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국기 소년 창비아동문고 232
유은실 지음, 정성화 그림 / 창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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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시인 신현림씨가 "어떻게 시를 읽지 않고 인생의 의미를 알수있을까? 과연 시를 안읽는 사람과 연애 할수 있을까" 라는 말을 했었다. 시는 사람의 마음을 풍요롭게 해주고 상상력을 풍부하게 해준다. 똑같은 시가 어느날은 내게 위로가 되고 어느날은 슬픔을 가득 안겨준다. 그래서 나는 시를 좋아한다. 무슨 말을 하는거야? 라고 이해할 수 없는 시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시를 사랑한다.

만국기 소년에 실린 이야기 중에 [내 이름은 백석] 이라는 동화가 있다. 일단 첫 장을 넘기면서 내가 백석 시인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우쭐했고,  한줄 한줄 읽어가면서는 이건 동화가 아니라 한편의 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작가가 시를 참 사랑하는 사람이겠구나 싶었다. 올해 4학년이 된 백석은 [대거리 닭집]의 아들이다.  백석의 아버지는 간판 덕분에 [닭대가리] 라는 별명으로 불리운다. 백석의 이름이 외자인 까닭은 [백]이라는 한자가 너무 복잡해서 고생할 생각을 하니까 이름을 두글자로 지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아무런 의미도 없던 백석의 이름이 4학년 담임 선생님으로 인해 특별한 이름이 된다. 선생님은 자신이 시인 백석의 시를 좋아한다며 시인 백석이 천재 시인 이라를 말을 해준 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의 꽃 중에서...   역사적인 날이다. 새로운 의미가 붙는 날. 아버지와 아들은 백석 시인의 시집을 한권 사서 시 연구에 들어간다.

사온 책은 아마 이 책인듯 싶다. 시를 읽는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라는 시를 읽어 내려간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탸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燒酒를 마신다
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알응알 울을 것이다

시를 읽는데 자꾸 [나린다] 가 걸린다. 나린다가 아니라 내린다가 아니냐고 묻고  무슨 시인이 내린다도 모르냐며 [나린다]가 나오는 부분마다 [내린다]로 고쳐 읽는다. 나타샤.... 이 여자는 미국여자인지 소련여자인지 러시아 여자인지... 대체 이 시는 뭐 어쩌자고 지은 시인지.... 이러는 사이 건어물 아저씨의 비웃음 섞인 말이 들려오고 아버지는 화가 난다. 그리고 백석에게 몇 가지 조언을 해준다.

시는  [의미]를 알 때 그 맛이 더한다. 그저 보이는 것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숨겨진 내용을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찾아낼 때 그 오묘하고 담백한 맛에 젖어든다. 첫번째 동화  [내 이름은 백석]은 그 의미를 찾는  작업처럼  보인다.  백석이라는 이름에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고, 새로운 의미를 정립하기 위한 연구에 들어가고, 연구 과정중에 자기 돌아봄의 시간을 갖게 된다. 첫번째 동화가 시의 의미를 이야기하는 동화라면 두번째 동화 [만국기 소년]은 시의 운율에 대한 동화처럼 느껴졌다. 한켠에서는 나라와 수도가 계속해서 읊여지고 다른 한켠에서는 그 소년에 대한 나의 생각과 일상이 펼쳐진다. 그리고 이 두가지는 병렬적으로 나열된다. 내가 말하고 네가 말하고 내가 말하고 네가 말하고... 노래하듯 펼쳐지는 [나라와  수도]는 노래가 되고 눈물이 된다.

유은실의 동화집은 책 뒷편에 써있는 말 그대로 [어른들이 말들어 놓은 세상을 살아가는 아이들의 슬프고도 환한 이야기] 이다. 슬프지만 환하다. 내이름은 백석의 그 꼬마 백석은 시를 아는 멋진 청년이 될것이고, 만국기 소년의 진수는 세계를 여행하는 멋진 여행가가 될것이고, 맘대로 천원의 나는 돈을 제대로 쓸 줄 아는 사람이 될 것이고, 선아의 쟁반에 선아는 고집쟁이나 편파적인 사람이 아닌 융통성 있는 아이로 자랄 것이고, 어떤 이모부의 명우는 남에게 불편을 주는 사람이 되지 않을꺼라는...... 웬지 이런 저런 환함이 여기저기서 묻어난다.  나는 실제로 이 동화에 나오는 아이들 만큼이나 슬픈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슬픈 일들 때문에 잘 못된 길을 선택하거나 마음을 나쁘게 먹었다면 지금의 나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의 슬픔이 환함이 되어서 아이들에게 좋은 길을 가르쳐 주었으면 좋겠고,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갖게 했으면 좋겠다. 지금의 자신의 삶에 늘 재미있고 즐거운 의미를 부여하며 행복하게 노래하며 사는 아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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