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찐군과 두빵두 문지아이들 74
김양미 지음, 김중석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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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동화]라는 표현을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이상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에게  쓰곤 한다.

  “완전히 동화 속에서 사는구만.” “지금 동화쓰냐?”
하면서 말이다. 동화를 쓰는 분들은 동화를 저속화 했다고 여기실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말 안에 동화를 향한 사람들의 기대가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동화는 세상이 어둡고 힘들더라도 좀 더 밝은 면을 강조하고 아름답게 쓰여 진 글인 줄만 알았다. 그것이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일 잃지 않게 해주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동화를 읽으며 나의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다. “동화 속에서 사는구만.” 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진짜 동화를 모르는 사람인 것이다. 

  여기 [찐찐군과 두빵두]라는 동화가 있다. 여행 작가 아버지와 미용실에서 일을 하는 엄마를 둔, 친구가 없고 생각이 많은 찐찐군(기영이)과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고, 할아버지와 엄마랑 사는 장애아이면서도 남달리 밝고 긍정적인 성격을 가진 두빵두(찬울이)의 우정을 그린 동화이다.

  찐찐군과 두빵두는 여러 결핍들이 소개 된다. 그 중 가장 큰 결핍은 아빠의 부재이다. 찐찐군의 아버지는 몇 년씩 집을 비우고 여행을 다니신다. 아버지가 여행 후 쓰신 책들이 아버지를 대신한다. 좋은 글귀도 많고 그 글들을 좋아하지만 자신과 놀이터에서 놀아주고, 학교에서 부모활동을 함께 해줄 수 있는 아버지가 그립기만 하다. 두빵두의 아버지는 두빵두가 한 살도 되기 전에 존재하지 않으셨다. 두빵두의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은 찐찐군의 것을 넘어설지도 모른다. 그 다음은 어머니의 부재이다. 두 분 다 아이들과 함께 살기는 하지만 아이들과 아무것도 함께 하지 못한다. 하루 종일 미용실에 나가서 밤 열시가 넘어서야 들어오는 찐찐군의 어머니와 혼자서 아이를 키워야 하기에 직장에 메여 할아버지에게 양육을 맡겨버린 두빵두의 어머니. 마음은 더 신경써주고 싶고, 미안하고 걱정되지만 현실이 받쳐주질 못한다. 그 미안함과 걱정됨을 찐찐군의 손전화기로 대신 해주고 싶겠지만 그것은 역부족이다.  그 다음은 신체의 결핍이다. 찐찐군은 장애우이다. 혼자서 외출하는 일은 엄두도 낼 수 없으며, 마당에서 집안으로 전화를 받으러 가는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그 다음은 친구의 결핍, 그 다음은 경제적인 결핍…… 
  찐찐군과 두빵두에서 보여주는 결핍들은 이 사회의 결핍들이고, 또 나의 결핍인 것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 대표로 뽑혀 웅변대회를 나갔다. 우리 학교는 용인의 작은 시골 학교였기에 누군가가 읍내의 군청으로 나를 데려가야 했다. 엄마가 데려갈 것이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었는데 대회 날 아침 엄마가 사라졌다. 며칠 집에 머물다가 집을 나가 몇 달씩 있다가 다시 들어오는 것을 늘 반복해왔던 엄마지만, 대회 날 아침 사라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학교에 가서 어른들이 바쁘셔서 혼자 나가야 한다고 말씀드리자 선생님들은 상의 끝에 일단 버스는 혼자 태워 보내고 용인 터미널에서 교장선생님이 기다리시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멀미를 심하게 한 나는 터미널에서 교장 선생님을 보자마자 폭 안겨버렸다.

 나는 엄마의 결핍이 가장 컸고, 정상적인 피부가 아니라는 결핍이 있었으며, 경제적으로도 어려웠다. 그러나 어릴 적 읽은 동화들이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세상을 말한다 해도 내 것이 되지 못했다. 그때에 찐찐군과 두빵두를 만났다면 허황된 신데렐라의 꿈을 꾸기보다 좋은 친구 한명을 사귀기 위해 노력 했을 것이고, 도서관으로의 모험을 떠났을 것이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야 라며 절망에 빠지기보다 다들 이렇게 결핍된 채로 살아가는구나. 라며 어울려 사는 법을, 서로서로 위로하고 사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

  동화는 허황된 꿈을 꾸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현실을 위로하고 친구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놀이터와 도서관을 여행지로 만들어 주는 것이고, 동네의 골목길을 미로로, 새로 만나는 사람들을 친구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현실에 대해서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게 해주고, 동화 속 주인공들과 끊임없이 왜? 라는 질문들을 던지며 해답을 찾아 떠나 보는 것이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의 결론이 아닌 어떻게 됐을까? 어떻게 되면 좋을까? 하고 미래를 그려보는 것이다.

  얼마 전 논술에 관한 세미나가 있어 참석하게 되었는데 몇 만 명의 주부회원을 거느린 인터넷 사이트 대표님께서 자신의 자녀의 독서습관을 말씀하시면서 살짝 동화를 폄하 하는 발언을 하셨다. 쉬는 시간 쪼르르 그 분에게 다가가 “요즘 동화 읽어보셨나요?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유치하지도, 권선징악적이지도 않습니다.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라고 말하고 돌아왔다. 아마 그 분도 동화 속에서 살고 싶은 분이셨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동화의 세계는 양탄자를 타고 날 수도 없고, 멋진 왕자님의 키스로 모든 현실이 바뀌지도 않는다. 동화 속세계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긴 한 숨소리에 같이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이 요즘 동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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