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드무비 > [퍼온글] 詩와 알콜

 

여름 저녁

 

이승훈

 

글자 하나 남기지 않고

여름이 간다

술잔 들면 더 춥고

사는 건 하염없고

술마시는 일만 남았다

여름 저녁 술

흐린 저녁 술

이 저녁에 내가 늙는다

옷깃 펄럭이며

누가 지나간다.

 

한동안 시를 읽지 않았다.

물론 한 때는 내가 죽치고 있던 인터넷 카페에 날마다 시를 골라 올리던 시간도 있었다.그러다 난 시같은 걸 더이상 읽을 여유가 없다고 생각했고 어느 날인가 툭 실이 끊기듯 시를 읽지도 올리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제 이 시가 도착했고 (시가 도착하다니!)  난 이 시를 읽는데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리고 알아 버렸다.  그동안 내가 시를 읽지 않은 건 시를 읽을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시를 통해 위로받지 않아도 될 만큼 도리어 여유가 삶의 평안함이 그리고 자신감이 있어서 였다는 걸.

어제는 갑자기 만난 지 11년이나 된 남편사촌이 도쿄로 출장을 왔다며 집에 오기로 했고 난 그를 위해 근사한 저녁을 준비할 생각이었다. 우리 집에 가면 늘 근사한 식사를 대접받을 수 있다는 시댁에서의 내 명성에 걸맞게..

그런데 난 이 시를 읽고는 그냥 맥주 한 캔을 따 잔에도 따르지 않고 마시기 시작했다. 밖에는 하염없이 비가 내렸고 옛 남자가 편집해다 준 가요씨디는 딱 입에 맞는 안주가 되어 나만의 즉석 술상이 차려졌다.

그리곤 명성따위야 무슨 상관이냐 그가 오면 근처 레스토랑으로 가야겠다고 혼자 결정을 했고 남편에게 그 사실을 통고했다.  그러고나니 명성도 내 팽겨칠 수 있는 스스로가 어찌나 마음에 들던지.환영주를 한 잔하고 바깥에 나가 식사를 하고 또 집으로 와 한 시반이 되도록 셋은 술을 마셨고 준비하지 않아 치울 것도 없는 그 저녁은 좋았다.

 

난 알콜중독이다. 그 사실을 스스로 깨달은 건 얼마되지 않았는데 별로 기분좋은 이름은 아니지만 아직은 치료 가능하다고 믿는 관계로 크게 걱정을 하진 않는다. 늘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아님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에대해 피터지게 고민하는 나는 언젠가 알콜중독 테스트를 받으러 간 적이 있다. 그 때 그 의사는 내게 어마어마한 양의 설문지를 내밀었고 당신은 알콜중독의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습게도 다분했던 내가 진짜 알콜중독이 된건 작년에 만났던 한의사의 영향이 크다. 그는 내 맥을 짚어보더니 알콜분해능력이 무진장 뛰어나다는 말을 하는 실수를 해버렸고 그게 보증(이건 남편표현이다)이라도 된 듯 난 마음놓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사실 술을 끊을 생각은 없다. 난 술을 좋아하고 술을 마시는 사람을 좋아하고 더 나아가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에게 인간미를 느끼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서, 날마다 누군가가 개처럼 죽어가고 수만명의 시민의 목숨보다 군인 2천명의 목숨이 훨씬 중요하게 보도되고, 천이백만명이나 되는 에이즈고아가 에이즈가 걸린 줄도 모르고 죽음을 기다리는, 그리고 가짜가 진짜인 척하는 (아니 척은 아니다 가짜들은 자신이 가짜인걸 모르니까) 이런 세상에서 술을 마시지 않고 견뎌내는 건 왠만한 강심장으로는 쉬운 일이 아니지 않느냔 말이다.

물론 세상이 중요한건 아니다. 그런 뉴스를 보면서도 커피를 마시고 향기가 좋다고 생각하고 2초간 울분했다 삼십분이면 잊어버리는 내가 아파 술을 마시는거지. 도저히 세상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면서도 세상을 향해 울분을 감추지 못하는 그저 그런 인간.

어제도 난 이 곳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에 흥분했지만 곧 그게 사실은 나와 무슨 상관이냐고 내가 아는 사람들이,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으니 되는거 아니냐고 자기합리화를 해버렸고 오늘은 그 사실이 더이상 나를 흥분시키지 않는다는 걸 다시 확인했으니 말이다.  

난 정신과의사도 찾아갔었는데 절대 세금을 내지 않았을게 분명한 하얀봉투 속 빳빳한 돈을 일주일에 두 번씩이나 받아 챙기던 그 유명한 의사는 제발 내 문제를 좀 이 남자에게 설명해달라고 끌고간, 지금은 내 남자가 되어버린 당시의 남자친구에게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성의없이 내려 나를 허무하게 만들었다.

