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머니는 못 버려. 오래된 물건을 모아두고 날마다 조금씩 꺼내보지.
“이건 우리 어머니가 만들어준 바늘집.”

“이건 우리 아들이 아홉 살 때 선물한 종이 카네이션.”

“이건 죽은 남편이 사준 모자.”

이렇게 혼잣말을 하면서. 할머니는 물건에 시간이 담겨 있다고 믿어. 옛날 물건을 만지면 그것과 함께했던 시간으로 돌아가는 것만 같대.

할머니는 주워 모으는 것도 좋아해. 날마다 오래된 손수레를 끌고, 오래된 물건을 찾으려고 동네를 돌아. 그러다가 맘에 드는 걸 발견하면

“아이고 이렇게 쓸 만한 걸 누가 버렸대.”

그러면서 얼른 수레에 실어. 한번은 내가 이렇게 물었어.

“할머니, 왜 그렇게 주워 모아요?”

그러니까 이렇게 대답하셨지.

“언젠가 쓸 데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할머니 집에는 ‘언젠가 쓸 데’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물건으로 가득해. 물건은 다락을 가득 채우고, 옥상을 가득 채우고, 마당을 가득 채우고, 집안 곳곳에 가득가득해. 할머니는 물건 더미 사이에 난 길을 따라서 집안 이곳저곳을 다녀.

나는 할머니 집이 재밌어. 동생이랑 미로 찾기, 숨바꼭질 하면 딱 좋아. 한 번은 할머니 집 마당에서 숨바꼭질을 하는데 어떤 사람이 대문을 두드리고 물었어.

“여기 고물상이죠? 빈 병 받나요?”

나는 그 사람 때문에 재미있는 놀이를 하나 만들어 냈어. 바로 ‘고물상 놀이’. 나랑 동생은 고물상 놀이를 하면서 물건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 그래도 할머니는 내버려둬.

엄마 아빠는 할머니 집이 복잡한 걸 싫어해. 먼지랑 곰팡이 때문에 할머니 건강이 나빠질까봐 걱정된대. 사람들이 “저 할머니 미친 거 아니야? 집이 쓰레기장 같네.”하고 수군거리는 것도 싫은가봐.

동네 사람은 할머니가 제 정신이 아닌 줄 알아. 하지만 할머니 뇌는 아주 건강하지. 집에 빈 내복 상자가 57개, 오래된 라디오 21개, 빨래집게가 179개 있다는 것도 알고 있어.

“어머니, 필요한 것만 두고 좀 버리세요.”

엄마는 오십 번도 넘게 말했어. 하지만 할머니 대답은 언제나 똑같지.

“얘, 그거 다 필요한 거다.”

“엄마, 꼭 간직할 것만 두고 좀 버립시다.”

아빠가 백 번도 넘게 말했어. 하지만 할머니 대답은 언제나 똑같아.

“얘, 그거 다 꼭 간직할 거다.”

“할머니, 아무 것도 버리지 마세요. 재밌어요.”

내가 딱 한 번 말했어. 그러니까 할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지.

“그래. 하나도 안 버릴게.”

우리는 토요일마다 할머니 집에 가. 음식은 꼭 싸가지고 가야 돼. 아니면 밖에 나가서 사먹거나. 부엌이 오래된 물건이 가득해서, 음식 만들기가 불편하거든.

“참, 저 미로 같은 데서 어떻게 밥을 해 드시나 몰라.”

엄마는 할머니가 신기하대. 할머니 집에 가면 밥을 꼭 안방에서 먹어야 돼. 부엌에 커다란 식탁이 있지만, 오래된 그릇이 쌓여 있어서 밥 그릇 하나 올려놓을 틈도 없거든.

“얘, 내가 서운한 게 있다.”

지난 주 토요일에 할머니가 말씀하셨어.

“뭔데요?”

아빠가 대답했지.

