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진진 > [퍼온글] 어느 사랑의 모습.
쌍문동 과외돌이. 꽤나 즐겁고 황당한 캐릭터인 이녀석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으로 좀 미루자. 오늘 매너가 할 이야기는 녀석의 부모님, 다시말해 매너의 고용주에 대한 이야기다.
모 대기업의 부장이신 저 과외돌이의 아버지. 그 분, 초기에 매너를 꽤나 싫어하셨다. 맨몸으로 서울에 와서 날품팔이로 하루하루 이어살며 검정고시로 중,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마쳐 대기업 건축회사에 입사해 전 세계를 무대로 뛰어다니다 부장까지 승진한 입지전적인 인물인 탓일까. 학교 수업만 제때 가서 듣는 것 이외에 만만치 않은 돈을 들여 과외수업까지 받는 게 그 분 눈에 좋게 보일 리 없었을까. 매너가 인사를 꾸벅 드려도 본 척 만 척 인사도 제대로 안 받으시던 그분, 꽤 오랜 후에 그나마 '약발'을 좀 받은 과외돌이와 과외순이(그녀석 누나) 성적이 좀 달라지자 매너를 보는 눈이 좀 달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간혹 해외 출장에서 돌아와 거실 소파에 기대어 프로야구 중계를 보거나 신문을 읽는 그 분을 대하는 것은 여적 쉽지 않다.
지금은 이집트에 계신다고 했던가. 당연히 매달 집으로 얼마의 돈을 부쳐주시는 모양이다. 오늘 자락 긴 옷을 질질 끌고 가서 녀석 책상 옆에 앉아 "숙제 다 했니?"물으니 녀석이 실실 웃으면서 딴소리를 한다.
"선생님, 재밌는 거 보여줄까요?"
매너 공식반응: 숙제 안했냐? 뭔 쓸떼없는 소리여? 누구 칼 물고 엎어지는 꼴 보고싶어? 죽을래?
입을 삐죽대며 녀석은 왠 통장 한 면을 삐죽 내민다. 거기에 뭐라고 써 있었냐고?
여보이번주목요일 1,000,000
당신생일축하해 1,000,000
멀리있어당신 1,000,000
안아주진못하지만 1,000,000
사랑하오.XXX씨 1,000,000
세상에 세상에... 매너는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내용이 꼭 들어맞진 않겠지만 대강 저런 내용이었다. 입금자 성명을 쓰게 되어 있는 공란을 저렇게 채워 편지를 쓰다니. 그 고지식하고 무뚝뚝해 보이던 분이 저렇게 멋진 남자였구나. 역시 사람은 한 면만 봐가지곤 정말 모르는 거다. 매너, 저렇게 청년이, 중년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