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진진 > [퍼온글] 책 만드는 일이 쉬울까? 반도체 만드는 게 쉬울까?
종종 나는 책 한 권을 반도체에 비유하는 것을 몰상식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책 한 권을 반도체에 비유하곤 한다. 처음 플로피 디스켓이란 것이 나왔을 무렵, 사람들은 신기(神器)의 저장매체라도 되는 양 1.44MB의 엄청난(?) 용량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당시 언론에서 이야기했던 저장 용량으론 신문을 비롯해 문자의 경우 40만자 가까이 저장될 수 있다고 했던 것 같다. 40만자 내외면 200자 원고지로 기준하면 2,000매로 장편 소설 한 편이 저장될 수 있는 정도다.(그 때 기억엔 더 엄청나게 떠들어댄 것 같지만)
그래서 당시 PC통신이 막 대중화되던 당시 출판사들은 필자들에게 워드프로세서나 아래아 한글 파일로 된 파일을 디스켓에 담아 우송해오는 것을 받거나 아니면 PC통신을 통해 받았다. 전화기 모뎀으로 지금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데, "이야기 몇.몇" 뭐 그런 프로그램을 썼었다. 그런 유행 탓이었을까? 종종 농담삼아 몇 KB(킬로 바이트)나 써서 보냈어? 하는 식으로 원고 매수 말고 디스켓에 담긴 용량으로 글의 매수를 어림짐작 해보기도 했다.
그게 어느 새 10년도 더 된 이야기다. 그러니까 "코에이 삼국지 3"하던 시절의 이야기다(참고로 현재 이 시리즈는 10편까지 버전업되었다). 그런데 왜 책 한 권을 반도체에 비유하는 걸까? 그걸 반도체 만드는 이들이 들으면 화낼지도 모르겠으나 최소한 내 경험에 비추어 보았을 때 그렇다는 거다. 그냥 반도체가 아니라 그 뭐더라 이것저것 많이 집어넣은 반도체로 생각해보면, 책 한 권 만들기란 공정의 복잡함, 혹은 결점 없고, 사고 안 나게 책 만들어내는 일이 꼭 그 놈의 반도체 만들어 내는 것 만큼 복잡하고, 때때로 불가항력이란 건데...
책은 잘 되기 보다는 잘 못되기가 쉬운 성질의 물건이라서 그렇다. 이건 편집자 경험이 조금이라도 있어본 이라면 잘 안다. 우선, 기획 단계부터(영화판이야 지금도 그렇지만) 좋은 필자 만나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다. 기획안이 있어도 필자가 못 따라주는 경우가 태반이고, 필자가 스스로 기획해서 출판 제안을 하는 경우엔 도무지 마케팅적인 요소를 전혀 안배해주지 않은 원고이기가 쉽다(자기만 재미있는 원고). 그래서 출판사들은 돈 잘 벌어주는 필자 선생님들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거나 아예 출판사 사장이 특정 필자군이랑 특별히 잘 지낸다. 이 경우 대개 각종 인맥은 상당히 중요한 것이 된다.
하여튼 그렇게 해서 원고가 쓰여지면 대략 단행본 책 한 권을 만드는데(문학 말고 교양 인문, 사회과학류)의 1,800장에서 2,000장의 원고가 필요하다. 이를 다시 역으로 풀어보면 도합 40만자의 글자에 오자가 없어야 독자들이 보고 잘 만들었다고 말해준다는 거다. 대개 편집자들은 교정을 4교 가량 본다. 1교, 2교, 3교, 4교(소위 O.K교)를 보는데, "40만자X4" 해보면 책 한 권 내기 위해 대략 160만자를 읽어댄다고 보시면 된다. 그런데 이게 또 만만치 않은 것이 국문학과 교수님들도 틀리는 것이 우리 말과 글인지라, 예전에 아주 신중한 초보 편집자 시절, 나는 당시 덕수궁에 있던 국립국어연구원 같은 곳에 문법이나 기타 교정보다 잘 모르겠는 건 전화까지 해서 물어보곤 했다.
