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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스트 Axt 2016.3.4 - no.005 ㅣ 악스트 Axt
악스트 편집부 엮음 / 은행나무 / 2016년 3월
평점 :
품절
고백을 하자면, 나는 지난 호에서 듀나의 인터뷰를 읽었을 때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었다. 다만 인터뷰에서 '익명성'의 비중이 너무 크지 않나...라고 생각해보았을 뿐이다. 발행 이후의 후폭풍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고, 5호가 나올 때가 되어서야 그런 논란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뒤 다시 생각해보면서 비판의 여지가 충분히 있는 부분이라고 결론짓게 되었고, 스스로를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도 소위 '순수'문학의 시선에 길들여져 있었던 건 아닌가, 하고.
이번 호에서 문제의 '4호'를 대상으로 한 서평을 실은 것은, 어떤 비판도 감내하겠다는 일종의 제스처로 보인다. 'Outro'에서도 파스칼 키냐르의 작품을 인용하며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아직도 분위기는 싸늘한 듯하다. 사과는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논란이 사그러들기에는 그 시기가 너무 늦었다. '지면을 통해 말할 수밖에 없어' 그랬다지만, 논란이 일었을 때 공식 입장을 밝힐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번에 실린 서평들에 대한 인상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이렇다. '실망.' 목차를 볼 때부터 의문이 들었던 건 왜 오한기의 『의인법』을 다룬 서평이 세 개나 되는가..였고, 전반적으로 핵심을 찌르는 글보다 개인적인 감상에 머무르는 글이 많이 있었다(콕 집어서 하나만 말하자면, 『은어낚시통신』 서평. 서평의 기본적인 기능이 '소개'라고 했을 때, 이 글은 그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한다. 줄거리를 알면 '이 부분이 소설의 이 내용을 토대로 한 거구나'라고 이해할 수 있겠지만, 이 글은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윤대녕 작가가 처음 이 책을 출간했을 때와 비슷한 나이가 된 작가의 소회 그 이상이 아니다). 서평 중에 가장 나았던 것이 『Axt』 4호를 다룬 서평이었으니..
반달 북클럽의 좌담은 반가웠다. 알라딘서재로 보았을 때는 두 번의 좌담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여기에는 한 번의 좌담만 실려서 아쉬웠다. 그래도 『Axt』에서 북클럽의 좌담을 실은 이래 가장 깊이있는 좌담이었다고 생각된다. 물론 나는 문학동네판 『페스트』는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
이번 호에서 가장 좋았던 글을 꼽으라면(소설과 서평 전부 포함해서), 나는 주저없이 이우성 시인이 쓴 「'쓱'과 빛」을 고르겠다. 요즘은 좀 뜸하지만, 얼마 전까지 TV만 틀면 나오던 이 광고에 대한 단평이 재미있기도 하고, 인상주의와 함께 묶어 설명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내가 그 광고를 보며 생각했던 건 '색채가 강렬하고 그 대비가 두드러진다', '극단적인 심플함의 추구' 같은 것이었는데, 이우성 시인은 나와 반대로 말한다. 간단명료한 메시지('이거 사세요!')를 명쾌하게 전달하기 위해 셀러브리티가 가장 부각되고 나머지는 단순화되고 있는 시대에, '쓱'은 오히려 복잡함을 추구한다고.
