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진진 > 지루해진 청춘의 끝에 만난 구름같은 작가
청춘의 문장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지루하여 너덜해진 직장생활. 지친 나에게 마지막 탈출구는 언제나 책이었던것 같다. 마음이 가난해지고, 정신이 녹슬 무렵이면 글자에 눈을 박는 것이 내 오랜 습성이다. 요즘 또한 그러하다. 단순한 이유. 오래 반복하여 지루하다는 것. 직장과 일이 끔찍해졌다는 것.


외근중의 일탈. 오늘 오전 커피숍에서 홀로 ‘청춘의 문장들’을 읽어 내려갔다. 가끔 이렇게 폐쇄적인 모드로 들어설 때가 있다. 특이한 광경이 눈에 띄였다. 내눈엔 말이다. --; 나는 어느 커피숍 창가쪽을 지나가고 있었고 그 안엔 테이블 건너건너 대략 6명이 보였는데 다들 홀로 책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닌가. 커피숍에서 내 눈에 보이는 모든 이들이 독서하는 광경을 본적은 없는 것 같다. 그렇게 강남의 영풍문고 앞에 있는 ‘Barnesso'라는 커피숍을 우연히 발견했다.


나는 그 곳으로 쑥 들어가 커피를 시키고 자리를 잡았다. 음악이 흐른다. 수다를 떨며 독서를 방해하는 자들은 없다. 다들 책에 심취(?)해 있다. 나는 김연수의 글을 읽는다. 음악이 흐른다. 나는 책에 심취해 있다. 나는 부드러운 김연수의 글구름 속에 두둥 떠있다. 작가는 시로 등단을 해서인지 긴 문장 하나하나가 한편의 시같은 느낌이다. 책한권을 온통 아름다운 문장으로 도배해 놓았으니 그것은 한권의 책이 아니라 여러편의 풍경화인 듯 하다. 귀를 간지럽히는 음악과 두눈에 속삭이는 그의 글 그리고 적당히 푹신한 소파에 앉아 나는 잠시 눈물을 글썽일만큼 감상에 젖게 되었다. 책과 함께한 모든 것이 너무 완벽해서. 글자가 너무 아름다워서. 그 곳에 흐르는 음악과 김연수가 고마웠다. 그리 아름다운 글을 써주어 고맙고, 그 글이 나를 충만하게 하여 고맙고, 지리한 일상에서 단 몇분이라도 날 행복하게 하여 고맙다 생각했다.


작가는 나와 같은 70년대에 태어났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릴 수 없었다. 내가 친구들과 KFC에서 치킨을 뜯을 무렵 작가는 시장통 지하의 음악다방에서 DJ의 강의(?)를 들었다 하고, 내가 사회적 지위가 있지(지위는 무슨 지위 쿨럭) 아르바이트 따위를 해야 하냐며 투덜거릴 무렵 작가는 얼음장 같은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소설당선금으로 기름보일러가 있는 집으로 옮겨가게 되었다는 작가는 이렇게 얘기한다.

“다음날, 이삿짐 트럭을 타고 언덕길을 내려가면서 나는 그 언덕에서의 삶이 내겐 봄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꽃시절이 모두 지나고 나면 봄빛이 사라졌음을 알게 된다. 천만 조각 흩날리고 낙화도 바닥나면 우리가 살았던 곳이 과연 어디였는지 깨닫게 된다. 청춘은 그렇게 한두 조각 꽃잎을 떨구면서 가버렸다. 이미 져버린 꽃을 다시 살릴 수만 있다면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나는 그 부분에서 나의 치열했던 청춘을 떠올릴 수 있었다. 봄꽃처럼 흐드러졌으나 상처도 많았던 내 청춘. 이미 져버린 꽃을 다시 살릴 수만 있다면 다시 돌아가고 싶은.


물론 이 책의 허점을 발견했다. 작가는 여러번 “어쩌구 저쩌구, 라면 순 뻥일테고 이렇고 저렇다“식의 썰렁한 농담을 던진다. 정말 독자들을 웃기려던 것이었을까. 얼마나 썰렁했는지 나는 그런 부분이 나올때마다 마른 침을 삼키며 ‘제발, 김연수씨여. 당신의 아름다운 글에 찬물을 끼얹지 말아주소서..’라며 찬 농담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랬다. 어쩌면 작가의 의도는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아무리 좋은 것도 자꾸 보면 물리는 법. 온통 뭉게구름 같은 자신의 글이 거침없이 읽혀지다 단물 빠진 껌처럼 밋밋해지는 것을 염려해 중간중간 맥을 탁 끊어버리는 고단수의 썰렁유머를 구사했음은 아닐런지..ㅎㅎㅎ..나..상상력 풍부..--;


김연수라는 작가가 궁금해질 것 같다. 그의 책을 모두 읽어보고 싶어질 것 같다. 이름하야 전작주의.

누군가 나에게 그가 써 낸 책의 순위를 매겨 말해주면 좋을 듯 싶다. 그러면 나는 가장 저평가된 책부터 읽어나갈 것이다. 한계단한계단 오르며 감동받고 싶으니까. 그렇게 이 작가의 책들이 내 행복의 계단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얀 생크림에 초록색을 뭉개면 나올듯한 색깔이 이 책의 표지를 장식하고 있고 이름모를 꽃도 책속에 그려져 있다. 청춘을 담은듯한 색깔이다. 스무살이라는 싱그러운 청춘을 '시작'으로, 한해한해 갖가지 경험들을 하얀 분필로 슥슥 긋다보면, 어느새 그 처음의 싱그러움은 옅어지나 조금더 깊이있는 청춘의 '끝'에 다다르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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