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의 우아함
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김관오 옮김 / 아르테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책 뒷표지에 나와있는 르네와 팔로마에 대한 간략한 소개만으로도 이 책은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발칙하고 똘똘한 소녀들가 평범한 척 연기하는 모습에 반해버렸던 은희경의 새의 선물을 좋아했던지라 팔로마가 기대되었다. 띠지에 실려있는 영화속 팔로마의 모습이 더 기대감을 부풀렸다. 그런데 막상 책을 읽어보니 팔로마는 생각보다 주인공이 아니었고 쉰네 살의 수위 르네가 원톱인 소설이었다.  

그녀 르네는 그녀만의 공간 수위실 안쪽 방에서 철학의 산을 쌓으며 살아간다. 친구이자 하녀인 마누엘라와의 대화는 수위와 하녀와의 대화라고 보기가 어렵다. 아니 일상적이고 평범한 대화라고 하기가 어렵다. 

마누엘라:사실 오즈씨 집에는 서로 비슷한게 하나도 없어요. 뭐라고 해야할까, 쾌적한 느낌이 들어요 
르네:어떻게 쾌적하다는 건가요?
마누엘라:정신없이 먹고 즐긴 나머지 축제가 끝났을 때 기분이 붕뜨잖아요. 나는 모두가 떠나고 난 뒤의 순간을 떠올려요. 남편과 난 주방으로 가죠. 나는 신선한 채소로 국을 준비해요. 버섯을 아주 얇게 잘라 넣은 국을 먹는거예요. 그러면 폭풍우 속을 빠져나온 뒤에 다시 고요해진 느낌이 들죠
르네:그럴땐 더 이상 부족한게 두렵지 않죠. 지금 이순간이 행복하고
마누엘라:그거야말로 정말 자연스러워요. 먹는게 원래 그런거잫아요
르네:우리가 가진걸 이용하면 돼요. 경쟁이 필요없죠. 하나의 느낌 다음에 또하나의 느낌만 있으면 되니까
마누엘라:맞아요 가진건 적어도 가진 걸 더 잘쓰면 되죠
르네: 누가 한꺼번에 여러가지를 먹을 수 있겠어요?
마누엘라:불쌍한 아르텡스 씨 조차 그럴 순 없겠죠
르네:내방엔 똑같은 침대 탁자 두개와 똑같은 램프 한쌍이 있어요
마누엘라:나도 그래요
르네:우린 아마 과잉에 목맨 병자들인가봐요  <쾌적한 느낌 중에서>

르네와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오즈씨와의 첫 만남도 참으로 설레였다. 

오즈: 아르텡스 씨네를 아십니까? 아주 특별한 가족이었다고 하던데요.
르네: 아뇨, 그리 잘알지는 못했어요. 그냥 여느집과 같았죠
로젠 부인: 맞아요. 행복한 가정이었어요.
르네:아시다시피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비슷하죠.
오즈: 그러나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불행한 이유가 다양하지요
.  <찰나 중에서>

이 대화가 왜 설레이는 대화인지는 좀 더 읽다보면 나온다. 문득 나도 누군가와 만날 때 저렇게 대화하면서 만날 수 있다면 하고 바래본다. 처음 만나는 사람인데 같은 책을 읽고, 같은 영화를 보고, 같은 곳을 여행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이 말을  하면 그 사람은 저 말을 하며 끝없는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와 태양님의 첫 만남도 르네와 오즈의 만남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연히 들어간 채팅방에서을 처음 대화를 할 때 얘기를 하다보니 서로 일본 애니메이션 광이었고  토토로와 천공의 성 라퓨타, 원령공주, 나우시카 등을  이야기 했고 애니를 보면서 궁금했던 점을 서로 나눴고 서로 없는 애니를 주고 받고(불법다운로드였는데 저작권법으로 잡혀가진 않겠죠? 8년전 얘기입니다 ^^). 그렇게 시작된 만남이  결혼에 이르게 되었으니 르네와 오즈를 그다지 부러워할 필요가 없을진데 8년의 시간앞에 그 추억들이 무뎌진건지 두 사람의 만남이 너무 달콤하다(결말이 좀....맘에 안들지만...) 

팔로마 이야기를 너무 안했나? 웬지 팔로마보다 르네가 더 매력적이어서...책 뒷 표지 인물 소개를 보고 두 사람이 만나는 순간, 장면을 계속해서 떠올렸다. 어떤식으로 만날까? 두 사람은 어떤 우정을 나눌까! 그런데 462 페이지 짜리 소설인데 338페이지가 되서야 두 주인공이 말을 섞는다. 참으로 오래 기다리게 한다. 그래서 이렇게 오랜 기다림으로 만난 둘인지라 결말이 더 아쉬울 수 밖에 없다.   

너무 재미있고 신나고 설레게 읽은 책인데 쉽사리 남편이나 친구, 동생에게 권해줄 수 가 없다. 음...공중그네처럼 마구마구 이친구 저친구에게 선물로 줄수는 없는 책이다. 알랭드 보통의 책을 선뜻 권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팔로마는 말한다. 

지성에는 마력적인 면이 있다. 하지만 내게 지성 그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지성인은 널리고 널렸다. 얼간이도 많지만 유능한 두뇌도 많다. <깊은 사색11 중에서>

나는 저 마력때문에 한때 철학책을 읽고 인문학 책을 읽고 미학책을 읽은 적이 있다. 아니 솔직히 지금도 살짝... 그래서인지 저말이 참 찔린다. '지성인은 널리고 널렸다.' 이 책을 쉽사리 권할 수는 없지만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뭐 또 그닥 나은사람도 아닌 것같다(나를 보면...) 그저 널리고 널린 지성인으로 다가가는 사람들일 뿐이지... 그런데... 나는 이런 책이 좋다. 재밌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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