말이 되느냐고 뭔가 말을 해줘야할거 아니냐는 항의에 그는 막내라서 의존성이 좀 있는게 문제라면 문제일까라는 말을 남겼다. 나처럼 독립적인 인간에게 의존성이 문제라니 돌팔이의사라고 열을 내고 더이상 결혼을 반대할 이유가 없어진 나는 이 남자와 결혼을 해버렸다. 솔직히 이유야 왜 없었겠냐 백여덟가지나 더 있었지만 나 역시 이 남자와 결혼을 하고 싶었겠지.

그 돌팔이 의사가 돌팔이가 아니고 진짜 유능한 의사였다는 걸 인정하게 된 건 그 후 십년이 훨씬 지난 최근의 일이다. 내가 십대 후반에 그 중요한 공부마저 내 팽개치고 전형적인 사모감이라는 지금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명성까지 들어가며 ( 그러고보니 자자한 명성도 엄청 많았던 인간이군) 신에게 올인했던 것도 따지고보면 그 의존성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으니 말이다.

다시 알콜얘기로 돌아가 내가 요즘 스스로 알콜중독임을 선언하면서까지 술을 마시는건 나이 마흔때문이다. 고통스런 이십대를 보내고나니 삼십대가 너무 좋았고 사십대는 더 좋으리란 막연한 생각으로 살았다. 그리고 그 막연한 생각은 마흔을 두 달 밖에 안남긴 지금도 유효하긴하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지금은 마흔도 중반인 친구가 마흔이 될때 편지를 보내왔다. 누군가 '마흔이 되면 자기는 이제 여자가 아니라 인간이 되는 거라고 촛불인가를 키고 축하를 하다보니 자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늙은 년이 되어있더라'던가 그런 내용의 글이 인용되어 시작되던 편지. 물론 당사자인 그녀는 마흔을 넘기면서부터 점점 이뻐지더니 마흔 다섯인 지금  내가 그녀를 알던 14년 중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구가하고 있다.

나는 여자가 아닌 인간이 되겠다 뭐 이런 목표같은 건 없다. 남자로 태어나 본 적이 없기에, 그리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여자라서 차별을 받아 본 적도 없기에 페미니스트도 아니고 그저 여자인 내 삶이 만족스럽다. 아이를 낳아보지 않아서, 젖을 물려보지 않아서 아직도 내 몸은 곧 마흔이라기엔 너무 탱탱하다 요즘은 운동도 하고 있으니 내년엔 마흔기념으로 누드사진을 찍어야겠다는 황당한 생각도 하고 있다.

사실 샤워를 마치고 젖무덤이 이십대보다 나을거라고 스스로 만족스러워하는건 곧 내 몸이 그 상태를 유지할 수 없게 되리란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젠 그런 모습에 익숙해지도록, 몸따위가 내게 자부심이 되지 못하는 걸 인정하도록 그렇게 늙어가는 준비가 필요하다.

달리의 영원한 뮤즈였던(영원에 과거형이 어울리는지 모르겠지만) 갈라는 나이가 들어서는 늘 어둑한 방에서 자신의 모습을 가리고 지냈다던데 그런 늙음은 상상만으로도 숨이 막힌다. 나는 보톡스를 주사하거나 주름살 제거 수술 같은 건 받지 않고 늙어갈 수 있어야 한다.

소설속에 자주 등장하던 '삼십대중반의 아주머니가 문을 밀고 들어왔다'던 그 나이보다 더 많은 서른 아홉.

이제는 조금씩 세상을 알 것 같고 나를 알 것 같고 또 자신과 조금씩 화해하기 시작하는 그런 나이가 내겐 지금의 서른 아홉이다.

그러니까 나이가 들어간다는건 내가 옳다고 믿었던 것들에 점점 자신이 없어지는 거라는 걸 알아가는 요즘,  사실 오만함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자신감 하나만으로 여태 벼텨온 나같은 인간에겐 생각보다 훨씬 충격적인 깨달음이다

더이상은 자신있게 의견을 내지 못하겠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까지 마구 이해가되니 당황스럽다.  이젠 어떤 책도 그 이면까지 보여 온전히 감동하고 온전히 존경하고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은 서글프기도 하다. 때론 말 몇 마디 글 하나만 읽어도 어떤 인간인지가 보이는 게 고통스럽기도하다. 물론 가장 고통스러운 건 나란 인간의 한계를 하나 하나 인정해 가는 것. 더이상은 싸움의 대상이 외부가 아닌 자신이라는 걸. 그 싸움을 외롭게 지켜보는 것도 나라는 걸.

그래서 나는 오늘도 포도주를 따른다 그리고 이제 시를 읽는다. 승자를 알 수 없는 싸움을 시작하면서

얼마나 걸릴 지 알 수 없는 그 기간에 대비책을 짜며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위로가 필요해서. 어쩜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잘 늙어갈 수도 있을거라는 희망이 필요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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