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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목 ㅣ 박완서 소설전집 10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02년 7월
평점 :
품절
이 소설로 박완서님의 작품을 처음 접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혹시 박완서선생님이 박수근화백을 진짜 사랑했던건 아닐까? 하고 상상해볼것 같다. 나의 경우는 먼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읽고 그 다음에 그 남자네집을 읽고 그리고 근래에 나목을 읽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박완서 선생님의 첫 사랑은 웬지 그 남자네집의 그 사람 같아서 "와우! 박완서샘! 상상력이 정말 끝내주시는데~ "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목이 원래는 <신동아>지의 논픽션 모집에 응모하려고 구상했던것인데 실화보다는 약간 미화도 하고 살도 붙이는 등 자꾸 거짓말을 하고 싶어 소설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일까..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알 수가 없다. 뭐 소설을 읽는데 그것이 실화든 아니든 그게 그렇게 중요한건 아닌데 유달리 박완서 선생님의 소설에서는 선생님과 비슷한 연배의 여성이 주인공이여서인지 아님 세세한 감정묘사때문인지 실화라고 믿고 싶어진다.
주인공 이경은 미군부대 PX 화실부에서 경리를 보고 있는 스무살의 아가씨이다. 아버지와 오빠 둘을 전쟁통에 잃고 엄마와 둘이서 고가에서 살고 있다. 늘 흐리멍텅한 눈빛과 열의가 없는 삶을 사는 엄마와 함께 사는 이경은 지금의 삶이 늘 지루하고 못마땅하다. 그런 그녀에게 숨쉴 수 있는 구멍 같은 존재는 옥희도씨이다. 옥희도씨는 화실부에서 환쟁이 중에 한 사람이지만 사실 그는 그냥 환쟁이다. 돈을 벌기 위한 환쟁이가 아닌 그림을 위한 환쟁이인 것이다. (그냥 환쟁이라는 말을 하다보니 자전거 여행의 작가 김훈님이 했던 말이 생각 나는군. 내게 밥벌이가 되지 않는다면 난 글을 쓰지 않아 라고 했던..그렇담..김훈님은 아무리 멋진 글을 쓰셔도 그냥 글쟁이는 될수 없는건가...) 부인도 있고 아이도 있는 옥희도씨를 사랑하는 경, 그리고 경을 사랑하는 태수, 그리고 다시 경을 사랑하는 부인도 있고 아이도 있는 옥희도씨...
책을 읽으면서 옥희도씨는 중심을 지켜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냥 경이의 짝사랑이기를... 그래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랬다. 결론적으로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태수앞에서 자신이 왜 경이를 사랑했는지에 대해서 말하는 옥희도씨의 모습을 보면서 처음부터 경이를 사랑하지 않기를 바랬던 것이 바로 저런 모습이 싫어서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져보였다. 누추해보였다. 그냥 사랑하면 한것이지 절망적인 회색빛 생활에서 발견한 풍성한 색채의 신기루라니.. 짜증이 확 밀려왔다. 힘들어하는 경아를 태수앞에 덩그러니 두고 가면서 한다는 말이 떳떳하고 용감한 고아로서 모든것을 다시 시작해보라니.. 그래서 싫었다. 이럴꺼면 이렇게 혼자 두고 갈꺼면 혼자 사랑하도록 내버려두지 왜 서로 마주봤는가 였다. 이것이 소설이 아니라 실제 있는 일이라면 옥희도씨는 사랑하지 말았어야 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그녀가 남편보다 아이들 보다 여전히 그를 우선하며 사는 인생을 살아가게 할꺼 였으면 말이다.
소설은 참 좋았다. 재미있었고 흠 잡을것도 없다. 적당한 갈등도 그리 행복하지도 슬프지 않은 결말도 내가 딱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단지, 가정이 있는 사람의 외도에 너무나 민감한 나였기에 살짝 흥분을 하였을 뿐이다. 가족의 외도로 많이 힘들었던 시절을 보낸 나이기에 영화나 소설에서 아무리 멋들어지게 표현한다해도 외도는 늘 아픔이고 짜증이다. 이제 고쳐질때도 됐는데...
앞으로도 박완서 선생님의 소설은 계속 읽을 생각이다. 작은 꼬투리 하나를 이렇게 뻥튀기 시킬 수 있는 상상력이라면 웬지 믿음이 가기 때문이다. (진짜 사랑을했던거면어쩌나..^^;;) 옥희도씨와 있었던 일은 그냥 함께 일한 몇달이라고만 해두고 싶다. 그리고 나머지는 멋진 상상의 세계였다고, 너무나 가슴 아픈 경이의 첫 사랑은 그녀(박완서샘)의 창의력이라고 해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