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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이들의 삶이 앞으로 어떻게 되려는걸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작가가 먼저 말해버린다. "막장 드라마의 끝은 어디인가 이러다 혹 어느날 대기업 총수가 내 앞에 나타나 내가 네 이바다 라고 말하는 건 아닐까" 라고 말이다. 아니 이건 뭐 완전히 액션영화 한편일세 라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작가가 또 먼저 말해버린다. "나는 한편의 첩보 영화를 본 기분이었다" 라고 말이다. 꼬일때로 꼬여가는 가족들로 인해 햐~ 대체 어떻게 끝이 나려고 하나 할 겨를도 없이 작가는 또 "도대체 이 막장 드라마는 언제쯤 끝이 날까" 라고 말한다.
천명관의 소설은 이런게 맛인것 같다. 내 생각이랑 작가의 생각이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 소설속 주인공이 아닌 그것을 지켜보는 누군가가 (마치 옛날 무성영화의 변사 같은)있어서 그것을 내 감정과 비슷하게 말해주는 듯한. 그런 감칠맛이 있는 것 같다.
고령화 가족은 그야말로 온갖 삼류 막장의 이야기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다. 작가는 이러한 그들의 삶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조금씩 빌려오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대놓고 보여준다. 만일 실제로 이것이 영화나 드라마였다면 영화는 망했을 것이고 드라마는 욕으로 게시판을 도배했을 것이다. 천명관은 이런 점을 노리는 것 같다. 한번 대놓고 만들어보자! 뭐 이런 것 말이다. 이렇게 대놓고 보여주니 이 와중에도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고 연민도 느껴지고 하더라. 고령화 가족은 캐릭터가 완벽하다. 소설의 주인공인 본인을 비롯해 형제들, 조카, 어머니,그리고 빌라앞 담장아래 놓여있는 소파에 앉아있는 엑스트라 같은 노인네들까지도 캐릭터가 확실하다. (상근이 할머니를 잊을수가 없다.) 이런 살아있는 캐릭터들이 소설의 재미를 더해준다. 희곡쓰는 누군가 그랬다. 캐릭터가 살아있으면 그캐릭터들이 희곡을 써나간다고. 그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손발이 오그라들었는데 천명관 소설의 살아 있는캐릭터들을 보면 진짜 그들이 알아서 질펀한 삼류 막장의 삶을 살아주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든다. (만일 나중에 작가를 만날 기회가 생기면 물어볼까나. 울 친정 근처에 사신다던데....^^)
소설을 다 읽은 지금 나는 헤밍웨이 전집을 읽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든다. 상실의 시대를 읽고 난 후에는 위대한 캐츠비와 마의 산에 꽂혔고, 유은실의 단편 동화집 만국기 소년을 읽고 난후에는 백석에게 꽂혔고, 삼순이 드라마를 본 후에는 모모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꽂혔다. 그리고 고령화 가족을 읽은 지금은 헤밍웨이의 소설들에 꽂혔다. 서울의 한 가운데를 한강이 유유히 흐르듯 고령화 소설의 한 가운데는 헤밍웨이의 소설들이 유유히 흐른다. 뭐 이 소설의 끝에 하고 싶은 일이 헤밍웨이 소설을 읽고 싶은 것 뿐이랴. 삼겹살도 먹고 싶고, 피자도 한판 먹고 싶고, 짐 자무시의 지상의 밤도 보고 싶고...
오감자극 삼류 액션 코믹 막장 드라마 고령화 가족! 정말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대를 향해 말합니다. 당신은 최고의 이야기 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