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나리아
야마모토 후미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창해 / 200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엊그제 절대 울지 않아 를 읽고 이벤트로 딸려온 플라나리아를 얼른 집어 들었다. 그녀의 글 쓰기가 딱히 맘에 든건 아니지만 묘한 매력같은것이 있었기에 빨리 그녀의 스타일을 다른 작품을 통해 접하고 싶었다. 절대 울지 않아에 비해서 조금 더 시니컬 하긴 하지만 그녀의 스타일이 무엇인지는 조금씩 감이 잡혀간다고나 할까...

첫번째 단편 플라나리아를 읽고는 잠시 멍해져서 창밖만 쳐다보았다. 뭐랄까..하루카의 태도때문에 화가 났다고 해야하나. 저 여자 뭐야!! 세상에서 지가 제일 힘든줄 알아!! 결론은 이게 뭐야! 그래서 하루카의 태도가 옳았다는거야 뭐야!! 에이씨~~~~~ 하루카의 어떤 태도가 나를 격분하게 했는지 찬찬히 다시 본 후 포스트Ÿ堧?꺼내 메모를 적었다. 그리고 플라나리아의 마지막 페이지에 붙였다.

나는 [나가세]쪽에 가깝다. 하루카의 정체성이니 어쩌구 하면서 또 다음 생에 그것으로 태어나고 싶다면서 상식적이고 기본적인것 마저도 찾아보지 않는 태도를 꾸짖는 사람이고, 싫은 소리 제대로 못해 무수한 친절 끝에 한마디 하는 사람이고, 아주 작은 것에 감동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작은 것에 믿어버리는 사람이고 내가 그럴리 없으니 그도 그럴리 없다고 단정하는 사람이고 또한 작은 것에 실망하고 절망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못되쳐먹은 하루카가 싫다.

책을 읽고 난 뒤 내가 화를 낸 이유는 웬지 작가 야마모토 후미오가 하루카의 편이 되어 글을 쓰고 있는 것 같아서 였다. 지금껏 내 태도에 대해서 크게 잘 한 것도 없지만 잘 못하며 산 것도 아니라는 조그마한 자부심 같은 걸 갖고 살았는데 마치 나의 태도가 아니 나가세의 태도가 남을 배려하지 않은 자기 위한 같은 태도인 것처럼 표현해버리니 화가 났던 것이다.

얼마전 미술관에 할머니들이 오셨다. 나는 그저 오셔서 시간만 죽이고 가느니 현대미술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고 가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것저것 설명해드렸다. 할머니들은 가시면서 "선생님이 친절하고 재미있게 가르쳐주셔서 손님 많겄어~" 라며 칭찬을 해주셨다. 내심 뿌듯했고 내가 미래에 하고 싶은 일이 아이들과 노인들, 또는 미술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이들에게 조곤 조곤 재미있게 가르쳐주는 일을 하고 싶은 만큼 더 보람도 있었다. 그래서 안타까운 마음에 함께 일하는 스텝에게 이곳에 관람하러 오는 분들은 왜 묻지를 않을까? 물어보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는데... 안타까워!! 이렇게 말했더니 동료 스텝에게서 돌아온 말은 언니의 그런 태도는 언니 욕심에서 불거진 거라고 하였다. 자기도 날씨가 너무 좋아서 친구들에게 날씨가 너무 좋지 않니! 이런날 뭐라도 해야하지 않겠어~~ 라고 하자 친구들이 그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며 그건 자기의 감정을 친구들에게 강요하는 행위밖에 안되었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저 보고만 있어도 좋은 사람이 있는데 굳이 설명을 들어 그 감정을 헤치고 싶지 않을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안타까운 마음은 사실은 모두 나 같은 마음이기를 바라는 내 욕심이라는 것이였다. 정말 별것 아닌 얘기였는데 난 그자리에서 펑펑 울어버렸다. 지금까지 내가 품었던 꿈들이 내 욕심이라고 하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추스려야할지 일시적 공황장애가 왔던 것이다.

플라나리아를 읽고 난 뒤에도 난 그런 상태였다. 울지는 않았지만 딱 그런 상태였다. 잠시 긴 호흡을 한뒤 나머지 이야기들도 읽어 나갔다. 사랑있는 내일, 네이키드, 어딘가가 아닌 여기, 죄수의 딜레마.... 그리고 책을 덮는 마지막 순간 후미오의 약점을 살짝 발견하면서 그녀는 누구의 편도 아닌 그저 중립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대략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것이다. 누가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런것이였다.  한 때 글을 쓰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과거형.... ^^;;) 그때의 글을 뒤적여보면 지금의 후미오처럼 내안의 약적들을 여기저거 흩뿌려 놓기를 잘했었다. 그러나 후미오와 다른 점은 난 철저하게 나의 삶에 손을 들어주는 글들을 썼다는 것이다. 나에게 상쳐줬던 사람은 악인이 되고 회복 불가능으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들도 나때문에 상처받고 힘들어 했을지 모른다. 나의 친절이, 나의 과잉반응들이...

플라나리아를 또 단숨에 읽어버렸다 그런데 이번엔 돈이 아깝지가 않다. 나를 너무 흥분 시켰기 때문일것이다. 야마모토 후미오의 다른 책들도 얼른 구입해서 읽고싶다. 또다시 나를 흥분시키고 화가 나게한다면 실컷 화내야지. 그리고 또 고마워해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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