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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상자 - 1998 제22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대상 수상작
은희경 외 / 문학사상 / 1998년 1월
평점 :
은희경님의 작품을 많이 읽은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읽은 은희경님의 글들은 독특한 시선들이 있는거 같아요 대부분의 여류작가들의 글을 보면 여성의 감수성과 시선으로 보기를 잘하는데 은희경님의 작품은 그닥 그런거같지도 않은거 같아요 이번 아내의 상자는 철저하게 작가가 여자임을 부인하고 마치 남자가되어서 쓴 것처럼 느껴졌답니다. 전에 [선택]이라는 이문열님의 책을 읽을때 철저하게 남자의 시선으로 쓰여진 글을 보면서 혼자서 막 화도 내고 분에 못이겨 지금 이런걸 쓸때야! 라며 성질도 내면서 보았는데 이 소설 아내의 상자는 그만큼의 화나 성질은 돋구지 않았으나 절대로 여성의 입장을 찬찬히 고려하여 바라보겠다!라는 마음이 전혀 없는 남성(남편)의 시선으로 천천히 책을 써내려간것 같습니다.
사실 이 소설을 3번정도 읽은거 같습니다. 많이 읽었다는게 아니라 정신없이 읽는 바람에 읽고 돌아서면 무슨내용이였지? 생각이 안나고 또 읽고 돌아서면 이 여자가 죽었던가? 라면서 결론에 대한 생각이 전혀 나지가 않았죠! 이번엔 좀 천천히 깊이 호흡하며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그리하여 얻은 결론은 아~ 이 여자가 지금 정신병원에 가있구나...이 여자가 남편하고도 제대로 못해낸 성관계를 다른 남자와 맺였구나..등등의 추론이지요! 마치 추상화를 보듯 자세한 설명을 배제한 소설은 우리에게 마치 너희도 상자를 하나씩 만들어가봐!라고하는듯합니다. 5년정도 도시에서의 생활을 담은 상자하나, 신도시에서의 무료한 날들의 상자하나, 옆집 여자와 가까워지면서 변하는 아내의 모습 상자하나, 그리고 모든것으로부터 결론을 내리려하는 상자하나..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아내의 입장을 대변해줄 변명 하나쯤 나오겠지 하고 계속해서 그걸 찾았던거같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어떤 변명은 없습니다. 남편의 배신감과 절망감만 있더군요 아마도 제가 글을 읽는능력이 떨어져서 어떤 모양으로든 표현했을 아내의 변명을 저는 못찾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말이죠..이상하게 아내를 애써 변명하거나 두둔하려는 이야기였다면 지금처럼 내 마음을 먹먹하게 아프게 만들지는 못했을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히려 아무것도 없으니까 정말로 메말라버린 아내의 몸과 마음처럼 그것이 그대로 전달되는거 같았습니다.
아내의 상자.. 남편은 그 상자에 담아도 담아도 아직 담지 못한것이 있냐며 말했지만 사실 그녀는 그 상자에 담는작업이 버리는 작업이 아니라 더욱 견고히 쌓는 작업이 아니였을까.. 나는 상자를 만들기보다 지금의 상자들을 비우는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