지금?
그런 짓 안 한다. 그런 짓 안 하는 이유가 뭐냐? 물어볼 필요가 있겠다 싶을 만큼 난해한 내용은 우리 문법 체계 상 여러 의견들이 존재하는 경우들이 있어서 명확한 답변을 구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고, 그 외 나머지 것들은 사전에 나오거나 기타 관련 책자들을 찾아보면 된다. 참 열혈이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넘기 어려웠던 건... 외구의 인명과 지명과 관련한 표기 규정이었다. 웬간한 고수들도 이건 참 처치곤란한 문제다. 예를 들어 "호모 루덴스"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호이징하(의 표기도 참 통일 안 된다)와 더불어 이 분야의 저명한 학자인 로제 카이와의 경우, 그의 대표 저서 "놀이와 인간"(문예출판사)에선 "로제 카이와"로, 문학동네에서 나온 "인간과 성"의 경우엔 "로제 카이유"로 되어 있는데, 다시 이화여대 출판부에서 나온 "문화사회학으로의 초대"에서 "로제 카이와"는 "가이요와"로 표기된다.
어느 것이 맞을까? 물론 외래어니까, 뭐가 딱히 맞는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가이요와"는 분명 이 책의 원저자가 일본인이라서 쓰인 일본식 표기를 고스란히 가져온 걸게다. 즉, 우리의 외래어 표기법상 현지 발음에 맞춘다는 건, 편집자들로 하여금 스타워즈의 수다쟁이 로봇 "R3P5"가 되란 뜻이다. 더욱 괴롭고 힘든 일은 일본인 인명 표기는 별도의 발음 설명 없이는 한자만 가지곤 발음을 알 수 없다는 거다(원래 걔네 말이 그렇단다). 게다가 외래어 표기법에 있어서의 사실상 유일한 원칙, 현지 발음에 따라서 표기하라는 건 잘 지켜지느냐? 단적인 예로 파리(Paris)가 맞나? 빠리가 맞나? 이건 또 어디나 파리로 적는게 일반적이다. 파리가 미국이나 영국의 도시가 아닌 이상 빠리가 맞는다고 해야 하는데, 영어가 습관처럼 굳어버려서 쉽게 고쳐지지가 않는다. 중국어 표기도 난리부르스다. 신해혁명 이전과 이후로 구분한다던가 해서 이전 사람들은 우리 한자음대로 표기하는데, 신해혁명을 전후해서 얼마나 많은 중국인들이 우리 역사에 직간접으로 연계되었나? 쑨원, 손문, 장제스, 장쩨스, 짱쩨스, 장카이석 등등. 그럼,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하는 영어 표기는 통일되었나? 요새 레이먼드 윌리엄스 책을 구하느라 헌책방 검색하기 위해 이름 검색으로 평균 4번은 해야 한다. "레이먼드, 레이몬드, 윌리엄스, 윌리엄즈"
종종 알라딘에서 번역 개판인 책이라 비난 받는 책들이 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런 이야기 듣는 출판사의 편집자는 얼굴이 벌개질 거다. 그런데 이게 오로지 편집자의 잘못이냐? 하면 그건 아니다. 번역은 대개 대학원 박사급 이상(아니면 전문번역자, 혹은 교수들)이 한다. 이 경우는 그나마 아직 학생 티를 덜 벗어서 서로 얘기가 된다. 물론 편집자가 또 초보 이상의 수준은 지녀야 가능하다. 그나마 편집자도 모르고, 번역자도 모르고, 더 문제는 편집자가 자기가 뭘 모르는지, 그걸 번역자와 소통해야 한다는 필요성도 못 느끼면 그 책의 번역 상태가 좋아지길 기대하는 건 난망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필자 혹은 번역자가 편집자에게 고마워하는 일이 거의 없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저자가 편집자에 비해 위에서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월급쟁이인지라 어쩔 수 없기도 하고, 그나마 영세성을 면치 못하는 경우가 많고, 이 저자라는 이들이 또 어디가서 방귀께나 뀌는 자들이라 밉보여서 좋을 거 없기 때문이다.
