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에 즐겨 듣던 라디오 프로인 김C스타일에서 베르메르의 작품 [빨간모자를 쓴 여인(13번 그림)]으로 트레이시 슈발리에가 쓴 진주귀고리 소녀처럼 짧은 글을 한번 써보는건 어떨까요! 라고 하길래 베르메르를 사랑하는 입장에서 또 진주귀고리를 너무 재미있게 읽은 입장에서 가만히 있을수 없어서 한번 끄적거려봤었다.
그 당시에 다녀왔던 전시회 밀레와 바르비종파 에 나오는 작품들과 작가들을 인용해서 한번 만들어보았다. 만들면서 참 재미있고 즐거웠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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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짓기 <빨간모자를 쓴 여인>
나는 1년전부터 시골의 한 조용한 술집을 경영하고 있다. 저녁 7시경이 되면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손님이 많지는 않지만 벌써 단골이 형성되었다. 목장을 경영하는 브라(하)스까사씨는 얼마전 아내를 잃고 혼자가 된 40대 후반의 남자이다. 자녀가 없는 탓에 더 금술이 좋았던 그는 아내와 함께 식사를 했던 시간인 7시면 어김없이 이곳에 와 술을 마신다. 혼자서 집에 있는 것이 끔직하게 느껴지나 보다.
양을 치는 자끄씨는 이틀에 한번 꼴로 우리 가게를 찾는다. 늘 아내와 동반한다. 전형적인 농가여인인 자끄씨의 아내는 푸른색 스커트를 주로 입는다. 늘 깔끔하게 머리를 흰 두건으로 정리하고 맥주 몇 잔을 홀짝이곤 한다. 옆에서 보니 자끄시의 아내는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남편의 힘겨움을 술 한잔으로 풀어주려 못 마시는 술이지만 옆에서 함께 해주는 듯하다.
화가인 줄리앙 뒤프레씨도 자주 우리 술집을 찾는다. 그는 늘 자끄씨 부부의 모습을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곤 했는데 어느날 자끄씨 아내에게 그림 한 점을 선물했다고 한다. 늘 입는 푸른 스커트와 흰 두건을 두른 그녀에게 빨간 두건을 두른 모습을 그려서 말이다. 자끄씨 부부는 웬지 이 빨간색 두건이 맘에 들지 않는 듯 흰 두건이 아니라 왜 빨간색 두건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뒤프레씨는 이에 흔쾌한 대답 대신에 부인의
마음을 한번 들여다 보세요! 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날 이후 이 부부는 더 가까워졌고 얼마 되지 않아 자끄씨 아내는 임신을 하였고 예쁜 딸아이를 낳았다고 한다. 부인의 내면에 무엇이 숨겨져 있었던 것일까!
얼마전부터 나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그녀가 문 닫을 시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간에 가게를 찾고 있다. 그녀는 늘 혼자였고 나는 그녀가 어디에 사는지, 이름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가게에 둘 만 남겨지기 때문에 "문 닫을 시간인데요" 이외의 대화를 나누기는 내가 너무 저급스런 놈이 되는 듯 해서 말을 붙여본적은 없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녀가 왔다. 그녀는 목이 깊게 패여진 다 헤어진 드레스를 입고 귀에는 녹이 슨 철제 귀고리를 차고 있었다. 무표정하게 술잔을 기울이던 그녀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내 마음에 자리를 잡고 있는 그녀이기에 마음이 아팠다. 급히 달려가 괜찮으시냐고 물었다. 그녀는 내 눈을 빤히 쳐다보고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두어번 끄덕이고 다시 술잔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리고 숨죽여 울고 있었다.
오늘은 문닫는 시간이 많이 늦여질 것 같다.
침묵속에 오랜 시간이 흘렀다. 어느새 창으로 푸른빛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내게 다가와 마신 술값을 정확히 계산하고 흐트러짐 없는 뒷모습을 보이며 가게를 나섰다.
아침 일찍 미술상 봉벵씨 댁에서 파티를 한다고 술을 주문해 왔다. 술통을 수레에 담아 봉벵씨 댁으로 갔다. 나는술통을 모두 깨뜨릴 뻔했다. 어젯밤 아니 오늘 새벽에 보았던 그녀가 우아한 모습으로 목을 온통 다 덮는 실크 블라우스에 환하게 빛나는 진주 귀고리를 하고는 계단을 천천히 내려오고 있는게 아닌가.
그는 봉벵씨를 여보! 라고 불렀고 나는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듯 하였다. 술통을 부엌에 내려놓고 그녀에게 정확한 술값을 받아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 나왔다.
며칠동안 가게문을 열지 않았다. 단골 손님들이 내 집을 찾아와 무슨 일이냐 많이 아픈거냐 라며 안부를 물어왔지만 나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며칠 뒤 뒤프레씨가 나를 찾았다.
그는 나에게 문닫을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우리 가게를 찾았던 그녀를 안다고 하였다. 나는 깜짝 놀랐랐. 내 속내를 모두 들킨 것 같아서 어떻게 처신해야할지를 몰랐다 뒤프레씨는 그간의 이야기를 나에게 해주었다.
그녀는 요즘 베르메르라는 화가에게 자신의 그림을 부탁했다고 한다. 그 베르메르는 뒤프레와 친구여서
봉벵씨의 아내를 모셔다 드리고 모시고 오는일을 뒤프레가 맡았다고 한다. 베르메르의 집을 지나 봉벵씨의 집으로 가는 도중에 나의 가게가 있고 언제나 밝게 일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그녀는 술 한잔하고 오겠다며 밖에서 기다려 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렇게 그림을 그리는 두달 동안 날마다 나의 가게를 찾은 그녀는 어느새 나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림이 막 끝나갈 무렵부터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고백을 하고 싶다고, 사랑한다고 딱 한번만 이라도 말하고 싶다고 뒤프레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그러나 뒤프레는 그냥 가슴에 묻어 두는 것이 지금 당신에게 더 아름다운 사랑으로 남을 수 있는 길입니다. 라고 말하였고 대신
그녀가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를 나에게 알려 주는 방법으로 파티를 열어 나에게 술을 주문하기로 한거라고 하였다.
그녀가 많이 울던 그 날 밤은 그림이 완성된 날이자 그녀가 영원히 이 사랑을 가슴에 묻기로 한 날인것이다. 좀더 일찍 알았더라면 손이라도 한번 잡아보고 나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고백했을텐데..
빈 술통을 찾으러 봉벵씨 댁을 찾았다. 집안으로 들어가는 현관 앞에 그녀의 그림이 걸려있었다. 술집에선 늘 깊게 패인 옷과 녹슨 철제 귀고리였는데 이 그림 속의 그녀는 술을 배달하러 왔을 때의 그때처럼 목까지 올라온 블라우스에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하얀 진주 귀고리를 차고 있었고 챙이 넓은 빨간 모자를 쓰고 있었다.
문득 뒤프레씨가 흰두건의 자끄 부인을 빨간 두건으로 둔갑 시켰던 그림이 생각났다. 그림속의 빨간 모자가 나를 향해 "사랑합니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빈 술통을 가지고 나오는 나의 발걸음은 다시 일어설 힘을 얻은 듯 밝고 경쾌해졌다.
"여보! 당신이 저렇게 빨간 모자가 있던가? 베르메르씨 댁에 있는 소품을 이용한건가?"
봉벵의 말이 들리는지 안들리는지 그녀는 창 밖으로 수레를 끌고 가는 한 청년을 바라보며 씨익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