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지인들과 함께 수연산방을 찾았다.
수연산방은 상허 이태준 선생의 고택으로 철원의 생가를 그대로 뜯어다가 지었다고 한다.
현재는 외종손녀가 찻집으로 운영하고 있다.
단체 손님이 들어갈 수 있는 처마밑 작은 방으로 들어가 오미자, 미숫가루, 묘한 아이스커피, 팥빙수까지 신나게 먹고 수다를 떨던 중 책꽂이에서 책 한권을 발견했다.
사진에 보이는 책꽂이에서 발견한 책은 알베르토 망구엘이 쓴 "보르헤스에게 가는 길" 이라는책이다. 책 표지 안쪽을 살펴보니 망구엘이 열여섯살 때 작은 서점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보르헤스가 손님으로 찾아와 자기집에 와서 책을 읽어줄 수 있느냐고 물었고 망구엘이 승락하면서 시작된 이야기이다. 책 읽어주기는 4년동안 계속됐고 망구엘은 성장했다. 그리고 현재의 망구엘이 되었다.
문득 미술관에서 아르바이트 하던 시절 건축가 고 정지영 선생님이 지인과의 약속이 잘못되어 어찌할바를 몰라하시다가 나를 보고 핸드폰을 빌려달라던 기억이 났다. "내가 밟는 곳이 다 내 집이다" 라는 말로 나를 감동시켰던 선생님을 그렇게 만나고 얼마나 설레였던가... 나는 그것으로 인연이 끝났고 선생님은 이내 하늘나라로 가셨지만 망구엘과 보르헤스는 그렇지 않았다.
우연히 만난 책 한권이 나의 수많은 우연한 만남들을 기억나게 했고, 앞으로 올 우연한 만남을 소중하게 여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뭐든 하면 6개월이 고비일정도로 끈기가 부족하다.
망구엘과 보르헤스는 4년, 물만두 언니의 리뷰는 10년, 김지은의 아나운서 경력은 20년, 박혜란의 여성학 공부는 27년...
우연을 가장한 인연으로 나의 모든 만남에 감사하며 이제 나눠주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더 이상 누군가의 만남으로 뭘 얻을까가 아니라 나의 제자들과 함께 하는 모든 시간들을 허투루 보내지 말고 소중하게 아껴주며 사랑해줘야겠다.
그러려면 내가 좀 더 자라있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