종종 편집자는 저자라는 교수 밑에 딸린 조교처럼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런 판에 기획 단계 지나서 뭐 이렇게 고쳐주세요. 저렇게 고쳐주세요는 더욱 어렵고, 특수한 전문지식이 요구되는 책의 경우엔 고집스럽게 우기는 저자(명망있는)에게 편집자가 이기기가 어렵다. 어떤 사람은 "알프레드 코르토"라고 다들 쓰는데도 굳이 "알후레드 꼬르토"라고 써야 맞다고 한다. 그럼, 어쩔 수 없이 따라가야 한다. 하비 콕스의 유명한 저서명이자 개념이기도 한 세속도시(The Secular City)는 같은 책 안에서도 번역자에 따라 세속사회로 표기되기도 한다. 대개의 편집자들은 동일한 단어에 대해서는 한 권의 책 안에서는 동일한 표기로 통일하고, 개념을 정리해주고 싶어하는데, 이 경우엔 통일이 안된 거다. 확실치는 않지만 학자들간의 이견이 변역과정에서 조정되지 못한 것이거나, 아예 그럴 기회도 없었을지 모르겠다.
물론, 이 모든 걸 저자(번역자)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 우선 편집자가 유능해도 좋을 일이고, 저자에게 원고 교정을 위한 시간을 좀더 주거나, 아니면 감수를 거치는 등의 방법을 동원해도 좋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책은 문화이지만 동시에 상품이다. 상품의 회전수를 늘려야 장사가 된다는 건 동서고금의 진리 아닌가? 나는 편집자 한 명이 일년에 책 4권 만들면 제 몫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대개 출판사에서는 한 명당 6-8권 이상 만들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것도 웬만한 메이저 출판사를 제외하곤 돈 100만원 조금 더 받아가며 말이다(운 좋으면). 지금 한국영화가 누리는 저 영화가 과연 그냥 이루어진 일일까? 아마도 그건 우리 사회의 영화에 대한 욕망과 유행이 우리 사회의 문화적 역량(분명 다른 분야에서 일했다면 성공할 수도 있을)을 총집결시킨 결과일 것이다. 만약, 편집자가 일반 기업체 수준의 연봉 수준만 된다면, 좀더 뛰어난 역량을 지닌 이들이 편집자로 일할 것이다. 지난 IMF 이후 국내 출판사들은 많은 편집자들을 내몰았다. 워낙 영세한 판국이라 노조 있는 출판사 얘기는 거의 듣지 못했다. 대개 아동전집류(거기다 학습지를 병행하는)를 내는 메이저급 출판사들이나 방문교사 차원에서 만들어진 노조에 더부살이 형태로 들어 있을 거다.
