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은 고통에는 불행해하지 않았고 이제는 사춘기가 되었으니 만큼 오직 '절대고독' 과 '영혼의 오손'과 '치희의 상흔'과 '세련된 태타' 따위로만 고민할 뿐이였다. 싸르트르와 칼 힐티와 토머스 울프를 억지로 읽으며 박계형보다 재미없다는 불온한 생각이 순간적으로 스치는 바람에 소스라쳐 놀라곤 했던 그 시절의 나는 용돈을 쪼개 정음사와 을유문고의 전집을 할부로 들여놓는 일로 써 인생을 이미 지적인 일에 투자하여 살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꼈다. 당연히 그런 나를 웃기게 생각하거나 역겨워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지금이라면 나도 마땅히 나 같은 애를 역겨워할 것이다. 그러나 그때 나는 그런 친구들을 의식할 때마다 우수어린 표정으로 먼산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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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린시절을 되돌아 보건데 참으로 보여지는것에 집착하며 살았다. 엄마 아부지가 이혼을 하시고 할머니가 대신 우리 살림을 돌봐주러 오기까지 약 2주간의 텀이 있었다. 그때 나는 혼자서 소녀가장 흉내를 내고 있었다. 바닥 한쪽이 찌그러져 있던 스뎅 밥그릇들을 한쪽으로 치우고 짝이 하나도 맛지 않는 사기그릇을 내놓았다. 학교에 다녀오면서는 콩나물이랑 두부를 사면서 살림하는 사람 티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머지 않아 할머니가 살림을 해주러 오셨고 짝이 맞지 않는 사기 그릇들은 다시 한쪽으로 치워졌고 스뎅 밥그릇과 국그릇이 다시 등장했다.
중3시절 고전문학을 닥치는대로 읽었다. 그래서 지금 내 머리속에는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는게 테스인가 데미안인가 할정도로 정리가 안되고 있다. 보여지기 위해 읽었다. 나는 이런거 읽는데 너희는 아직도 하이틴로맨스따위나 읽는게냐!! 하고 말이다. 그당시 나를 고까운 눈으로 봤던 그 아이들은 지금 뭐하면서 살려나..
고3 시절 언니의 책장에서 책을 하나씩 꺼내 읽었다.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면서 읽어댔다. 대학에 와서는 독서토론회에 들어서 말도 안되는 언변들을 늘어놓았다 그럴때마다 회장선배는 독특한 시선이라며 아무말도 못하고 앉어있는 다른 신입생들에 비해 나를 똑똑하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그들에 비해 내 성적은 바닥을 기었고 독서토론 몇회만에 나의 밑천이 모두 드러났다. 난 결국 그 토론회를 나와서 유네스코 학생회에 들어갔다. 거기서도 1년 정도는 내 말빨이 먹혔는데 뭐..그것도 딱 1년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