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약국의 딸들 - 나남창작선 29 나남신서 105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3년 9월
평점 :
절판


처음 이책을 읽은것은 고1 겨울 방학때였다. 겨울방학 숙제중 하나가 김약국의 딸들을 읽고 독후감을 써오는거 였다. 첫장을 넘기고 둘째장을 넘기고 나는 어느새 쥐가 나있는 나를 발견했던거 같다. 어려운 고어들. 사투리인가? 어쨋든 이해되지 않는 단어들이 너무 많아서 많이 힘들었다. 한참 독서실을 다니던 때였기에 친구들에게 너희들은 어떻게 읽었냐고 하니 너무 어려워서 포기 상태라고 하는 친구들이 태반이였다. 사실 15년이 훌쩍 지난 날들의 일이라서 내가 그때 숙제를 해갔는지 어쨋는지 생각이 안난다. 그 어려워했던  느낌만 생각이 날뿐..

지난 겨울 나와 남편은 직장을 그만두고 짧지만 길었던 전국여행길에 올랐다. 그중에 꼭 들려야한다고 했던곳이 하동 구례였다. 왜냐하면 바로 토지의 배경이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다른 어떤것보다는 끝없이 펼쳐져 있는 넓은 땅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곳에 가서 본것은 넓은 땅보다는 박경리 선생님이였다. 직접 만나뵌것은 아니고 평생을 바쳐 쓰신 그분의 글에 대한 애정과 투지 랄까..그런것에 감동을 받고 어쩌면 기가 팍! 눌리는 경험을 하고 온듯하다. 그리고 그분이 그렇게 애정을 담아 쓰신 글들을 헛되이 그냥 지나치면 안되겠다 싶어 김약국의 딸들을 다시 집어 들었다. 책 첫장을 넘기고 둘째장을 넘기고... 난 15년전 처럼 머리에 쥐가 나는 경험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 시대로 돌아가 내가 그 시대를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 고어와 사투리들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이 만큼 감동 먹고 이 만큼 생각하지 못했을것이다. 그리고 웬만한 책은 읽고 난 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바로 리뷰를 쓰는 편인데 반해 이 책은 감히 리뷰를 쓸수가 없었다. 어떻게 내가 감히..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써 보련다. 이 책이 어때요 저째요 하는 그런 글이 아니라 김약국의 딸들이 내게 준 아니 박경리 선생님이 내게 준 그 감동을 적어보려 한다.  

이책의 시작은 김약국이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주는 것으로 시작이 된다.  큰 아버지 김봉제,  아버지 김봉룡, 그리고  어머니 숙정. 숙정은 첫번째 아내가 아니고 두번째 아내이다. 첫번째 아내는 이틀만에 맞아 죽었다는 소문이 있다.  어머니인 숙정또한  아버지 봉룡에게 살해 당한다. 그리고 봉룡은 도망을 간다. 그리고 남겨진 김성수..그가 바로 김약국인것이다.  김약국은 어린 소년으로써는 감당하기 어려운 출생배경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을 어렵게 견뎌낸 그가 이제는 김약국으로써 살아가려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김약국이 아무리 없애려 해도 지워질수 없을것 같은 끔찍한 짐을 그의 어깨위에 털썩 올려놓는다.  

이제 이야기는 김약국이 아닌 김약국의 딸들에게 초점을 맞춘다. 아내 한실댁. 딸만 다섯을 나은탓에 남편보기 부끄러워하는 사람. 그럼에도 그이 다섯 딸들을 하늘처럼 여겼던 한실댁 그가 생각하는 딸들에 대한 생각은 이러했다. 큰딸 용숙은 샘이 많고 만사가 칠칠하여 대가집 맏녀므리가 될것이고, 둘째딸 용빈은 영민하고 훨칠하여 뉘집 아들자식과 바꿀까, 셋째딸 용란은 옷고름 한짝 달아입지 못하는 말괄량이지만 달나라 항아같이 어여쁘니 으례 남들이 다 시중을 들거라,  넷째딸 용옥은 딸중에서 인물이 제일 떨어지지만 손끝이 야물고 말이적고 심정이 고우니 살림이라도 알뜰히 꾸며나갈것라, 막내동이 용혜는 어리광꾼이요 엄마옆이 아니면 잠도 못자나 연한 배같이 상냥하고 귀염성이 있어 어느집 막내며느리가 되어 호강할것이다. 그러나 실상 그의 딸들은 한실댁의 생각처럼 그렇게 살아주지를 못했다. 어쩌면 한실댁이 꿈꾸었던것은 그렇게 될수 없는 현실을 알기나 하듯 너무나 허황되기만 했다.