그런데 IMF 이후 가뜩이나 척박한 출판환경에서 유능한 편집자는 태부족인 상황이 되었다. 다른 경제 분야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출판사라고 비껴가는 건 아닐 테니 당연한 일이다. 출판에서 그나마 폼나 보이는 기획 파트를 지망하는 이들은 많은데(마치 영화판을 선망하는 것처럼), 그 기초인 교정.교열 볼 인력은 지망자가 없거나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출판사들도 이런 일들은 그냥 외주로 빼는 경우가 잦아진다. 사람을 구하자니 없고, 신입사원 뽑아서 교육시키자니 가르쳐 놓으면 나가 버릴 테고, 붙잡자니 돈 들고 해서 꽂감 빼먹듯 편하니까 외주로 돌리는 거다. 지금처럼 몇 년만 더 가면 교정교열의 귀신 소리 듣던 옛날 분들만 외주로 남고, 출판사는 그야말로 기획집단화 되어버릴 거다. 그런데 기획 지망생들이 과연 편집의 기초인 교정.교열에 대한 안목도 남다르실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럼, 이런 과정들 거쳐서 원고가 완성되면 그걸로 끝이냐? 천만에 말씀이다. 책이란 건 필름 뽑아서(예전엔 대지발이했지만, 참고로 난 그것도 해봤다), 하리꼬미(이거 일본말인데, 다른 우리 말이 뭐였더라)해서 PS판 떠서, 인쇄기에 앉히고, 인쇄 감리하고, 표지 찍고, 라미네이팅하고, 접지하고,제책하고, 재단하고, 책 나오면 보도자료 뽑고, 신문사에 돌리고.... 그렇게 해서 독자들 손에 들어가야 끝나는 거다. 거기에 저자가 모든 원고를 다 써주는 게 아니다. 저자도 여러 길인데, 책 나오는 그 순간까지 편집자를 달달 볶는 스타일이 있는가 하면, 나 몰라라 하는 이들도 있다. 대개 전자의 경우를 싫어할 듯 싶지만, 제대로 된 원리원칙 있는 깐깐한 필자라면 편집자들이 욕은 할지언정 싫어하진 않는다. 편집자들이 왜 책 만들겠나? 그들도 책 좋아하다 보니 그 길로 샌 거다. 좋은 책 만들고 싶은 욕심은 저자 못지 않게 강하다. 하지만 책 날개에 들어가는 글이나, 표4(뒷표지)에 들어가는 카피 같은 걸 뽑는 것도 편집자의 몫이다.
거기에 보도자료란 건 기자들에게 우리 책 이런 거니까, 기사 자료로 잘 살펴봐주시고 기사 잘 좀 써달라고 보내는 건데, 이걸 또 잘 써야 한다(편집 아카데미 출신들에겐 특히 그런 아카데믹한 의식들이 있다). 이걸 꼭 틀린 말이라고 볼 수도 없지만, 꼭 맞는 말도 아니다. 그건 또 기자들과 데스크 마음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어떤 이는 책 나오면 직접 신문사로 책 들고 간다고 한다. 뭐 밥 먹고, 촌지 줄라고 그러는 게 아니라 기자도 사람인지라 직접 얼굴 보고, 부탁하면 아무래도 거절하기가 쉽지 않아서라는 건데... 내 알기로 그 사람 책 신문에 서평 나왔다. 그리고 끝으로 한 마디... 만약 당신이 기억하고 있는 출판사가 있다면, 그 출판사는 그래도 괜찮은 출판사다.
나는 종종 후배들에게 그런 얘기를 해준다. 니가 이름을 기억하는 시인이 있다면 그 시인은 유명한 시인이고, 니가 한 구절이라도 그 구절을 외우는 시인이라면 우리 문학사에 남을 거라고... 오늘도 어떤 사람이 시인으로 등단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럴 때 무슨 생각이 드냐하면 요새 대한민국은 시인공화국이 아니라 시인공장이 되었나 보다 하는 거다. 출판사 차리는 거 쉽다. 망할 각오만 하면 된다. 그러니 책 한 권 만드는 게 반도체 만드는 일보다 쉬울 게 뭐가 있나? 난 책 한 권 만드는 일이 혼자서 반도체 만드는 것 만큼 어렵다고 생각한다. 다만, 책은 회로가 한 두 개 끊겨도 독자들 잘 만나면 나름의 몫은 한다는 거다. 내가 알라딘 서점에서 아무리 마음에 안 드는 책도 별 셋 이하로 주고 싶지 않은 건, 알량한 동업자 의식이 아니라 그만큼 책 만드는 일이 이 나라에서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전에 배종옥과 문성근, 박해일 주연의 영화 "질투는 나의 힘"에서 잡지 편집장으로 문성근이 나온 적있다. 사람들은 편집장쯤 되면 대단한 뭐라도 되는 것으로 알지만... 뚜껑 열어보면 생산직 노동자만 못한 대접 받는 이들이 태반이다. 펜대 굴리고, 그래도 난 책 만든다란 의식으로 자위하며 사는 거 그게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