그런데 '쓱'은 복잡하다. 신기하게 복잡하다. 사실 이 광고는 모든 것을 '쓱' 한마디로 요약해버린다. 하지만 미장센은, 헐, 왜 이렇게까지 하지, 라는 생각이 든다. 등장인물은 공유와 공효진이다. 둘은 초현실적으로 꾸며진 방 안에 있다. 대단한 것을 가져다 놓은 것은 아니고, 색감이 독특하다. (...) 이런 식의 작품에서 구도는 중요한 요소다. 색의 배열 역시 신경 써야 한다. '쓱'의 방은 마치 몬드리안 이전의, 이제 갓 추상을 경험하기 시작한 어떤 화가가 화면의 분할과 색의 조화를 신경 쓰며 그린 작품 같다. (...) 특히 빛은 다분히 '인상주의적'이다. 창문으로 오후의 빛이 들어온다. 두 배우는 이 빛과 조화를 이루며 앉아 있거나 서 있고, 필요한 말을 '쓱' 한다. (106-107쪽)
피곤하고 바쁜 삶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쓱'은 "그래서 쓱이 뭔데?'라는 의문을 던지고, 회화적인 광고의 모습에 주목하게 만든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광고의 인상과 달리 'SSG닷컴에 접속하면 역시 너무 별것 아닌 세상'이 펼쳐져 있다. 시인의 말대로 일종의 아이러니라고 볼 수도 있겠다. 구도의 복잡함과 메시지의 심플함, 그리고 의문까지 품고 있는 '쓱' 광고를 티저광고와 '인상주의'의 결합으로 볼 수 있으려나.
파스칼 키냐르의 작품은 아직 한 번도 읽어보지 못했는데, 이번 인터뷰를 읽고 나니 호기심이 생겨 읽어보고 싶어졌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는... 『은밀한 생』부터 찾아봐야 하는 건지.. 인터뷰를 보아하니 장르를 넘나드는 글쓰기를 하는 작가인 듯 한데, 심호흡을 하고 도전해봐야 할 듯하다.
서면으로 진행된 인터뷰인데도 현장 인터뷰처럼 느껴지도록 애를 쓴 흔적이 보였고, 인터뷰 방식이 조금 바뀐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과거 악스트 편집자들이 작품 얘기를 거의 안 했다면(내 기억이 맞다면 박민규 작가 인터뷰 때 배수아 작가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언급한 것이 전부다), 이번 인터뷰는 작품 이야기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물론 일종의 팬심(?)이 발현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지켜봐야 할 변화인 듯하다.
개인적으로 이번에 실린 단편 중에는 인상적인 작품이 없었고, 읽기 힘든 것이 더 많았다. 특히 정영문 작가의 「유형지 X에서」를 읽으면서 나는 끝날 듯 끝나지 않는 문장들 속에서 헤매었고(1시간 동안이나), 화자가 '엑스프로방스'에서 겪는 일들이 갖는 의미도 도통 알 수 없었다. 「목신의 어떤 오후」 이후 두 번째 만남인데, 정용준 작가의 글로 감상을 대신하려 한다.
이런 예가 또 있다. 정영문이다. 이름과 얼굴과 소설이 딱 영문이다. 내가 왜 이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있는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지 영문을 모르겠는 그의 소설. 정영문의 소설을 읽으면 나는 혼잣말로 영문을 모르겠군, 이라고 중얼거리며 몰래 웃곤 하는데 이런 말장난이 그의 소설을 설명하는 함축적인 감상이라고 나는 믿는다. (37쪽)
『Axt』가 싣는 단편들에 일종의 경향이 존재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리얼리즘에 가까운 소설(지난 호에 실린 윤고은의 「된장이 된」 같은 단편이 예시가 되겠다)보다 '모던한 경향'의 작품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모던한 경향이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인 서사가 부재하는 작품군을 내 맘대로 표현한 것이다. 서사라기보다 인과라고 해야 할까. 'diary fiction' 같은 경우 그동안 서정적인 소설이 주를 이루었으나, 이번에는 다른 시공간의 '나'가 나타나고, 링 위에서 마지막 펀치를 맞는 순간 시간이 멈추는 이야기로 흘러가 그 경향이 모던함에 가까워졌다, 고 (내 멋대로) 진단해본다. 여전히,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거냐'는 의문이 남지만...
서평이 다루는 책의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있지만(이번에는 인물의 전기, 역사만화에 대한 서평이 실렸다), 예리하게 파고든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특히 한국소설에 대한 서평이 해외문학을 다룬 서평보다 기복이 심하다. 감상을 정리하자면, 내적·외적으로 문제가 많은 총체적 난국이다. 꾸준히 읽어온 독자로서는 안타깝지만, 잘 추슬러서 다음 호를 내주길 기다려본다. 리스트를 증식시켜 줄 수 있는 다음 호가 되었으면...