큰딸은 과부가 된데다가 자신의 아들을 물에 빠드려 죽인 혐의를 가지게 되고, 둘째는 사랑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는 노처녀가 된다. 셋째는 집에서 키운 머슴과 사랑하다가 미치고, 머슴과 한실댁은 사위의 도끼에 찍혀 죽고, 넷째는 셋째를 사랑한 남편에게 버림받아 상처를 끌어안고 살다가  풍랑에 바다에 빠져죽는다. 막내 용혜의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으니 그냥 희망이라고 남겨두고 싶지만 그런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김약국이 자신의 부모에 대한 상처나 아픔으로 인해 흔들리지 않고 고결하게 잘 이겨냈으니 그것을 이겨낸 희망의 이야기를 하겠지!! 라고 생각했던것과는 달리 김약국 딸들 하나하나가 너무나 끔찍하리 만치 큰 일들을 겪고 죽어가는것을 보면서 용혜의 인생도 평탄치 만은 않을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약국의 딸들]에서는  우리에게 허황된 꿈을 주지 않는다. 어려움속에서도 꿋꿋하게 살면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을수 있다는 토지와는 별개의 이야기를 한다. 웬지 억겁(?) 이런 어쩔수 없다는 식의 운명론적인 생각을 심어주기까지 한다. 책을 다 읽고 나면 개운하지 않음으로 기분이 상하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책을 최고로 꼽는다. 해방 20년후 김약국의 집안에서 일어난 여러가지 사건들을 내 슬픔으로 여기지 않도로 철저하게 덤덤하게 그려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아픔속으로, 슬픔속으로 나를 억지로 떠밀지 않고 조용 조용 나에게 읊조리듯 이야기를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한 순간도 딴 짓을 할수 없도록 흥미롭게 끊임없이 이야기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개성강한 인물이 많이 나오는 영화는 흥행할것 같지만 망한다 왜냐하면 주인공을 부각시킬수가 없기 때문이다. 개성강한 인물은 조연 한둘에 국한되거나 또는 주인공 자체가 개성강한 인물이 된다. 김약국의 딸들은 모두가 주인공이다. 누구하나 빼놓지 않고 모두 주인공이다.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김약국 사촌 형님네 가족 모두와 석원을 비롯한 한돌이 옥화..누구하나 빼놓지 않고 주인공이다. 그럼에도 흥미를 잃지 않고 읽을수 있는 까닭은 누구 한사람의 이야기를 할때면 모두가  숨죽인듯이 조연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용란이가 주인공인 이야기를 할때면 한돌이와 용란이가 빛나는 사랑의 주인공이 되고 기두와 용옥은 철저하게 조연이 되어준다. 이런식의 이야기 구조는 어느 한순간도 눈을 뗄수 없도록 아니 귀를 뗄수 없도록 해주는 요소가 되어준다.  김약국의 딸들은 정말 최고의 소설이다!  문학을 문학으로 대하지 못하고 꼭 내 인생에 비추어 읽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소설속의 인물이 아프면 나도 아프고 소설속의 인물이 사랑을 하면 나도 애뜻한 감정으로 사랑을 하듯 글을 읽던 그런 시절.. 그러나 이 소설 김약국의 딸들이 내게 책 읽는 법을 다시 가르쳐 주었다. 그들의 인생을 그들의 인생으로 바라볼줄 아는 시각을 가르쳐 주었다. 이책을통해 내가 꼭 어떤 교훈을 얻고 희망의 메시지를 건져야지! 하는 생각을 하지 않고 본 최초의 문학작품이 되어주었다.

내가 너무 김약국의 딸들을 찬미하고 있는건가.. 그럴지도 모른다. 난 무엇에 푹 빠지면 비판 능력을 상실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으니.. 우리 신랑에게 푹 빠져 여전히 단점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  감히 너무나 멋진 작품이기에 글을 써봤다.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글을 써봤다. 쓰지 말았어야 할 글을 쓴건 아닌지 조심스런 생각을 가지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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