성숙해진 17세는 이제 10년 후를 생각한다. 10년후에도 우리는 함께 할까? 10년후에도 저 사람이 내 곁에 있을까.. 그러나 정말 중요한건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이순간 이겠지.

다들 하는 말이지만 나도 말하고 싶다. 이해하기 힘들어도 어릴때 읽고 또 시간이 날때마다 읽으라고. 그때 그때 내 마음에 와닿는 것이 너무나 다른 책이니까. 그리고 언젠가는 어린왕자가 내 안에 작은 꽃을 튀우게 해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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