“왜 엄마 집에서 한 번도 자고 가지 않니? 집에 이불도 많은데. 우리 집 이불이 스물 두개, 베개는 스물네 개야.”

“엄마는 참. 이불이랑 베개가 많으면 뭐 해요. 우리 식구 잘 데가 없는데.”

“방이 세 개나 되잖아.”

“작은 방은 짐으로 꽉 찼잖아요.” “그럼 안방에서 같이 자면 되잖아.”

“어휴 엄마. 여기서 어떻게 다섯 식구가 자요.”

할머니는 안방을 빙 둘러보았어. 그리고 얼굴이 어두워졌지. 안방은 오래된 물건으로 가득해서, 다섯 식구가 앉아 있을 순 있지만 누울 순 없거든. 할머니는 고개를 숙인 채 한동안 가만히 계셨지.

“너희들 말이 맞구나. 꼭 필요한 것만 두고 버려야 했어.”

“예에?”

엄마는 눈이 커다래졌어. 아빠는 입을 쩍 벌렸지. 할머니가 “버려야 했다.”고 말한 건 처음이니까.

다음날 아침 일찍 할머니는 정리를 시작했대.

‘꼭 간직할 것만 두고 버리자.’

할머니는 굳게 마음을 먹었대. 하지만 막상 버리려고 하니, 뭐가 더 간직할 만한 건지 구별하기가 어려웠나봐.

‘그럼 꼭 필요한 것만 두고 버리자.’

할머니는 눈을 딱 감고 결심했대. 하지만 막상 버리려고 하니, 뭐가 꼭 필요한 건지 구별하기가 어려웠나 봐. 할머니는 오전 내내 안방을 뒤지다가 버릴 걸 딱 2개 찾아냈대. 녹슨 옷핀 하나, 그리고 광고지 한 장.

‘도저히 안 되겠어. 아들 며느리한테 부탁해야지.’

할머니는 안방을 정리하는 동안 이모할머니 집에 가기로 마음먹었대. 그러지 않으면 버린 물건을 죄다 가지고 들어올 것 같아서.

우리는 어제 할머니 집을 정리하러 왔어.

“꼭 간직할 거랑, 꼭 필요한 것만 두고 버려라.”

할머니는 이모할머니 집으로 떠나면서 말씀하셨어. 할머니는 택시 트렁크에 커다란 가방 2개, 라면 상자 2개를 싣고 가셨어. 이모할머니한테 꼭 필요할 것 같아서 모아둔 거래.

“아빠, 저거 필요 없으면 어떡하지?”

내가 물었어.

“괜찮아. 엄마가 떠나면 분리수거해서 버릴 거니까.”

아빠가 씩 웃으며 말했어. 하긴, 엄마도 그래. “어머니, 이거 꼭 필요한데, 저 주세요.” 그래놓고 분리수거 하는 날 버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할머니 집은 발 디딜 틈도 없을 거라나?

엄마 아빠는 장갑을 끼고 안방 정리를 시작했어. 빈 내복 상자 57개, 고장 난 안마기 9개, 그리고 바닥부터 천장까지 쌓인 신문을 내다버리는 건 쉬웠어. 하지만 빛바랜 상자를 연 다음부터 문제가 생겼지. 아빠는 물건을 하나하나 꺼내보며 이렇게 말했어.

“이건 내가 초등학교 때 쓰던 책받침이네.”

“어, 이 그림일기가 아직도 있네.”

“세상에 이건 내가 쓰던 슬리퍼잖아.”

아빠는 나를 부르더니 낡은 슬리퍼를 신어보라고 했어. 슬리퍼는 나한테 딱 맞았지.

“아, 이 상자는 내가 가져가야겠다. 완전 추억의 상자야.”

아빠는 상자를 들어다 차 트렁크에 실었어. 그러고는 계속 추억의 상자를 찾아냈어. 트렁크는 어느새 아빠 추억으로 가득 찼지.

“못 살아, 누가 그 어머니 아들 아니랄까봐.”

엄마는 짜증을 냈어. 그러고는 아빠를 안방에서 쫓아냈지.

“내가 싹 치울 거니까. 나가!”

엄마는 우리 집 안방이 할머니 집처럼 될까봐 겁이 났나봐.

쫓겨난 아빠는 우리랑 놀았어. 마루에서 숨바꼭질도 하고, ‘할머니 놀이’도 했어. 할머니 놀이는 내 동생이 만든 건데 물건을 집고

“이건 내 친구가 준 액자.”

이렇게 지어내는 거야. 그러면 다음 사람은

“이건 옆집에서 주운 바구니.”

이러고 그 다음 사람은

“이건 죽은 남편이 사준 인형.”

이러는 거야. 말이 막히면 죽는 건데, 잘 안 죽었어. 집어도 집어도 또 집을 물건이 있으니까.

엄마는 결국 우리 식구들이 누울 만큼 방을 치웠어. 하지만 싹 치우지는 못했지.

“왜 싹 치운다더니?”

아빠가 물었어.

“그게 잘 안 되네. 어머니한테 뭐가 꼭 소중한 건지, 뭐가 꼭 필요한 건지 내가 알 수가 있어야지.”

엄마는 짐들이 할머니 인생 같았대. 자기 인생은 자기만 정리할 수 있는 거라나?

오늘 아침, 엄마 아빠는 미로 같은 부엌에서 겨우 밥을 했어.

“부엌도 좀 치워야겠어. 잘 데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 음식도 해먹어야지.”

엄마 아빠는 할머니랑 부엌을 함께 치울 거라고 했지. 다음 주 토요일엔 할머니 집에서 음식을 만들고 잠도 잘 거래. 나는 재밌는 할머니 집에서 자는 게 기대되었지.

하지만 나는 곧 기대를 접었어. 택시를 타고 오실 줄 알았던 할머니가 트럭을 타고 오셨거든.

“할머니, 이게 다 뭐예요?”

내가 물었어.

“니 이모할머니가 글쎄 멀쩡한 가구랑 물건들을 버린다잖니. 두면 쓸 데가 있을 것 같아서 가져왔다.”

운전사 아저씨는 트럭에서 짐을 내렸어. 아빠는 한숨을 쉬고, 엄마는 울 것 같은 표정이었어.

“할머니, 이 거 어디다 놓을까요?”

기사 아저씨가 물었어.

“우선 안방에 갖다놔요. 나중에 정리할 거니까.”

할머니 집 안방은 다시 다섯 명이 앉을 데밖에 없게 되었어.

“다음 주에 와서 자고 가. 내가 다 정리해 놓을 거야.”

할머니는 우리를 배웅하면서 말했어. 하지만 엄마 아빠는 안 될 거래. 물건을 배 위에 올려놓든지, 차곡차곡 포개서 자지 않는다면 말이야.



▲ 동화작가 유은실씨

●작가의 말

친구에게 잘 버리지 못하는 어머님 얘기를 들었다. 어린 시절 할머니 몰래 장롱 속 오래된 물건을 뒤지던 생각이 났다. 손때 묻은 물건은, 그 물건이 활발하게 쓰였던 시간과, 그 시간과 얽힌 사람에 대한 추억을 담고 있다.

효용가치가 다해 버려지는 물건들,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극도로 아끼는 할머니와 그걸 바라보는 자식, 손자 얘길 그려봤다. 그리고 내가 끝끝내 버리지 못하는 것, 너무 쉽게 버린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못 버려 할머니’ 집에 가서 하루만 실컷 놀아봤으면 좋겠다. 할머니 놀이, 고물상 놀이 만들어낸 아이들이랑.

●약력

1974년 서울 생. 창비어린이 2004 겨울호에 ‘내 이름은 백석’ 발표하면서 등단. 펴낸 책으로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 ‘우리 집에 온 마고할미’, ‘만국기 소년’, ‘멀쩡한 이유정’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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